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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에서 말하다] #01.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박스 프로젝트 2014: 레안드로 에를리치》

15.05.29 0

 

미술을 좋아하는 J는 그다지 미술과 친숙하지 않은 지인들과 함께 미술관에 간다. 그리고 매번 다른 이들과 나눈 대화, 수다, 잡담,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을 기록한다. 미술관에서 나온 잡담 섞인 대화를 엿듣다보면 누군가에게 낯설고 어렵기만 했던 미술관이 조금 더 친숙하고 편안한 장소로 변하지 않을까

 

 

 

 

# 01.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레안드로 에를리치 <대척점의 항구>展

 

J: 글쓴이. 미술 전시와 기획을 공부하는 여자. 일주일에 한 두 번은 미술관에 가며, 미술계 행사, 세미나, 전시를 부지런히 찾아다닌다. 주로 혼자 보길 좋아하는 편이다.

L: 음악을 좋아하는, 작사와 작곡에 능한 남자. 미술에 대해 잘 모르지만 한두 달에 한번쯤은 아이디어를 얻거나 혼자 생각하기 위해 미술관에 간다. 하지만 아무리 봐도 현대 미술이 뭔지도통 모르겠다.

 


- 레안드로 레를리치 <대척점의 항구>, 출처: http://www.christiandaily.co.kr

 

 

설명: J와 L은 한 달 만에 미술관에서 만났다. 이층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니 뜬금없이 선착장이 하나 보인다. 배가 떠있는 바다와 항구의 모습. 위에서 보면 그냥 평범한 선착장 모형과 다를 바 없다. 아래에서 보면 어떨까 궁금해 하며 계단을 지나 일층으로 내려갔다.

 


- 레안드로 레를리치 <대척점의 항구>, 출처: http://www.sobilife.com

 

 

 

사방이 까만 박스 같은 공간이다. 신발을 벗고 들어가니 마치 물속에 들어온 것 같다. 아까 이층에서 내려다 본 배들을 이번에는 아래에서 올려다보았다. 배들이 둥둥 머리 위에 떠있다. 가로등도 보인다. 물그림자에 반사된 듯 구불구불한 형태로 표현되어 있다.

 

둘이서 위를 올려다보며 걷기 시작한다.

 

L : 난 미술관에서 큰 그림을 보는 걸 좋아해. 휴대폰이나 컴퓨터로 보는 거랑은 다르잖아. 음악도 라이브로 들어야 제 맛인 것처럼 그림도 미술관에 와서 보는 맛이 있다고 생각해. 음원만 듣고 좋다고 하는 사람들은 라이브로 기타를 치면서 부르는 노래가 얼마나 좋은지 모를 거야.

J : 너가 음악을 해서 그런가보다. 음악도 라이브랑 음원으로 듣는 거랑은 확실히 다르다는 걸 잘 아니까.


L :  응. 그런데 여기 진짜 물 속 같다.

 

J : 이거 그거 같지 않아? 영화 <해리포터>에서 해리포터가 방학이 끝나고 호그와트로 돌아올 때, 기차역에서 내려서 건너갔던 호수! 다 같이 배를 타고 해그리드가 노를 저었던 검은 호수 같아. 그 때 흘러나오던 음악도 생각나네.

L : 잘 기억은 안 나는데, 아무튼 신기하다. 저게 노이고 저게 가로등이네. 물에 비쳐서 꾸불꾸불하구나.

J : 응. 이거 만드는데 거의 9개월? 설치하는 데만 또 1개월이나 걸렸대. 너 국립현대미술관은 처음이지? 이 공간이 국립현대미술관 ‘서울박스’라고 하는데, 여기에 한 작가씩 돌아가면서 설치작업을 해. 아마 이 작가가 두 번째 참여 작가일 거야. 이렇게 큰 공간을 한 작가에게 제공한다는 건 작가한테 엄청 큰 의미일거야. 이 작가가 해외에서 이런 착시효과 작업으로 꽤 유명한가봐.

L : 작가가 한국 사람이야?

J : 아니, 아르헨티나 사람이야. 우리가 보고 있는 작품은 부에노스 아이레스 항구인데, 제목이 <대척점의 항구>야. 대척점이 뭐냐면.. 서울에 중심점을 딱 찍고 대각선으로 연결했을 때 정확히 맞은편에 있는 곳이야. 거기에 부에노스 아이레스가 있는 거지. 두 도시가 지구의 양극단에 있는 거야. 그래서 뭔가 이 작업은 저 멀리 아르헨티나까지 연결돼 있는 것 같아. 여기에 내가 항구를 만들고 돌아가겠다는 작가의 의지가 느껴지는 것 같기도 하고..

 

 

 

L : 응. 뭔가 좀 신비스럽고 이상한 느낌이긴 하네.


J : 레안드로 에를리치의 작업은 착시효과를 이용해서 사람들이 편하게 눕거나 앉아서 주변을 관찰할 수 있어. 착시를 이용해 익숙한 걸 새롭게 보도록 유도하는 거지.


- <swimming pool>, 2001, 물결 무늬 천을 이용해 수영장을 표현했다. 출처 : http://www.zoomup.co.kr


- <Batiment> 2004, 거울을 이용한 착시 작품, 출처 : http://www.shanghaibang.net

 

 

 

L : 그렇네. 근데 갑자기 궁금 한건 데 미술작품을 볼 때 주로 어떤 걸 봐? 그리고 어떻게 봐?

 

J : 난 그냥 봐. 일단 ‘잘 만들었다’는 느낌이 오는지 보고, 그 다음엔 이 작품이 지금 나한테 어떤 느낌을 주는지를 살펴. 그런데 대부분 그냥 편하게 보는 편이야.

L : 난 미술관에 오면 뭔가 좀 불편해.

J : 응, 미술관의 분위기가 어색해서 그래. 그래서 나는 나중에 아이 낳으면 미술관에 자주 데려올 거야. 자연스럽게 분위기를 배우게 하려고. 뭐든 익숙해지는 게 좋은 거 같아. 뭐든 거기서부터 시작하는 거거든.

 

작가는 “인생은 결국 우리가 모두 살아가기로 동의한 허구에 지나지 않는다.” 는 말을 했다고 한다. 그래서 우리는 방금 ‘물 밑에서 이 십 여 분간 대화를 나누다가 천천히 물 밖으로 걸어 나왔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솔비(Sol-B)

글을 씁니다.
기억과 공간, 감정에 관한 이야기를
나를 닮은 글이 누군가에게 기억되길 바라며
나를 바꾸고 이전과 같이 생각하지 않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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