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와 여자는 화성과 금성에서 오지 않았다, Genderless Fashion

15.09.02 0

<구름이 지나간다> 수아조, 출처 : http://www.notefolio.net/suuajo/37970

 

 


커뮤니케이션을 학문으로 배우다 보면(특히 연인간 커뮤니케이션) 너무나 유명한 책이 등장한다. 바로 그레이 박사의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 남자와 여자는 서로 근본부터 다른 종족이라 커뮤니케이션을 할 때 갈등이 생기기 마련이라는 의미다. 어느 정도 맞는 말이다. 자라며 배운 것은 같아도 보고 듣는 건 다르다. 그러니 서로 같은 말을 두고 해석하고 표현하는 방법이 다를 수 밖에. 그래서 그레이 박사는 서로 다른 행성에서 온 이 두 생명체가 어떻게 현명하게 커뮤니케이션 할지 가르쳐 준다.

그러나 최근 이 이론에 의문을 품은 사람이 증가하고 있다. 대표적인 논문 제목은 바로 <Men And Women Are From Earth>. “남자와 여자는 지구에서 왔다”. 그레이 박사처럼 위트 있는 비유를 이용한 이 논문은 남자와 여자는 다를 게 없음을 밝힌다. 신체적 구조는 달라도 성격이나 가치관 등 내적 요소는 남녀를 구분 지을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즉, Sex는 다르지만 Gender는 같은 게 남녀다.

<Let me marry who I love>
출처: http://goldenageofgaia.com/2015/05/27/news-special-edition-same-sex-marriage

 

 


Gender(이하 젠더)는 성별의 나눔을 따지지 않는 최근 사회 분위기와 맞아 떨어지는 단어다. 미국의 동성애 결혼 합헌 판결은 ‘당신의 젠더가 무엇이든 상관없이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함께 영원을 약속할 수 있다.’는 법적인 증거가 됐다. 적어도 미국에서만큼은 말이다. 그리고 페미니즘(feminism)은 어떤가? 페미니즘은 젠더에 관계없이 유리천장을 깬 평등을 약속 받길 원한다. 또한, 남자와 여자의 성격 일반화를 우려한다. 그리고 성 고정관념에 의한 패션을 무조건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경계하며, 이는 최근의 중성화된 패션 트렌드와 연결 지을 수 있다.

- 생 로랑(Saint Lauren) 2015년 가을/겨울 컬렉션
출처: http://www.style.co.kr/collection/view.asp?scd_code=4379


- 루이 비통(Louis Vuitton) 2015년 봄/여름 컬렉션. 
출처: http://www.style.co.kr/collection/view.asp?scd_code=4347

 

 


만약 당신이 핫 핑크색의 풍성한 털 코트와 거의 9cm에 달하는 굽이 달린 부츠로 치장한 남자를 본다면? 아니면 여성 블라우스를 걸친 채 거친 랩을 쏟아내는 남자를 본다면? 이 모든 일은 최근 벌어지고 있는 현상이다. 그리고 남성과 여성의 경계선을 허무는 디자이너들의 기상은 90년대부터 그 빛을 발해왔다.

- 출처: http://fashion.telegraph.co.uk/

 

 


1990년대는 패션 브랜드 앤 드뮐미스터(Ann Demeulemeester)로 대표되는 올곧고 중성적인 유니섹스 스타일의 미니멀리즘이 유행했다. ‘앤드로지니(Androgene)’라 불리우는 이 스타일은 심심한 옷 -성별을 나누어 판매하는- 이 될 수 있는 옷들을 올곧게 똑같은 실루엣으로 변화시켜 세상에 내놓았다. 이는 마치 디자이너가 남녀의 성 차별적인 구분을 없애자고 독려하는 것만 같았다. 성별에 구애 받지 말고 같은 옷을 입으라는 의미로 말이다.

