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의 윤종신과 재킷들(album cover)

15.08.10 0

 

옷을 입거나 신발을 고를 때, 항상 지키려고 노력하는 신조가 하나 있다. 멋에 욕심내지 않고, 가능한 한 실패를 줄이는 것. 적어도 ‘옷 잘 입는다.’는 소리까진 아니어도 패션 센스가 부족하다는 인상을 남기진 않을 것이다. 물론, 옷 입는 스타일은 개인의 취향이니 이를 평가하겠다는 의도는 아니다! 하지만 빈티지하게 입으려다 ‘빈티’나 본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적당한 정도’가 생각보다 어렵다는 것에 충분히 공감할 것이다.

 <Birdman> M/V. 2015 2월호로, 영화 <Birdman>을 보고 영감을 받아 만들었다고 한다.

- 월간 윤종신 뮤직비디오. 첫 번째는 2014년 8월호 <여자 없는 남자들>, 두 번째는 2014년 12월호 <지친 하루>, 마지막은 2013년 3월호 <이별 택시>

 

 

 

그래서일까. 전성기로 평가받던 90년대를 지나 지금까지도 차트에 이름을 올리는 그의 잔잔한 이력은 보다 특별하게 느껴진다. 매달 많은 사람의 취향을 ‘탕탕’ 저격하며 내놓는 그의 노래는 계절 따라 날씨 따라 마음을 일렁이게 한다. 이런 이유 때문인지 뮤지션을 꿈꾸는 많은 이들이 그를 가장 존경하는 가수로 꼽는다. 음원 차트 1위를 차지하진 않지만 상위권을 달리는 가수들을 키우고 있는 프로듀서. 함께 작업하는 사람들마저 달리 보이게 만드는 그는 매년 1년의 작업을 모아 <행보>라는 앨범을 내놓고 예능도 바지런히, 공연도 꾸준히 하고 있다. 어쩌면 그에게 ‘중간을 지키는’ 이란 수식어를 붙이는 일은 ‘서운한’ 짓일 수도 있겠다.

 


- <월간 윤종신>展에 소개된 <월간 윤종신>
출처: http://www.dizcul.co.kr/10342

 



<월간 윤종신>이 내 취향을 사로잡은 건 앨범 재킷 때문이다. 객원 아티스트나 본인 사진으로 디자인했던 이전의 작업과는 달리, 2013년에 발매된 <월간 윤종신>은 모두 젊은 일러스트레이터의 작품이었다. 본인이 살고 있는 경복궁 근처의 풍경을 담은 2011년 커버나 타이포그래피가 눈에 띄는 2012년의 작업은 이미 그가 <월간 윤종신>에 많은 애정과 노력을 쏟고 있음을 나타냈다. 하지만 그보다 더 많은 정성이 돋보이는 2013년 커버를 보고 있자니, ‘또 많은 사람들이 저격당하겠구나.’는 생각이 들었다.그만큼 매력적인 작업이었다.


2013년 <월간 윤종신>의 주제는 ‘Repair’. 자신이 그동안 작곡했던 노래들을 직접 리메이크해 앨범에 담았다. 앨범 재킷은 그의 얼굴을 모티프로 디자인했다. 개인적으로 무척 맘에 들었던 건 2월, 6월, 12월 커버였다. 

- 2013 <월간 윤종신> 2월호
출처: http://www.mystic89.net/

 

 

2013 <월간 윤종신> 2월호의 커버 디자이너는 윤미선이었다. 그녀는 주로 천 조각을 이용해 실로 이어 붙여 작업하는 작가다. <내일 할 일>은 원래 성시경에게 주려다 그가 군대에 입대하는 바람에 윤종신이 불렀던 노래다. 대신, 성시경의 대표곡이었던 <거리에서>를 작곡한 본인이 직접 불러 함께 앨범에 담았다. 얼굴선을 따라 조각조각 붙어있는 색들이 복잡한 감정을 표현하는 것 같아 노래를 들을 때마다 앨범 커버를 멍하니 보곤 했다. 그렇게 가사를 되짚다 보면 태연한 표정으로 이별하는 남자의 모습이 그려지는데, 그 상상과 참 잘 어울리는 앨범 재킷이라는 생각이 든다.

- 2013 <월간 윤종신> 6월호
출처: http://www.mystic89.net/

 



2013 <월간 윤종신> 6월호에는 양파가 부른 <나에게 온다>가 수록되어 있다. 노래는 헤어진 뒤 재회하는 연인의 이야기로, 여자의 입장에서 쓰인 가사가 인상적이다. 노래엔 카페에서 홀로 헤어진 남자친구를 기다리는 여자의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앨범 커버에는 남자에게 달려가는 듯한 여자의 뒷모습이 인상적이다. 커버 디자이너 유창창은 화가와 만화가로 활동하며 만화 잡지 <살북(SAL)> 편집장까지 맡고 있는 다재다능한 작가다. 꽤 많은 팬을 가진 그는 <월간 윤종신> 커버 작업 제의를 받자마자 바로 승낙했다고 한다.

