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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념의 힘: 외젠 들라크루아(Eugene Delacroix)와 브이 포 벤데타(V For Vendetta)

16.11.12 0

strength through unity, unity through faith, 출처: 네이버 영화

 


‘혼란한 사회’란 무엇인가? 요즘 사람들은 우스갯소리로 “막장 드라마보다 나랏일이 더 재미있다.”고 이야기 하곤 한다. 왜인지는 우리 모두 알고 있다. 그 여파로 벌써 2주 넘게 광화문 촛불집회가 진행되고 있으니 말이다. 두 번 다 일이 있어 제대로 참여하지는 못했지만, 집회가 시작되기 바로 직전 청계 광장에서 말로 형언할 수 없는 뜨거움을 느꼈다. 마치 ‘우리’가 누구인지를 보여주는 느낌이었다. 청계광장에는 목도리를 두르고 패딩 잠바를 입은 4인 가족이 지나갔고, 외국인들도 무리를 지어 있었으며 옷을 따뜻하게 입으신 할머니와 할아버지들도 계셨다. 그리고 그렇게 모인 인원이 무려 20만 명이라고 한다. (출처: 아주뉴스) 요즘은 서로 옆자리에 누가 있는지,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르는 시대라고 한다. 그런데 20만 명이라니. 이렇게 한 뜻으로 모이는 국민들이 정말 멋지다고 생각했다.

 

5일 저녁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2차 범국민행동 촛불집회가 열렸다, 출처: 한겨레

 

대학교 1학년, 우연히 총학생회를 접하게 되면서 자연스레 총학생회에서 최고로 열심히 하는 학생 되었다. 그 시기는 사회에서 말하는 것이 무엇인지, 사회의 어느 부분이 잘못 되었는지를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고등학교 때 ‘정치’책으로만 배웠던 사회의 모습과 내가 총학생회에서 배웠던 사회의 모습은 너무나도 판이했다. 그래서 인지 더욱 마음이 쓰렸고, 내가 사는 세상을 조금 더 나은 세상으로 바꾸고 싶기도 했다. 그런데 총학 일을 하면 할수록 주변에는 나를 ‘교화’시키고자 하는 사람들로 늘어났다. 대학교 1학년 초반, 총장 사퇴를 외치며 대강당 앞에 서 있을 때 우연찮게 같은 대학출신의 고등학교 선생님을 마주쳤다. 그 선생님은 반갑게 인사하는 나에게 등짝 스매싱(!)을 날리면서 ‘왜 대학에 와서 이런 일을 하냐’고 나를 나무랐다. 그 자리에 있던 수많은 동문들이 ‘이런 거 하지 말라’며 외치라고도 했다. 그리고 ‘그저 영어 스터디를 같이했던’ 오빠가 장문의 쪽지로 학생회를 그만두라고도 했다. 총학 활동을 하면서부터 점차 OT때 친했던 친구들과 멀어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20살, 스승의 날 방문했던 모교에서 ‘너 대학교에서 이상한 짓 하고 다닌다며?’라는 소리를 들었다. 정말 ‘거지같은 오지랖’이었다. 어째서 20살이 된 내게 이리도 ‘상관 없는’ 사람들이 함부로 말을 내뱉는지 어리둥절할 뿐이었다.

 

이후 다른 복잡한 일들로 1년 반 가량 학생회를 하다 총학을 탈퇴했을 때, 수많은 사람들의 질타에 질려 정치에 관심을 갖지 않고자 했다. 어차피 내가 해도 아무것도 변하지 않을 것이므로, 내 목소리 하나 낸다 한들 사람들이 모두 외면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10년이 흘렀고, 이번 년도에는 유난히 떠들썩한 사건이 많았다. 그런데 이건 자꾸 외면하려고 해도, ‘하면 안 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브이 포 벤데타 스틸컷, 출처: 네이버 영화

 

용기란 무엇일까? 그것은 ‘신념’과도 같은 말이다. 모든 사람들은 아침에 눈을 뜨는 순간부터 갖가지 용기를 내곤 한다. 세수를 할 때, 옷을 입을 때, 밖으로 나와 버스를 타고 회사에 오는 순간까지도 사람들은 가지각색의 용기를 낸다. 그 용기는 주로 자신이 중요시 하는 가치를 기반으로 진행된다. 그렇게 개인의 개성이 탄생하고, 각자의 모습이 나타난다. 그러나 개인차원의 용기가 아니라 ‘사람’이라는, 혹은 ‘국민’이라는 공통점이 있을 때 필요한 용기란? 그것은 바로 ‘나’를 위해 하듯, 국가를 위해 필요한 신념과 양심을 가지는 일일 것이다.

