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기억과 흔적, 임민욱 <만일(萬一)의 약속> 십사

기억과 흔적, 임민욱 <만일(萬一)의 약속>

16.03.11 Bigdata, 출처: http://www.muycomputerpro.com   “SNS는 인생의 낭비다.”라는 말이 있지만 이미 우리의 일상은 SNS와 함께 가고 있다. 아니, 오히려 인터넷의 사용과 함께 일상의 기억이 모조리 기록되는 점도 있다. 기억하고 싶지 않았던 나의 과거, 혹은 내 친구의 과거까지도 어제 일처럼 기억해 낼 수 있는 것이다. 몇 년 전, FACEBOOK의 인기가 하늘로 치솟았을 때 한 도둑이 어떤 사람의 페이스북을 보고 여행 중이라는 것을 알아 빈집털이를 했다는 뉴스를 본 적이 있다. 이렇게 인터넷에 남은 우리의 정보는 ‘빅데이터(bigdata)’라불리며 개인정보가 손쉽게 남의 손에 들어갈 수 있게 된 것이다. 물론, 오프라인에서도 우리의 흔적은 가지각색의 형태로 남아있다. 어떤 대리운전 기사는 술 취한 고객이 집 주소를 모르자, 그의 네비게이션에 남아있던 주소를 물색해 집에 데려다 주었다고 한다 0 Read more
Column 진부한 외로움, 에드워드 호퍼(Edward Hopper) 십사

진부한 외로움, 에드워드 호퍼(Edward Hopper)

16.02.25 Hotel Window, 1955한낮의 카페는 많은 생각이 들게 한다. 과외 시간이 붕 떠 앉아 있던 한 카페에서 아주머니들의 호화롭고 사치스러운 오후의 대화를 엿듣게 됐다. 아주머니들은, 아니 그 여성분들은 굉장히 즐겁게 서로의 외모를 칭찬하고 여행지에 대해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물론 일부러 들으려는 것은 아니었고, 그분들의 목소리가 워낙 컸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들렸던 대화였다. 한 40분정도 지났을까, 나는 끼고 있던 이어폰을 빼고 다음 과외를 가기 위해 자리 정리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분들의 대화 내용이 바뀐 것을 알게 되었다. 새로운 주제는 남편에 대한 이야기와 대학원에서 석•박사 공부를 하는 친구들에 관한 이야기였다. 그들은 자신이 왜 대학원을 다니지 않는지, 공부는 왜 어려운지, 박사 하는 친구가 힘든 이유가 무엇인지 등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눴다. 마침 주제가 남편과의 여행으로 바뀌던 찰나에 어떤 분이 갑자기 “이번에 유럽에 갔는 2 Read more
Column 당신의 절대 고독, 김종학 화백 십사

당신의 절대 고독, 김종학 화백

16.02.11 출처: http://www.imagian.net/board_essay/detail.asp?serial=604 우리는 살면서 얼마나 스스로 삶을 제어하며 살아갈까? 내가 원하는 대로, 내가 하고자 하는 것들이 아주 부드럽게 모난 것 없이 이뤄진다고 믿어본 게 언제일까? 사실, 나이가 들수록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들이 많지 않다. 생각부터 말, 시선, 감정 기복, 웃음까지. 나는 점차 ‘내가 내 것’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들을 제어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단지 흘러가기만 할 뿐, 우리는 그 어느 것도 붙잡을 수가 없다. 지금 당장을 아주 잠깐만 멈추고 싶어도 1분 1초는 지나가고 있으므로 어떨 때면 문득 그 시간들이 아쉽게 느껴지기만 한다.  출처: http://www.hankyung.com/news/app/newsview.php?aid=2009061247871 나이가 들면서 더 많은 일이 통제가 되지 않는 건 아마도 내 인생만을 0 Read more
Column 만화가 신문수와 김춘수의 <꽃>이야기

