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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과 그림, 기록의 또 다른 형태

17.02.28 1

이미지 출처: http://www.humitekglobal.com


글을 쓰는 이유는 다양하다. 일상의 소소한 재미를 놓치지 않기 위해, 꼭 기억해야만 하는 생각을 오래 간직하기 위해 우리는 글을 통해 순간을 담아낸다. 때로는 어떤 사안에 대한 분노의 표출, 또는 지극히 개인적인 결심이 글을 쓰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이유야 어떻든 간에, 복잡한 생각을 글로 정리하면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다. 일기를 쓰면 마음이 편해지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 일까.

 

# 해소하는 방법으로써의 기록  

한 연구는 스트레스 해소 방법으로 독서가 효과적이란 사실을 밝혔다. 물론, 이러한 결과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도 많았지만 개인적으로 격하게 공감했다.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사적인 감정을 정제된 언어로 표현한 책을 만나면, 그 어떤 위로의 말보다 힘을 얻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책의 저자도 누군가의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 글을 쓴 것일까? 아마 대작의 8할은 그렇지 않을 것이다.

 

John Keats

영국의 낭만주의 시인 존 키츠(John Keats)는 “불면의 밤을 보내며 완성한 시를 아침 해를 바라보며 불태워버려도 좋다”고 말했다. 이는 글을 쓰는 행위가 굳이 타인에게 메시지를 전달하는 목적을 갖지 않더라도, 오로지 감정을 해소하는 방법으로 활용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즉, 벅차오르는 감정을 글로 표현해 마음이 정화되었다면, 그 글은 버려도 좋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이러한 ‘감정의 해소’가 뜻하지 않게 예술로 남는 경우가 있다. 바로 창작자의 생각이 가시화된 미술작품이다. 그래서 어떤 작품은 작가가 온전히 자신의 감정에 충실한 결과였음에도 대중들의 공감을 사기도 한다.나는 작품의 의도가 '기록'이 아니었어도 결국 기록이 되는 신기한 현상에 놀라곤 했다.  

 

# 영감을 주고 받는 일로써의 기록  

그렇다면 “예술의 역할은 반드시 타인에게 감정을 전달하는 일”이라는 톨스토이의 주장처럼, 우리의 글과 그림이 단순히 개인의 감정을 정화하는 목적을 넘어 타인에게 전이가 되어야만 진정한 예술 일까. 그러나 그러한 사명감 없이 작품활동을 펼친 작가도 역사적으로 좋은 평가를 받는 걸 보면 꼭 그렇지 만은 않다.

그래서 우리의 인식에는 ‘작품=예술가’라는 공식이 자연스럽게 성립된다. 때문에 작품은 곧 예술가의 솔직한 내면을 반영한 페르소나로 작용한다. 사실 이 둘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당장 우리조차도 미술관에 가면 예술가들의 작품을 보며 그들의 생애를 짐작해보곤 한다. 특히 감정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20세기 초반의 표현주의 작가들에게서 감정의 동요를 크게 느낄 수 있었다.

 

<절규>, 뭉크(Edvard Munch, 1863~1944), 출처: The Art Story

 

<불안>, 뭉크(Edvard Munch, 1863~1944), 출처: Wikipedia

 

뭉크는 <절규>에서 자신의 감정을 격렬한 터치로 표현했다. 귀를 틀어막고 있는 사람을 중심으로 펼쳐진 뒤틀린 공간과 소용돌이를 연상하게 하는 노을 진 하늘, 화면 끝자락에 위치한 정체 모를 사람들…. 특히 그림 속 인물은 유령의 모습을 닮아 섬뜩한 느낌이다. 그는 이렇듯 여러 장치를 통해 어둠으로 가득한 자신의 내면세계를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또, 작품 <불안>을 보면 <절규>와 같은 장소에 추가된 인물이 보인다. 덕분에 화면은 꽉 들어찬 모습이지만 어딘가 더 답답하고, 불안함이 가중되는 느낌이다. 평소 뭉크와 같은 심리를 안고 사는 사람이라면 이 그림을 보고 여러 가지 감상이 들 것이다. “내 우울한 감정을 시각적으로 표현한다면 이런 색깔과 형태겠구나” 혹은 “이 주인공 나 같은데?” 그것도 아니라면 절망이 극에 달한 화면 속 주인공을 보며 오히려 위안을 얻을 수도 있다.

