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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 북 리뷰] 여성 디자이너들의 연대, WOOWHO

18.04.30 0

크리에이티브 네트워크 <노트폴리오 매거진>에서는 디자인에 관한 다양한 시선을 비추기 위해 디자인 북 리뷰를 기획했습니다. 책을 통해 낯선 디자인을, 세상을 보는 다양한 시선을 접해보세요.

 

WOOWHO

<WOOWHO> 여성 디자이너 정책 연구 모임 WOO는 2016년 수면 위로 떠오른 문화계 내 젠더 불평등에 대한 시의적 대응과 평화의 새 법칙을 선포하기 위해 1년이라는 제한적 시간을 두고 시작되었다. 이 책은 2017년 5월 20일 토요일 탈영역 우정국에서 진행된 WOO의 첫 번째 대외 행사이자 여성 디자이너들의 강연 및 네트워킹 파티 ‘WOOWHO’를 기록한 책이다.

 

빨갛고 노란, 그리고 분홍색의 표지는 책이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무엇인지 가늠하기 힘들다. 게다가 작고 컴팩트한 크기는 어쩐지 디자이너에게 영감을 주는 잡지나 디자인 북 같은 인상이다. 하지만 텍스트를 읽고나면, 이토록 세련된 디자인으로 그들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전할 수 있는 능력과 연대가 부럽기만 하다.

 


무엇보다 <WOOWHO>의 기획이 마음에 드는 건, 각자 자신의 위치에서 묵묵히 최선을 다하는 평범한 디자이너의 이야기를 다뤘다는데 있다. 물론 패널로 등장하는 인물들의 작업과 업계 내에서 그들의 명성을 미처 파악하지 못했을 수 있으나, 그럼에도 그간 남성 중심이던 형식에서 벗어나 평범한 여성디자이너의 이야기를 다뤘다는 점이 뜻 깊다.

반갑습니다. 박이랑입니다. 지금까지 그래픽 디자이너로 살아온 대략적인 ‘마인드맵’을 그려왔어요. 저는 일단 82년생이고 디자이너로 지지부진하게 살아남고 있습니다. 처음 섭외 연락을 받았을 때, 이 자리가 너무 부담스러운 거예요. 내 경험을 이야기 하는 게 누군가에게는 상처가 될 수도 있고, 다들 뻔히 하는 이 바닥에서 내가 무슨 이야기를 했다가 잘못되는 건 아닐지 뭔가 무섭고(웃음) 그리고 내 이야기가 너무 초라하거나 재미없진 않을까, 이런 점들이 복합적으로 굉장히 부담이었습니다. <의문과 좌절과 도전들> 박이랑 


안녕하세요. 이유진입니다. 강연자 목록에서 제 이름을 보셨을 때 가장 먼저 이런 생각을 하셨으리라 생각해요. ‘쟤는 대체 누구지?’ 왜냐하면 같이 강연을 하는 분들은 유명하거나, 큰 조직에서 일하는 분들이 대부분인데, 저는 ‘프리랜스 그래픽 디자이너’라고 쓰여 있잖아요. 사실 그게 백수라는 뜻이거든요. 저는 2017년 2월에 대학을 갓 졸업하고 이제 졸업한지 3개월 밖에 안됐는데 WOOHOO에서 연락이 왔을 때 ‘왜 나를 섭외하지?’이런 고민을 했어요. <여성 디자이너는 미녀일 필요가 없다> 이유진

 

 


WOO WHO는 여성 디자이너 정책 연구모임 WOO가 주최하는 여성 디자이너 강연 및 네트워킹 파티입니다. 김린, 김소미, 박신우, 박이랑, 김민정, 권아주, 이유진, 정희연, 양민영, 신인아 디자이너의 강연과 DJ seesea, Leevisa 와 함께하는 파티로 구성됩니다. WOO의 첫 대외 행사에 많은 관심과 성원부탁드립니다. 출처: 탈영역 우체국

 

<WOOHOO>에 등장하는 디자이너에게 발견되는 특징은 ‘겸손함’이다. 실제로 디자인 잡지에 실린 인터뷰를 읽다보면, 남성 디자이너 위주의 자신감이 넘치는 기사를 자주 마주하곤 한다. 이러한 현상은 비단 디자인 잡지에서만 발견되는 특징은 아니다. 일상에서도 여성은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로 주체적인 생각과 감정의 표출을 거세당하곤 한다. 우리는 흔히 ‘여성적인 이미지’(환한 미소와 친절한 말투, 상냥한 태도 등)에 주입당하기 때문에 여성들은 ‘내가 이런 말을 하는 게 혹시 건방지게 보이지 않을까’ 내지는 ‘이런 말을 해도 될까’는 생각을 함으로써 수시로 자기 검열하는 태도를 지니게 된다. 물론, 업무에서도 마찬가지다.


