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스러운 재조합

17.10.16 0

<수면의 과학> 출처: 네이버 영화

 

사랑에 빠진 남자는 꿈속에서 그녀와의 하루하루를 만들어간다. 하지만 알다시피 꿈은 무질서하다. 그래서 완벽한 공간이 연출된 것도 아니고, 완벽한 이야기도 아닌 채로 한 컷 한 컷 잘려나가듯 만들어진다. 그만큼 그녀와의 하루는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에서 정신없고 산만한 ‘부조화’ 투성이다. 그럼에도 영화 <수면의 과학>은 무질서한 조합을 통해 꿈을 조화롭게 창조한다. 골판지로 방음벽을 만들고, 식탁보 같은 천으로 배와 말을 뒤덮으며 TV를 벽에 촌스럽게 합성시키기도 한다. 말 그대로 이 영화의 미술은 우리가 꾸는 꿈의 ‘아름다운 무질서’와 닮아있다. 여주인공인 샤를롯 갱스부르(스테파니)는 이야기한다.

 

“자연스러움을 얻는 것은 힘들어. 잠시 한눈을 팔았다간 금세 질서가 개입하지.”

 

<수면의 과학> 출처: 네이버 영화

 
여러가지 재료를 조합함으로써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일, 혹은 우리가 알고 있는 익숙한 물건을 재창조함으로써 ‘자연스러움’을 얻는 일은 사실상 쉽지 않다. 특히, 재료의 용도와 특성을 익히 알고 있는 매체라면 더욱 그렇다. 이러한 측면에서 스테파니가 이야기하는 ‘익숙함’은 우리가 쉽게 떠올리는 ‘질서’가 아닐까?

 

 

<압생트의 잔> 피카소

 

익숙하지만 낯선 재료를 조합하는 것. 예술계에서는 이를 ‘아상블라주(assemblage)’라고 말한다. 2차원의 이미지를 배치하고 구성하는 것이 꼴라쥬(collage)라면, 아상블라주는 3차원의 입체적인 물체를 ‘모으기’와 ‘집합’, ‘조립’함으로써 조형적인 창작을 하는 작업이다. 특히, 폐품이나 일용품을 이용하여 입체를 부여하는 것이 특징이다. 이러한 기법은 피카소(Pablo Picasso)를 기원으로 시작되었다. 그는 <압생트의 잔>을 청동으로 형을 떠 제작하고, 금속판과 철사를 이용해 기타 모형을 연출했다. 이에 숟가락과 설탕덩어리를 부착하여 3차원의 아상블라주 작품을 탄생시켰다. 해당 작품은 아상블라주의 근간이 되었으며 이후 미래주의와 다다이즘, 팝아트까지 영향을 미치게 된다. 또한, 현대에 이르러 다양한 디자인᠊예술 영역에 활용되고 있다.

현대의 대표적인 아상블라주의 작가로는 폴리 베커(Polly Becker)를 꼽을 수 있다. 그녀는 일상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사물을 이용해 창의적이고 기발한 작품을 제작한다. 작업의 주재료는 페인트가 벗겨지고 마모된 제품이나 폐기물처럼 오래된 물건이다. 때문에 그녀의 주변에는 폐기물이 널려있고, 그런 물건들이 그녀에게 영감을 준다고 한다. 우리는 더 이상 쓸모없는 물건을 내다버리지만, 되레 이 ‘쓸모없는 물건’은 폴리 베커의 품에서 아름다운 작품으로 탄생한다.

폴리베커의 작품, 출처: http://www.pollybecker.com

 

폴리 베커는 작품을 통해 서로 다른 매체의 ‘낯선 조합’이 어떤 이야기를 담을 수 있는지 제시한다. 이를 위해, 평소 그녀는 재료와 배치에 대한 아이디어를 무수히 떠올린다. 이때 중요한 점은 즉각적이고 단순한 조합이 아닌, 수많은 사전 제작 단계를 거쳐 ‘자연스런 조합’을 창조한다는 것이다. 때문에 그녀의 작품에서 ‘익숙하지 않은 자연스러움’을 느낄 수 있는데, 이는 그녀의 대표작인 종이인형에서 드러난다. 

