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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리뷰] 후지필름 X 갤러리, <피시보(P-15)>展

17.12.21 0

‘사진’하면 으레 떠오르는 후지필름에서 국내 사진예술 발전을 위해 전시를 개최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순간 ‘폴라로이드를 이용한 사진전 일까’라는 단순한 생각이 들었지만, 어떤 식으로 프로젝트를 풀어갈지 궁금했다. 그도 그럴게, 현대 사회에서 ‘사진’이 갖는 의미는 너무나도 다양하기 때문이다. 사진은 이제 단순히 ‘이미지의 기록’을 떠나 그 자체로 의미를 갖는 기호성과 시간의 흐름, 빛 등 반추할 수 있는 요소들이 많다. 

그리고 후지필름은 사진이 ‘삶과 예술이 함께 만드는 미디어’라는 점에 착안해 시공간을 초월하는 ‘인터미디어(intermedia)’로써의 사진을 <피시보(P-15)>展에 담았다. 

<Colored Clark> 폴라로이드, 백남준, 10.3x10.3cm, 1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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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백남준은 폴라로이드로 자신의 텔레비전 작품을 찍었다. 시간을 알려주는 시계의 모습이 빛 바랜 초상사진처럼 보인다. 거기서 시선은 기계에서 기계로 흐르고 있다. 디지털미디어 시대에 사진은 프린트아웃에 고착하지 않고 단지 흘러가는 것을 택한다. 전문가와 같은 특별한 누구로부터의 밀착은 없다. 사진은 아마추어와 전문가를 애매하게 한다. 그 까닭이 구분하려고 하는 논리가 아닌 물처럼 바람처럼 생의 사이를 흐르는 프로세스 때문이다.  

 

‘피시보(P-15)’. 전시의 제목이 특이하다. 특히, 전시의 제목에 나타나는 연음법칙을 드러낸 점이 흥미롭다. 언어학적으로 특별한 의미가 있을까 생각해볼 찰나, 여기서의 ‘P’는 언젠가 배웠었던 원소 ‘인’의 기호와 번호를 의미한단다. 즉, 이번 전시는 ‘빛을 기록하는 사진’이 단순히 순간을 기록하는 매체를 넘어 영상과 조형, 다양한 장르로 탄생할 수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다. 실제로 전시장 안에는 다양한 사진의 장르가 자리잡고 있었다.

 

<Portrait of McLuhan> screen print, 19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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웬만한 사람은 다 아는 미디어는 메시지다. 마샬 맥루한의 말이다. 우리는 이미지를 본다. 이미지는 정보다. 뷰파인더에서 미러리스로, 이제는 보는 눈이 아니라 확인하는 눈이다. 기록이 시작되기 전, 후 이미지를 보는 눈은 모두 확인하는 눈이다. 

<The living theater of Julien Back(줄리안 백의 리빙 시어터)> 백남준, 60x80cm, 1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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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주인공은 영화의 주인공이며 실험적인 방식으로 삶을 넘어간다. 줄리앙 백은 미국의 작가적 배우였으며 <더 리빙 디터>의 디럭터였다. 그는 사라졌지만 그의 삶은 영화가 되어 시네마풍경의 일부가 된다. 얼굴의 저편이 조각난 거울처럼 무한히 겹치며 미디어의 방식으로 애도를 표한다.

 

다양한 사진의 장르만큼, 전시에 참가한 작가 역시 다양하다. 고(故) 백남준을 포함하여 금민정과 베른트할프헤르(Bernd halbherr), 오용석, 육근병, 이소영 작가가 참여한 것이다. 특히 <피시보>는 사진기의 눈이 되어 본인의 작품을 촬영한 백남준의 시각에 주목해, 현존하는 5명의 작가의 작품으로 사진의 동시대적 가치를 파악하는데 주목했다. 무엇보다 비디오아트의 창시자이자 영상예술가로 잘 알려준 백남준의 작품을 직접 대면함으로써 ‘회귀’라는 사진의 속성을 체감할 수 있다.

