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이 흐르고 옷이 걷는다

15.10.23 0

- 셀린느의 2015년 봄/여름 컬렉션, 출처: http://www.billetrouge.com/page/4/

 

- 케이트 부시의 <This Woman’s Work> 출처: https://en.wikipedia.org/wiki/This_Woman

 


페미니즘은 항상 수면 위에 있었으나 전세계적으로 페미니즘이 가장 많은 주목을 받은 시기는 바로 불과 몇 달 전부터다. 어쩌면 엠마 왓슨의 페미니스트 연설과 해시태그 캠페인에서부터 시작된 것일지도 모르겠다. 남녀스타들의 페미니즘에 대한 지지가 날이 갈수록 높아지자 패션계도 페미니즘을 세련되게 표현할 방법을 강구했다. 대표적인 예로 셀린느(Celine)의 디자이너인 피비 파일로가 있다. 2015년 봄/여름 컬렉션의 주제는 여성이었다. 여성 컬렉션에서 언제 여성이 주제가 아니었던 적이 있냐 되물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편한 신발과 꽉 조이지 않고 되레 펑퍼짐한 옷들은 무언가를 말하고 있었다. 거기에 자연스러운 메이크업까지 더해지니 피비 파일로에게 ‘여자를 진정으로 이해하는 여자 디자이너’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여자들에게 주어진 역할 행동이 많아진 현대 사회에서 입기에 만족스러운 실루엣들이 쏟아진 결과다. 그런데 이 기념비적인 컬렉션은 오로지 옷만으로 주제를 전달한 컬렉션이 아니다. 우리에게는 약간 생소한 가수인 케이트 부시의 <This Woman’s Work>가 당시 런웨이를 타고 흘러나왔다. <This Woman’s Work>는 피비 파일로의 “나는 여자이자 엄마, 여동생, 친구, 패션 디자이너다.” 라는 메시지를 압축해서 전달했다. 가령 어떠한 텍스트도 없이 옷과 퍼포먼스로 디자이너의 뜻을 전달하는 패션쇼가 있다. 으레 이런 패션쇼는 행위예술 같을 때가 많다. 그러나 셀린느의 컬렉션은 케이트 부시의 음악으로 관객들에게 힌트를 제공한 것이다. 

- 지방시 2013년 가을/겨울 컬렉션의 퍼포먼스를 맡은 안토니, 출처: http://www.fashionising.com/

 


음악과 패션은 꽤 오랫동안 성공적인 관계를 이어왔다. ‘영화와 패션’의 관계 다음으로 가장 세련된 관계라고 해야 할까? 어떻게 보면 둘 다 상업적인 관계에서 시작했지만 그 끝은 문화를 창출하거나 아름다운 이야기로 맺어진다. 음악과 패션의 관계는 어느 관점에서 보느냐에 따라 약간씩 의미가 달라진다. 먼저 셀린느의 예처럼 패션쇼의 의미를 압축시켜 나타내는 동시에 하나의 퍼포먼스로서 작용하는 음악이 존재한다. 패션쇼의 사운드 트랙은 쇼를 완벽하게 만드는 마무리 매듭이다. 지방시의 디자이너인 리카르도 티시는 젊은 문화와 꾸뛰르적인 감각을 적절히 버무릴 줄 안다. 그의 샐러드 볼 같은 컬렉션은 최근까지 가수의 퍼포먼스를 쇼의 일부로 사용했다. 특히 2013년 가을/겨울 컬렉션에서 리카르도 티시는 그가 사랑하는 고딕적인 요소를 강화하기 위해 안토니 & 더 존슨(Anthony & The Johnson)의 안토니에게 라이브를 부탁했다. 안토니의 옷과 어두운 분위기는 당시 컬렉션의 히든 카드였다.

- 알렉산더 맥퀸의 2013년 봄/여름 컬렉션 피스 중 하나, 출처: http://wearesodroee.com/


- 알렉산더 맥퀸 쇼장, 출처: http://www.souvenir.co.uk/?cat=5

 


같은 년도에 있던 다른 컬렉션을 구경해보자. 알렉산더 맥퀸의 컬렉션은 그가 운명을 달리 한 후에도 디자이너인 사라 버튼에 의해 신선한 충격을 주고 있다. 패션쇼에 몽환적이고 미래적인 음악이 흐르거나 클래식-때로는 고전이 현대를 잘 표현해 줄 수 있기에-이 흐르는 건 예삿일도 아니다. 그러나 끊이지 않는 신경질적인 소리가 반복된다면? 2013년 봄/여름 알렉산더 맥퀸 컬렉션은 오프닝 전까지 벌 소리가 반복됐다. 모델이 걸어 나오는 스테이지의 화면에는 벌들의 분주한 모습으로 꽉 차있었고 모델들은 세상에서 가장 세련된 양봉 모자를 쓰고 있었다. 이 컬렉션은 사라 버튼이 알렉산더 맥퀸의 진정한 후계자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일깨운 “Bee Collection”이다. 사실, 제목 외에도 “Bee Collection”이 벌과 관련됐다는 건 드레스와 영상만으로 알 수 있다. 그러나 지겹도록 반복되는 벌들의 윙윙 거리는 소리가 쇼의 주제를 한번 더 강조한다.


