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디워홀의 페르소나&뮤즈, 에디 세즈윅(Edie Sedgwick | Edith Minturn Sedgwick)

15.07.24 0


- 출처: <allure>

 



“최동훈 감독의 뮤즈가 되고 싶었다.” 얼마 전, <암살>개봉을 앞둔 인터뷰에서 영화배우 전지현이 말했다. 최동훈 감독과 연이어 작업하면서 그의 페르소나가 되길 바란 그녀의 바람이었다. 최동훈 감독 역시 그녀를 뮤즈로 인정하며 서로에게 톱니바퀴 같은 존재가 됐다. 누군가의 뮤즈가 된다는 건 자신의 인생에서 영광스러운 일이 될 수도, 혹은 타인을 위한 삶을 사는 것일지도 모른다. 영화계에서는 흔히 자신의 작품에 같은 배우를 출현시키며 자신의 상징성을 표출한다. 미술계에서도 서로의 뮤즈를 통해 작품을 완성시키는 작가들이 있다. 대표적으로 대중 미술과 순수 미술의 경계를 허문 팝 아트(pop-art)의 거장 앤디 워홀(Andy Warhol, 1928~1987)이다. 차가운 앤디 워홀의 이미지 뒤에는 그를 이끈 뮤즈가 존재했다. 그의 오랜 뮤즈이자 동시에 애증의 연인인 에디 세즈윅(Edie Sedgwick, 1943~1971)이 그 주인공이다.

 

- 앤디 워홀과 에디 세즈윅 (Andy warhol and Edie sedgwick)

 



앤디 워홀의 작품을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접해봤을 강렬한 인상의 그녀, 에디는 60년대 여성상과는 다르게 귀를 덮지 않는 숏 컷과 긴 속눈썹으로 자신의 매력을 과시했다. 매혹적인 그녀의 눈을 보니 빨려 들어갈 것만 같다. 자신만의 스타일을 고수했던 그녀는 미니멀 한 드레스와 과장된 귀걸이로 자신을 한껏 드러냈다. 그 무엇보다 손에 꼽을 에디만의 시그너처는 자신의 눈을 한껏 강조하는 아이라인과 한쪽 볼의 점, 그리고 손에 들린 담배였다. 그야말로 걸 크러시(girl crush)다! 

- 에디 세즈윅(Edie Sedgwick) 

 

 

아마도 그런 에디의 분위기가 워홀의 마음을 사로잡았을 것이다. 그녀는 흔히 청춘 멜로 영화 속에 등장하는 엄친아 캐릭터만큼이나 매력적인 요소를 지니고 있었다. 원한다면 무엇이든 가질 수 있는 부모의 명성과 재력, 그러나 다소 반항적인 그녀의 기질. 명문가 자제라고 믿기지 않을 만큼 섹시한 그녀의 자태만으로 충분히 매력적이지만, 그런 그녀에게 더 끌리게 만드는 요소가 있었으니, 바로 에디에게서 느껴지는 ‘우울함’과 그런 감정에서 비롯된 ‘반항심’이었다. 돈도 많고 외모까지 예쁜데 아쉬울 게 뭐가 있다고?라 하기에는 그녀에겐 물질적으로 부유했지만 정신적으로 결핍된 부모가 있었다. 에디는 결핍된 부모의 육체적/정신적 학대 아래 불운한 유년을 보냈다. 그리고 불행의 기억을 떨치고자 떠났던 뉴욕에서 인생의 제 2서막을 맞이한다. 모델 일을 시작하며 우연찮게 들렀던 갤러리에서 평소에 동경하던 앤디 워홀을 만난 것이다. 그리고 두 사람은 사랑에 빠진다. 


