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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이 비오네를 만날 때

16.03.08 0

출처: www.girldaily.com

얼마 전 영화 <드레스 메이커>를 관람했다. 얼핏 보면 복수극을 빙자한 코미디라고 오해하기 쉽지만, <드레스 메이커>는 엄연한 패션 영화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코미디와 복수극을 빙자한 패션 영화라 해야 할까? 주인공은 어릴 적 복수를 하기 위해 고향에 도착하고, 여자들의 옷을 만든다. 복수를 한다면서 왜 옷을 만드는지 궁금하다면, 이 영화를 꼭 보길 바란다. 그녀가 파리에서 배워 온 아름다운 주름 재단들이 어떻게 한 집안을 풍비박산 시키는 지 알 수 있으니 말이다.



출처: http://www.smh.com.au

극 중 주인공은 파리에서 디자인을 배웠다. 파리의 디자이너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사람은 코코 샤넬이지만, 아쉽게도 그녀는 샤넬의 제자가 아니다. ‘마담 비오네’ 를 들어봤는가? 그녀는 다름 아닌 비오네의 수제자였다. “마담 비오네에게 배웠어요.” 그녀의 거취를 궁금해하던 엄마에게 뱉은 말이다. 그렇다면 비오네는 누구인가? <드레스 메이커>는 왜 하필 마담 비오네를 주인공의 스승으로 선택한 것일까?

 

출처: http://designersoutfits.com


비오네는 마담 비오네라고 불리지만, 본명은 마들렌 비오네(Madeleine Vionnet) 로 1912년 파리에 첫 매장을 세운다. 그녀의 주특기는 ‘바이어스 컷(BIAS CUT)’ 이었다. ‘바이어스 컷’이란 ‘주름 재단’을 뜻하는데, 이는 부드러운 소재로 주름을 겹겹이 쌓은 듯한 효과를 일으켰다. 당시 여자들은 –샤넬의 트위드 수트가 유행하기도 전- 전통적인 드레스 잠금과 여밈 장치를 애용했다. 장치는 굉장히 답답했고, 마담 비오네는 훌륭한 명언을 남긴 채 드레스에 주름을 입히기 시작했다. “내가 웃을 때 옷도 같이 웃어야 한다.” 신체를 타고 자연스럽게 흘러내리는 주름은 별도의 여밈 장치 없이 지금의 원피스처럼 머리 위로 입는 방식으로 재 탄생했다. 별다른 꾸밈 없이 주름과 한 겹의 천으로 이루어진 비오네의 드레스는 신기하게도 사람들의 몸에 딱 맞았고, 사람들의 아름다움을 극대화시켰다. 그녀는 샤넬보다 앞서 코르셋을 거부했고 몸을 타고 흘러내리는 옷의 아름다움을 그 누구보다 먼저 설파한 선구자였다.

 

 

출처: http://www.thecultureconcept.com


<드레스 메이커>의 명장면을 뽑으라면, 비오네의 바이어스 컷을 완벽히 적용한 드레스를 입고 역에 서있는 마을 주민들일 것이다. 촤르륵 하고 순간 펼쳐지는 주름과 완벽히 어울리는 구두는 당시의 우아함을 대표한다. 어디 비오네의 영향을 받은 게 영화 속 작은 마을뿐이랴, 실제 패션사(史) 속에서 비오네의 재단은 가히 혁명적이었다. 아직도 그녀의 주름 재단법은 그 누구도 따라 할 수 없는 미스터리다. 디자이너 존 갈리아노는 “바이어스 컷은 정말 훌륭한 아이디어다. 이는 신축성이라는 것이 존재하기 전부터 신축적이었다.” 라고 평하기까지 했다. 샤넬 이전, 최초라고 해도 될 만큼 비오네는 ‘여성의 몸의 자유’와 ‘아름다움’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은 선구적인 인물이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샤넬이 여성을 코르셋으로부터 해방시킨 주요 인물이라고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비오네가 샤넬보다 앞선 선구자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출처: http://www.thecultureconcept.com


여성이 비오네를 만났다. 그 결과, <드레스 메이커>의 복수극이 됐고 헐리우드 여배우들의 고전 드레스가 탄생할 수 있었다. 더불어 우리는 그 속에서 스타일의 혁명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코르셋과 전통 드레스가 아직 주류일 때, 그 누가 주름과 한 겹 천으로 드레스를 만들 생각을 하겠는가? 갑자기 비오네의 숨결이 묻어 나오는 <드레스 메이커>를 다시 보고 싶다. 그러고 다시 그녀와 주름 재단에 대한 책을 찾아봐야지.

 

Lyla

오아시스와 에드워드 호퍼, 이브 생 로랑과 아제딘 알라이아를 사랑합니다.
많은 일을 경험해보고 싶고 이뤄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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