영국과 미국의 디자이너를 대상으로 2015년에 조사한 <Graphic Designers Surveyed>와 호주영화 진흥청에서 발표한 영화계 내 성차별 리포트에도 같은 내용이 반복됩니다.

“남성(디자이너)이 자신의 작업에 관해 이야기하는 데 더 적극적이며, 자신을 알리는 데 더 거리낌이 없었다. 또 자신의 작업이 다른 디자이너의 것에 비교해 더 훌륭하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여성이 남성보다 자신의 실력이나 잠재력을 더 낫게 평가하는 편이며 이는 커리어를 이어가는 데 있어 동력 상실로 이어진다.”

<설치고 떠들고 나대는 여성 디자이너 되기> 신인아

 

 

또한, 성공한 남성 디자이너의 이야기에는 여성들이 디자이너로서 자리매김 하는 과정에서 겪는 어려움은 없다. 미대를 구성하는 학생 대부분이 여성임에도 그들을 가르치는 교수와 성공한 디자이너가 남성인 이유, 즉, 임신과 출산, 육아 및 임금격차 등, 보이지 않는 유리천장을 다루지 않기 때문이다. 이들에게는 자신의 작업에 몰두할 시간이 있다. 그리고 기혼 남성이라면 ‘작업에 몰두할 시간’은 누군가의 희생을 담보로 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에 주목하지 않는다.

물론 이전에도 월간<디자인>은 업계의 불평등한 구조를 지적하고 여성 디자이너 활약에 주목하는 기사를 다뤘다. 하지만 이는 디자인계에서 ‘여성’이라는 ‘제약조건’을 이겨내고 사회적 성취를 이뤄낸 성공 스토리에 주목한 것으로, 왜 성별이 ‘제약조건’으로 작용하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제기가 아니었다. 심지어 이러한 현실 속에서 여성디자이너가 ‘당당히’ 자기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선 스스로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충고가 남발하기도 했다. <그리고 우리 모두는 또 다른 이야기를 기다린다> 김민정

 

 

물론, 다양한 미디어에서 성공한 여성 디자이너의 이야기를 접할 수는 있다. 하지만 다소 모순적인 양상이다. 이들은 여성이라면 당연히 겪을 고충을 애써 부정하거나, 그런 어려움 속에서 ‘그럼에도’ 성공했음에도 ‘이 정도는 해야 한다’는 어조를 띈다. 이와 같은 태도는 같은 여성디자이너를 ‘성공한 디자이너’와 ‘그렇지 못한 디자이너’로 구별 짓는 이중잣대를 만들기도 한다.

 

성공한 여성을 다룬 인터뷰의 마지막은 비슷하게 끝난다. 다른 여성들을 위해 한마디 해달라는 주문에, 저마다 노력하라고, 노력하면 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 ‘죽도록 노력하면 길이 열린다’, ‘포기하지 말고 사활을 걸어라’ 심지어는 ‘차별을 노력으로 극복하라’.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다른 여성에게 용기를 불어넣고 싶어서일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그렇게 살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노력을 통한 ‘성공’을 부각하는 서사에는 함정이 있다. ‘능력이 있는 여성은 성공한다.’고 간추려지는 이 서사는 ‘그러므로 이제 성차별은 없다’는 주장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p20. <잃어버린 임금을 찾아서>中 ‘여성의 승진’, 이민경

 

 

