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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자리에서 목소리 내기, 일상의 실천(everyday practice)

16.10.21 0


2016년 9월 25일, 백남기 농민의 사망사건으로 여론이 들끓었다. 그로부터 며칠 후, 서울대 의과대학 소속 102명의 학생은 <선배님들께 의사의 길을 묻습니다>는 대자보를 발표한다.

 

출처: 경향신문

  

너무 완벽해서 이루 말할 데 없는 이 성명서를 읽고 나니, 그간 ‘바쁘다’는 핑계로 감고 있던 ‘사회에 대한 눈’이 번쩍 뜨였다. 무엇보다 나도 모르게 정치를 일상과 따로 분리해서 생각하고 있다는 점에 가장 놀랐는데, 서울대 의과대 학생들은 사회에서 일어난 하나의 사건을 그저 제 자리에서 자신이 배운 대로 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저 히포크라테스 선서에 따라 인류와 정치, 종교, 정파를 떠나 백남기 농민을 자신이 앞으로 소명을 다해야 할 ‘환자’로 보고 있었다. 또한, 국가고시에 출제될 만큼 가장 기본적인 소양인 ‘사인 기재 원칙’이 이번 사건에서만큼은 어긋났음을 지적하면서, 어느덧 ‘일상’에 젖어있을 선배들에게 경종을 울렸다. 의식적으로 신문이나 뉴스를 보는 것이 ‘정치’이자 곧 ‘정치적인 행위’라고 생각했던 고정관념이 깨지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다음날, 서울대 출신의 현직 의사들은 이러한 애탄 후배들의 부름에 응답했다.

 

출처: 국민일보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동문들이 후배들의 부름에 응답합니다.>


지난 9월 30일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학생 102인이 故백남기 씨 사망진단서와 관련하여 “선배님들에게 의사의 길을 묻습니다”라는 제목의 성명서를 발표하였습니다. 의과대학 학생들의 부름에 저희 동문들은 선배 의사의 책임감으로 다음과 같이 응답합니다.

(...중략...)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상황은 우리의 믿음을 의심하게 합니다. 후배들이 지적했듯이 故백남기씨의 사망진단서는 통계청과 대한의사협회에서 제시한 원칙에서 어긋납니다. 외상의 합병증으로 질병이 발생하여 사망하였으며 ‘외인사’로 작성하도록 배웠습니다. 이에 따르면, 외상으로 인한 급성 경막하 출혈이 원인이 되어 급성심부전으로 사망하더라도 병사가 아닌 외인사가 됩니다. 또한, 심폐정지는 사망에 수반되는 현상으로 사인에 기재할 수 없습니다. 최고의 공신력을 가진 기관일수록 이러한 원칙이 철저하게 지켜져야 합니다. 서울대학교 병원은 학생들에게 사망진단서를 작성하는 원칙을 가르치는 곳이고 국민들이 가장 신뢰하는 병원이기 때문입니다.


저희는 서울대학교병원이 국가중심병원으로서 그 역할과 책임을 짊어지고자 최선을 다해 왔다고 믿습니다. 서울대학교병원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는 이러한 역사 속에서 어렵게 쌓아올린 가장 소중한 가치입니다. 서울대학교병원에 간절히 청합니다. 서울대학교병원의 역사를 이어 온 의사로서의 전문성과 소명의식으로 학생들과 동문들의 부름을 외면하지 말아주십시오. 서울대학교병원이 지켜왔고, 앞으로 지켜야 할 가치를 기억해주십시오. 저희 동문들도 그 막중한 책임감을 함께 나누겠습니다.

 

 

마치 영화 속 한 장면처럼, 후배들은 용기 내어 선배를 불렀고 선배는 그런 후배들의 부름을 외면하지 않았다. 선배들은 ‘참된 의사의 길’이 무엇인지 후배에게 보여주고자 했고, 그들 모두 ‘누군가 조국의 미래를 묻거든 고개를 들어 관악을 보게 하라’는 슬로건에 부합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혹자는 이들의 모습을 ‘참된 지식인의 면모’라 칭했고, 누군가는 ‘이런 참된 의료인이 있기에 아직 세상은 살만하다’고도 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그들이 소위 ‘명문대 출신의 의사’였기 때문이라기 보다 ‘제 자리에서 제 목소리를 내는 모습’이 크게 다가왔다. 그렇게 그들의 애탄 ‘부름’을 보면서 과연 나는, 내가 엉덩이를 붙인 바로 이곳에서 어떤 목소리를 낼 수 있을지 한참을 생각했다. 그리고 문득, 한 디자이너 그룹이 생각났다.

