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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너는 되고 나는 안돼? - ‘아르 브뤼’를 통해 본 현대미술

16.10.15 2

 

"4살짜리 애가 그린 그림 아니야?"

“내가 낙서해도 이 정도 퀄리티는 나올 것 같은데"

"이따위 작품이 몇 십억이라니. 나도 미술이나 할까?"

 

난해한 작품을 보며 이러한 한탄을 토로하는 관객들이 종종 있다. 아무나 그릴 수 없는 ‘대단한 예술’이 아닌, 특별한 기술 없이 막 그린듯한 작품이 거액에 거래 되는 장면을 봐왔기 때문이다. 이는 예술작품이 평소 자신이 갖고 있던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는 ‘실망감’과 왠지 자신도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예감’과 더불어 예술에 대한 ‘회의감’으로 나타난다. 작품을 보는 시각과 취향은 사람마다 다르지만 "미술사의 한 획을 긋는 양식으로 분류되는 화가의 작품이라면 최소한 ‘잘’ 그리는 기술이 있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것이 미술에 대한 일반적인 시선이다.

 

Concetto spaziale 루치오 폰타나, 1960, 출처: The ASIANhttp://www.jjan.kr

 


하지만 ‘그들만의 리그’인 듯, 비평가들은 간혹 낙서보다도 못한 작품을 높게 평가하고 거장의 심오한 정신세계에 대해 논한다. 그렇다면 특별한 기술이 필요 없는 이 원초적인 미술 행위를 우리가 해보면 어떨까? 아마추어가 그린 것 같은 그림도 하나의 용어와 개념을 탄생시키는데, 아무나 끄적거린 그림도 작품으로 인정받아야 할 것 아닌가.


"도대체, 왜, 나는 안 되고 너는 된다는 말인가?"

 

Orange and Yellow, Mark Rothko Painting, 출처: http://www.markrothko.org/

 

Elegy to the Spanish Republic No1 110, Robert Motehrwell's, 82x114inches, 1971, 출처:http://www.nyculturebeat.com

 

이쯤 되니 장난질 같은 끄적거림과 실수로 흩뿌린 듯한 물감 안에 일반인들은 도저히 읽을 수 없는 어떤 의미가 숨어있는지 궁금해진다. 그래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 가정을 세울 수 있다. 첫째, 장난처럼 보이지만 실은 직접 그려보면 아무나 할 수 없는 ‘기술력’이 필요하다, 둘째, 작품에는 미술을 공부한 사람만 볼 수 있는 ‘코드’가 있다, 마지막으로 해당 작품에 ‘거장’이란 딱지가 붙었기 때문이다.

 

Jean Philippe Arthur Dubuffet

 

‘잘 그리는 기술 없이 그린 그림도 개념만 참신하다면 얼마든지 예술이 될 수 있다’는 담론은 동시대 미술시장에서만 국한된 이야기는 아니다. 낙서 같은 그림, 누구나 그릴 수 있는 기법의 시초에는 ‘아르 브뤼(Art Brut)’가 있다. ‘아르 브뤼’는 미술을 전문적으로 하지 않는 아마추어에 의해 일어난 미술 운동이다. 프랑스 화가 '장 드뷔페(Jean Dubuffet)'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술 교육을 받지 않은 어린이와 혼자서 예술활동을 이어간 독학자, 그리고 정신장애인의 표현에서 창조적인 요소를 발견했다. 그는 1945년경, 이러한 미술작품들을 ‘거칠고 조야한 미술’이라는 의미를 담아 ‘아르 브뤼(ArtBrut)’라는 한 양식으로 탄생시켰다. 초기 현대미술 화가들은 이 양식에서 영감을 얻었으며 피카소 같은 대가도 이들의 영향을 받았다. 때문에 이처럼 제도권 밖으로 밀려난 예술 운동을 빼놓고는 현대미술을 설명하기 어렵다. 따라서 난해하다고 여겨지는 현대미술을 이해하기에 앞서 아르 브뤼의 개념을 명확히 짚어볼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예술다운 예술’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이 양식에 속한 작품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루조 레스토랑 1(Restaurant Rougeot 1), 장 뒤비페, 1961, 출처: http://www.wikiart.org/

 

얼핏 보면 장 뒤비페의 그림은 유치하고 광기 어려 ‘완성보다 미완성’에 더 가깝다. 브뤼(Brut)라는 단어 자체가 ‘가공되지 않은’이라는 의미를 지니기에 그의 작품은 전문적이고 세련된 미술과는 달리 있는 그대로의 ‘미완’을 뽐내며 다듬어지지 않은 부분들을 강조한다. 뒤비페는 "현대 문명의 획일성과 사회적 규범에 저항하면서 예술적인 문화에 오염되지 않은 사람들이 창조한 ‘날 것 그대로의 다듬지 않은 미술’이야말로 진실한 모습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원시적인 표현을 통해 ‘근본’에 입각했다는 그의 주장은 기존에 인정받았던 예술과는 거리가 멀었기 때문에 대중이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지금보다 예술 작품에 대한 기준이 엄격했던 당시, 뒤비페의 작품을 보는 대중의 시선이 곱지 않은 것은 당연했다. 마치 오늘날 현대미술 앞에 회의(懷疑)를 표하는 우리의 시선과 별반 다르지 않았던 것이다.

