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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뭣이 중헌디! 뒤늦은 <아홉 개의 빛, 아홉 개의 감성> 후기

16.06.17 0


사람들이 몰리면 괜한 심술이 나서 가지 않았던 전시들이 몇 있다. 디뮤지엄 <아홉 개의 빛, 아홉 개의 감성>展도 그랬다. 인스타그램에 있는 사진만 봐도 이미 전시를 다 본 느낌이어서 처음엔 관심이 갔다가 별 흥미가 생기지 않았다. 공짜표가 생긴 지인의 제안에 ‘그래도 작품을 직접 가서 보면 좋겠지? 다르겠지?’ 라는 생각으로 한남동으로 향했다.

 

대림문화재단이 설립 20주년을 맞아 최근 서울 용산구 한남동에 개관한 디뮤지엄, 출처: 신동아

 

결론적으로 전시에 간 건 잘한 일이었다. 생각보다 알찬 전시였고, 주제로 잡은 라이트아트(Light art) 장르에 맞게 대중적이고 어렵지 않은 전시였다. 물론 사진으로 지겹게 많이 봤던 것들이었지만, 그 장소에 직접 가서 얻는 즐거움이 전혀 다른 감상을 주었다. 9개의 작품이 선사하는 색과 빛들, 그것들이 만들어내는 오묘함은 직접 오지 않고서는 볼 수 없는 것이었다. 하얀 외벽의 전시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인지, 어두운 공간에서 빛을 따라가며 보는 것도 흥미로웠고 공간 구성에 따라 변하는 빛의 반사를 보는 재미도 쏠쏠했다.

 디뮤지엄 <아홉 개의 빛, 아홉 개의 감성> 전시 모습, 출처: 신동아

 


평일 낮, 전시기간 막바지 즈음에 간 덕분인지 예상했던 것보다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하지만 입구에서까지 만이었다. 전시를 보는 내내 함께 관람하는 사람들 때문에 골머리를 앓았다. 꽤 많은 시간을 기다려 작품을 관람해야 했고, 그마저도 사진 찍는 이들을 위해 옆으로 비켜나야 했다. ‘블랙 큐브에서 관람하는 느낌은 어떨까’ 하는 기대도 잠시, 터뜨리지 말라는 경고에도 불구하고 셔터음과 동시에 플래시가 번쩍였다. ‘아홉 개의 빛’보다는 훨씬 더 많은 빛이 동시에 전시공간에 등장했다. 전시를 이렇게 ‘라이트하게’ 본 적이 있었던가. 관람 시간이 3분이 채 걸리지 않은 작품도 있었다.

  

매체에 소개된 전시 모습, 출처: 신동아 

뉴스에 방영된 관객들의 실제 관람모습, 출처: SBS 뉴스

 

약 7년 전, 트릭아트 전시가 국내에 최초로 들어와 급속도로 유행을 탔다. ‘작품에 가까이 다가가기’, ‘작품과 어우러진 내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 감상하기’가 트릭아트의 컨셉이었다. 사람들은 작품에 가까이 다가가 직접 만지면서 전시물과 밀착해 있는 자신의 모습을 사진 속에 담았다. 더군다나 카메라가 아닌 휴대폰으로도 충분히 괜찮은 사진을 찍을 수 있게 되면서 작품을 사진으로 담는 일이 무척이나 쉬워졌다. 이처럼 작품을 가까이에서 접할 수 있는 전시가 많은 인기를 얻자 작가와 전시기획자는 당연히 작품의 접근성에 대해 고민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현재는 많은 전시가 사진 촬영을 허용하고 있으며, 전시 후기에는 글보다 사진의 비중이 커졌다.

