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아이, 왜곡된 소녀상(像)

15.11.23 1

출처: http://tuebl.ca/books/142667



소설 <롤리타>에서 험버트 험버트는 깨져버린 지난날의 환상을 혀 끝으로 발음해본다.

 

 

“롤리타, 내 삶의 빛이요, 내 생명의 불꽃, 나의 죄, 나의 영혼, 롤-리-타.
세 번 입천장에서 이빨을 톡톡 치며 세 단계의 여행을 하는 혀끝. 롤-리-타”.

 

어긋난 사랑이 가져오는 비극은 처참하기 그지없다. 특히 상대가 잘생긴-소설에 의하면-아저씨와 뭣 모르는 어린 소녀라면 더욱 그렇다. 반대도 마찬가지다. 결국 소녀는 왜곡된 사랑에 지쳐 울지만 어른은 모른 체하고 사랑을 더욱 거머쥔다.

 

어디선가 애들은 읽으면 안 된다는 말을 듣고 미성년 때는 한 번도 읽지 않았던 <롤리타>. 책은 신선한 충격을 안겨주었다. 책을 넘기는 내내 험버트의 합리화는 어찌나 화려한지, 하마터면 나도 모르게 롤리타적 상상에 빠져들 뻔 했다. 그러나 험버트의 사랑을 통해 돌로레스의 비극을 알게 되자 어느새 그의 화려한 언변은 저편으로 추락하고 말았다. 불라디미르가 이 책을 쓴 데에는 이유가 있을진대, 독자의 관점에서 감히 추측하자면 작가 특유의 유려한 문체로 험버트의 님펫에 대한 욕망과 이 왜곡된 사랑이 남기는 잔인함과 눈물을 여과 없이 보여주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싶다. 적어도 소아성애를 열심히 긍정적으로 두둔하는 책은 이성적인 세상에서 존재하지 않을 테니 말이다.

출처: 2003 Gucci Tom Ford fashion couple 4-page MAGAZINE AD, http://www.ebay.com/

출처: http://www.martinitomastectomy.com/



언젠가 패션과 외설에 대한 글을 쓴 적이 있다. 그 글에서 패션의 예술성과 상업성은 사회적 윤리를 해치지 않는 선에서 표현되어야 한다고 말했었다. 따라서 누군가 ‘패션계에서 어린 소년과 소녀를 성적 매력을 가진 주체로 세울 수 있느냐’고 묻는다면 아니라고 답하고 싶다. 패션 광고는 그 시즌의 컨셉이나 대표적인 룩(Look)을 내세운다. 특히 최근에는 짧은 단편 영화처럼 꾸민 ‘캠페인 영상’을 많이 제작하는 편이다. 영상이 다른 매체보다 런웨이의 많은 장면을 담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통은 사진으로 광고를 만드는 게 일반적이다. 이제까지의 패션 광고들을 살펴보면, 과감한 성(性)적 소구가 특히 많이 사용된 것을 알 수 있다. 톰 포드가 디자이너였던 시절, 구찌 광고 속 과감한 모델들은 이미 유명세를 탄지 오래였다. 그리고 자신의 향수를 광고하기 위해 거대한 향수모형으로 중요부위만을 가린 채 누운 디자이너 마크 제이콥스의 모습은 일반 광고에서 찾아보기 힘든 모습이다.

출처: http://fbl.ba/


출처: http://fashiontube.com/


그러나 이 모델들은 성인이었으며 어른의 과감한 섹시를 어필하고 있었다. 문제는 바로 ‘아이 같은 어른’이다. 팔다리를 길게 축 늘어뜨리고 일명 ‘어른아이’의 무기력한 얼굴로 묘한 메시지를 전하는 연출은 롤리타적 상상을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미우미우의 2015년 봄/여름 광고에서 그 특징을 뚜렷이 드러난다. 배우 미아 고스(Mia Goth)가 나온 미우미우의 지면 광고와 영상은 영국의 광고기준위원회(Advertising Standards Authority)에서 광고 금지 처분을 받았다. 광고를 찍은 그녀는 어엿한 21세 성인이었지만, 의상과 포즈가 16세 이하의 미성년자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해당 이미지는 아동이 어른 옷을 입고 외설적인 포즈를 취하는 듯 보여 무책임하고 불쾌하다”. 광고기준위원회가 내린 결론이다. 화장을 한 듯 만듯한 얼굴과 신체 사이즈보다 헐렁한 옷, 그리고 문 밖에서 은밀히 지켜보는 듯한 카메라 구도가 불편함을 주기 때문이리라.


