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하는 디자인, 진보하는 정치

18.06.12 0

매번 그렇지만, 선거를 앞둔 쏠쏠한 재미는 각 후보의 선거공보물을 살펴보는 일이다. 정치가 아무리 보수적이라지만 선거철이 되면, 유권자에게 조금이라도 눈에 띄기 위해 심혈을 기울인 디자인은 어떨까 궁금하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당에서 추구하는 시그니처 컬러와 이미지를 차용하는 후보도 있고, 스스로 자신만의 색을 구축하는 후보도 있다.

 

 

여기에서 소소한 재미를 발견할 수 있는데, 그 ‘자신만의 색’이 스스로 해결했기 때문에 아주 올드하거나 아주 신선하다는 점이다. 아무래도 과거에 비해 정치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이 늘었기에 이제는 단순히 정보전달을 목적으로 하는 이상의 디자인이 필요해졌다. 물론, 꼭 그런 맥락에서 살피지 않아도 매 시즌마다 다방면의 이슈를 반영하는 공보물이 어떤 해석을 담은 디자인으로 탄생할지 흥미로울수 밖에 없다.


신지예 서울시장 후보, 출처: 신지예 후보 공식 트위터


이번 613 지방선거에서 가장 눈에 띈 후보는 신지예 서울시장후보였다. 초록색 배경과 기존의 서체와는 다른 부드러운 레터링도 그랬지만, 무엇보다 당당한 표정이 시선을 압도했다. 동시에 초록과 대비를 이루는 보랏빛 컬러와 이모지 사용, 여성혐오에 관한 담론으로 뜨거운 현 태세를 반영한 문구 역시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평소 관심 있게 지켜보았던 디자인 스튜디오가 해당 후보의 작업을 맡았다는 사실에 반가운 마음이 든 것도 사실이다. 특별한 기교 없이도 어딘가 눈에 띄고 시선을 사로잡는 디자인이 신지예 후보가 풍기는 부드럽고 강한 이미지와도 잘 맞아떨어지는 듯 했다.

 

 

벽보 속 신 후보는 안경을 착용했다. 박철희 디자이너는 당당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지난 평창 동계올림픽 당시 컬링 김은정 선수가 ‘안경 선배’라는 별명으로 인기를 끌었다. 여성 아나운서도 뉴스에 안경을 처음 쓰고 나와 이슈가 되지 않았나. 남성들은 안경을 쓰는 것에 아무런 제약이 없고 오히려 전문적이라는 이미지를 가져가는데, 여성들에게는 렌즈를 권하고, 안경을 쓰면 이슈가 되는 게 현실”이라며 “안경을 쓴 후보의 모습이 더 당당하게 보였고 의미있게 다가왔다”고 말했다.

슬로건인 ‘페미니스트 서울시장’ 글자체와 색상에도 ‘의미’를 넣었다. ‘시옷’을 하얀 리본으로 변형했다. 박 디자이너는 “2년전 강남역 살인사건 당시 여성들이 하얀리본 캠페인을 벌였다. 고인을 추모하며 여성 살인을 멈추라. 여성 혐오를 멈추라는 의미였다. 그 리본을 모티브로 글씨를 넣었다”고 말했다. 녹색당을 뜻하는 배경색인 ‘초록색’에 대해서도 고민했다. 박 디자이너는 “어떤 녹색을 쓸지 고민했다. 녹색당처럼 녹색을 사용했던 원내정당이 있지 않았나. 그 정당은 좀 촌스럽게 녹색을 썼다. 우린 트렌디하게 녹색에 ‘민트빛’을 좀 넣었다”고 말했다. 

출처: <‘시건방? 당당함!’ 페미니스트 후보의 녹색 포스터 속 메시지>

 

신지예 후보 공보물 및 유세차량, 출처: 신지예 후보 공식 트위터

 

그런데 그녀의 포스터가 화제이긴 화제인가보다. 누군가는 선거 벽보가 건방져 보인다고 불쾌함을 표했고, 또 누군가는 그래서 후보의 선거벽보를 훼손했다고 한다. 물론 그 불쾌함의 정도를 감히 가늠할 순 없겠으나 문득 작년 이맘쯤 안철수 후보의 포스터 논란이 연상됐다. 개인적으로 신후보의 보랏빛 유세차량이며 문구 내 이모지 사용, 깔끔한 그래픽 디자인이 신선했는데, 도대체 어느 지점이 벽보훼손에 이르게 까지 했을까. 그녀가 페미니스트라서? 아니면 정말 벽보 속 표정이 시건방져 보여서? 이런 맥락에서 살펴보면, 디자인은 단순히 정보 이상의 기호를 전달하고 보는 이는 각자의 인지체계와 가치관에 따라 메시지를 해석하는 듯하다. 어쨌거나 사회가 진보하고 있는 모양이다. 덕분에 한층 더 진보한 공보물을 만날 수 있어 반가운 마음이다.

 

*한 명의 유권자로서 흥미를 느낀 지점에 관해 쓴 글이며, 특정 후보를 지지하고자 쓴 글이 아닙니다.

김해인

읽는 사람이 즐거운,
언제나 유쾌한 글을 쓰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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