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향존중] 2화 - 내 사랑 내 고전

13.12.06 6

 

워낙 얌전하고 올바른 성격 탓에 별다른 사춘기 없이 학교와 미술학원, 집만을 오가며 지나간 학창시절이지만, 유일하게 했던 반항이라면 책을 읽지 않는 것이었다. 교과서와 만화책 외에는 전혀 책을 읽지 않았는데, 어른들의 책을 많이 읽어야 한다는 말이 왜 그렇게 듣기 싫었는지 모르겠다. 이상하고 변태 같지만 생각보다 티가 안 났기 때문에 반항으로 보이지 않았던 것이 함정이다. 후후... 하지만 이 반항을 나는 두고두고 후회하고 있다. 멍청하고 이상한 반항이었다. 그러다 책의 꿀재미를 느낀 것은 20살 되어서였다. 아직도 기억이 나는데 ‘연금술사’라는 책을 읽고 감탄하며 생각했다. 왜 나는 책을 읽지 않았을까..

 

 

- 우리나라에서도 열풍을 이끌었던 연금술사. 많은 사람들이 읽어보았을 것이다.


‘연금술사’라는 책이 그렇게까지 재밌는 책인가?! 그 후로 다시 읽지는 않았기 때문에 절대적인 재미에 대한 확신은 없지만, 20년간 소설이라고는 밑줄 그으면서 단어의 함축적 의미를 파악하기 위해 읽었던 문학 교과서가 전부였던 인간이 읽기에는 전율을 느낄 만큼 재미있었다. (그리고 만화책 ‘강철의 연금술사’도 재미있다!) 그 뒤로는 주로 일본 소설을 많이 읽었다. 왜냐면 그 당시 대세였기 때문에! 더해가는 재미와 소설에 대한 타는 목마름을 느끼던 찰나, 군대에 갔다..


이 이야기는 이렇게 끝이 날 것 같지만, 군대 있으면서 책을 정말 많이 읽었다. 단순히 책에 대한 재미 외에 ‘아, 이곳에서 나는 책을 읽지 않으면 분명히 멍청이가 될 거야.’라는 극도의 불안감이 미친 듯이 책을 읽게 했다. 최신 정보에 어두운 군인 신분이었기 때문에 무엇을 읽을까는 늘 고민이었다. 그런 고민을 덜고자 읽기 시작했던 것이 바로 민음사의 세계문학 전집이다. 애초에 어려서부터 책을 보지 않았기 때문에 세계고전은 오히려 전혀 새로운 분야였고, 유명한 영미문학을 시작으로 익숙하지 않은 아프리카나 남미 문학으로 넓혀가며, 지금도 꾸준히 한 권, 한 권 수집해 나가고 있다.

- 민음사 세계전집


그렇다. 책에 대한 개인사를 거쳐 드디어 밝히게 된 오늘의 취향은 바로 민음사의 세계문학 전집이다! 빠밤! 사실 민음사의 책은 세련되진 않다. 펭귄북스만 해도 표지며 책이 참 예쁜데, 그에 반해 민음사는 굉장히 투박한 디자인이다. 하지만 이것이 나를 이끄는 것은 뭐랄까. 거친 남자에 대한 본능적 끌림이랄까? 고전이라는 장르에 묘하게 어울리는 맛이 있다. 하지만 민음사를 계속 사게 되는 가장 큰 이유는 민음사 시리즈를 모으는 중간에 다른 시리즈와 섞이는 것을 견딜 수 없는 성격 때문이다. 자고로 메뉴 주문과 시리즈 수집은 통일되는 것이 좋다. 만약에 처음 산 세계문학 전집이 펭귄북스였다면 나는 계속 펭귄북스를 샀을 것이다. 하지만! 이미 나는 민음사와 백년해로를 다짐하였기 때문에 중간에 외도할 수는 없는 것이다. 지고지순한 나란 남자는 그런 것이다!

추천하고 추천하는 수많은 고전문학 중에서 무엇을 시작할지 모를 사람들을 위해 오늘은 ‘내 사랑 내 고전 3권’을 추천해 보고자 한다.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는 부모의 마음으로 어렵게 고른 3권이기 때문에 믿고 봐도 좋다. 두 번 봐도 좋다. 추천하는 순서대로 보면 더 좋다.