 

 

2015 F/W, 출처: https://it.pinterest.com

 

2012 F/W, 출처: https://it.pinterest.com

 

이외에도 아상블라주의 기법은 패션디자인과 실내 인테리어 분야에도 활용된다. 패션디자이너 마틴 마르지에(Martin Margiela)는 오래된 폐기물과 쓰레기를 고급의류에 활용하여 대중들에게 낯선 경험을 선사했다. 그는 패션디자인 분야에서는 잘 활용하지 않는 플라스틱 조각과 오래된 헝겊을 조합해 의상을 디자인했다. 우리에게 ‘쌀자루 포대’로 익숙한 헝겊을 감각적인 조합을 통해 런웨이의 화려한 의상으로 재창조한 것이다. 또한, 가죽장갑을 여러 조각으로 잘라 버클을 부착하고 스티치한 의상을 제작하기도 했다. 여러 갈래로 삐죽삐죽 삐져나온 실타래와 정돈되지 않은 가죽은 ‘아상블라주 패션’의 탄생을 알렸다.

 

<슌칸> 출처: https://hiveminer.com


<슌칸(Shunkan)>은 일본 신주쿠 지역의 레스토랑이다. 이곳은 도시에 버려진 물건으로 장식되었다. <슌칸>을 연출한 건축회사 <Super potato>는 이 지역 주민들이 실제로 사용하던 빈병과 기계부품, 낡은 가전제품을 수집했다. 그리고는 각각의 부품을 벽면에 쌓아 화이트와 블랙으로 도색하여 통일감을 주었다. 이러한 연출은 일상적인 제품의 비(非)일상성과 지속가능성을 제시했다. 동시에 <슌칸>의 컨셉인 ‘도시의 기억’을 표현하는데 보다 구체적인 ‘도시인의 기억’과 ‘도시의 변화’를 잘 표현하였다. 마치 이곳이 레스토랑이라는 사실마저 이색적으로 느껴질 만큼, <슌칸>의 아상블라주는 조화롭게 자리하고 있다.

 

우에소 레스토랑

 

반면, 멕시코에 위치한 <우에소> 레스토랑은 1940년대에 지어진 오래된 주택을 개조하여 디자인했다. 레스토랑은 건축가 이그나시아 카데나(Ignacio Cadena)와 요리사인 알폰소 카데나(Alfonso Cadena)형제가 계획한 곳으로 <진화론>의 다윈을 주제로 연출했다. 이들은 컨셉에 따라 10,000여개의 동물 뼛조각과 해부학 그림, 조리용 도구로 벽면을 장식하였으며 이를 통해 생물학자의 연구실의 느낌을 주고자 했다.

 

우에소 레스토랑, 출처: http://www.archdaily.com

 

자칫 잘못하면 연출된 뼛조각들이 음식을 즐기는데 방해가 될 수도 있지만, <우에소> 레스토랑은 아상블라주를 성공적으로 연출했다. 형제는 오브제를 화이트 톤으로 통일하고, 해부학 그림과 조리도구를 자연스럽게 조합함으로써 지적이고 신비한 감성을 연출했다. 수집된 다수의 뼛조각들이 본래의 용도를 벗어나 벽면의 오브제로 활용함으로써 마치 설치미술을 보는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 것이다.

하지만 아상블라주가 항상 성공적인 것은 아니다. 얼마 전 개장한 ‘서울로 7017’의 <슈즈트리>는 뜨거운 혹평을 받으며 일찍이 철거해야 했다. 작가는 ‘우리가 평소 더럽게 느끼는 신발의 재조합을 통해 서울의 소비문화와 서울고가의 탄생을 담고자 하였다’고 했지만, 어쩐지 <슈즈트리>는 사람들에게 ‘더 심한 익숙함’을 연출한 모양이다. 더불어 작품을 통해 서울고가가 지닌 ‘미래로 나아감’이라는 메시지가 아닌, 서울역이 거쳐 온 근현대사의 아프고 불쾌한 기억을 회상케 했다는 평가들은 아상블라주(혹은 업사이클링 디자인)가 ‘단순한 재조합’이 아니라는 것을 의미한다.

 

<슈즈트리> 출처: 문화플러스 서울

 

이처럼 아상블라주는 단순히 이질적인 재료를 한 데 모아 연출하는 기법이 아니다. 낯선 조합을 통해 ‘본연의 익숙함’을 너머 ‘이질적인 자연스러움’을 연출해야한다. 동시에 작품은 본연의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해야한다. 폴리 베커의 종이인형을 통해 ‘과거의 향수’를 느낀다거나 <슌칸>의 인테리어로 ‘도시의 기억’을 떠올리는 것처럼, 조화로운 아상블라주는 그들이 연출한 낯선 공간을 자연스럽게 납득하도록 설득한다. 앞으로도 아상블라주가 팝아트의 기반이 되어 단순히 ‘업사이클링’이상의 예술적 의미를 제시하길 기대해본다.

채이

예술과 디자인, 그 안의 다채로움을 좋아합니다.
룰루랄라한 즐겁고 사랑스러운 삶을 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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