<Survival is history> steel+beam+projecter+rear screen, 육근병, 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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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서 이 눈은 침묵하는 눈으로 생존의 역사를 읽는다. 눈은 안과 밖에서 지금을 보고, 지금의 역사의 마주침으로 도망친다. 역사 안에 있는 존재, 그리고 역사 밖에 있는 존재에 인간은 밀착하며 관조를 시작한다. 관찰자의 눈이 아닌 대상을 바라보는 눈도 아는 손과 발이 없는 기관 없는 눈이다. 눈은 곧 몸으로 차원이 다른 섬뜩한 방식으로 지금 앞에 직면해 있다. 흐릿한 기억의 빛 바랜 사진 한 장을 보고 있다. 단지 보고 있는 눈, 침묵하는 눈으로 대화를 시도하고 있다. 열쇠구멍을 통해 안을 보고 있는 눈은 전지적일까. 외눈박이 키클롭스가 호기심으로 바늘구멍을 통해 우리를 보는 것일까. 혹시, 이것을 미디어라고 불러야 할까. 

 

<Cross> 5min singlechannel video, 오용석,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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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스스로에 반대하며, 시대에 반대하는 최초의 선언이다. 그렇게 현실에는 함께 가상이 참여한다. 언제나 그렇게 작은 조각, 틈으로 운행하는 가상의 면적이다. 거기서 마치 과거 같은 환영으로 장차 올 미래를 독해할 수 있다. 문학적 시뮬레이션으로 이쯤에서 다른 갈래인 진퇴양난의 현실이 도착한다. 구분 불가능한 플랫폼, 이제 사적 내러티브가 시간을 다투며 스타디움에서 경주를 시작한다.

 

<Classic No.1978> moving image and still image, 오용석,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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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이것은 유일한 사진이다. 나에게 있어서 유일한 사진이다. 누구나 장난감을 가지고 놀았던 어릴 적 모습이 파편화된 기억으로 몽타주가 된다. 재구성된 기억의 움직임은 잠시라 시간이 흐를수록 그마저도 무뎌진다. 정말 중요한 것은 공중에 떠돌던 대상의 이야기가 우연히 만나 경계를 비춘다. 한 장의 사진은 바로 그 옆에 말끔한 다른 한 장의 사진이 있었다.

 

<Breathing Door> LED monitor, 금민정,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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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결과도 같은 곳, 당연히 있어야 할 공간이 고립되어 있다. 숨을 불어넣은 공간은 보이지 않는다. 언제나 가상으로 현상하며 모든 장소에 맞서는 절대적인 빈자리가 함께 공존한다. 손이 있는 위치에 모니터가 사선으로 박혀 있다. 찰칵, 프레임이 된 문 앞에서 우리는 망설인다. 그 앞에 서 있는 나는 촬영한 모든 지평에 맞서 있으면서 홀로 다른 공간이다.

 

<A restoration of the time : Old Seoul station> 금민정,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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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복원이 사료를 찾는다. 유물이 없었다면 우리는 과거를 볼 수 없었을 것이다. 동시에 유물로 왜곡된 과거, 제한되고 닫힌 과거로 접근할 수 밖에 없는 실정을 깨닫는다. 다시 말해, 문학적이다. 그 자리는 폐쇄된 모나드가 아니라 말랑말랑하며 다소 반전된 가상성을 함의한다. 이렇게 카메라는 보이는 현상을 읽는 요술상자며 세계에 반대하는 고립된 방식으로 읽힌다.  

