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진화, 종이책 vs 전자책

18.07.04 0

book cover archieve, http://bookcoverarchive.com

언제부턴가 북커버 디자인이 눈에 띄기 시작하면서 매대에 진열된 책을 보고 있으면 구매욕이 일기 시작했다. 커버도 커버지만 책의 내용을 담은 일러스트가 흥미로웠고, 책을 집었을 때의 그립감이 너무나도 좋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새 책에서 나는 종이 내음과 책을 구매하며 드는 지식적인 충족감이 좋았다. 미처 책을 읽지 않았는데도 구매하는 행위에서 오는 대리만족감이랄까. 그래서 가끔 샀던 책을 또 구매하는 바람에 지인에게 선물로 준 일도 종종 생기곤 했다.

 

열린책들 창립 30주년 기념 대표작가 12인 세트, 출처: 톱클래스

 

이런 성정을 가진 내게 도서관과 서점은 천국이었다. 대학시절에는 방학동안 ‘오늘은 어떤 책을 읽을까’ 설레는 마음으로 도서관에 방문했고 그 시절에 접한 문학과 글귀, 작가들은 지금의 세계를 구축했다. 좋아하는 작가의 신작을 모으며 자족감에 빠지기 시작한 것도, 특정 작가의 세계에 빠져 그를 탐색한 것도 이쯤의 일이었다. 때문에 가방은 책으로 찌그러지기 일쑤였고, 미니백이라도 멘 날이면 책을 손에 들고라도 집을 나서는 집요함을 보이기도 했다.

 

그러다가 전자책을 접했을 땐 마치 신세계에 영접한 듯 했다. 사실, 책의 물성과 아날로그적인 감성을 주요한 가치로 생각했던 탓에 ‘책은 책다워야 책이지!’라는 이상한 자존심이 있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킨들(kindle)을 처음 접했을 때의 신선함이란! 일단 전자잉크라는 개념이 생소했고, 스크린에 떴다 사라지는 글자가 일반 스마트폰이 주는 스크린과는 아주 다른 느낌이었다. ‘쨍!’하는 백라이트 불빛이 아니라 은은하고 눈에 편안함을 주는 조도는 마치 종이책의 물성을 반영한 듯했다.

 

TTS 기능을 갖춘 보급형 전자책 ‘크레마 사운드’, 출처: 아이티 동아

 

그 후로 첫 전자책을 구입했고 정말로 많은 책을 대여하기도 하고 구매하기도 했다. 종이책보다 저렴한 가격덕분에 책을 구매하기 용이한데다 (종이책이 주는 책마다의 그립감이나 종이냄새는 없지만 그만큼) 휴대하기가 간편하다는 강점이 있었다. 무엇보다 도서관에 직접 가지 않고도 원하는 책을 빌릴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었다. 또한 사운드 기능이 제공되는 전자책은 귀찮음이 심한 현대인에게 반강제적으로 책을 낭독해주고, 특히 난독증같은 읽기장애가 있는 사람에게 아주 유용한 기술로 쓰일 수 있다는 점도 신선했다.

 

출판사 ‘소와 다리’에서 출판한 윤동주, 김소월, 백석의 초판본, 출처: 신동아

출판사 ‘6699press’에서 출판한 <WOOWHO>, <한국, 여성, 그래픽 디자이너 11>

출판사 ‘봄알람’에서 출판한 <우리에겐 언어가 필요하다>

 

다만 아쉬운 점은, 책마다의 물성과 아날로그적 감성을 소화하기 힘들다는 점이다. 때문에 출판사 <소와 다리>에서 출판하는 책처럼, 물성이 주요한 가치이자 매력이 되는 도서는 전자책 구현에서 그 매력이 반감한다. 판형이나 컬러가 키 포인트가 되는 디자인 서적도 마찬가지다. 때문에 아주 가끔 종이책의 매력을 전자책에 그대로 실현할 수 있는 기술이나, 다른 이북(e-book)과 차별을 둘 수 있는 매력적인 전자책 디자인은 없는지 궁금해질 때가 많다.

복각본 시집의 인기를 두고, 어떤 이들은 ‘복고 열풍’이니 ‘물성(物性)의 회복’이니 하는 이야기를 한다. 그런 식으로 볼 여지도 없지 않다. 초판본의 오리지널 디자인을 복원한 이 시집들을 들여다보노라면, 아날로그적 요소에 대한 진한 향수와 함께 디지털 화면의 매끈함이 도저히 가져다줄 수 없는 종이의 투박한 물성에서 오는 인간적 느낌이 확연하다. 발터 벤야민이 말하는 작품 고유의 분위기, 즉 ‘아우라’를 조금은 맛볼 수 있는 것이다. 출처: 신동아 

 

민음사의 세계시인선, 출처: 엘르

개인적인 이야기지만, 최근에는 다시 종이책에 빠졌다. 여전히 종이에서 나는 새 책 냄새와 집어들 때의 그립감이 정말 매력적이다. 빠드득, 빠드득 손의 마찰력으로 한 장 한 장 책장을 넘기는 행위 역시 마찬가지다. 그래서 생각해보건대, 전자책과 종이책에는 우위가 없는 듯하다. 그리고 이러한 매력 덕분에 종이책이 사라지지 않지 않을까. 때문에 앞으로 한국의 출판 산업이 어떤 모습으로 전개될지 궁금해진다.

 

움베르토 에코의 말처럼, 책은 처음 발명되고 나면 나중에 더 나은 것을 발명할 수 없는 물건에 속한다. 손으로 감각하고 눈으로 읽으면서 머리로 되새기는 책의 고유성은 인류가 존재하는 한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오늘날 책의 세계에 디지털 기술을 도입해 책의 인터페이스를 혁신하고, 책 콘텐츠를 증강하고 융합함으로써 독자의 경험을 혁신하려는 것은 출판산업의 기본 행동이 됐다. 전자책, 북앱, 주문형 출판, 모듈형 출판, 개인화 출판, 크라우드펀딩 출판 등 놀라운 혁신이 새로 일어 독자를 유혹하고 있는 것이다. 출처: 신동아

 

김해인

읽는 사람이 즐거운,
언제나 유쾌한 글을 쓰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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