- 클로에의 2015년 가을/겨울 컬렉션, 출처: http://www.style.co.kr/collection/


- 출처: http://www.style.co.kr/collection/


- 출처: http://www.style.co.kr/collection/

 

- 플리트우드 맥, 출처: https://namu.wiki

 

- 스티비 닉스(Stevie Nicks), 출처: http://blog.longreads.com/

 


그리고 다시 2015년으로 돌아오면, 가장 먼저 클로에(Chloe)가 눈에 띈다. “이 하우스가 자랑하는 연약함과 여성성을 뭔가 더 강력하고 거친 것으로 가리고 싶었어요.” 디자이너 클레어 웨이트 켈러는 클로에의 연약한 소녀들이 지닌 거친 내면을 70년대 히피 시크로 드러냈다. 지난 시즌부터 이어진 히피 트렌드가 클로에에 무사히 상륙하기 위해서는 음악이 필요했다. 그렇다면 70년대 히피 스타일을 근사하게 소화하는 동시에 평화와 자유를 노래하는 가수는 누구일까? 클로에는 그 해답을 플리트우트 맥(Fleetwood Mac)의 <Dreams>에서 찾았다. 멤버였던 믹 플리트우드와 스티비 닉스는 히피 룩의 대명사였다. 특히 스티비 닉스의 근사한 히피 드레스와 자연스러운 머리는 클로에의 가을/겨울 컬렉션의 핵심이었다. 

- A.F.반데보스트(A.F.Vandevorst)의 퍼포먼스. 록밴드에게 흰 페인트 스프레이가 뿌려졌다

- A.F.반데보스트(A.F.Vandevorst)의 2015년 가을/겨울 컬렉션


- 레이첼 코미(Rachel Comey)의 2015년 가을/겨울 컬렉션

 


A.F.반데보스트(A.F.Vandevorst)의 음악 퍼포먼스도 놓칠 수 없다. 페루 여행을 다녀온 디자이너 필립 아릭스는 그의 고향인 벨기에 방식으로 페루의 실루엣만 남기고 색은 없앴다. 무채색만 남겨진 컬렉션에 퍼포먼스도 무채색으로 물들이고 싶었는지 록 밴드에게 뮤지션이자 아티스트인 조리스 반 데 무어텔이 페인트를 뿌리는 광경을 연출했다. 그야말로 노래와 퍼포먼스가 합쳐져 쇼에 긴장감을 더한 것이다. 레이첼 코미(Rachel Comey)도 패션쇼에 디너파티와 가수 혹은 아티스트의 공연을 곁들여 쇼를 완성시켰다. 이번 시즌은 아늑하고 편안한 패션과 아티스트 트레시 엘리스 로스(Tracee Ellis Ross)의 음악이 만났다. 이처럼 런웨이 위의 음악은 한 시즌의 컬렉션을 대변하는 동시에 디자이너에게 영감의 원천이 된다. 음악이 없는 컬렉션이라면 그것대로 디자이너가 추구하는 철학이 대변된 것이며, EDM 공장에서 나온 것 같은 클럽풍 음악이 나온다 할지라도 그것 역시 컬렉션의 방향을 결정하는 텍스트가 되는 것이다. 가수들이 패션쇼에서 라이브를 하지만 그 라이브는 온전히 쇼를 위한 퍼포먼스고 가수 자신은 쇼의 일부다.

- 글램 록의 창시자 데이비드 보위(지기 스타더스트), 출처: http://www.thatericalper.com/


- 데이비드 보위의 <The Stars(Are Out Tonight)> 뮤직비디오 중 한 장면,
출처: http://theinspirationroom.com/daily/2013/

 


