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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엔날레를 통한 몇 가지 단상: <네리리 키르르 하라라>展 후기

16.11.11 1

언제나 획기적인 전시로 미술을 소개하는 서울시립미술관에서 <네리리 키르르 하라라>展이 진행된다. <네리리 키르르 하라라>展은 미디어 아트 중심의 국제 비엔날레인 ‘SeMa 비엔날레 미디어시티서울’이라는 이름 하에 개최되는 전시로, 지난 2년 동안의 동시대 미술 현황을 축약적으로 제시한다.

 

국제 비엔날레는 2년을 주기로 광주, 부산, 청주 등 각지에서 개최된다. 미디어아트비엔날레는 2000년에 창설되어 현재는 미디어시티서울이라는 이름으로 입지를 다지고 있다, 출처: http://mediacityseoul.kr

 

전시명 ‘네리리 키르르 하라라’는 마치 외계인이 속삭이는 듯한 언어로 단순히 제목만으로 전시의 주제가 무엇인지 파악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이미 주제에 대한 이야기가 언론에서 여러 번 회자된 바 있고, 전시 후기 역시 많이 접할 수 있기에 ‘네리리 키르르 하라라’가 ‘화성인이 말하는 상상적인 미래언어’라는 것을 유추해볼 수 있다. 김홍희 서울시립미술관장은 이를 “이십억 광년의 고독에서 따온 화성인의 말"이라고 설명하면서 "예술언어와 미디어가 매개하는 다양한 종류의 미래를 제안해 내일의 가능성을 묻고자 한다"며 전시의 취지를 밝혔다. 하지만 글쎄, 작품을 직접 만나보지 않고서야 이 설명을 완전히 이해할 수 없을 것 같다. 단지 이 전시가 미디어 아트를 통해 21세기의 전 세계 이슈를 이야기한다는 것, 그리고 각국의 작가들이 그것을 풀어내는 다양한 방식을 보여줄 것이란 정도의 메시지를 추측해보았다.

 

SeMa 비엔날레 미디어시티서울 <네리리 키르르 하라라>展, 출처: http://mediacityseoul.kr

 

<네리리 키르르 하라라>展에는 24개국에서 초대된 작가 총 61명이 참여했다. 유럽, 아시아, 남미 등 다양한 출신의 작가들이 자신만의 특색이 드러난 다양한 시각의 작품을 선보인 것이다. 덕분에 적막하고 조용하기만 한 일반적인 미술관과 달리, 서울시립미술관은 미디어 아트가 발하는 생경한 ‘소음’들로 가득찼다. 작품은 라이트 아트(Light Art), 프린팅(Printing), 사운드 아트(Sound Art), 영상(Video) 등, 다양한 매체로 이루어졌다. 그 중에서도 영상 작업이 꽤 많은 비율을 차지했는데, 모든 영상을 감상하려면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01. <인간가면> 피에르위그

<인간가면> 피에르위그, 필름&컬러&스테레오 사운드, 2:66, 2014, 출처: 서울시립미술관 

 

피에르위그의 <무제: 인간가면>은 2011년 후쿠시마 원전사고로 폐허가 된 식당에 반인반수(半人半獸)의 생명체가 등장하는 영상이다. 작가는 ‘원숭이 종업원’이라는 인위적인 생명체를 영상의 주인공으로 설정해 실제 일본 전통 음식점 에서 그가 노동하는 모습을 담았다. 이러한 시도는 동물과 인간의 관계를 반추할 뿐만 아니라 인간이 동물과 자연에 행하는 폭력적인 권위에 대해 폭로한다. 한 마디 대사 없는 주인공의 분주한 움직임은 굉장히 기괴한 느낌을 준다.

 

#02. <계시의 나날과 자매> 김실비

<계시의 나날과 자매> 김실비, 4KHD 변환, 컬러, 사운드, 16:9, 2016, 출처: 서울시립미술관

 

김실비의 설치 작업은 <육십진법에 따른 연애편지>와 <작고 따뜻한 죽음>, <계시의 나날과 자매> 총 세편이다. 스틸컷 <계시의 나날과 자매>는 두 사람이 끊임없이 서로에게 질문을 던지며 소통하는 모습이다. 작가의 말을 빌리자면, 그는 죽음과 끝, 소멸을 직시했을 때야 비로소 인간을 파괴로 내모는 일련의 현상을 달리 바라보고 생명의 가치를 재발견할 수 있다고 한다. 현대사회에 일어나는 정치, 문화, 기술 등이 초래하는 이면의 문제들을 바라보는 그만의 비판적인 시각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그러나 심오한 작업인 만큼, 배경설명 없이는 쉽게 이해할 수 없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03. <12> 차재민

<12> 차재민, HD 비디오, 3채널&컬러&사운드, 33:33, 2016 출처: 서울시립미술관

 

차재민 작가의 <12>는 최저임금 결정 과정을 가상 회의로 재현한 영상이다. 열 두 명의 등장인물은 담담한 어조로 회의를 진행하다가 타인을 공격하는 발언에 기를 쓰고 달려든다. 본질을 벗어난 회의 풍토를 역설적으로 비판하는 이 작업은 오로지 작가의 추측과 상상으로 만들어졌지만, 생생한 연출 덕분인지 자칫 실제장면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서울시립미술관 1층 전시실, 이미지 출처: 직접 촬영

 

이번 전시가 국제전인 만큼, 다양한 작품을 통해 다채로운 감상을 느낄 수 있었지만 몇 가지 의문점이 남았다. 첫째, ‘미디어 아트'의 정의는 무엇이며 그 범위는 어디까지인가. 둘째, 전시의 주제가 무엇인가. 셋째, 전시 공간이 적절히 활용됐는가의 문제이다. 먼저, 전시가 말하는 ‘미디어 아트’가 무엇인지 그 용어를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흔히 ‘미디어'라는 용어를 접했을 때 ‘새로운 매체’를 떠올리는 경향이 있다. 언어가 주는 느낌덕분에 "왠지 더 기계적이고 신기술을 이용한 특이한 작품이겠지?"라는 무언의 정의를 기반하고 있다는 것이다.