 

<군인으로 그려진 자화상(Self-portrait as a Soldier)>, 키르히너(Ernst), 1915

 

<Calle de Berlin>, 키르히너(Ernst), 1913, 출처: The Art Story

 

또 다른 그림은 키르히너의 <군인으로 그려진 자화상(Self-portrait as a Soldier)>이다. 당시 나치 정권에 의해 퇴폐 미술가로 낙인 찍힌 그는 강렬한 색채와 어긋나는 형태로 자신의 모습을 그렸다. 담배를 물고 있는 그림 속 주인공은 초점이 없고 오른손이 잘려있다. 그는 도시에서 느끼는 고독과 고뇌, 그로 인한 절망을 담아 거친 작품들만 제작했다. 흔히 우리는 왜곡된 형체나 강렬한 원색, 무표정의 인물을 보면 무의식 중에 슬픔과 좌절을 떠올린다. <Calle de Berlin>에 등장하는 인물 역시 어두운 복장으로 무표정한 얼굴이다. 그야말로 삭막함이 드러나는 장면인 것이다.

 

미하일 라리오노프와 나탈리 곤차로바의 선언문과
움베르트 보치오니의 선언문, 출처: Slideshare, Wikipedia

물론, 그림뿐만 아니라 선언문을 통해 자신의 신념을 드러낸 화가들도 있다. 그림으로 표현하기에는 한계가 있는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이런 글 역시 후대에는 작품의 일환으로 소개되며 마치 글로 표현된 미술작품처럼 미술사가들에 의해 해석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글 역시 한 시대의 중요한 자료로 남는다.

 

다리파 선언문, 1906, 출처: caleidoscopio

 

누구나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시대다. 그래서 단순히 개인의 감정을 적어 내린 글도 누군가에게 영감을 줄 수 있고, 선언문이 아니더라도 파급력을 가질 수 있다. 개인적으로 창작의 목적과 기록에 대한 고찰이 생긴 건 화가 키르히너에게 동질감을 느끼면서 부터다. 키르히너는 1913년 이후 자신과 함께 활동했던 '다리파' 그룹에서 탈퇴하는데, 다른 회원들이 자신의 생각을 훔쳐간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생각을 공유하고 함께 창작하는 모임에서 더 이상 자신의 것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다소 오만한 생각 아닌가 코웃음 칠 수도 있겠지만 그는 극적으로 예민했을 뿐, 자부심 하나는 끝내줬다. 

블로그를 소극적으로 운영하는 것도, 매일 같이 쓰는 글의 10분의 1 만 공유하는 것 모두 키르히너 같은 예민함이 작동해서다. 물론 나의 언어로 버무려진 글이 모두에게 설득력을 가졌으면 좋겠고, 그림을 해석하는 내 비평이 만인에게 닿길 바라는 마음이 더 크다. 하지만 가슴 한 켠에는 이러한 관점과 시각이 오로지 ‘나만의 것’이라는 이기적인 생각이 늘 자리해있다. 모순적이게도 수백 년 전 죽은 서양 사상가들에게서, 동시대를 살아가는 많은 지식인들에게서 끊임없이 영감 받으며 그들의 생각을 훔치는 일을 반복하고 있음에도 말이다. 그래서 기록은 의미 있다. 선대의 의미 있는 메시지에 후대의 기록이 더해져 의미 있는 기록을 끊임 없이 재생산하기 때문이다.

 

이윤정(Lottie)

그림을 쓰고 글을 그린다.
아날로그를 사랑하다 디지털 시대의 위협을 받고 현대적인 것과 친해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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