그러나 좀 더 상업적인 관점에서 패션과 음악의 관계를 다루면, 종속관계는 달라진다. 가수가 패션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지난 역사 동안 많은 가수들이 새로운 룩을 창조했다. 아직까지도 활발하게 패션계와 음악계의 전설로 활동하고 있는 데이비드 보위(David Bowie)는 지기 스타더스트(Ziggy Stardust)라는 내면의 인물을 공연장으로 내보냈고, 패션계는 이를 놓칠세라 그가 만든 글램룩(Glam Look)과 글램록(Glam Rock)을 영감의 원천으로 삼았다. 즉 데이비드 보위는 세련되고 선명한 패션과 퍼포먼스로 글램(Glam)이라는 단어에 새 지평을 열었다. 지기 스타더스트 시절을 거쳐 다시 현대적인 세련미를 추구하고 있는 데이비드 보위는 최근 자신이 발매한 곡 <The Stars(Are Out Tonight)>의 뮤직비디오에 패션계 ‘인물’들을 캐스팅했다. 틸다 스윈튼이 그의 아내로 나오며 젠더리스(Genderless)모델 -얼마 전 아예 여성 모델로 방향을 전환한-안드레 페직과 사스카 드 브라우가 옆집 스타 커플역할을 맡았다. 패션계의 상류층과 패션계에 한 획을 그은 창시자가 만나 음악에 이야기를 불어넣은 것이다. 물론, 그가 단순히 하나의 룩을 만들었고 뮤직비디오에 톱스타들을 총출동시켰기 때문에 대단한 의미를 지니는 건 아니다. 실제로 그가 젊은 시절에 이룩한 ‘중성적인 혁신’은 남성복에는 여성스러운 로큰롤(Rock & Roll)분위기를, 여성복에는 남성적인 직선과 강인함을 불어넣었다. 더불어 많은 패션 디자이너들과 의상 협업을 진행하고(지기 스타더스트의 점프수트와 부츠는 디자이너 프레디 보레티와 그의 협업이었다.) 온전히 글램 룩을 자신의 패션으로 소화하며 중성적인 매력의 표본이 됐다. 즉, 데이비드 보위는 패션과 음악-가수-의 관계를 더욱 친밀하게 만들었다. 

- 티에리 뮈글러와 레이디 가가,
출처: http://www.billboard.com/articles/news/


- 레이디 가가. 톰 포드(Tom Ford)의 2016년 봄/여름 디지털 컬렉션 중 한 장면.
출처: http://mashable.com/2015/10/02/


- 톰 포드(Tom Ford)의 2016년 봄/여름 디지털 컬렉션
출처: http://www.fashiondesain.com/fashion-magazine/

 


데이비드 보위 이후로 패션과 가수간의 협업 체제에 가속이 붙었다. 오늘날의 대표적인 주자로 레이디 가가가 있다. 디자이너 티에리 뮈글러는 한동안 ‘가가’가 공연장에서 입을 옷만 만드냐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레이디 가가의 ‘스타일’과 친밀했다. ‘가가’를 향한 러브 콜은 그녀가 충격적이고 난해한 퍼포먼스를 공연에 적용시킨 동안 계속됐다. 물론 지금도 뮈글러(Mugler) 특유의 재치는 여전하다. 하지만 레이디 가가의 앨범 Born This Way] 활동이 활발했던 동안은 그 특성이 도드라진 것도 사실이다. 현재 레이디 가가는 톰 포드(Tom Ford)의 2016년 봄/여름 컬렉션 음악을 부르고 뮤직비디오까지 출연했다. 노래 <I Want Your Love>는 유튜브 조회수 84만을 넘으며 큰 화제가 되고 있다. 그녀의 뮤직비디오 속 모델들은 봄/여름 컬렉션 옷들을 입은 채 춤을 추며 ‘가가’와 어울린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 뮤직비디오가 톰 포드의 2016년 봄/여름 디지털 컬렉션이라는 사실이다. 전통적인 패션쇼와는 달리 뮤직비디오를 통해 가수와 협업하고, 컬렉션까지 구성하는 일석 이조의 효과를 겨냥했다. 모델이 다른 모델들의 호응을 받으며 자유롭게 워킹하는 비디오 속 퍼포먼스는 톰 포드가 추구하는 현대적인 시크함을 잘 표현했다. 

- 마돈나의 콘 브라 수트, 출처: https://www.visionaireworld.com/

 

- 비욘세의 슈퍼볼 공연, 출처: http://thehonestyhour.com/

 


레이디 가가 이전에는 마돈나와 장 폴 고티에의 콘 브라 수트가 있었고 샤넬은 플로렌스 웰치의 히피 같은 자유로운 목소리를 사랑했다. 비욘세는 슈퍼볼 공연을 위해 루빈 싱어의 과감한 바디슈트를 선택했다. 많은 가수들과 패션은 서로의 퍼포먼스를 위해 대화를 나누며 영감의 출발선에서 손을 잡았다. 특정 브랜드의 패션 가치관과 특정 가수와의 관계는 끈질기고, 이 둘의 협업이 성공적일 때는 시간이 흐른 뒤에도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영광을 차지한다. 결국 패션쇼장의 음악이든 가수와 디자이너의 직접적인 만남이든 음악은 패션에 없어서는 안될 요소다. 서로 다른 방식으로 생각을 표현하는 두 예술이 얼마나 아름답게 섞이는 지 보고 싶다는 사람이 있다면 자신 있게 ‘음악과 패션’의 조합을 보여주고 싶다. 이 조합은 상호보완적인 관계를 넘어 우리가 예술을 다양한 방식으로 즐길 수 있도록 해주는 즐거움을 선사하기 때문이다.

 

Lyla

오아시스와 에드워드 호퍼, 이브 생 로랑과 아제딘 알라이아를 사랑합니다.
많은 일을 경험해보고 싶고 이뤄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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