만화가 신문수와 김춘수의 <꽃>이야기

16.02.05   어린 시절, 글과 그림에 관심이 많았던 나는 아버지의 책장에 꽂혀있던 노트를 꺼내보길 좋아했다. 아주 어릴 때라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노트 속에는 굵고 거친 선으로 그린 꽃과 새, 사람들이 있었고 간혹 만년필로 적힌 아빠의 시(時)도 있었다. 아빠의 노트를 훔쳐보는 게 재미있던 건 아마도 아빠의 글과 어수룩한 그림을 통해 태어나 처음 ‘아날로그적 감성’을 느껴서인 것 같다.    <만화일기> 시리즈 일부, 출처: http://www.book4949.co.kr/ 맹꽁이서당, 출처: http://www.lgchallengers.com/ 같은 이유 때문인지 유아기 때의 나는 ‘명랑만화’를 참 좋아했다. 지면의 2/3는 그림, 1/3은 글자로 채워진 ‘그림동화 덕후’이기도 했지만 어수룩하게 생긴 ‘꺼벙이’의 <만화일기>시리즈나 캐릭터 ‘허 2 Read more
Column 인위와 허상, 발레리 블랑(Valerie Belin) 십사

인위와 허상, 발레리 블랑(Valerie Belin)

16.01.22 <Still life with mirror> 얼마 전 읽은 신문 기사에서 아이들의 장래희망 중 공무원이 적지 않은 퍼센트를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읽는 내내 공무원이 어떤 일을 하는 직업인지 알고는 있을까 궁금했지만 몇 십 년 전의 아이들이 ‘대통령, 의사, 과학자’를 꿈으로 삼았던 과거와는 달리 많은 아이들이 ‘안정적인 공무원’을 꿈꾼다는 사실에 씁쓸해졌다. 아마도 부모님이 주입한 장래희망이겠지. 하기야 꿈이 사치가 되어버린 세상에서 누굴 탓할 수는 없지만, 모순적이게도 부모님이 아이들에게 읽히는 책 중에는 반기문, 김연아, 유재석 등 자신만의 꿈을 찾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많다. 어릴 때는 ‘꿈꾸는 사람들’을 보여주고 막상 아이들이 꿈을 꿀 때는 ‘안정성’을 강조하기 때문에 아이들은 혼란스러울 수 밖에 없다. 가르치는 학생 중, 아주 어릴 때부터 ‘검사’ 0 Read more
Column 서른과 판타지 그리고 앤 해밀턴(Ann Hamilton) 십사

서른과 판타지 그리고 앤 해밀턴(Ann Hamilton)

16.01.06 서른이 됐다. 갑작스러운 ‘서른’이 썩 내키지는 않지만 그 나름의 낭만이 있을 거라 생각하고 새해를 맞이했다. 어릴 때 생각했던 서른은 지금의 모습과 달랐던 것 같은데, 내가 생각했던 모습과 조금 가까워지고자 1월 1일 새해부터 <어린왕자>를 조조로 관람했다. 생텍쥐페리의 유명한 소설을 영화로 만든 이 영화는 포스터도 예쁘고 애니메이션이라는 점이 좋아 선택했다. 그리고 영화를 통해 다 갉아진 것 같은 나의 감정을 다시 끌어 올릴 수 있기를 바랐다. - 어린 왕자 포스터 인생 스케줄을 모두 짜놓은 엄마와 그 밑의 착실한 딸이 좋은 학교에 가기 위해 이사를 하며 펼쳐지는 이야기는 우리가 아는 이야기와 많이 다르지 않다. 물론, 어린 왕자가 눈앞에서 살아 움직인다는 점과 그의 할아버지가 <어린왕자>에 나오는 조종사였다는 사실이 새롭기는 하다. 이야기가 꽤 전개된 것 같아 시계를 보니 시작한지 한 시간 남짓이다. 나머지 한 시간은 어떤 이야기로 버 0 Read more
Column 삶의 궤적을 그리는, 이상원 화백 십사

삶의 궤적을 그리는, 이상원 화백

15.11.27 <동해인> 한지 위에 유화물감과 먹 언제부터인가 백종원씨가 종이컵으로 계량을 하며 요리를 하는 게 무척 편해 보여서, 이번 주말에 김장을 할 때는 할머니께 양념을 꼭 종이컵에 담아 계량해달라고 부탁했다. 좋은 파와 무를 사서 운반하는 것을 도와드렸으니 그 대가로 바란 것이었다. 일이 있어 함께 양념을 만들 수 없으니, 꼭 그 양념 맛을 익히고 기억하고 싶었다. 할머니는 흔쾌히 알겠다고 하셨다.   <동해인> 한지 위에 유화물감과 먹 일을 보고 집에 들어가니, 할머니는 크고 빨간 함지박에 이미 양념을 버무려 놓은 상태였다. 엄마와 나는 그 옆에 앉아 배추에 속을 넣기 시작했다. 소금에 절어 힘이 빠진 배추는 그 상태로도 최상의 맛을 냈는데, 할머니의 속이 함께 하니 맛은 배가 됐다. 나는 ‘할머니가 해주는 김장 김치를 언제까지 먹을 수 있을까’는 생각이 들었다. 삼대(三代)의 여자가 둘러앉으니 이야기꽃이 피었는데 이런 저런 이야 1 Read more
Column 몽마르트의 수호자, 모리스 위트릴로(Maurice Utrillo) 김월

