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발나무 vs 팽이의자

17.06.14 0

<슈즈트리> SBS 뉴스 

예술에 특별히 관심이 없는 사람일지라도 서울역사 앞에 위치한 <슈즈트리> 소문은 한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환경예술가 황지해 작가가 설치한 이 작품은 ‘흉물스럽기 짝이 없기로’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이러한 사람들의 반응이 흥미롭게 다가온 건, 어쩌면 내 목숨이 다해도 영원히 결론짓지 못할 ‘예술 대(vs) 쓰레기’의 담론이 또다시 각축의 설전을 벌였기 때문이다. 심지어 <슈즈트리>를 두고 ‘모양새’를 지적하며 육두문자를 남발하는 이도 있었고, ‘서울로 7017’ 개장을 앞두고 서울시가 홍보효과를 톡톡히 누렸다고 평가하는 이도 있었다. 결국 야심차게 준비한 것 치곤 너무 짧게 운명을 달리했지만(해당 작품은 9일 만에 철거됐다), ‘신발나무’를 둘러싼 사람들의 반응이 재미있는 건 나뿐일까.

 

팽이의자(SPUN) 제험존

하나, 정 가운데 앉아서 두 손으로 의자를 꽉 잡는다.
둘, 좌측 또는 우측으로 천천히 몸에 힘을 주어 돌린다.

 

그러던 지난주, 심심하면 들르곤 하는 DDP 근처(현대시티아울렛)에서 신기한 설치물을 발견했다. ‘저게 뭐야?’라는 의문이 들기도 전에 ‘저것은 의자다!’라는 직관적인 판단이 섰지만, 그 자태가 흥미롭기만 하다. 역시나 나처럼 작품에 시선이 강탈당한 사람들은, 몇 초 동안 고개를 갸우뚱하다 이내 그 쓰임새를 판단하고 엉덩이부터 들이댄다.

 

팽이의자(SPUN), 토마스 헤더윅(Thomas Heartherwick) 
우리시대의 레오나르도 다빈치라는 명성을 얻고 있으며, 건축, 조형, 도시계획 등 다양한 분야에서 그만의 독창성과 혁신성을 인정받으며 세계적인 주목을 받고 있는 디자이너다. 

 

그렇다. 의자는 팽이였고, 팽이는 의자였던 것이다. 사람들 틈에 섞여 신나게 팽이를 돌리고 나니 어렴풋이 <슈즈트리>가 떠오른다. 그렇다면 <슈즈트리>와 <팽이의자>가 우리에게 시사하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그건 아마도 ‘진짜 예술이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고, 나아가 ‘예술의 가치’가 어디서 결정되는지 고민해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일 것이다. 그도 그럴게 <슈즈트리>는 ‘보기 쫌 그렇다’며 욕을 먹기도 먹었지만, 그에 상응하는 (네거티브) 홍보효과는 숫자로 책정할 수 없을 정도로 가치 있었다. 반면, 이미지도 좋고 재미까지 있는 <팽이의자>는 긍정적인 디자인으로 평가할 수 있겠지만 크게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진 않고 있다. 이쯤에서 또 유의미한 메시지를 발견할 수 있다. 사람들은 아무래도 긍정적인 메시지보다는 부정적인 메시지에 반응하고 머릿속에 각인시킨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여전히 ‘노이즈 마케팅’기법이 존재하고 통하는 거겠지만 말이다. 그런데 작품 하나로 이런 생각까지 이르게 하다니 예술은 정말 대단하다.

김해인

읽는 사람이 즐거운,
언제나 유쾌한 글을 쓰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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