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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꽃과 사랑, 순간의 황홀경

16.03.31 0

사랑이란 무엇일까? 육체적인 결합일 수도 있고, 정신적인 교감일 수도 있다. 서로를 한 여자로서, 한 남자로서 느끼는 긴장감 아래는 상대의 육체에 대한 욕망이 숨어 있다. 물론, 여기에 서로의 관점, 취미, 취향 등의 정신적 교감이 들어설 여지는 충분하다. 그러나 정신적 교감은 비단 연인관계뿐만 아니라 우리가 경험하는 모든 관계에서도 가능하다. 때문에 연인사이에는 육체적인 교감이 크게 자리한다. 하지만 육체에 대한 욕망은 채워지면 결핍으로 돌아가기 마련이다. 결핍은 이내 새로운 욕망을 부르고, 또 다시 결핍이 된다. 이렇듯 세상의 모든 연애는 타오르는 불꽃과 서로에게 싫증이 나는 권태가 반복된다.

<나이아가라 불꽃과 구경꾼들> 야마시타 기요시, 출처: http://koreaaero.com



야마시타 기요시의 <하나비(불꽃놀이)> 연작은 남녀 간의 사랑과 닮아 있다. 작품의 주제인 불꽃은 사랑의 ‘욕망-절정-결핍’의 과정과 크게 다르지 않다. 불꽃은 사랑의 단계처럼 ‘발화-절정-죽음’을 거친다. 뜨겁게 타오르는 욕망만큼이나 화려한 불꽃의 발화, 하늘을 수놓는 절정, 이내 사그라드는 죽음이 존재하는 것이다.

<나이아가라 불꽃과 구경꾼들> 야마시타 기요시, 출처: http://koreaaero.com


<나카오카의 불꽃> 출처: http://www.suiha.co.jp



<하나비(불꽃놀이)>연작은 모자이크 기법으로 한 땀 한 땀 일궈낸 “찰나의 순간”이다. 작품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산산이 만개한 불꽃을 모자이크 기법으로 무수히 표현한 것을 알 수 있다. 일일이 뜯어서 붙이는 그의 작업에는 어쩐지 ‘기다림’과 진한 ‘인내’가 엿보인다. 남녀의 사랑도 이와 다르지 않다. 서로 다른 환경에서 나고 자란 그들은 서로를 이해하는 ‘인내’가 필요하고, 서로의 보조를 맞추는 ‘기다림’ 역시 필요하다. 이렇듯, 사랑의 과정은 야마시타 기요시가 <하나비(불꽃놀이)>를 작업하는 방식과 닮아 있다.

<불꽃놀이> 야마시타 기요시, 110x79.5cm, 출처: http://www.cine21.com

 

초여름 주말, 야외 공연에 갔다가 말미에 불꽃놀이를 선사받았다. 요란한 폭죽잔치가 아니라 색깔의 조화를 고심한 꽃다발 같은, 여성적인 불꽃이었다. 그날 밤 꿈에서 다시 보고 싶은 마음에 콘서트 팔찌를 풀지 않은 채 잠을 청했다. 불꽃이 작렬할 때 사람들은 말하기를 멈춘다. 꼬리를 흔들며 솟구치는 불씨의 “피융” 하는 비명에 귀기울인다. 불꽃놀이란 대개 군중에 섞여 보게 되지만 개인의 내밀한 기억으로 애장되곤 한다. 왜일까? 우선 소중한 사람과 함께 구경하는 일이 많기 때문일 것이다. 예고된 불꽃놀이를 부러 탐탁지 않은 사람과 보러 가는 경우는 없다. 또한, 불꽃놀이는 찰나적이다. 그리하여 우리 의식에 지울 수 없는 점을 찍는다. 불은 적극적인 욕망을 상징하지만 동시에, 사로잡힌 대상을 태워 무화시키는 이율배반적 원소다. 완성의 순간은 곧 수십만개의 소멸로 흩어진다. 절정은 곧 죽음이다. 흡사 벚꽃의 미학이다.

- <벛꽃의 미학>, 출처: 김혜리의 그림과 그림자

 

<불꽃놀이> 야마시타 기요시, 출처: http://takimoto.exblog.jp

 
불꽃은 터지면 식고 이내 사그라든다. 사랑 또한 마찬가지다. 사랑은 서로의 뜨거워진 육체만큼 이별을 맞은 뒤 차갑게 식어버린다. 그래서 사랑과 불꽃은 “순간의 미학”이다. 그리고 이 두 순간의 황홀경에는 ‘죽음’과 ‘결핍’이 숨어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사랑을 끊임없이 찾아 헤맨다. 언젠가 사멸할 운명의 불꽃인 것을 알면서도 말이다.

 

그녀

삶은 생명을 얻어 죽어갑니다. 어쩌면 죽기 위해 태어나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사람은 “아직”과 “이미”의 경계에 선 그 무엇이라서, 묻게 됩니다.
“내가 누구인지 알 수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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