몽마르트의 수호자, 모리스 위트릴로(Maurice Utrillo)

15.11.20   코 끝이 싸늘해지는 날씨가 다가오면 유독 안쓰러워 보이는 부류가 있다. 동이 터오는 아침 즈음, 골목 어귀에 널부러져 있는 취객들이다. 자우림의 <이런 데서 주무시면 얼어 죽어요>라는 노래도 있지 않은가. 무더운 여름 밤은 취객들에게 괜찮은 잠자리가 되어주지만 이제는 저체온증 걱정을 해야 하는 시기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언급하고 넘어가야 하는 화가가 한 명 있다. 새벽 길에 귀가하는 취객들의 수호성인(?)이자 파리 몽마르트 언덕의 지배자, 모리스 위트릴로(Maurice Utrillo, 1883~1955)다.   <모리스 위트릴로의 초상(Portrait of Maurice Utrillo)> 쉬잔 발라동, 1921   <사크레-쾨르 대성당(Sacre-Coeur)> 위트릴로, 1937   그의 골목길 인생은 태생부터 예견된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그의 어머니는 르누아르와 드가의 모델이자 본인이 직접 화가의 길을 걷기 0 Read more
Column 다시 만나는 그날까지, 모견도(狗圖) 김월

다시 만나는 그날까지, 모견도(狗圖)

15.10.26   그녀는 유독 사람 손 타는 것을 싫어했다. 남들처럼 팔을 베고 잔다든지 배 위에 올라탄다든지 좋아서 폴짝폴짝 뛰며 걸음을 못 걷게 한다든지. 모두 먼 나라 이야기였다. 그녀에게 최고의 애정표현은 살며시 다가와 모른 척 엉덩이를 슥 붙이고 앉는 것이었다. 월드컵으로 온 나라가 들썩이던 해, 우리 집으로 온 그녀는 타고난 성정부터 아주 도도하고 앙칼졌다. 사료는 딱 한 종류만. 간식은 절대 입에 대지 않았고, 평생 1.5kg을 유지했다. 무엇이 맘에 안 들었는지 3살 되던 해에 집을 나갔다가 고고하게 다시 집으로 돌아오기도 했다. 그녀는 분명 고양이는 아니었다. 말티즈와 포메라니언이 섞인 누가 봐도 강아지, ‘개’였다. 출처: http://www.notefolio.net/Tteun-geum/34978 중학생 교복을 입고 처음 그녀를 받아 들었을 때를 아직도 기억한다. 하얗고 뭉실뭉실하던 그녀는 우리가 교복을 벗고 혼삿길을 걱정하는 나이가 될 0 Read more
Column 아버지라는 존재 십사

아버지라는 존재

15.10.23 <Portrait of the artist's father> Marcel Duchamp   나의 아버지는 스스로를 ‘노가다를 하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건축 관련 일을 하다 보니 항상 현장에 있어서 그렇게 부르는 것이다. 내가 가지고 있는 아버지에 대한 인상은 술을 많이 마시고 나를 많이 혼냈고, 엄마와도 많이 싸우고 회사도 많이 옮겼던 사람이다. 회사를 그만두고 몇 달 쉬는 그를 보면 나는 항상 패닉이 왔다. 이모부나 다른 친구들의 아빠를 비교하면서 나의 아버지를 이해할 수가 없었고, 솔직히 이해 하기도 싫었다. 부모님의 부부싸움을 본 기억은 아직도 내가 어떤 상황이 오면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아 내 의견을 제대로 말하지 못하는 상황에 갇히는데 일조했다. 다른 사람들보다 감성적이어서 그랬을지 몰라도 부모님이 싸움을 하면 삶의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기분을 느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생각하면서 동생에게 그들의 관계를 에둘러 말하며 0 Read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