-앤디워홀과 에디 세즈윅 

 

 

 


‘그녀와 함께라면 시간도 멈춘 거 같았죠. 정말 엄청난 사람이었어요.
일종의 마력 같은 게 있었어요. 긴 다리에 창백한 얼굴, 그리고 입술 같은 거요.어떤 면에서 방랑자 같은…
아마도 그런 것들이 그녀의 갸날프고 섬세한 일면을 보여주지 않았나 싶어요.’

- 앤디 워홀

 

 

앤디 워홀의 언급에는 에디 세즈윅에 대한 깊은 애정이 담겨있다. 그만큼 에디를 만났던 첫 순간부터 마지막까지 그녀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공유하고 싶었을 것이다. 에디는 앤디 워홀의 뮤즈가 된 후, 그의 아트그룹 인 <factory>의 공식 일원으로서 팝 아트는 물론, 다수의 영화에 출현했다. 그리고 자연스레 ‘앤디 워홀의 뮤즈’, ‘factory girl’이라는 수식어를 얻으며 대중들의 아이콘으로 자리 잡는다. 에디는 자신이 핫 걸(hot girl)임을 입증 하듯이 유명 패션지 메인을 장식하면서 자신의 영역을 확장해 나간다. 스스로를 ‘워홀의 그녀’로만 한정 짓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어찌됐든 에디는 앤디 워홀의 영화에 13편 이상 출현하며 가장 큰 주목을 받았다. 결론적으로 그녀의 인생을 뒤흔들고 탈바꿈시킨 인물이 그였던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에디만 워홀의 덕(?)을 봤느냐, 그건 아니다. 에디 역시 앤디 워홀에게 수 많은 작품을 만들어낼 ‘영감’을 선사했다. 앤디 워홀이 떠나기 전, 그는 자신이 가장 행복했을 때를 “에디와 함께 일했을 때”라고 추억했다. 그만큼 그 역시 그녀를 평생 동안 잊지 못하고 서로에게 큰 영향을 준 인물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흐른 만큼 두 사람의 행복이 지속되지도, 좋은 결말도 맺지 못했다. 그렇게 영원할 것만 같았던 에디 세즈윅의 배는 그리 오랫동안 물위를 뜨지 못했다. 앤디 워홀의 무관심으로 시작된 두 사람의 관계는 결국 마침표를 찍었다. 워홀이 떠난 그녀의 인생 역시 난항을 맞이한다. 이별 후의 연애 문제, 재정적인 어려움, 우울감 등, 그녀의 인생은 쉽지 않게 흘러갔다. 결국 그녀는 약물에 자신의 인생을 의존하기 시작한다. 어느새 약을 파는 사람에게 몸을 팔만큼 그녀는 망가졌다. 그리고 그녀의 롤러코스터 같은 삶은 1971년 어느 날 좌초되고 만다. 

 

 

 


‘파란만장한 삶’. 이 단어는 그녀의 인생을 표현하는 완벽한 단어일지도 모른다. 최고에서 최악을 맛보고, 자신이 요절할 것을 알고 하루 하루를 살아갔던 에디 세즈윅. 어쩌면 사람들에게는 자신이 원하는 대로, 바라는 대로 사는 ‘가장 예쁜 모습’으로 남겨졌을 지도 모른다. 내가 기억하는 에디는 추락하고 망가진 모습이 아니라, 담배를 들고 당당하게 자신만의 분위기를 뽐내는 모습이니까.

 

 

 


누군가의 삶이 불행했든 행복했든 타인에게는 그 사람의 일부 혹은 전부가 서로에게 뮤즈가 되고 윤활유가 되기도 한다. 요즘에는 쉽게 ‘자신에게만 집중하라, 자신을 1순위에만 둬라’는 명언을 듣게 된다. 하지만 내 자신이 누군가의 인생을 이끌고 영감과 재능을 불어넣는다면 내 인생만 사는 것보다 더욱 값질 것이다. 나만 잘사는 것이 아닌 나로 인해 다른 누군가도 살아간다는 책임감이 주어질 테니.

 

 

배앓이

꿈을 꿀 수 있다면, 이룰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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