 

- 2013 월간 윤종신 12월호
출처: http://www.mystic89.net

 

 

 

 

2013년의 마지막 달인 12월은 윤종신의 최고 히트곡(?)이라 칭해지는 <오래전 그날>이 대미를 장식했다. 자신의 위치와는 상관없이, 노래가 더 많이 알려지고 유명해졌으면 한다는 윤종신은 이적에게 이 노래를 부탁했다. 이적의 쨍한 목소리가 절절하게 느껴지며 색다른 느낌을 주는 이 노래의 커버는 서원미 작가가 작업했다. 앨범 재킷은 핀 조명을 받으며 노래를 부르는 윤종신의 모습을 담고 있는데, 마치 그의 연말 콘서트에 온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최근, 그녀는 빈지노와 함께 작업한 2015 <월간 윤종신> 4월호 'The color' 디자인에도 참여했다. 그리고 마크 로스코(Mark Rothko)의 작품을 보고 영감을 받은 빈지노와 윤종신의 가사처럼, 강렬한 색의 유화물감으로 컨버스를 가득 채웠다. 뮤직비디오로도 공개된 이 작업은 콜라보에 참여한 모든 이에게 색다른 경험이었다고 하니 궁금한 독자들은 뮤지비디오와 가사를 유심히 들여다보길 바란다.

- 2014년 8월 가나 인사 아트센터에서 진행되었던 <월간 윤종신> 展
출처: http://www.gameand.co.kr/
 

 

 

윤종신은 작년 여름, 그동안의 앨범 커버를 한데 모아 전시를 개최했다. 전시는 모바일 게임 <회색도시>와 협업한 작업으로, 게임 분위기와 어우러진 <월간 윤종신> 9월호가 테마송처럼 공개됐다. 항상 새로운 작업에 도전하는 그는 그 해 출간한 무라카미 하루키의 <여자 없는 남자들>에 영감을 받아 <여자 없는 남자들>이라는 같은 제목의 노래를 내기도 했다. 물론 발매 당시 순위권 안에 드는 히트곡은 아니었다. 하지만 하루키 소설을 좋아하거나 윤종신의 팬이거나, 아니면 그 둘 다 좋아하는 (나 같은) 사람들에게는 늦여름 재생 목록을 채워줄 반가운 노래였을 것이다.

 

노래와 절묘하게 어울리는 커버 디자인을 한 작가도 대단하지만, 노래와 잘 스며들만한 아티스트를 발굴하는 윤종신의 안목도 대단하다. 2013년 <월간 윤종신>에 참여한 작가 모두가 젊은 신예 아티스트였고, 그 해 타이틀이 ‘Repair’였다. 생각해보니 그는 무작정 ‘힙한’ 최신 유행의 것을 좇느라 바쁘거나, ‘예전이 좋았지.’하며 과거에 매달리지 않았던 것 같다. 자신이 전국을 뒤흔들며 인기를 누린 가수는 아니었다며 가끔 누군가의 불후의 명곡으로만 꼽히는 위상만으로 만족한다는 그의 말에서 겸손함과 자신감이 느껴졌다. 아니라면 아닐 수도 있겠으나 나는 그가 지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은 어느 중간에서 정도를 지키는 일을 잘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 <마크 로스코> 展을 주제로 꾸며졌던 2015년 4월호. 서원미 작가가 대형 컨버스 위 유화 물감으로 로스코의 얼굴을 그리는 과정을 뮤직비디오에 담았다.

 

 

 

항상 근사한 것은 아니지만 다음에는 어떤 재킷을 입고 나올지 유독 기대되는 그의 앨범.끝내주게 멋있는 걸 들고 나오지 않아도 그를 감각 있는 아티스트로 기억하는 이유는 모자라지도, 과하지도 않은 그의 적절한 작업 덕분일 것이다. 

이 글을 읽고 당신 또한 윤종신의 다음 앨범 재킷을 기대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노트폴리오에서 활동하는 작가들이 언젠가 윤종신의 앨범 재킷을 멋지게 입혀주는 순간이 오기를 바라면서, 가수 윤종신에게 2013 <월간 윤종신> 11월호인 ‘그댄 여전히 멋있는 사람’을 띄우고 싶은 밤이다.

– 윤종신 <Just Piano Live> 앨범에 실린 사진

 

정미 (Jeongmee)

일상 속의 작은 것들을 놓치지 않는, 큰 손을 가진 작가를 꿈꿉니다.
정(情)과 미(美)를 찾아 정미(精微)하게 그려내는 글쓰기를 희망합니다.
instagram,com/leejeongmee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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