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이 경고하는 사회

15.12.23 0

얼마 전 한 의학 전문 대학원 남학생의 데이트 폭력 사건이 불거졌다. 피해자를 자신이 잠들 때까지 폭행한 사건이다. 사건이 발생한 건 작년이었으나 이슈가 된 건 올해 말이었다. 학교는 피해자를 위한 대처를 하지 않았고 1년 정도의 시간 동안 그녀는 혼자였다. 결국 폭력을 저지른 남학생은 올해 말이 되어서야 제적을 당했다. 이 얼마나 허무한 일인가! 저널리즘이 남학생의 데이트 폭력 사건을 재조명하자 가해자와 학교가 고개를 숙인다. 아무리 저널리즘이 쇠약해졌다고 하더라도 언론이 주는 힘과 고발성은 그 어떤 미디어보다 전통적이며 강력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상퀼로트, 출처: http://www.citynhistory.com/

- 1940년대 여자 유니폼. 남성 군복의 영향을 받은 여성 유니폼이 후에 밀리터리 스타일의 여성 수트로 발전한다, 출처: http://theflyingsocialnetwork.com/


그렇다면 패션은? 그동안 패션이 '폭력'같은 사회적 이슈에 소리를 낸 적이 있을까? 패션 또한 사회 고발적인 면모를 지닐 수 있을까? 보통 사람들은 패션이 사회적 이슈에 적극적으로 끼어든 적은 없는 것 같다고 생각한다. 패션과 사회적 이슈라는 벤 다이어그램이 아무런 교집합도 없어 보이는 것이다.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 출처: http://art.khan.kr/


그러나 패션은 사람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에나 존재했다. 과거, 인간이 민주주의를 제창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프랑스 혁명은 당시 패션 잡지에서나 볼 수 있었던 화려한 귀족 중심의 패션을 180도 바꿔 놓았다. 이제 패션의 중심에는 대중이 존재한다. 절대왕권이 무너지고 민주주의가 시작되자 시민들은 패션에도 민주주의라는 천을 덧댄 것이다. 위의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을 보자. 오른쪽에 소년이 보인다. 총을 든 소년은 일명 ‘상퀼로트’의 차림을 하고 있다. 당시 혁명가들은 귀족계급의 반바지였던 ‘퀼로트’를 입지 않고 유니폼을 입었다 하여 ‘상퀼로트’라 불렸다. 즉 그들에게 귀족과 다른 차림의 바지와 재킷은 혁명가로서의 정치적 신념을 나타내는 ‘사회적 수단’ 이었다. 그리고 세계 2차 세계대전으로 인한 황폐화와 남자 부족 현상은 여자들이 사회로 진출하게 됐을 때도 ‘밀리터리’ 라는 이름으로 패션과 함께 발전했다.


- 출처: http://wearesodroee.com/

- 출처: http://awake-smile.blogspot.kr/

- 출처: http://kr.forwallpaper.com

- 출처: http://www.iconoclastdaily.com/


시간이 점차 지나 사진 기술이 발달하며 많은 패션화보가 등장했다. 지금 이 시간에도 전세계에서 많은 패션 화보가 기획되고 있지만 그 중 <보그> 이탈리아의 화보는 짙은 사회 고발적인 성격을 띈다. 얼굴이 가려진 채 차갑게 허공을 응시하는 남자, 그리고 기괴한 포즈의 여자., 계단에서 웅크려 있는 여자와 누군가를 찾고 있는 듯한 남자 등, <보그> 이탈리아의 편집장 프랑카 소짜니는 2014년 4월호에서 ‘HORROR MOVIE’라는 제목의 화보로 가정 폭력에 대한 메시지를 무겁게 담아냈다. 패션은 유독 Fashion이라는 단어가 가진 전통적인 이미지-밝고 아름다운-를 벗어나기 힘들어 보였다. 그러나 폭력처럼 심각한 문제를 다룬 이 패션 화보는 달랐다. 기존의 아름다운 전통 신화만을 전달하는 패션 화보가 아니었다. 즉, 펜디와 발렌시아가를 입힌 채 가정 폭력에 대한 경고 메시지를 보낸 것이다. 사회 고발적인 패션 화보가 더욱 가치 있는 이유는 바로 패션을 통해 독자와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 있어서다. 이는, 단지 옷에 대한 정보를 제공할 뿐만 아니라 폭력이 사회적 이슈가 된 현재를 반성하게 한다. 또한 카메라를 통해 가해자와 피해자의 모습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한다. 철학자 벤야민은 사진가 앗제의 텅 빈 파리의 풍경 사진을 보며 사진 촬영이 앗제에게로 와 역사적 사건의 증거물이 됐으며 이것이 사진의 드러나지 않는 정치적 의미임을 주장했다. 즉, 패션 또한 충분히 사회의 이면을 고발하고 기록할 수 있는 하나의 장치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고발적인 패션 화보는 여기서 끝이 아니다. <MAKEOVER MADNESS> 라는 제목의 화보는 한창 성형수술의 부작용과 중독이 이슈였을 당시 기획되었다. 현실감 있는 수술 장면과 <보그> 이탈리아 특유의 독특한 분위기는 잡지를 보는 많은 여성 독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 출처: https://sybilia.wordpress.com/


다시 우리나라의 데이트 폭력 사건으로 되돌아 와보자. 데이트 폭력은 이미 이전부터 꾸준히 존재했으며 최근 들어 문제가 이슈가 되었을 뿐이다. 여전히 피해자는 복잡하고 피폐한 심정에 침묵하고 있으며 가해자는 당당하게 살아간다. 만약 패션 매거진, 혹은 한 패션 브랜드가 이러한 폭력의 문제를 다룬다면 어떨까? 패션은 패션일 뿐이니 늘상 그래왔듯 트렌드나 잘 읊으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천만의 말씀! 벤야민의 <기술 복제 시대의 예술작품>잠시 인용하고 싶다.

"예술은 그만의 민주적인 다양성과 소통의 힘을 현실에 적용해야만 한다." 

그리고 아도르노와 니체에 따르면 예술은 사회적으로 기능해야 한다. 패션이 만약 사회의 그 어떤 동향도 반영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단순히 몇 개월 후 기억에서 사라질 패션이 될 것이다. 그러나 패션처럼 대중이 쉽게 접할 수 있는 상업예술이 사회문제를 다룬다면? <보그> 이탈리아의 화보처럼 역사에 길이 남을 패션의 현장이 만들어 질지도 모르겠다. 나는 현재 귀족에 반발하는 '상퀼로트'가 될 수는 없지만, 사회 부조리라는 '귀족'에게 대항하는 고발적인 이야기를 담은 상퀼로트 패션이 보고 싶다.
 

Lyla

오아시스와 에드워드 호퍼, 이브 생 로랑과 아제딘 알라이아를 사랑합니다.
많은 일을 경험해보고 싶고 이뤄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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