반면, <WOOWHO>에는 평범한 여성 디자이너들이 자신의 작업을 이야기 한다. 무엇보다 가슴이 아프면서도 공감이 되는 챕터는 <여성 디자이너는 미녀일 필요가 없다>였다. 어릴 때는 남녀평등을 주창하며 ‘노력하면 다 된다’는 신화를 주입받은 여성에게 여성혐오가 만연한 사회로의 진출은 그저 낯설기만 하다. 사회에는 교실 속 많던 똑똑한 여학생들이 없어진지 오래고, 하는 일마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평가절하 당하기 일쑤다. 일을 잘하면 ‘여자치고는 잘 하네’고, 일을 못하면 ‘이래서 여자는 쓰면 안 돼.’가 된다. 내가 아는 한 디자이너는 자신의 작업이 여성적으로 평가절하당하는 게 싫어서 작업 시 자신의 성별을 드러내지 않는다고 한다. 이렇듯 사회에 만연한 ‘외모지상주의’와 ‘여성혐오’의 콜라보는 생계를 다투는 업무현장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미녀 디자이너> 또한 마찬가지였다.

 


모두가 그렇듯, 페미니즘을 체화하고 나서 ‘나의 친구들, 동기들은 90% 이상이 여자고 내 선후배 모두 여잔데 왜 나를 가르치는 교수님들과 세미나 때 디자인 경험을 발표하러 오는 분들, 그리고 잡지에서 인터뷰한 유명 디자이너들은 왜 전부 남자일까’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중 <디자인 평론>에 이에 관련한 글이 수록되어 있다고 해서 찾아 읽어봤죠. 그게 바로 일명 ‘미녀 디자이너’라는 글입니다. 디자인계의 성비 불균형이라는 주제에 대해서 다루는 글임에도 ‘여성적인 디자인은 이런 것이고, 남성적인 디자인은 이런 것이다.’, ‘진짜 디자이너라면 외면이 아니라 내면을 꾸며야 한다.’는 등의 터무니없는 글이 쓰여 있었어요. 글을 다 읽고서 ‘이런 글이 어떻게 아무 검토도 없이 출판되었고 어떻게 아무도 이 글을 비판하지 않지?’라는 생각에 몹시 화가 났고 깊은 실망감을 느꼈습니다. <여성 디자이너는 미녀일 필요가 없다>, 이유진

 

<WOOWHO>는 일하는 여성이라면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인 내용을 다뤘다. 쉽게 말하자면 디자인계에서 여성으로서 겪는 고충을 공감하는 디자이너들의 모임이랄까. 사실, 다른 업계 사람으로서 이들의 연대가 부럽기만 하다. 할 수만 있다면 이와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과 연대하여 WOO와 같은 정책모임을 꾸리고 싶을 정도다. 그럼에도 위안을 삼을 수 있는 건, 과거와는 달리 일상 속에서 겪는 여성혐오적인 차별들이 언어화되어 언급할 수 있고, 이를 공감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는 점이다.

 

 

여성이 노력으로 뭔가를 이루고 나면 이들에게는 겨우 ‘웬만한 남자보다 일 잘하는’ 같은 수식어가 붙는다. 여기서 문제는 같은 직급의 남성은 절대로 ‘웬만한 여성을 능가하는 임원’으로 소개되는 일이 없다는 데 있다. ‘남자도 노력하면 팀장이 될 수 있으니 절대로 포기하지 말라!’와 같은 말은 없다. (...중략...) ‘비록 여성이지만’, ‘여성 치고는’이라는 말 뒤에 어떤 찬사가 따라오든, 이 말에는 여성이 열등하다는 통념을 확산하는 성차별 주의가 깔려있음을 똑바로 보아야 한다. ‘비록 여성이지만’을 문제시하지 않고 ‘해냈다’에만 주목한다면, 여성들은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거쳐야하는 온갖 검증들과 끝없이 싸우면서도 자신의 부족한 노력과 실력을 탁하게 될 뿐이다. p23. <잃어버린 임금을 찾아서>中 ‘여성의 승진’, 이민경

어떤 문제를 해결하는데 우선이 되는 건 일의 원인을 파악하는 것이다. 여성 디자이너 정책 모임 WOO는 디자인 업계의 만연한 여성혐오의 실체를 파악하고 이를 언급하며 해결법을 모색하고 있다. 앞으로 다양한 업계에서도 또 다른 여성 정책 연구모임 ‘WOO’가 탄생하길 기대해 본다.  


제목 WOOWHO
출판사 6699PRESS
출간일 2017.12.01
페이지 184p

김해인

읽는 사람이 즐거운,
언제나 유쾌한 글을 쓰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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