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네상스, 그래픽 디자인을 발전시키다 -2

17.09.12 0

구텐베르크여, 타이포그래피 시대를 활짝 열어 주옵소서! -1에서 이어집니다.

 

1. 독일 인쇄업을 장악한 텍스투라, 시대적 요구에 당면하다.

구텐베르크가 금속활자를 제작했을 당시, 독일의 필경사들은 당대 널리 사용했던 좁고 각진 형태의 ‘블랙레터’로 금속활자를 제작했다. 추후, 이는 모양이 직선 형태로 더 뾰족하고 단단한 모양의 ‘텍스투라’ 타입페이스로 발전한다. (텍스투라는 블랙레터 서체 중 하나로 중세 유럽 고딕 양식을 잘 드러낸다. 그만큼 강한 직선이 강조되어 힘과 권위가 느껴진다.) 텍스투라는 곧 독일 인쇄업자들의 기본 활자가 되었다.

 

▲ 블랙레터 스타일의 알파벳 대문자와 소문자, 출처: http://m.font.downloadatoz.com

 

하지만 인쇄술의 발전과 함께 ‘텍스투라’에 문제점이 발생한다. 당시에는 금속활자가 개발되었어도 책은 여전히 고가였다. 때문에 책의 장수를 줄이고자 하는 노력이 많았다. 예를 들어 라틴어로 생략하여 쓰거나 기호로 표시해 장수를 줄이는 등, 제작비를 낮추려는 움직임이 일어난 것이다. 이는 구텐베르크의 인쇄소를 장악한 ‘요한 푸스트(Johann Fust)’와 ‘페터 쇠퍼(Peter Schöffer)’의 시도에도 드러난다. 본문의 양을 줄이기 위해 1459년 판 <신성한 의무>에서 크기가 작은 활자를 최초로 사용한 것이다. 이로써 제작비를 상당히 절약할 수 있었다. 하지만 블랙레터를 기반으로 한 서체는 정방형의 굵은 획이기에 금세 한계가 드러났다.

 

▲ <아테네 학당(School of Athens)> 라파엘, 700 x 500cm, 1483

동시에 블랙레터는 시대적으로 위기를 맞이한다. 인쇄술이 보급되면서 이탈리아에 많은 인쇄소가 생겼을 뿐만 아니라, 중세의 끝을 알리는 르네상스 시대가 도래했기 때문이다. 세상은 점차 신(神)의 세계에서 인간 중심의 세계로 변하고 있었다. 이에 따라 그간 신을 대표하던 블랙레터를 대신할 새로운 활자가 필요했다.

 

2. 이탈리아로 간 독일의 장인들, 로만체 알파벳의 원형을 만들다.

 

르네상스라는 말은 재생, 부활을 의미한다. 동로마제국은 십자군 전쟁 이후 점점 빛을 잃어가고 있었다. 게다가 동로마제국과 거래하던 베네치아 상인들은 수도인 비잔티움의 부(富)와 활기까지 빨아가고 있었다. 특히 비잔티움이 이슬람 세력인 오스만제국에게 포위당하면서, 불안감을 느낀 많은 사제와 지식인들이 이탈리아로 넘어갔다. 그러나 1453년, 동서의 중요한 교역로였던 비잔티움이 결국 오스만제국의 수중으로 넘어간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동로마제국에 잘 보존되어 있던 고대 로마·그리스 문학과 사상이 이탈리아로 넘어가면서 르네상스의 시대가 시작된다.

 

▲ Conrad Sweynheym and Arnold Pannartz, 
page from Augustine of Hippo's City of God, 1467


르네상스 시기에는 고전문학과 이탈리아 인문주의자들이 결합해 그래픽 디자인 분야에 새로운 활로를 개척한다. 특히 독일의 마인츠(Mainz)에서 페터 쇠퍼(Peter Schöffer) 밑에서 일하던 ‘콘라트 스바인하임(Conrad Sweynheym)’과 쾰른(Cologne)출신의 ‘아르놀트 판나르츠(Arnold Pannartz)’는 기존의 블랙레터에서 벗어나 로만체 알파벳 디자인 원형을 제작했다.

1462년에 이르러 마인츠는 인쇄업의 전성기를 맞이했다. 그러나 나싸우(Nassau) 지역의 아돌프(Adolphe)는 800여 기병과 수천의 보병으로 이루어진 군대를 이끌고 그해 마인츠를 급습하여 도시를 점령했다. 그렇게 도시의 젊은 인쇄업자들은 전 유럽으로 흩어지게 된다. 독일 인쇄술의 비밀이 전 유럽으로 퍼지는 사건이었다.