 

<막> 출처: 서울시립미술관

 

하지만 사실 미디어 아트는 회화나 조각 외의 ‘비전통적 매체’를 이용한 예술을 말한다. 여기서 문제는 ‘비전통적 매체’를 사용한 미술을 한정하기에는 그 범주가 매우 넓다는 것이다. 미술 재료로 이용된 필름, (이 전시에서 상당 부분을 차지한)영상 작업,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통한 기계적인 사운드/영상 작업 등, ‘미디어’가 포함하는 범주는 굉장히 넓다. 때문에 대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를 ‘미디어 아트’라 칭해야 하는 것인지 이번 전시조차 명확히 풀어내지 못했다.

이는 ‘미디어’란 용어 또한 명확하게 정의되지 않은 탓도 있다. 미디어의 사전적인 의미는 본래 신문·텔레비전과 같은 매체를 뜻하며, “중간에 자리하여 사이를 매개하는 것, 분야에 따라 서로 다른 다양한 대상”을 가리킨다. 그 어디에도 ‘새로운 매체’를 뜻하는 말은 없다. 다만 우리는 ‘미디어’라는 용어를 자주 접하게 되면서 ‘미디어 아트’를 암묵적으로 ‘조금 더 진보적인 기술을 활용한 오브제’ 정도로 추측할 뿐이다.

그러나 미디어 아트에 대한 불분명한 정의는 앞으로의 전시를 기획하는 데 걸림돌이 될 것이다. 용어에 대한 불분명한 정의가 기획자의 임의적인 해석을 가능케 해서 ‘미디어 아트전시’가 열릴 때마다 작품의 범주가 현저히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SeMa 전시에는 미디어 아트를 라이트 아트, 프린팅, 사운드 아트, 영상으로 한정했지만, 기획에 따라 범주는 언제든 달라질 수 있다.

 

 

영화 <베스트 오퍼>, 출처: 네이버 영화


두 번째 난제는 ‘과연 전시의 주제는 무엇인가’에 대한 열린 결말이다. ‘네리리 키르르 하라라’는 과연 이 많은 출품작을 하나로 묶는 키워드일까? 각국, 각지의 작가들이 21세기를 논하며 사회적 이슈나 개인적인 생각을 작품으로 풀어냈다. 그러나 모든 전시는 하나의 키워드로 묶일 수 있는 공통점이 필요하다.

이는 화랑들이 한 장소에 모여 작품을 판매하는 행사인 아트페어(Art Fair)와 비엔날레가 구분되는 이유기도 하다. 비엔날레는 앞서 언급했듯 2년 간격으로 열리는 국제적인 미술 행사다. 한 국가와 지역은 비엔날레를 통해 동시대 예술 문화가 어떻게 흐르는지 선보여야 한다. 2년간의 이 시대 헤게모니를 통칭할 수 있는 큰 그림이 비엔날레를 통해 보여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주제 선정, 작품의 연관성, 그로 인한 전시의 동선과 작품 진열 방식 등에 대한 충분한 기획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번 전시에서는 그런 고민이 충분히 보이지 않았다는 점이 아쉽다. 마치 다양한 작품들을 한자리에 모아 미디어 아트라는 이름으로 묶어 "이것이 지금의 미술이다"라고 말하는 듯했다.

 

SeMA 비엔날레 미디어시티서울 2016 설치 전경, 출처: 서울시립미술관

 

마지막으로 ‘전시의 공간이 적절했는가’에 대한 의문이다. 전시 공간 대부분을 차지했던 ‘영상 작업’과 현란한 빛을 발하는 ‘프린팅 아트’의 공간을 제대로 구분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영상은 다른 매체에 비해 시각과 청각의 몰두가 필요하다. 그래서 파티션이나 가벽을 이용해 다른 작품으로부터 분리했어야 했다. 몇몇 작품을 제외하곤 이에 대한 별다른 조치가 없어 드넓은 공간에 모든 영상이 공존하는 상황이 됐다.

물론 이와 같은 난제들은 모두 주관적인 의견이다. 하지만 좋은 작품이 있다고 좋은 전시도 아니며, 훌륭한 작가가 참여했다고 해서 무조건 성공한 전시가 아니라는 점은 확실하다. 전시를 구성하는 모든 요소들이 기획을 통해 충분한 조화를 이뤘을 때야 좋은 성과를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과연 'SeMa 비엔날레 미디어시티서울’은 세계적인 비엔날레로 자리 잡을 수 있을까? 또한, 대중에게는 아직도 낯설기만 한 예술이 사람들의 공감을 살 수 있을까? 그러나 ‘동시대의 미술을 논한다’는 전시의 취지와 21세기인 현재, 그리고 우리의 미래에 대해 끊임없는 질문을 던진다는 측면에서 비엔날레의 역할과 의미를 다시금 되새겨 본다.

 

이윤정(Lottie)

그림을 쓰고 글을 그린다.
아날로그를 사랑하다 디지털 시대의 위협을 받고 현대적인 것과 친해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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