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나미가?

17.06.19 0


BP 15. 0.7mm, \300 


전화통화를 하다, 혹은 급하게 메모할 때 손에 쉽게 집히던 건 모나미 펜이었다. 그런데 ‘모나미 펜!’하면 왠지 모르게 학창시절 OMR 카드를 작성할 때 사용했던 수성사인펜의 이미지가 강렬했다. 그러니까 하얀색과 검정색이라는 단순한 색상으로 디자인됐고, 그립감도 가벼우며 그만큼 접하기 쉽다고 해야 할까? 왜, 우리는 흰색셔츠와 검정색 바지로 연출한 남성룩을 ‘모나미 패션’이라고 부르지 않나. 그만큼 추억 속의 ‘모나미’는 보급형 볼펜, 혹은 300원 내외로 살 수 있는 쉽디 쉬운 볼펜이었다.

 

153 피셔맨(FISHERMAN), \2,000,000, 모나미가 2014년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한을 기념하며 제작한 펜 

 

그런데 세월이 흘러 마주한 모나미는 예전과 많이 달라져 있었다. 그의 모습은 심히 당황스러웠는데, 300원의 몇 십 배를 호가하는 몸값도 그랬지만 볼펜의 외형이 내가 아는 모나미인데도 무척이나 세련되어서다.

153 블랙 앤 화이트 (black & white)

 

당혹스러움을 감추고 모나미에서 출시한 볼펜들을 찾아보니 의외로 눈이 즐겁다. 아무래도 무의식적으로 ‘에이~ 볼펜이 하면 얼마나 하겠어~’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하긴, 하이테크가 최고로 좋은 펜인 줄 아는 사람에게 볼펜이 갖는 디자인은 상상력이 제한될 수 밖에 없다. 그런 맥락에서 모나미는 신선했다. 볼펜이 섹시할 수 있다는 걸 <153 Black & White>를 통해 처음 안 것이다. 패션도 검정색과 흰색으로 연출하면 기본템스럽지만, ‘흰-흰’에 ‘검-검’의 톤온톤 연출은 세련된 느낌을 주곤 한다. 그런 점에서 <153 Black & White>은 볼펜으로서의 ‘톤온톤 연출’을 성공적으로 이끈 셈이다.

 




153 골드 (gold), \50,000, 순금 도금으로 반짝이는 광택감이 더해져 화려하게 재탄생한 오리지널 153 볼펜 

<153 골드 gold> 또한 신선했다. ‘모나미’하면 조건반사적으로 ‘흰-검’의 색 조합이 떠오르고, 조금만 쓰면 손에 묻어 나오던 ‘볼펜 똥’을 연상했는데 고급진 골드라니! 단순히 제품명만 들었을 땐 두 요소가 잘 어울러질지 상상되지 않았는데 막상 제품을 놓고 보니 꽤 괜찮다. 사람들의 반응 또한 폭발적이었다.

 

153 리스펙트 패키지, \35,000, 프란치스고 교황 헌정 펜인 153 Fisherman에서 모티브를 가져와 존경의 의미를 담은펜 

 

알고 보니 모나미는 2013년까지 문서 자동화 및 인구 감소에 따라 실적이 지지부진했다고 한다. 그러던 이듬해 2014년부터 고급화 전략을 시도하며 이와 같은 시리즈를 선보였는데, 대중들의 감수성과 맞아 떨어져 긍정적인 반응을 이끈 것이다. 사실, 모나미는 20여년 전도 고급화 전략을 시도했다. 하지만 대중들의 반응은 냉담했는데, 그렇다면 지금의 성공을 이끈 건 무엇 때문일까?

 


153 플라워(flower) 

 

생각해보건대 과거의 향수를 자극하는 ‘세련된 디자인’과 시대의 흐름에 발맞춘 ‘적극적인 시도’때문이 아닐까 싶다. 실제로 고급화 전략을 시도한 모나미의 새로운 시리즈는, 모나미하면 떠오르는 프로토타입(prototype)을 크게 훼손하지 않았다. 쉽게 말하자면 ‘리모델링’, ‘화장하기’전략으로, 기본을 유지하되 한층 더 업그레이드 한 디자인을 선보인 것이다. 때문에 대중들은 이질감 없이 새 디자인을 흔쾌히 받아들였고, 이를 통해 과거의 추억까지 떠올릴 수 있었다. 하지만 모나미가 단순히 ‘향수’만 자극했다면 실패로 돌아갔을 텐데, 가장 기본적으로 갖추어야할 볼펜의 기능 또한 놓치지 않았다. 각각 다른 꽃 그림이 서로 다른 메시지로 위로를 전하는 <모나미 153 flower>시리즈나 섹시한 <153 키스>, 더러워진 욕실과 주방의 타일을 깨끗이 보정하는 <타일틈새마카 401>등이 대표적인 예다.

 

153 키스(kiss) 

타일틈새마카 401,  제품관련 모든 사진 및 영상 출처: monamimall

 

무엇보다 눈에 띄는 건 모나미의 ‘새로운 시도’다. 볼펜을 구입하면 각인 서비스를 제공한다든가, 고급화 전략으로 이전에 없던 상품의 등장, 디자인 공간에서의 팝업스토어 운영, 볼펜 DIY경험 제공 등, 괄목할만한 시도로 대중들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실제로 얼마 전 성황리에 마무리된 <국제 도서전>에서도 모나미는 ‘나만의 볼펜 DIY’로 존재감을 과시했다.

 

모나미 컨셉스토어, 자신이 직접 볼펜을 디자인하거나 신제품을 사용해볼 수 있다.

 

단순히 필기를 하는 기능에서 벗어난 모나미의 전략이 유쾌하다. 그런걸 보면 대중에게 각인되는 확실한 방법은 제품 본래의 기능을 온전히 유지하되 시대의 흐름 또한 놓치지 않는 구조적인 전략일 것이다. 앞으로 또 어떤 ‘새로운 모나미’를 마주할지 기대된다.

모나미 http://monami.co.kr
모나미몰 
http://monamimall.com

김해인

읽는 사람이 즐거운,
언제나 유쾌한 글을 쓰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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