 

20만 명이 집결한 광화문 집회의 모습을 보며 자문했다. 나 자신은 얼마나 용기 있게 살아왔는지에 대해서 말이다. 그리고 나 역시, 20살 시절에 했던 학생회 활동이 일반 사람들이 말하던 ‘나쁘고 필요 없는 행동’이 아니라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달았다. 그리고 더 이상 너무 많은 것을 모른척하고 살아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결국 모르는 척했던 일들이 다시 부메랑이 되어 내가 모르는 사람들이 아닌, 내가 알고 내가 사랑하며 내가 지키고 싶은 사람들에게 되돌아온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브이 포 벤테타(V FOR VENDETTA)>, 출처: 네이버 영화

 


<브이 포 벤테타(V FOR VENDETTA)>를 보며 나는 이 ‘허구’의 작품에 나온 사회의 모습이 현재 우리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을 느꼈다. ‘복수’를 위해 20년 동안 자신을 수련한 후 ‘잘못된 국가의 모습’과 그 국가를 ‘만들어 간다’는 사람들을 응징하는 V의 모습은 강렬한 쾌감을 주었다. 처음에 V가 나타났을 때, 사람들은 V의 모습을 믿지 않았으나 국가 기관에서 ‘진실’을 감추기 위해 자행한 많은 사건들을 알게 된 후, V의 신념 있는 행동을 지지한다. 영화에는 ‘국민이 국가를 무서워하면 안 돼. 국가가 국민을 무서워해야지.’라는 대사가 등장하는데 결국 권력을 잡은 자들은 언제나 진실을 은폐하고자 하는 일에 수많은 노력과 시간을 쏟는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 V가 그의 일을 마무리하고자 하는 11월 5일, 사람들은 V가 쓰고 있던 가면과 복장을 함께 입고 행진한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같은 11월 5일, 서울 광화문에 우리나라 사람들도 함께 모였다.

 

브이 포 벤데타 스틸 컷과 촛불집회 모습, 출처: 네이버 영화, 중앙선데이


외젠 들라크루아(Eugène Delacroix)가 그린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Liberty Leading the People>(1830)이라는 그림이 떠올랐던 날이었다. 이 그림은 ‘7월 혁명’을 주제로 그린 것인데, 이 그림은 ‘국민의 힘’에 의해 변하는 역사의 현장을 그린 것이다.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앞으로 박차고 나오는 듯한 여성은 ‘승리의 여신’을 모티브로 한 ‘자유의 여신’인데, 이 여신은 “자유, 평등, 박애”를 뜻하는 프랑스 삼색기를 들고 있다. 그리고 그 앞에 총을 들고 있는 소년은 ‘프랑스의 미래’를 뜻한다. 화가는 결국 국가의 미래를 바꾸는 것은 바로 그 국가를 지탱하고 있는 ‘국민’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다. 최근까지 큰 이슈로 뉴스에 자주 나왔던 한 학교의 교수가 했던 말이 생각난다. “학생은 4년 있다가 졸업을 하기 때문에 학교의 주인은 학생이 될 수 없다.” 그가 진정 그렇게 생각했다는 것이, 지식인이라는 자가 한 말이 고작 그런 말이란 사실이 너무나도 슬프지만, 결국 (그의 말이 틀렸다는 것을 제대로 보여주면서) 학생들은 이뤄냈다. 학생들은 학교를 구성하는 사람들이 단순히 몇 백 명의 교수와 교직원이 아니라, 만 명이 넘는 살아 생동하는 학생들이라는 것을 직접 증명했다.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 젠 들라크루아, 1830

 

‘권력이란 달고 맛있어서 놓을 수 없다’는 것이 진실이 된 사회다. 그리고 이 나라는 ‘금수저, 은수저, 헬조선’ 등의 단어들을 전면으로 내세우며 ‘권력이 있으면 이용하는 것’이 어느 순간부터 당연한 나라가 되어 왔다. 그러나 국민을 무기력하게 하고 그들을 부정적으로 바꾸려고 하는 것은 국가가 할 일이 아니다. 계층의 이동이 어려운 것을 당연하게 만들고, 사람들에게 진실이 아닌 거짓을 흩뿌리는 것이 ‘K-POP’이나 ‘비빔밥’으로 덮어질 수는 없는 것이다.

 

‘모든 일에 우연은 없다.’

 

<브이 포 벤테타>에 나오는 말이다. 즉, 모든 일은 부메랑처럼 되돌아 온다. 어느 순간부터, 이런 사회에 젖어 들어 사는 것이 당연한 듯 보였지만, 느끼는 순간 바뀌어야 한다. 그것이 나와 남들을 위한 일이다.

 

“누구였지?(Who was he?)”

“그는 몬테크리스토 백작이에요. 그리고 제 아버지였어요. 또 제 어머니였고, 동생이었고, 친구였으며, 그는 당신이자 나였어요. 그는 우리 모두 였죠. (He was Edmond Dantes. And he was my father, and my mother. My brother, my friend. He was you and me. He was all of us.)” –브이 포 벤테타 대사

 

 

결국 돌고 돌아 이 혼란의 부메랑을 맞고 쓰러지는 것은 바로 나 자신일 것이다. 옳고 굳은- 혹은 바르고 굳은- 신념은 나를 넘어 타인들에게도 영향을 준다. 그리고 그 신념은, 들라크루아의 그림에 나온 자유의 여신처럼 옳은 길을 열어줄 것이다. 어지러운 시대, 너무 어지러워 이것이 정말 현실인지 아닌지 구분조차 어려운 요즘, 이럴 때일수록 항상 나를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나와 연결되어 있는 수많은 사람들을 하루에 한 번씩이라도 생각하며 살아야 한다. 왜냐하면 나는 우리 모두이고, 우리 모두는 나이기 때문이다.

 

십사

안녕하세요, 십사입니다.
미술, 만화영화, 춤, 피천득님, 법정스님을 좋아합니다.
살아있음을 기쁘게 여기며, 지혜롭고 성실하게 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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