 

일상의 실천은 권준호, 김경철, 김어진이 운영하는 그래픽디자인 스튜디오입니다. 일상의 실천은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에서 디자인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며, 또한 무엇을 할 수 있는 가를 고민하는 소규모 공동체입니다. 그래픽 디자인을 기반으로 하고 있지만, 평면 작업에만 머무르지 않는 다양한 디자인의 방법론을 탐구하고 있습니다. – 왼쪽부터 김경철, 김어진, 권준호, 텍스트 출처: 일상의실천

 

일상의 일천을 처음 접했던 건 노트폴리오(Notefolio)와의 미팅 덕분이었다. 학부 시절, 신문방송학을 전공했던 탓에 ‘디자인’의 ‘ㄷ’도 알지 못했고 관련 업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조차 문외한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래픽 디자이너 스튜디오’라는 타이틀은 왠지 모르게 그들을 ‘까탈스럽지만 세련된 작업을 하는 디자이너’로 만들었고 그런 고정관념은 행여나 디자인에 대한 무지(無知)가 드러나지 않을까,는 두려움으로 이어졌다. 그렇게 두려움을 이기고자 일상의 실천의 작업을 둘러보던 중, 그들의 작업에서 느낀 첫 인상은 ‘어? 내가 아는 그 이야기네?’와 ‘디자인으로도 이런 이야기를 할 수가 있네?’였다. 기존에 ‘디자이너’하면 가지고 있던 고정관념이 깨지는 순간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부끄럽게도 그간 가지고 있던 고정관념은 ‘디자이너는 디자이너만 할 뿐이다’라는 생각이었다.)

 

저기, 사람이 있다.

대학시절, 교수들에게 가장 많이 들었던 말 중의 하나는 “너 예술 하냐?”라는 핀잔 섞인 조롱이었다. 아마도 그들의 말 속엔, 돈과 관계없이 젊음을 허비하는 것처럼 보이는 예술가들에 대한 비하와 자신들이 규정해 놓은 ‘디자인’개념을 벗어나는 시각 작업물에 대한 거부반응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어떤 작업’이 소수의 교육받은 사람들과 예술가들을 위한 ‘개념 놀이’가 아닌, 많은 사람들과 보편적 가치를 나눌 수 있는 ‘소통의 창구’가 될 수 있다면 비록 경제적인 가치가 없다고 하더라도 예술인가 아닌가 하는 문제는 중요하지 않다. 더욱이 그 작업이 사회를 반영하고, 구성원들로 하여금 자신이 속한 세계를 한 번 더 돌아볼 기회를 제공한다면 더더욱 그렇다. 세상의 모든 가치가 돈으로 계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듯 ‘디자인’이라고 불리기 위한 필요조건에는 돈 이외의 많은 것들이 존재한다. 출처: 저기, 사람이 있다

 

일상의 실천 권준호는 2009년에 발생한 용산참사의 희생자들의 이야기를 <저기, 사람이 있다>작업을 통해 ‘글자’와 ‘소리’로 담아냈다. ‘글자는 생각을 정리하고 소리는 생각을 퍼뜨린다’는 담론에 기반하여 그는 유족들이 내뱉는 한탄 섞인 하소연을 문자로 찍어냈고, 아픈 감정을 악보로 찍어 소리로 전하는 방법을 선택했다.

 

아직 끝나지 않은, 강정 

이야기를 듣는 내내, 씻을 수 없는 절망감이 밀려 들었다. 한편으로는 -물리적으로- 먼 곳의 사건이었으므로, 나 역시 그사이 아무렇지 않게 잊고 살아 온 것은 아닐까 하는 부끄러움마저 느꼈다. 몇 해 전, 매체를 뜨겁게 달군 강정마을을 바라보며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생각에만 잠겼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리고 끝나지 않은, 강정마을의 이야기를 담아야겠다는 생각이 고개를 들었다. - 출처: 아직 끝나지 않은, 강정

 

그리고 2014년경, 일상의 실천은 제주해군기지 찬/반문제로 몸살을 앓다 잊혀진 ‘강정’을 찾았다. 그들이 강정을 찾았을 때, 당시 찬/반으로 나뉘어 대립하던 마을주민들은 더 이상 서로를 왕래하지 않을 정도로 관계가 악화되어있었다고 한다. 일상의 실천은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서 ‘한 때 뜨거운 감자였지만 이내 망각이 되는 관습’에 대해 반성하는 동시에 디자이너로서 ‘지금의 강정’을 담기로 한다. 어쩌면 캐묵은 이야기를 끄집어 내는 이러한 시도가 불쾌함으로 왜곡되지 않길 바라며 ‘지금의 강정’을 디자이너의 시점으로 표현하고자 했다. 그들은 ‘강정마을’에 사용되었던 여러 문구 중, ‘너와 나는 서로 연결되어있다’는 문장을 주민의 얼굴과 마을의 모습을 캔버스 삼아 빛으로 담아냈다.