 

내 사랑 내 고전 1번

설국은 모든 책을 통틀어 본인이 가장 많이 읽은 책이다. 정말 자주 읽었다. 왜냐면 분량이 굉장히 적기 때문에! 후후. 분명히 이 부분도 무시할 수 없지만 양적인 면 외에도 계속 읽게 하는 매력이 있다. 쓸쓸하고 공허한 남성심리 묘사가 와 닿는 작품인 설국은 우리나라에 미친듯이 유행하고 있는 ‘힐링’이란 단어를 쓰고 싶진 않지만, 지쳐있는 사람에게 도움이 될만한 책이다. 또한, 눈이 내리는 절경의 표현으로 유명한 이 작품은 12월인 지금 읽기에 좋은 작품이기도 하다. 소설 속 주인공처럼 겨울 여행을 떠나면서 이 책과 함께한다면 상당히 지적인 이미지를 뽐낼 기회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 것이 바로 ‘아허'(아름다운 허세) 아니겠는가. 또한, 설국이 굉장히 맘에 든다면 우리나라 소설 중에 김승옥 작가가 쓴 무진기행을 읽어봐도 좋을 것이다. (이 작품도 민음사 전집에 있다.) 무진기행을 읽으며 설국과 굉장히 비슷하다는 인상을 받았는데 두 작품을 비교해가면서 읽는 것도 또 다른 재미가 될 것이다.



내 사랑 내 고전 2번

이 작품은 재밌는 소설 좀 추천해달라고 할 때 꼭 추천해주는 책이다. 표지 색상도 어여쁜 분홍빛으로(민음사의 세계문학 전집은 책마다 색이 다른데, 다양한 색상의 책을 모아서 무지개 순서로 진열하는 것이 수집의 묘미 이기도 하다.) 상큼함을 뽐낸다. ‘네루다의 우편배달부’는 다소 생소한 남미 문학의 대표작인데 남미 특유의 낙천적인 면이 잘 드러나는 작품이다. 사랑고백을 준비하는 남자와 술집에서 사람들이 나누는 이야기 등이 매우 이국적으로 다가온다. 이 작품의 장점이라면 초반부터 쉴 새 없이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는 점인데, 후반부에는 다소 분위기가 달라진다. 더이상은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자세한 내용은 생략하겠다. 하지만 이 작품 역시 분량이 많지 않아 부담 없이 읽을 수 있으며, 마트에서 포도 원산지로만 자주 만나는 칠레가 한 번쯤 가보고 싶어지는 작품이다. 또한, 은근한(노골적이거나 엄청 화끈하진 않습니다.) 성적 코드도 담고 있기 때문에 내사랑 내고전에서 가장 인기가 많을 것 같다.

 

내 사랑 내 고전 3번

내 사랑 내 고전에서 가장 추천하는 책이다. 아프리카의 한 부족의 이야기를 담은 이 책은, 다큐멘터리를 보는 사실적인 느낌과 함께 문학적인 감수성까지 느낄 수 있는 정말 좋은 작품이다. 이 책을 통해 생소한 아프리카의 문화를 체험하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는데 이것이 내가 세계문학을 정말 사랑하는 이유 중 하나이다. (소설 속 등장하는 ‘콜라열매’나 ‘얌’의 생김새를 상상해보고 찾아보는 깨알 재미랄까) 또한 아프리카의 속담이나 설화 등을 이야기 속에 녹여내는 이 작품은 소설만이 줄 수 있는 묘사와 감동을 모두 전해준다. ‘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지다’는 ‘더 이상 평안은 없다’, ‘신의 화살’과 함께 아프리카 3부작으로 불리는데 이 작품이 맘에 든다면 나머지 두 권도 읽어볼 것을 추천한다. (나머지 두 권 또한 민음사 전집으로 있다.) 3권 모두 눈물이 찔끔 날 정도로 정말 좋다.



이렇게 3권으로는 너무 아쉬울 만큼 재미난 작품이 많지만 나머지는 입맛대로 취향대로 골라보기 바란다. 책의 뒷면 소개와 작가소개 등으로 대략적인 소설의 느낌을 파악해보고 골라보면 좋다는 것은 꿀팁! 이미 눈치챘겠지만 나는 고전을 포함한 소설책을 좋아한다. 비소설은 잘 읽지않는 편독하는 습관은 반성할만하지만, 또 자꾸만 글이 길어져 ‘소설 쓰고 앉아있네’라는 소릴 자주 듣지만, 그래도 나는 소설책이 좋다! 또 고백해 버렸어!

 

* 다른 세계문학을 알고 계신다면 댓글로 추천 바랍니다. “후후.. 그 취향, 존중해드리죠.”

 

양재민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디자인 그룹 5unday(선데이)의 소속 디자이너.
긍정적으로 먹고 살고 작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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