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의 똥조림, 이것도 미술이거든?

14.12.26 1


“내가 그려도 이거보단 훨씬 잘 그리겠다!!!” 그림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친구는 한 현대 작가의 그림 앞에서 혀를 찼다. 맞는 말이다. ‘작가의 인생에 드리워진 죽음의 징조를 의미하는 검은 유조선..’ 은 그냥 삼단 케이크 모양의 검은 덩어리일 뿐이었다. 옆에서 아무리 이 작가가 대단하며 해당 작품이 이렇게까지 평가를 받는 이유를 설명하려 해도 이미 친구는 다른 작품(더 단순화된!) 앞에서 “지 작품인데 제발 성의라도 보이라고!!!!”라며 분개했다. 이 의미 없는 그림들이 이렇게까지 비싼 건 결국 부자들의 투기 때문이라는 경제적 성찰까지 다다랐을 때, ‘아... 동행인을 잘못 골랐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돌이켜보니 그의 의견은 ‘다른 것’ 일뿐 ‘틀린’ 건 아니라는 데까지 당도했다.

배경지식의 문제를 떠나 내가 기대했던 것과 그것에 부응하는 결과가 있을 때만 우리의 심신은 편해진다. 그런데 <검정과 빨강> 따위의 이름을 가진 불그죽죽한 그림이 8천만 불(한화 880억 상당!)이라면 그 깨져버린 간극과 실망은 누가 메우겠는가. 그래서 초심으로 돌아가 그 파괴의 순간, 바람 빠지는 소리밖에 낼 수 없었던 순간을 되짚어봤다.

 

 

- 마크 로스코, <ORANGE, RED, YELLOW>, 1961, 출처 : http://www.markrothko.org/

2012년 5월 크리스티 경매에서 8천 6백만 불이 넘는 가격으로 낙찰됐다. 로스코의 이 시기 작품 제목은 보통 색 이름의 나열인데, 이런 이름에다 색만 죽죽 그어놓았으니 가격만 듣고 작품을 보게 되면 “대체 왜?” 하는 의문을 가지기 쉽다. 그러나 실제로 작품을 보았을 때의 장엄함은 이루 말할 수 없다고 한다. 그러니 내년 우리나라에서 열릴 전시에 꼭 가보도록 하자.

 

오브제(Objet, 주제에 대응하여 일상적 합리적인 의식을 파괴하는 물체 본연의 존재 방식)에 익숙해지자 일상생활 속 사물을 그대로 차용해놓고 “이게 바로 예술이오!” 하는 것까지도 수용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그런데 이 사진 한 장은 뉴런 체계에 빨간 불을 켜기에 충분하다.

 

 

- <Reading Position for Second Degree Burn> 데니스 오펜하임,1970, 출처 http://archive.wattis.org/

 

이젠 하다 하다 태닝하는 사진을 찍어놓고 예술이란다. 몸에 책을 얹어놓은 채 백사장에서 5시간 동안 몸을 태워 얻고자 하는 것은 ‘우리의 몸도 캔버스’로 인식하고 자신의 몸에 색채를 입히는 것이다. 대상을 새로운 맥락 속에 던져 보는 이로 하여금 ‘대상에 대한 새로운 생각을 갖게 한다.’는 뒤샹의 주장이 1960~70년대의 개념미술 작가들에게는 마치 신조와도 같았다. 그러나 ‘나는 빨간색이 되어가는 과정을 느낄 수 있다!’는 작가의 주장은 혹시 이 분이 방 구석에 틀어박혀 그림만 그리다 살짝 ‘어떻게 되신 건 아닐까’는 우려를 유발한다.

 

- 크리스 버든, <Shoot>, 1971, 출처 : http://pixgood.com/chris-burden-shoot.html

 

자신의 몸을 재료로 한 작가가 오펜하임 뿐만은 아니었다. 심지어 스스로에게 총알을 쏜 작가도 있었다. 1971년 캘리포니아의 한 갤러리에 관객을 초대한 크리스 버든(Chris Burden)은 친구에게 자신을 총으로 쏘게 했다. 그의 왼쪽 팔을 관통한 총알은 관중들에게 큰 충격이었다. 이를 통해 버든이 사람들에게 선사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 당시 베트남전에 대한 반항? 폭력에 대한 관심? 실제로 버든은 총상을 입고 치료 하는 작업을 통해 인간이 가지는 심리적 한계를 표현하려고, 혹은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일이 갑자기 일어나는 순간’을 표현하려고 했단다. 그런데 이 분 역시 대체 왜 그렇게까지 했는지는 모르겠다.