 

그런 배를 탔다는 이유로 죽어야 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런 배를 탔나는 이유로 죽어야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출처: 일상의 실천

 

2014년경, 광화문 광장에는 차가운 성질을 지닌 펜스위로 노란색 리본의 글자가 수 놓였다. 일상의 실천이 세월호 사건에 대한 인문학자 12인의 담론을 담은 <눈 먼 자들의 국가> 중, 소설가 박민규의 ‘그런 배를 탔다는 이유로 죽어야 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문장을 선정해 설치물로 선보인 것이다. 앞선 사건들과 마찬가지로 ‘시간이 지났으니 이제는 그만하자’는 매정한 사람들의 시선과 ‘망각의 관습’을 일깨우며 사건을 다시 마주하는 시도기도 했다.

 

<나랑 상관없잖아> 2013, 출처: 일상의 실천

 

<살려야한다> 2015, 출처: 일상의 실천 

 

<모두 병들었는데 아무도 아프지 않았다> 2015, 출처: 일상의 실천 

 

<당신들은 너무 많은 거짓말을 했다> 2015, 출처: 일상의 실천

 

일상의 실천 작업물을 보면 누군가는 어째서 이런 일들을 하냐고 물을 테고, 누군가는 이러한 시도가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도 모를 것이다. 어쩌면 이들의 행보가 다분히 ‘정치적’이고 ‘특정 색(色)’을 띤다고 말할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정확히 기억하고 있다. 학부시절, 내가 신문방송학을 공부하던 때에는 유난히 국내에 많은 사건들이 있었다. 숭례문이 불에 탔다는 소식과 함께 대학생활이 시작됐고, 그 후로 용산참사사건, 쌍용차 노조사건, 대통령의 서거 등, 공부해야 할 문제들과 그 문제에 대한 나만의 논리를 정립해야 할 일들이 많았다. 하지만 공부를 하면 할수록 내가 추린 ‘사고’가 ‘특정 색’으로 판단 되는 게 두려워지기 시작했고, 세상에는 어쩜 이리도 불합리하고 비상식적인 일들이 일어나는지 강한 회의감이 들었다. 무엇보다 ‘나 하나만 이런 생각을 한다고 해서 세상이 바뀔까?’라는 의문이 심화됐던 터라, 과연 이 공부가 의미 있는 것인지, 또 이 학문을 공부하기에 내가 너무 멍청하고 무지한 것은 아닌지, 고민을 품고 살았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전공수업에서 교수님이 말씀하셨다.

 

너희들이 공부를 하다 보면 회의감이 들 때가 많을 거야. 세상에는 우리가 생각하는 ‘정상’의 기준에 도달하기는커녕 비상식적이고 불합리한 일들이 많이 일어나니까. 지금 우리사회에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서 간단히 이야기만 해봐도, 너희들은 회의감을 느끼겠지. ‘이런다고 세상이 바뀌어? 해도 안 되잖아. 그럼 무슨 의미가 있어?’ 하지만 내가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건, 어떻게든 사회는 정의를 따라 흘러가게 되어있다는 거야. 그리고 나와 같은 사람들이 그런 정의를 위해 노력하고 있어. 단지 너희들이 지금 학생이라서 희망을 주는 게 아니라, 정말 사회는 결국 옳은 방향으로 흘러가. 그러니 의식을 가져.

 

4년 동안 꽤 많은 수업을 들었지만, 그날의 수업은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소위 똑똑하고 배운 사람만이 ‘내가 앉은 자리에서 목소리를 낼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진정으로 ‘제 자리에서 목소리를 내는 중요성’이 무엇인지 깨달은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서울대 의대생들의 부름과 일상의 실천의 작업은 의미가 있다. 나로 하여금 어떤 큰 담론이 생성되거나 이슈를 만들지 않아도 사회에 속한 한 구성원으로서 제 목소리를 낸다는 것 자체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작업이 사회를 반영하고 구성원들로 하여금 자신이 속한 세계를 한 번 더 돌아볼 기회를 제공하면 가치가 있다’는, 사회에 일어난 일들에 대해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생각에만 잠겼던 기억이 떠올랐다’는 일상의 실천은 제 자리에서 제 목소리를 낸다는 점에서 의미가 큰 디자이너 스튜디오다.

김해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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