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으로 ‘가난’사기

18.09.28 0


superstar taped sneaker, golden goose

명품운동화 골든구스(Golden Goose)에서 최근 판매하기 시작한 운동화를 두고 논란이 일었다. 애초부터 ‘골든 구스’하면 ‘낡고 해진 운동화’의 이미지부터 떠오르지만, 최근 판매하기 시작한 운동화가 ‘서민’의 이미지를 차용했다며 논란을 일으킨 것이다. 해당 운동화는 ‘superstar taped sneaker’라는 이름으로 낡은 천 가죽에 흰색 테이프가 덕지덕지 붙은 모습을 하고 있다. 그러나 이 낡은 운동화의 가격은 530달러(한화 59만원)에 이르며 현재 품절상태다. 우리는 흔히 명품브랜드의 ‘신상품’이라 하면 세련된 디자인의 최고급 원단을 떠올리지만, 골든 구스는 이와 상반되는 파격적인 디자인과 가격을 선보여 파장을 일으켰다.

superstar taped sneaker, golden goose

사실, 명품이 논란을 일으킨 건 드문 일이 아니다. 올해 셀린느(Celine)에서 판매하기 시작한 비닐백이나 캘빈 클라인(Calvin Klein)의 고무장갑, 구찌(Gucci)의 고무백도 논란을 일으켰다. 그러나 이들과 골든 구스에서 일으킨 논란의 차이점은 명품브랜드의 ‘가난한 이미지’의 차용여부다. 때문에 대중들이 전자의 브랜드에 대해 ‘제 돈을 제 맘대로 쓰는데 무슨 상관이냐’는 자본주의의 논리를 따랐다면, 후자의 브랜드에 대해서는 ‘가난이 패션이 될 수 있냐’며 비판적인 반응이 주를 이루는 것이다.

Pink Rubber Gloves, Calvin Klein

 Plastic Shopping Bag, Celine

 

Gucci logo top handle tote, Gucci

 

해당 기사를 소개한 웹페이지에는 ‘가난이 패션이 될 수 있냐’는 주제로 의견이 분분하다. 논란의 긍정적 측면으로는 ‘낡고 해진 것도 명품이 될 수 있다’는 파격적인 시도에 대한 것이며 예술적인 관점으로 접근하면 ‘논란이 될 필요가 없다’는 입장이다. 또한, ‘꼭 가난이 낡고 해진 것을 의미하냐’는 편견에 대한 지적과 ‘상품을 소비하는 건 구매자의 몫이므로 제 3자가 이에 왈가왈부할 필요가 없다’는 자본주의 논리도 있다. 아마도 대다수의 사람들은 ‘가난’에 대한 의미를 환기시켰다는 점(=새로운 시도)에서 긍정적인 시선을 보내는 듯하다.



superstar taped sneaker, golden goose


그러나 이에 대한 반론도 만만찮다. 골든 구스의 행태가 마치 가난을 돈으로 구입하는 ‘기만한 행위’라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정말로 신발을 구입할 돈이 없는 사람에겐 지금 신고 있는 신발 외에 새로운 신발을 구입할 선택권은 없다. 마치 골든 구스의 ‘superstar taped sneaker’처럼, 신발에 테이프가 붙어 낡고 해져도 계속해서 신어야만 한다. 그러나 여윳돈 530달러가 있는 사람에겐 여러 가지 선택권이 있다. 지금 신고 있는 낡은 신발을 계속해서 신어도 되고, 530달러로 고급스러운 이미지의 운동화를 사도되고, 저렴한 스니커즈를 여럿 사거나 골든 구스의 해진 이미지의 ‘superstar taped sneaker’를 구매해도 된다. 이렇듯 선택의 측면에서 보면 ‘돈으로 가난한 이미지를 살 수 있다’는 점이 논란이 된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이러한 논란이 박완서의 <도둑맞은 가난>을 떠오르게 한다고 했다.

부자들이 제 돈 갖고 무슨 짓을 하든 아랑곳할 바 아니지만 가난을 희롱하는 것만은 용서할 수 없지 않은가. 가난을 희롱하는 건 용서할 수 있다손 치더라도 가난 그 자체를 희롱하는 건 용서할 수 없다. 내 가난은 그게 어떤 가난이라고. 내 가난은 나에게 있어서 소명(召命)이다. 거기다 맙소사. 이제부터 부자들 사회에선 가난장난이 유행할 거란다.

나는 돈을 받아 그의 얼굴에 내동댕이치고 그를 내쫓았다. 나는 그를 쫓아보내고 내가 얼마나 떳떳하고 용감하게 내 가난을 지켰나를 스스로 뽐내며 내 방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내 방은 좀 전까지의 내 방이 아니었다. 내 가난을 구성했던 내 살림살이들이 무의미하고 더러운 잡동사니가 되어 거기 내동댕이쳐져 있었다. 내 방에는 이미 가난조차 없었다. 나는 상훈이가 가난을 훔쳐갔다는 것을 비로소 깨달았다.

그들은 빛나는 학력, 경력만 갖고는 성이 안 차 가난까지 훔쳐다가 그들의 다채로운 삶을 한층 다채롭게 할 에피소드로 삼고 싶어한다는 건 미처 몰랐다. 나는 우리가 부자한테 모든 것을 빼앗겼을 때도 느껴보지 못한 깜깜한 절망을 가난을 도둑맞고 나서 비로소 느꼈다.

박완서 <도둑맞은 가난>

그러나, 해당 신발을 구매한 누군가의 리뷰, 출처: nordstrom


사실, 논란에 대한 답은 없다. 어쩌면 골든 구스의 가격이 2만원대의 비교적 저렴한 가격이었다면 이렇게 논란이 됐을지도 의문이다. 이를 통해 한번쯤 다양한 측면에서 명품과 자본주의의 심리를 생각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김해인

읽는 사람이 즐거운,
언제나 유쾌한 글을 쓰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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