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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 북 리뷰] 녹색 회로판 위의 단기기억 장치 발전사

16.10.28 0

크리에이티브 네트워크 <노트폴리오 매거진>에서는 디자인에 관한 다양한 시선을 비추기 위해 디자인 북 리뷰를 기획했습니다. 책을 통해 낯선 디자인을, 세상을 보는 다양한 시선을 접해보세요.

 

11. 녹색 회로판 위의 단기기억 장치 발전사

 

녹색 바닥의 메인보드에는 여러 개의 칩이 꽂혀있다. 어디가 어딘지도 모르는 회로 사이로 얼기설기. 이렇게 복잡한 회로 사이로 솟은 칩들은 각자의 물리적 역할을 하며 하드웨어가 된다. 그리고 그 하드웨어 속에 새로운 소프트웨어가 담기면서 둘은 서로 상호 보완하며 하나의 시스템을 이룬다.

 

Superblock 115, 이득영, 2011 플렉시글라스 위에 피그먼트 프린트, 60×90cm, 출처: www.artinculture.kr/online/168

 

녹색 땅에는 여러 개의 집이 꽂혀있다. 어디가 어딘지도 모르는 도로 사이로 얼기설기. 복잡한 도로들 사이로 솟은 집들은 각자의 물리적 역할을 하며 도시가 된다. 그리고 그 도시에 새로운 행동 양식이 담기면서 둘은 서로 상호 보완하며 하나의 도시를 이룬다.

 

Superblock 115, 이득영, 플렉시글라스 위에 피그먼트 프린트, 56.5 x 85 cm, 2011, 출처: www.design.co.kr

 

목동야경, 출처: Park. J.J 

 

전쟁의 여파가 채 가시지 않았을 무렵, 우리나라에 아파트가 생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1962년, 최초의 아파트 단지가 마포에 생겼고 그 뒤로 용산의 한강맨션, 여의도의 아파트를 필두로 줄줄이 아파트 단지가 생겨났다. 사람들에게 아파트는 이전에는 없던 새로운 공간을 제공했다. 예를 들어, 마당 대신 베란다를, 부엌 대신 키친을 선사했다. 이 새로운 공간은 사람들에게 이전과 다른 행동을 하도록 만들었다. 장독대를 어디에 두어야 할지 갈팡질팡하게 만들었고 기존과 다른 가구를 구매하도록 유도했다. 때마침 가전제품도 등장했다. 그래서 많은 것들이 달라졌다. 단지를 이룬 아파트는 밀도 있게 주변 지역으로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이것은 혁명과 다름없었다. 시장(市場)은 사람들이 밀집해 있는 아파트로 모여 들었고 상가가 생겨났다. 더 이상 아파트가 주거의 역할만 한 것이 아니라 삶의 전반에 거친 라이프스타일에 변화를 꾀한 것이다.


전통과 현대가 불균질하게 착종된 기존의 단독 주택에서 사물들은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우왕좌왕하기 일쑤였다.

- p.72, <콘크리트 유토피아”> 박해천

 

어느 소년은 단짝 친구의 생일파티에 초대되어 이웃 단지의 47평짜리 아파트에 방문했다가 그 집 화장실에서 이상한 장면을 목격한다. 22평짜리 자기 집에서는 “콰, 하는 소음과 함께 맹렬한 소용돌이가 변기를 훑어 내리는데” 친구의 집에서는 “스와, 하는 부드러운 소리와 함꼐 잔잔히 맴을 돈 물이 변기를 빠져나가는” 것이었다.

-p.284 <비치보이즈> 박민규, 2010

 

마포아파트 전경, 우리나라 최초의 아파트 단지, 국가기록원,1963, 출처: http://zibjob.com

 

한강맨션 전경, 5~60평형대 고급 아파트 단지의 시작, 이 아파트에 의해 아파트 분양가 상한제가 실시되었다, 국가기록원, 1920, 출처:http://www.ehistory.go.kr

 

잠실 주공아파트 전경, “마포,용산,여의도에서 실험을 거친 후 비로소 강남 아파트의 시대를 열었다, 출처: http://photo.chosun.com

 

반포 주공 아파트 단지 조감도, ⓒ대한주택공사, 1970년대 초, 출처: www.lh.or.kr

 