 

▲ 스바인하임과 판나르츠의 로만 알파벳

 

이탈리아는 독일 외의 인쇄기를 최초로 들여놓은 나라다. 당시 로마 북동쪽에 위치한 수비아코(Subiaco)의 추기경이었던 '레크레마타'는 스바인하임과 판나르츠를 불러 인쇄소를 세우게 했다. 라틴어로 된 고전과 자신의 작품을 출판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에 스바인하임과 판나르츠는 이탈리아 필경사들이 발전시킨 휴머니즘 서체를 기반으로 로만체 알파벳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들은 고대 로마시대 명문에 나오는 대문자와 이탈리아의 캐롤링체 소문자가 변형된 서체를 결합했다. 여기에 일부 소문자에 세리프를 붙이고 다시 디자인했다. 스바인하임과 판나르츠는 수비아코에서 3년을 보낸 뒤, 1467년에 더 큰 시장과 고객들이 존재하는 로마로 시장을 옮겼다. 그렇게 1473년까지 두 사람이 찍어낸 판본만 50여 종이 넘었고, 한번 인쇄 시 만들어지는 책은 275권 정도였다. 하지만 이탈리아 각지에서 많은 인쇄소가 생겨나 재정적인 붕괴를 면치 못했다.

▲ 15세기 후반 1499년에 나온 알두스 마누티우스의 <폴리필루스의 꿈>


3. 이탈리아의 인쇄술 빛을 잃어가다.

독일에서 이탈리아로 인쇄술이 넘어올 당시만 해도 이탈리아의 많은 인쇄소는 독일 스타일을 따라 하기 바빴다. 하지만 1400년대 후반에 이르러 이탈리아 특유의 스타일을 정립하고 다양한 시도를 한다. 활자 형태도 ‘텍스투라’에서 벗어나 로마식 알파벳 스타일을 폭넓게 사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이토록 화려한 이탈리아 인쇄술은 1494년 샤를 8세의 이탈리아 침공으로 영광이 저문다. 이탈리아의 부와 기술을 탐낸 프랑스 왕들이 이탈리아의 여러 공국을 침략한 것이다. 이 과정 속에서 이탈리아는 점차 풍요를 잃어갔다.

 

1494년, 샤를 8세는 이탈리아로 침공하면서, 침공로 마다 출정에 대한 보로드사이드를 발행하며 침공 정당화에 나섰다. 사실, 샤를 8세 이전에 금속활자 발명 소식을 들었던 샤를 7세는 1458년 장송을 마인츠로 보내 인쇄술을 배워 오도록 했다. 그러나 그는 1461년 루이 11세가 권좌에 오르고 난 후, 프랑스로 돌아가지 않았다고 한다.

 

프랑스 인쇄술의 황금기는 이탈리아의 기술이 도입되면서 시작된다. 무엇보다 1515년 프랑시스 1세가 승계하면서 예술가에 대한 대폭적인 지원이 늘어 당대 최고의 예술가들이 탄생했다. 그중 뛰어난 그래픽 예술가였던 조프루아 토리(Geoffroy Tory)와 타입 페이스 디자이너였던 클로드 가라몽(Claude Garamond)은 프랑스의 르네상스 그래픽 디자인을 이끌며 위대한 걸작들을 제작한다. (특히, 클로드 가라몽이 만든 가라몬드 서체는 그 후 오랜 세월 동안 사랑받는다.)

▲ 조프루아 토리의 <크리블레 시리즈의 대문자>

 

4. 독일의 인쇄기술과 이탈리아의 새로운 사상이 탄생시킨 그래픽 디자인 혁명

새로운 기술의 탄생이 언제나 새로운 시대를 여는 것은 아니다. 새로운 발견은 사회문화와 경제적 상황이 맞물려 발전하기도 하고, 잊히기도 한다. 동양에서는 구텐베르크보다 80여 년이나 먼저 금속활자를 발명하고도 그 진가를 활용하지 못했다. (고려 말, 1377년에 금속활자로 제작한 최초의 서적 <직지심경>이 있다.) 하지만 유럽은 금속활자의 발명시기와 동로마제국의 지식인들이 이탈리아로 넘어온 시기가 절묘하게 맞물렸다. 이로써 이탈리아에 도래한 르네상스가 폭발적인 사회 변혁을 이끌었다.

 

그렇게 닫힌 세계였던 중세 유럽을 깬 르네상스는 독일과 이탈리아를 거쳐 프랑스에서 정점을 찍는다. 르네상스 사람들이 만든 다양한 인쇄물은 신을 벗어나 점차 인간과 자연에 다양한 관심사를 표하며, 그래픽 디자인의 본격적인 변혁의 시작을 알렸다.

 

▲ 식물지(de natura stirpium libri tres), 1536
자연을 이용한 꾸밈 장식을 이용한 삽화


참고서적

<그래픽디자인의 역사> 필립B. 멕스, 미진사
<중세는 정말 암흑기였나> 이경재, 살림

오매불망

취하여라 언제나 취해 있어야 한다.
모든 것은 거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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