 

            

인스타그램에서 '#아홉개의빛_아홉개의감성'으로 검색했을 때 결과. 디뮤지엄을 찾은 관람객들이 직접 촬영해 올린 사진이다. 사진 및 캡션 출처: 한국일보

 


(…) 이러한 묘사의 예를 통하여 우리는 오늘날에 아우라의 붕괴를 초래한 사회적 조건이 무엇인가를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여기에는 두 가지의 사정이 있는데, 이 두 가지 사정은 모두 날로 커가는 대중과 그 대중의 운동이 갖는 강도와 관련이 있다. 다시 말해 사물을 자신에게 보다 더 “가까이 끌어오려고” 하는 것은 오늘날 대중이 지닌 열렬한 관심사이며, 모든 주어진 것의 일회성을 그것의 복제를 수용함으로써 극복하려고 하는 경향이 바로 그 관심을 나타낸다. 다중이 바로 자기 옆에 가까이 있는 대상을 상(像) 속에, 아니 모사(模寫) 속에, 복제를 통하여 전유하고자 하는 욕구는 나날이 제어할 수 없이 증가하고 있다. (…)

- 출처: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 中, 발터 벤야민

 

중국 지장성 닝보에서 열린 레고 엑스포에서 한 소년이 주토피아 닉 와일드 모형을 부순 사건. 전시가 시작된 지 1시간 만에 벌어진 사건이었다. 출처: Tpostarnews

 

예술작품을 가까이에서 보고자 하는 욕구는 모든 관람객이 가지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몇몇 도를 지나친 관람객들 때문에 전시를 보는 모두가 괴로워지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 전시가 구성되기 위해서는 몇 가지 필요한 요소가 있다. 먼저 전시가 가능한 ‘공간’이 있어야한다. 그리고 작품을 제공하는 ‘작가’와 전시를 보고자 하는 ‘관객’, 그리고 이 모든 구성원이 더 좋은 환경에서 만날 수 있는 공간을 조성하는 ‘기획자’가 있어야 한다. 하지만 으레 인기 있는 전시에는 수많은 관람객이 있는데도 작품과 나 자신만 있다고 착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들은 많은 이들의 고민에서 우러나온 결합물은 보지 않은 채 ‘내 감상, 내 사진, 내 호기심’만 내세운다. 이러한 현상은 전시관에서 적잖이 찾아볼 수 있다. 수시로 사진을 찍는 관람객 때문에 제대로 된 관람이 불가능했다는 곡성 섞인 후기 또한 수두룩하다.

 

          

트위터에서 캡처한 <아홉 개의 빛, 아홉 개의 감성> 후기. ‘작품 사진 찍느라’ 라는 키워드로 검색하면 이와 같은 후기가 수두룩하게 나온다. 출처: 글쓴이 직접 캡쳐

 


작품의 유일무이한 현존의 아우라를 가장 쉽게 느낄 수 있는 곳이 바로 전시다. 이를 느끼고 싶은 사람들의 곡소리는 개선의 의지가 없는 관람객들에게 들릴 리 없다. 전시관에는 오직 셔터 소리만 가득하기 때문이다. 작품이 가진 고유한 색보다는 사진에 비치는 ‘내 낯빛’이 중요한 사람들. 전시관에 함께 있는 사람들 보다는 ‘내 사진’을 볼 팔로워들이 더 중요한 사람들. 작품을 만들었을 작가의 고생과 작품을 보는 사람들의 기대보다는 직접 만져보고 싶은 ‘내 호기심’이 더 중요한 사람들. 작품에서 느껴지는 감성보다 감성사진이 더 중요한 전시, 그래서 무엇이 중요한지 기억에 남지 않은 전시. 전시가 그저 ‘좋은 스튜디오’라고 여기는 의식을 개선하지 않는 한, 앞사람 뒤통수만 떠오르는 전시는 점점 늘어날 것이다.

 

크로모세터레이션(Chromosaturation) 카를로스 크루즈 디에즈, 출처: 한국일보

 

고정된 시점(時點)과 관점(觀點)에서 벗어나 공간을 가득 메우고 있는 전시의 아우라를 느끼자. 렌즈 아닌 눈으로 깜빡이는 시간조차 아쉬워 할 때, 우리는 전시에서 무엇이 제일 중요한지 진정으로 느낄 수 있게 될 것이다.

 

정미 (Jeongmee)

일상 속의 작은 것들을 놓치지 않는, 큰 손을 가진 작가를 꿈꿉니다.
정(情)과 미(美)를 찾아 정미(精微)하게 그려내는 글쓰기를 희망합니다.
instagram,com/leejeongmee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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