용산 이촌동에 ‘한강맨션’이라는 처음으로 큰 평수의 아파트가 생기고 뒤이어 여의도에 최초로 엘리베이터가 있는 고층 아파트 단지가 생기면서 사람들은 아파트에 더 큰 관심을 갖게 됐다. 게다가 정치인, 경제인, 연예인 등, 유명 인사들이 아파트에 거주하기 시작하면서 그 관심은 더욱 증폭되었다. 그들 대부분은 젊고 재력이 있었고 그래서 최신식 인테리어와 최신식 가전 제품, 유행하는 옷, 심지어 미제 수입 식품으로 살림살이를 채웠기 때문이다. 하나의 아파트 단지는 최신 문화와 디자인을 선도했다. 단지 밖의 사람들은 그들의 삶을 동경했고, 그 안에 속하지 않은 자신들의 자존감을 깎아 내렸다. 그리고 자신도 언제가 그 아파트에 살 수 있기를 꿈꿨다. 반면 단지 속 사람들은 자신의 윗집과 옆집, 아랫집의 수준을 비교하면서 묘한 경쟁심과 동질감을 형성했다. 자연스레 아파트는 주변의 이웃과 구별되는 ‘도시 속 섬’이 되어 갔다.

 

출처: 콘크리트유토피아 <한강맨션 아파트 인테리어 디자인>

 

강남 아파트 인테리어, 강은구

 

텔레비전 광고, 출처: imbc

 

 70년대 시스템키친 “규격화 된 아파트에 규격화 된 시스템 부엌이 등장했다


 

국가는 입지여건이 좋은 강남지역에 이파트 대단지 계획을 발표하고 중산층을 위해 낮은 분양가로 아파트를 공급했다. 그런데 때마침 사람들의 ‘아파트를 향한 열망’과 ‘좋은 입지 조건’, 게다가 금융 호황까지 겹치면서 아파트 값이 최초 분양가에 세 배 네 배, 열 배까지 뛰었다. 그때부터 사람들의 인식 속에 아파트는 ‘조금 더 나은 삶과 재산 증식에 도움을 주는 1석2조’의 ‘무조건 잡아야 하는 대상’이 되었다. 그렇게 아파트는 더 이상 사람들이 ‘사는 곳’이 아닌 ‘사는 것’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아파트가 점점 동경의 대상을 너머 종교화 되고 있었다.


이 모든 것이 3,000만 원짜리 아파트가 1년 만에 2배가 오른 덕분이다.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한 달에 200~300만 우너씩 재산이 불어”나는 “새롭고도 놀라운 경험”. 아파트가 사람을 위한 ‘양계장’이라며 자조하는 이웃 주민들도 있지만, 그녀는 굳이 비유를 해야 한다면 “매일매일 금 달걀을 낳는다는 옛날이야기 속의 닭”에 더 가깝다고 생각한다.

-출처: p273~274, <그대 아직 꿈꾸고 있는가:한말씀만하소서> 中 서울사람들, 박완서

 

여의도 전경, 타워팰리스 야경 및 용인 죽전지구 항공촬영 사진, 출처: www.air-works.co.kr

 

그렇게 사람들은 도시에 콘크리트 쏟아 부으며 자신의 이상(理想)을 실현시켜줄 유토피아를 건설하기 시작했다. 가격을 낮추기 위해 저기서 지었던 평면을 고대로 가져와 현실로 재현한 것이다. 그렇게 산 속의 아름다운 능선을 다 파괴한 채 천편일률적인 담배갑을 꽂아 댔다. 그것은 마치 컴퓨터 메인보드의 RAM같았다. 도시의 기억이 저장 될 하드디스크는 제거하고 언제든 갈아치울 수 있도록 임시 기억 장치만 남겨둔 것이다. 더 이상 도시는 삶의 기억을 저장할 수 없다. 그래서 도시의 삶은 ‘내일의 콘크리트 유토피아’를 꿈꾸며 ‘단기 기억 상실’에 걸린 듯, 매일 매일 리셋 되고 있다.

 

 


제목 콘크리트 유토피아 
출판사 자음과 모음
저자 박해천

김재웃

더욱더 관찰하고 더욱더 통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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