출처: http://www.reklamyperfum.pl



패션 업계에서 롤리타 요소를 사용해 광고 금지 처분을 받은 사례는 또 있다. 몇 년 전, 마크 제이콥스의 향수인 ‘OH LOLA!’는 판매 광고를 위해 성인이었던 다코타 패닝을 모델로 삼았다. 문제는 향수 모형의 위치였다. 커다란 향수가 그녀의 허벅지 사이에 놓여있던 것이다. 누드 컬러의 드레스와 앳된 얼굴, 그리고 향수 모형의 위치가 성(性)적으로 도발적인 이미지를 배가시킨 것이다. 좀 더 과거로 가면 캘빈 클라인은 1995년에 FBI의 조사까지 받았다. 당시 캘빈 클라인은 미성년자 모델을 광고 영상에 출연시켰는데, 영상이 마치 포르노 배우 오디션을 보는 것 같았다. 게다가 지면 광고는 미성년 모델들이 노출한 채 누워있는 자극적인 포즈로 아동 포르노법 위반 혐의를 받은 것이다.

출처: http://www.wgsn.com/



패션의 영역도 마찬가지지만 어떤 상품이든 마케팅을 위해 롤리타의 이미지를 성적으로 차용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롤리타>가 어린아이와 성인의 합법적이고 정열적인 사랑을 그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한, 아무리 성인이라 할지라도 롤리타의 이미지를 차용하는 순간, 그 대상은 어리고 순진한 역할을 할 수 밖에 없다. 또한, ‘예술’이라는 명목 하에 어린 아이를 성(性)상품화 하는 일에 정당성을 조금이라도 부여해서는 안 된다. 그렇다고 촬영에 임한 모델이나 제작사가 집단 롤리타냐? 그것은 아니다. 다만 롤리타 마케팅이 소년소녀의 순수한 이미지를 성(性)상품화 하는 데 일조하고 있으므로 이를 자제해야 한다는 것이다. 어린 아이를 대상으로 한 성범죄의 피해는 영화나 소설보다 더 비극적일 테니 말이다.


출처: http://www.dailymail.co.uk/tvshowbiz/



즉, 우리는 왜곡된 성(性)상품화에 민감해질 필요가 있다. 그리고 단순히 민감하기 보다 내가 왜 성(性)상품화가 불편하고 그렇게 느끼는 이유가 무엇인지 생각해야 한다. 반대를 하더라도, 자신만의 도덕적 잣대를 세워 반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소설 <롤리타>에서 님펫이라 불리는 돌로레스는 결국 비참한 결말을 맞이한다. 험버트는 살아남아 그녀와 함께 한 사연을 아름다운 표현으로 늘어놓는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소설의 문체는 아름답지만, 그 내용은 불편하다는 사실이다. 롤리타 마케팅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아름다운 피사체를 카메라 앞에 세웠더라도 그 피사체를 소녀의 성(性)으로 다뤘다면 윤리적으로 불쾌한 것이 당연하다.


패션의 예술성과 상업성을 표현하는 데는 그것 말고도 많은 방법이 있다. 결국, 어떤 예술이든 윤리는 적용되어야 한다. 예술이 윤리에 완벽히 종속되어야 한다는 게 아니다. 다만 예술가와 광인(狂人)의 한 끗 차이는 사회가 추구하는 윤리를 무시하고 상상력을 강행하는지 마는지에 달려있다. 만약 ‘예술’이 무언가를 팔기 위한 수단으로 쓰였다면? 더욱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Lyla

오아시스와 에드워드 호퍼, 이브 생 로랑과 아제딘 알라이아를 사랑합니다.
많은 일을 경험해보고 싶고 이뤄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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