- 출처: http://capsuleshow.com/

 

 


유니섹스의 90년대가 폭풍같이 지나간 뒤 밀레니엄 2000년도가 도래했다. 디올 옴므(Dior Homme)의 디자이너였던 에디 슬리먼(hedi slimane)은 유독 여자 모델만큼이나 빼빼 마른 남자 모델들을 고용해 런웨이에 세웠다. 그리고 이 모델들과 에디 슬리먼은 디올 옴므를 하나의 고유명사처럼 만들었고 “젠더리스”한 스타일을 보여줬다. 심지어 프랑스 대통령이었던 사르코지도 디올 옴므 정장을 입었다. 디올 옴므는 젠더리스 패션계의 하나의 신드롬으로 자리잡았다. 그리고 현재는 남자친구 바지를 빼앗아 입은 것 같은 “보이프렌드 진”처럼 “보이브렌드”라는 단어가 붙은 옷들이 우후죽순으로 생기고 있다. 그렇다면, 현대 패션계에서 여성 남성을 칼같이 구분 짓는 것은 구시대적이고 구태의연한 발상일까? 이제부터는 남자들도 여자들을 따라 굽 높은 부츠를 신고 재킷을 사러 다니는 진풍경이 펼쳐질까?

- G-Dragon at Paris Fashion Week (Womenswear) for Chanel’s Spring Summer 2015 RTW
출처: http://bigbangupdates.com/

 

- 출처: http://bossip.com/

 

 


남녀 옷의 공통점은 직선이 들어가는 데 있다. 이 직선을 여성이 입는다면, 여성의 아름다운 곡선과 조화되어 여성스러우면서 시크한 분위기를 풍긴다. 그리고 남성의 직선과 만난 옷의 직선은 남성성을 부각하는 동시에 도회적으로 보이게 만든다. 그러나 젠더리스 패션이 아무리 유행이라 해도 남자에게 여성용 셔츠나 재킷을 입으라고 할 순 없다. 즉, 젠더리스는 디자이너 조나단 앤더슨이 자신의 컬렉션에 대해 한 언질처럼 “남자가 입고 싶은 여자 옷, 여자가 들고 싶은 남자 가방”의 추세로 진행되어야 그 합이 맞을 것이다. 게다가 단순히 입고 싶다 에서 끝나는 게 아닌 실제로 입는 사람들이 있으니 그 패션 피플들을 참고하면 되겠다. 참고로 GD는 여성용 샤넬 트위드 재킷을 입었고 칸예 웨스트(Kanye West)는 셀린느(Celine) 여성 컬렉션의 블라우스를 입고 힙합 공연을 했다. 그래도 둘은 충분히 남자다웠다.

- 대표적인 젠더리스 모델 안드레 페직
출처: http://www.modelmanagement.com/

 

 


젠더리스 패션이 우리에게 말하고자 하는 바는 무엇일까? 젠더리스는 단순히 한 시즌을 휙 하고 지나갈 한낱 유행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90년대부터 태동한 중성(中性)에 대한 사람들의 호감과 시도는 젠더리스가 단지 유행이 아님을 증명한다. 젠더리스는 성별에 상관없이 자신을 과감하게 표현하는 사람들을 위한 스타일이다. 고로, 모든 사람들을 위한 패션이다. 물론 성별을 아예 나누지 말자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중요한 점은 남녀 구분 이전에 우리는 ‘사람’이라는 사실이다. 내가 성별이 어떻든 그 옷을 입고 ‘나’를 표현할 수 있느냐 없느냐가 중요하다.


최근, 놈 코어(Norm Core) 스타일이 유행하고 있다. 껍데기는 안 꾸민 듯 깔끔하지만 알맹이는 포인트가 될 만한 무언가를 갖춘 스타일이다. 어쩌면 90년대 미니멀리즘을 기리는 유행일지도 모르겠다. 놈 코어와 미니멀리즘이 유행하는 이 때 가장 필요한 자세는 바로 젠더리스다. 그러므로 오롯이 나 자신을 표현하기 위한 스타일이 필요하다. 화성에서 오든 금성에서 오든 상관없다. 우리는 모두 지구 출신이니까. 당신이 터미네이터의 팝스처럼 마초적인 옷을 입든, 에디 슬리먼의 모델들처럼 젠더리스하게 입든 ‘자신감’을 잃지 말자. 결국 그 옷을 입고 거리를 활보하는 것은 다른 사람도 아닌 ‘나’ 니까.

 

Lyla

오아시스와 에드워드 호퍼, 이브 생 로랑과 아제딘 알라이아를 사랑합니다.
많은 일을 경험해보고 싶고 이뤄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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