 

금민정, 오용석 작가는 영상과 사진의 콜라주 작품을 공개했다. 영상이지만 한 장의 사진 같기도 하고, 한 편의 영화 같기도 한 ‘시간의 흐름’을 경험토록 유도한 것이다. 그 반대편에 위치한 이소영과 베른트할프헤르 작품은 카메라의 기계적이고 광학적인 특성에 주목했다. 특히, 베른트할프헤르는 360도로 촬영한 사진을 마치 렌즈에 굴절된 빛처럼 ‘구’의 형태로 표현했다. 이소영은 한번 촬영한 필름으로 사진을 재촬영했을 때 중첩되는 현상을 교차의 시선으로 담아냈다. 

 

<Autumn> Bernd halbherr,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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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는 원래 입체다. 다시 말해 읽는 것이지만 원래 보이는 대상이다. 여기에 미디어는 광학의 도구로 외부를 강압적으로 포섭이 아니다. 산책하며 바구니에 담는 구슬처럼 개인의 수집과 같은 싱그러움이 있다. 반대로 휘어져 있는 환경이 동그란 공에서 자신을 둘러싼다. 맹점으로 있는 사진가의 눈이 작품의 주변자가 되었다. 

 

<Short story 1711> Bernd halbherr, 2017

12 03
파노라마, 펼쳐진 환경이다. 작품의 내부와 바깥은 서로를 궁지에 몰아넣고 있다. 시선이 막다른 골목에 있을 때 차원을 넘어가는 탈출구가 출현한다. 하늘이다. 미술은 이것을 환상 중에 보이는 계시로 기술할 수 밖에 없다. 계시는 철저하게 개인적이며 단독자로 360도 무리에서 떨어질 때 발생한다. 이미 사진은 벽의 문을 열었으며 땅을 걷고 있다. 

 

<Same Dilemma> 이소영,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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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그렇게 밖에 생각을 할 수 없다. 만약 계단 저 편에 누군가 있다면 이러한 우리를 보며 하늘을 보라고 할 것이다. 여기서 기계와 인간은 갈리고 인간의 부족함과 망설임이 완벽한 기계의 정육면체를 와해시킨다. 지금 우리는 밝은 방에 있다. 해가 떠 있는 어떤 딜레마에 우리는 구경꾼으로 있다. 구경꾼은 구원받은 자들이 아니다. 그것을 보는 자다. 그렇다고 유령은 아니다. 그와 비슷하나 엄밀하게 현실에 직접 참여하고 있는 존재다.

 

<비상계단(Emergency Stair)> 이소영,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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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체적으로 비상계단을 걷는다. 시간과 공간이 이상하게 얽혀있는 중간지대다. 매우 낯설고 외계스러우며 아래쪽과 위쪽이 있는데 선택해야 한다. 선택해야 하는 그 상황이 매우 곤란하였음에도 출구가 보이지 않는다. 비상계단이 실제 공간에 한 발을 걸친다. 나올 것인가. 들어갈 것인가. 그곳은.

그럼에도, 전시의 제목만큼이나 흥미로운 지점은 바닥에 적힌 숫자였다. 그 의미를 묻자, 전시를 기획한 김용민 큐레이터가 말했다. "숫자는 북유럽 신화에 등장하는 ‘꼬리를 문 용’에서 착안하여 끊임 없는 순환을 나타내고자 했습니다. 전시장에는 두 개의 출입구가 있는데, 어떤 문으로 입장해도 글을 읽는데 전혀 어려움이 없습니다. 때문에 바닥에 써진 번호를 따라 전시를 감상하는 것이 <피시보(P-15)>展의 팁입니다."



전시기간 2017년 12월 15일 – 2018년 2월 11일
운영시간 AM 9:00 - PM 8:00/주중, AM 11:00 - PM 8:00/주말 (*공휴일 휴관)
참여작가 故백남준, 금민정, 오용석, 육근병, 이소영, 베른트할프헤르
관람료 무료
전시장소 후지필름 X 갤러리 (서울시 강남구 선릉로 838 페코빌딩 지하 1층)
문의 1577-4793

김해인

읽는 사람이 즐거운,
언제나 유쾌한 글을 쓰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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