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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에 관하여, ‘안드레아 구르스키(Andreas Gursky)’

15.03.23 6

 

나는 ‘인류종말’에 대한 이야기를 좋아한다. 아주 오래 전부터 수많은 이야기를 쏟아낸, 앞으로 언젠가 찾아올지도 모르는 인류의 마지막에 대한 이야기는 정말 흥미롭다. 정확히 ‘종말’이라 표현할 수 없지만, 영화 <투모로우>나 책 <더 로드>처럼 미래의 재앙 속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의 모습을 인상 깊이 기억하고 있다.


최근 영화 <her>을 보며 영화가 표현하는 가까운 미래가 ‘인류 종말’에 가장 가까운 모습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her>이 표현하는 미래는 핵전쟁이 일어나지도, 대홍수가 일어나지도, 불치의 바이러스가 유행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따뜻하고 아름다운 디자인으로 가득 찬 미래도시의 모습이다.

- 영화 <her>, 출처 :  http://www.herthemovie.com

 

 


영화 속 미래의 인류는 각자의 귀에 이어폰을 꽂고, 언제 어디서나 OS와 함께한다. 사람과의 대화는 랜덤 채팅방 App을 통해 이뤄지고, 대화에 싫증이 나면 언제든지 창을 닫을 수 있다. 사람 간의 관계에서 책임은 없고 잠깐의 유희만 있을 뿐이다. 싫증이 나는 사람과는 달리, OS는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는다. 언제나 나의 삶 속 작은 일에 귀 기울이고 필요할 때 언제든지 나타난다. 자연스레 사람들은 OS에게 사람보다 더 많은 위로와 즐거움을 얻는다.

 

-잿더미 속 인류의 모습보다 무서운 것은, 오직 각자의 컴퓨터와만 소통하는 인류의 모습이 아닐

 

 

 

인류에게 ‘종말’이란, 살아가는 환경이 폐허가 되는 것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 간의 소통이 없어지는 일이다. 종말을 이렇게 정의 한다면, ‘안드레아 구르스키(Andreas gursky)’의 사진을 통해 우리의 삶 속에 이미 존재하고 있는 ‘종말’을 만날 수 있다.

 

 

1) Stock Exchange 


- New York Mercantile Exchange, 1999

 

- New York Mercantile Exchange, 1999

 

- Symex Singapore, 1996

 

 

 

2) Manufacture 

- Siemens Karlsruhe, 1996

 

- Grundig Nürnberg, 1993

 

- Mercedes Rastatt, 1993

 

 

 

3) Workers


- Nha Trang, 2004

 

번호별 분류는 필자가 나누어 놓은 것이다. 구르스키는 베허학파(Becher School)에 속하는 작가로, ‘유형학적 사진’ 작업을 한다. 때문에 위의 사진들을 유형별로 분류해 본 것이다.

 

 

 

 

사진 속 사람들은 너무 작거나, 기계나 장비에 파묻힌 채 무언가에 열중하고 있어 눈에 띄지 않는다. 이는 사진 속 인물과 관람자 사이를 단절한다. 이렇게나 많은 사람들이 한 공간에 있는데 기괴할 정도로 결여된 느낌이다.

구르스키의 사진은 한 시점에서만 찍은 사진이 아니다. 다시점(multi-view)으로 촬영한 뒤, 디지털 테크놀로지를 활용해 합성한 사진이다. 때문에 시점과 멀어질수록 화면이 흐릿해지는 일반 사진과 달리, 사진의 어느 곳을 응시해도 선명하다. 덕분에 관람자는 사진 속 한 사람 한 사람을 관찰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내 실망하고 만다. 사진 속 사람들은 소통 없이 그저 제 할일 만 하기 때문이다.

안드레아 구르스키(Andreas gursky)는 디지털 테크놀로지와 독특한 구성, 조망시점을 통해 그만의 리얼리티를 창조했다. 구르스키의 리얼리티를 통해 살펴본 우리의 모습은 우리가 생각해 온 것 이상으로 분절 돼 있다. 그의 사진은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시대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드러냄과 동시에 ‘소통’을 다시 고민해보게 한다.

인간에게 ‘소통’은 언제나 실패의 가능성이 있다. SF 속 외계인처럼 ‘완전한 소통’을 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인간의 소통은 ‘내가 하고 싶은 말’이 ‘네가 듣고 싶어하는 말’과 다를 수도 있고 ‘내가 듣는 것’이 ‘네가 하는 말’과 다를 수도 있다. 이 과정 동안 우리는 서로 오해하고 상처 주고, 아파한다.

하지만 우리는 끊임없이 ‘시도’ 해야 한다. 그것만이 우리가 서로 화해하고 위로하고, 치유할 수 있으므로. 시도만이 우리가 희망을 가질 수 있는 유일한 이유이기 때문이다.

 

 

 

Andreas Gursky 작품 출처
http://www.moma.org/collection/artist.php?artist_id=7806
http://www.moma.org/interactives/exhibitions/2001/gursky/gursky2.html
http://www.saatchigallery.com/aipe/andreas_gursky.htm

나길

안녕하세요. 나길입니다.
영화와 소설을 좋아하고, ‘우리’의 잠재력을 믿는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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