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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을 세는 파자마 패션

16.04.26 0

출처: http://felicitytrend.com

 

하루가 다르게 빨라지는 세상이다. ‘빨라진다’라는 표현조차 촌스러워 보인다. 마치 갓 서울로 올라온 시골 토박이가 뜨내기처럼 보이지 않으려고 일부러 내뱉는 말 같다고나 할까? 빨라지는 건 당연한데, 왜 그게 놀랄 일이냐고 물어보는 게 당연한 시대가 왔다. 예전부터 한국은 ‘빨리빨리’문화를 가장 성실히 실천하는 나라였다. 사실 이 소리도 이제는 촌스러운 미사여구처럼 들린다. 덕분에 한국의 뷰티 산업은 그 어떤 나라보다도 트렌드를 빨리 간파하며 새로운 코스메틱 시장을 열기도 했으며-쿠션 파운데이션처럼- 트렌드에 적합한 카피캣을 만들어 내기도 했다. SPA 패션 브랜드들은 한국에 상륙하자마자 기가 막힐 정도로 급격한 성장률을 보였다. 그리고 그 상승세는 여전히 유지되고 있다. H&M이 디자이너와 콜라보레이션을 하는 날이면 명동지점 앞에서 캠핑을 하는 사람들이 매 년마다 늘고 있고, 그 외 세일 기간의 SPA브랜드의 매장 안을 둘러보다 보면 친구 한 두 명쯤은 만날 정도다.

 

출처: http://thebestfashionblog.com

 

참 빠르다. 그런데, 모든 게 빨라야만 직성이 풀리는 이 시대에 ‘잠’은 속된 말로 정말 ‘느려 터졌다.’ 권장 수면 시간은 약 7~8시간인데, 활발히 활동하는 젊은 세대들 중 누가 과연 최대 8시간의 적정 수면 시간을 매일 지킬 수 있을까? 특히 20대는 별의별 이유로 잠에 들지 못한다. 양을 세보지만 중간에 숫자를 까먹었다고 성질내기 바쁘지 하등 도움 되지 않는다. 누워만 있어도 다행이지. 일어나 무언가를 새벽까지 해야 하는 건 이제 숙명이다. 즉, 빠른 시대에 ‘느린 잠’은 방해꾼이다. 패션계는 이런 젊은 세대들의 고충을 간파한 건지 파자마를 리얼웨이에서 입을 방법들을 올해부터 적극적으로 쏟아내기 시작했다. 그것은 거리에서라도 파자마의 부드러운 감촉을 통해 편히 다니라는, 일종의 구원의 메시지였다. 일찍이 유행했던 ‘란제리룩’의 소비가 포화상태인 상황에서 잠옷의 부드러움과 헐렁함이 주는 시크함이 디자이너들의 눈을 사로잡은 셈이다. 게다가 잠옷은 근본적으로 ‘젠더리스’한 패션이니, 2016년의 트렌드와도 맞아 떨어지므로 유행할 수 밖에!

 

오디너리 피플 2016년 가을/겨울 컬렉션, 출처: http://runway.vogue.co.kr

 

 

노앙 2016년 가을/겨울 컬렉션, 출처: http://runway.vogue.co.kr

 

더 스튜디오 케이 2016년 가을/겨울 컬렉션, 출처: http://runway.vogue.co.kr

 

 

더 스튜디오 케이 2016년 가을/겨울 컬렉션, 출처: http://runway.vogue.co.kr

 

 

특히나 얼마 전 성황리에 마친 서울 패션위크의 디자이너들은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당장이라도 침대에서 양을 셀 것 같은 파자마를 선보였다. 그 중, ‘오디너리 피플’의 2016년 가을/겨울 컬렉션은 지금 잠에서 막 깬 소년의 모습을 연출했다. 코트의 기본 디자인을 빌려온 듯한 파자마 가운은 리얼웨이에서 모델이 신고 나온 퍼 슬리퍼와 함께 한층 더 빛을 발했다. 게다가 노앙(Nohant)은 스테이지를 아예 호텔 프런트로 꾸몄다. ‘THE HOTEL NOHANT’의 파자마 가운을 동여맨 모델은 그 누구보다 편하고 스타일리쉬해 보였으며, 길게 늘어진 가운의 소매와 화이트 셔츠, 그리고 한쪽 다리가 드러나는 스커트의 매치는 올 해 길거리에서 보일 파자마 룩의 정석이나 마찬가지였다. 꽤 많은 작품 수를 자랑했던 ‘더 스튜디오 케이’의 컬렉션은 어떤가. 잠옷 같은, 때로는 진짜 잠옷이 나오기도 하며 세련된 멋을 자랑했다. 특히 스트라이프 무늬가 멋스러운 터틀넥 셔츠와 와이드 팬츠 차림의 남자 모델은 새로운 차원의 시크를 선보였다. 심지어 진짜 잠옷인가 싶은 남색 파자마의 런웨이 워킹은 스튜디오 케이가 리얼웨이에서의 파자마룩이 어떤 모습일지를 신경 쓴 흔적이 엿보였다. 이 외에도 서울 패션 위크의 풍경은 사뭇 남달랐다. 서울의 각 잡힌 시크가 아니라, 여유 있는 실루엣과 와이드가 넘실거렸으며 이는 또 다른 서울 시크의 탄생처럼 보였다. 잠이 오지 않는 젊은 트렌드 세터들의 결정이었는지도 모른다.

 

2016 파자마 패션, 출처: http://felicitytrend.com

 

양을 아무리 세봐도 잠이 오지 않는다면 부드러운 촉감의 파자마를 입어보자. 부드러울수록 잠은 잘 올 것이고, 편할수록 삶은 여유로워 진다. 란제리 룩의 포화상태에서 태어났다고는 하지만, 단순히 그런 냉정한 소비 생태계의 논리로만 파자마 룩이 유행인건 아닐 테다. 더 이상 셈을 하고 달리는 패션에서 벗어나 ‘양을 세는 패션’을 보고 싶은 열망이 파자마를 거리로 나오게 한 것이다. 오늘 밤, 아니 당분간은 계속 ‘양을 세는 파자마 패션'에 빠져, 여유로운 삶을 즐겨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Lyla

오아시스와 에드워드 호퍼, 이브 생 로랑과 아제딘 알라이아를 사랑합니다.
많은 일을 경험해보고 싶고 이뤄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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