 

- <A line made by walking> 리처드 롱, 1967, 출처 : http://www.richardlong.org/

 

- <Following Piece>, 비토 아콘치, 1969, 출처 : https://www.studyblue.com/

 

각각 ‘걷는다’ 와 ‘따라간다’ 라는 개념 자체를 보여주고자 한다. 롱은 그 증거로 자신이 걷고 난 뒤 생긴 길의 사진을, 아콘치는 시간과 장소, 행위를 적은 보고서를 제시했다.

당시의 시대상을 생각해보자. 2차 대전이 끝나고 미술은 하나의 상품으로써 ‘가치평가’를 받았다. 자신의 작품이 몇 개의 숫자로 평가 받는 것을 거부했던 이 시기의 작가들은 자신의 작품이 애초에 상품으로 취급되는 여지를 없애려 했다. 그렇다면 오펜하임이나 버든이 자신의 작품으로 몸을 사용했던 까닭은 이러한 황금만능시대의 흐름을 ‘온 몸으로’ 막고자 했던 것이 아닐까. 아주 오래 전, 르네상스 시절의 선배들부터 그랬듯, 기존 질서를 거부하고 타파하는 것이 미술가들의 타고난 재능이자 성향이니 말이다.

‘소더비나 크리스티에 입성해 거인이 되느니 나는 예술가 그 자체로 남겠다!’는 이들의 투지가 아주 조금 이해된다. 오히려 이런 비주류적인 움직임들은 미술이 꼭 ‘캔버스에 유화’가 아니라 ‘쓰여’질 수 있고, ‘출판’될 수 있고, ‘보여’질 수 있고, 단순히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성립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줬다. 또한 기존 형식에서 벗어나 사진, 비디오, 설명서 등 다양한 재료를 통해 ‘완성’의 개념을 제거함으로써 ‘그래서 너희에게, 그리고 우리에게 미술이 뭔데?’라는 본질적인 질문을 던지기까지 했다. 비주류의 역습인 셈이다.

 

- <Artist’s Shit> 피에로 만초니, 1961, 출처 : http://lamblegs.wordpress.com/tag/artists-shit-1961/

 

물론, 조금 거칠게 표현한 분도 계시다. 어디든 불 같은 성질은 존재하게 마련이니까. 이탈리아의 전위예술가 피에로 만초니(Piero Manzoni)는 미술과 돈의 결탁이 어찌나 꼴 보기 싫었는지 말 그대로 ‘똥’을 작품으로 내놨다. 90개의 통조림에는 ‘1961년 5월 신선하게 제작 및 보관됨’ 이라는 문구가 세 가지 언어로 새겨졌다. “옛다. 똥이나 먹어라!!!!”를 진짜로 시전한 작가가 있다니! 그런데 안타깝게도 이 ‘개념미술’ 의 시류에 박수를 보내던 미술계는 만초니의 똥 -이 보여주는 기존 질서에 대한 비판적 의도- 을 정말 작품으로 받아들인다. 의도적으로 조롱하려던 해프닝이 아이러니하게도 캔 하나에 2억에 가까운 고가의 미술품이 됐으니 만초니의 심경이 어떨지 궁금하다. 이게 진짜 똥인지 아닌지는 의견이 분분하다가, 실제로 열어보기엔 너무나 귀한 미술품이신 관계로 아직까지 밀봉 중이란다.  

 

 

- 피에르 만초니, 그는 "일단 유명해져라. 그렇다면 사람들은 당신이 똥을 싸도 박수를 쳐줄 것이다. (Be famous, and they will give you tremendous applause when you are actually poopi)" 라는 앤디워홀의 명언(?)을 직접 실현했다. 출처 : http://phillipjmellen.blogspot.kr

 

‘첫 술에 배부르랴’ 라는 말이 있다. 물론 처음에는 거부감이 들고 ‘여긴 어디? 나는 누구?’ 하는 상황이 분명 있었고 앞으로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런 ‘쓰잘데기 없는 것’들을 미술작품이랍시고 전시해놓았다고 마냥 거부하지는 말잔 얘기다. 지금은 비싼 값에 진열되고 팔리더라도 그 작품들은 모두 ‘괜히, 우연히, 그냥 어쩌다’ 만들어 진 것들은 아닐 테니 말이다. 오늘 이야기한 작품들만 해도 젊은 작가들의 ‘현실 비틀기’로 생각하면 통쾌하지 않았는가? 사실 미술품이 투자 명목으로 ‘거래’ 되고 있는 것은 맞는 말이지만 그냥 가끔은 어느 작품에서건 (무제, 라는 이름 때문에 머리가 아파질지언정) “그래, 작가가 뭔가 애를 썼겠지!!” 하고 고개나 끄덕 해주고 지나가보자. 몸짓에 지나지 않았던 것도 이름을 불러주니 꽃이 되었다는데, 우리도 꽃 정도는 하나씩 만들 수 있는 거 아닌가?

 

 

김월

나의 글이 사람들에게 즐거움과 영감이 되길 바랍니다.
예술과 친근한 세상을 만들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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