 

 

악당들이 타고 가는 자동차(Automobile a la route noire), 장 뒤비페, 1964, 출처: www.artnet.com

 

"내가 생각하기에 예술작품은 존재의 심연 속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한 직접적이고 즉각적인 투사일 때에만 가치가 있다. 고전 예술은 빌려온 예술처럼 느껴진다"

 

아르 브뤼는 아웃사이더아트(OutsiderArt)라 불릴 만큼 미술 화단에서 철저히 배척됐지만 지금은 한 양식으로 자리 잡았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후대에 좋은 평가를 받는 작품에는 많은 이유가 따르지만, 가장 큰 이유는 ‘당대 에 가장 혁신적’이기 때문이다. 어떤 하나의 양식을 칼같이 구분하기 어려운 미술사에서 이러한 ‘혁신적인 작품’은 사조를 구분하고, 그 간의 미술 사조를 재평가할 수 있는 기회의 장을 마련했다. 때문에 같은 그림이라도 당시의 반응과 지금의 해석, 그리고 후대의 평가는 다를 수밖에 없다.

때문에 당대에는 받아들이지 않았던 ‘제도권 밖의 예술’이 후대에 높은 평가를 받는 사례는 ‘아르 브뤼 양식’에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거의 모든 사조가 시간의 흐름 속에서 재평가 되고, 존재가 미미했던 작품이 후대에 칭송 받기도 한다. 하지만 대중과 미술사학자들의 연구와 생각이 일치할 수만은 없는 노릇이다. 이렇게 재평가되어 하나의 양식을 꿰찬 작품임에도, 이와 비슷한 성격을 지닌 20세기 이후의 미술은 대중들의 비판과 항상 싸워야만 한다. 때문에 지금도 여전히 조형미가 결여된 작품은 도마 위에 오르곤 한다.

 

[1번 문제]



[2번 문제]

 

[3번 문제]

 

[4번 문제]

 

[정답]
그림1&3&4, 4살짜리 아이 그림
그림2, A Tree in Naples, willem de Kooning
출처: http://www.fmkorea.com/436403951

 

위 문제는 한 커뮤니티에 실제로 올라왔던 게시물이다. 글쓴이는 네 살짜리 아이의 그림과 빌렘 드 쿠닝의 작품 일부를 제시하며 이 두 그림을 누가 얼마나 구분할 수 있는지 물었다. 작품에 별다른 차이가 없다는 것을 부각하여 현대미술의 ‘거품’을 조롱하기 위해서였다. 그렇다면 두 그림의 차이는 무엇일까? 답부터 말하자면 두 그림 모두 ‘기술력'의 차이는 없다. 그럼에도 왜 한 그림은 예술 작품이고 한 그림은 그저 ‘낙서’일 뿐일까.

 

 

장 뒤뷔페의 작품, 1943, 출처: http://es.wahooart.com

치사하게 들릴 수 있지만, 이는 현대미술이기에 가능하다. 해당 작품이 “‘그러한 것들’도 예술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들게 한 ‘최초의 작품’이었기 때문이다. 누구도 생각하지 않았던 시각은 (설령 현대에서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고 있을지라도) 작품의 가치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다. 이러한 맥락에 비추어보면 장 뒤비페처럼 작품을 보는 현대미술가의 참신한 시선이 지금의 현대 미술을 만들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처럼 유명한 예술가의 작품활동은 그들의 행위가 저급하다고 평가 받았을 지라도 어떤 형태로든 미술사조에 영향을 미치며 그 영향은 후대로까지 이어진다. 때문에 네 살짜리 아이가 그의 그림을 비슷하게 따라 한다고 한들, 그와 동등한 가치를 지닐 수는 없다. 아마 완벽히 재현해내는 것조차 쉽지 않을 것이다.

 

한국 아르브뤼, 김동기, 출처: http://artbrut.webddy.kr

 

그러나 아르 브뤼의 개념과 미술사적 의의를 살피는 것은 현대미술의 ‘난해한’ 코드를 해석할 수 있는 안목을 선사할 것이다. 물론, 광범위한 현대미술의 복잡성을 고작 ‘아르 브뤼’로만 설명할 수는 없다. 하지만 현대미술 작품을 마주했을 때 ‘이게 그림이야?’라는 회의적인 반응 대신 “이런 것들도 예술이 될 수 있구나”라는 태도를 조금이나마 지닐 수 있을 것이다. 비록 발가락으로 그린 것만도 못한 기괴한 형상을 하고 있을지라도 ‘가치가 있다’는 건 작품의 가치가 더 이상 '잘'그리는 기술력에만 있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Two Naked Women gouache, Jean Dubuffet, 60 x 47 cm, 1942,  © 2011 Artists Rights Society (ARS), New York 출처: http://artlemon.ru/

 

예술이란 언어대신 인간의 정서를 좀 더 참신한 방식으로 표현하려는 시도다. 때문에 ‘현대미술’을 둘러싼 다양한 시선과 담론 역시 예술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고대에서부터 지금까지 늘 ‘예술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그 누구도 정의하지 못했던 것처럼, 현대미술에 대한 모든 논의는 그 자체로 의미 있는 것이다.

이윤정(Lottie)

그림을 쓰고 글을 그린다.
아날로그를 사랑하다 디지털 시대의 위협을 받고 현대적인 것과 친해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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