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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ry IN Paris] 01. 천재 조각가 로댕(Rodin)과 연인 카미유 클로델 (Camille claudel)

15.03.11 0




노트폴리오 매거진 <INSPIRATION>을 통해 해외 아티스트와 작품을 소개했던 제인리를 기억하시나요? 필진 제인리가 유럽전문여행사 <프랑스 자전거나라>의 현지가이드가 되어 노폴 매거진의 해외통신원이 됐습니다. 제인리와 함께 예술과 낭만의 도시 파리의 예술가와 프랑스의 생생한 모습을 접해보세요

 

- <생각하는 사람 (Le Penseur)> 로댕, 프랑스 파리, 19C, 조각, 리옹 미술관 소장, 출처 : http://blog.daum.net/soleilfleur/296

 

 

 

 

예술과 낭만의 도시, 사랑을 꿈꾸게 하는 도시인 프랑스 파리에서 첫번째로 들려드릴 이야기는 <생각하는 사람>을 만든 천재 조각가 오귀스트 로댕(Auguste Rodin)과 그의 연인 카미유 클로델(Camille Claudel)입니다.

 

- 로댕과 카미유 클로델, 출처 : http://blog.daum.net/_blog

 

 

 

로댕이 클로델을 처음 만난 것은 1883년의 일입니다. 친구인 조각가 알프레드 부셰(Alfred Boucher)가 로마로 떠나면서 자신이 지도하던 클로델을 로댕에게 맡긴 것이 인연의 시작이었습니다. 당시 카미유의 나이는 19살, 로댕이 43살 때 일입니다. 1885년, 로댕은 클로델을 학생에서 정식 조수로 채용합니다. 이로써 두 사람의 사랑이 시작됩니다.

 

- 카미유 클로델 & 로댕의 작업실, 출처 : http://www.focus.de/fotos

 

 

 

카미유의 독창적인 재능과 조각가를 향한 강한 열의는 로댕을 사로잡았습니다. 그는 자신의 생각을 논의할 수 있는 지식과 아름다운 미모를 겸비한 카미유에게 ‘뮤즈’를 발견했습니다.

이미 로댕의 곁에는 53년간 로댕에게 헌신해 온 로즈 뵈레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로즈는 조각가로서 성공한 로댕의 사회적 지위 변화에 적응하지 못했습니다. 예술적 영감을 나누는데도 한계가 있었습니다. 반면, 카미유는 로댕과 같은 수준에서 작품을 논할 수 있었고 작업에도 영감을 줬습니다. 그녀는 자기보다 훨씬 나이 많은 원숙한 조각가를 숭배했습니다. 로댕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로댕이 카미유를 얼마나 신뢰했는지는 대작(大作)의 손과 발을 카미유에게 빚게 한 일에서도 드러납니다.

 


" 그녀는 점토성형법의 비밀을 오래 전에 터득했다. 그녀는 누구보다도 석고를 잘 다루었으며 거장 자신도 미처 체득하지 못한 정교한 기술과 힘으로 대리석을 깎을 줄 알았다."

 

- 출처: <로댕 (신의 손을 지닌 인간)> 엘렌피네 저, 이희재 역, 시공사 

 

- <카미유 클로델의 얼굴과 피에르 드 위상의 왼손> 로댕, 1900년 경, 로댕 미술관 소장>, 출처 : http://egloos.zum.com/SculptorGD/v/868748

 

 

 

로댕의 조각품을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표정뿐만 아니라 손도 주의깊게 살펴봐야 합니다. 그는 손의 다양한 제스처를 통해 얼굴에는 드러나지 않는, 인간 내면의 복합적인 감정을 드러냈습니다. 이렇듯 손을 중시한 로댕은 <칼레의 시민>의 손과 발 제작을 클로델에게 맡겼습니다. 이 후에도 클로델은 로댕의 몇몇 작품의 손을 제작했습니다.

 

- <챙이 없는 모자를 쓴 카미유 클로델> 로댕, 1911, 로댕 미술관 소장> 출처 : http://sculptorgd.egloos.com/m/868748

 

 

 

<챙이 없는 모자를 쓴 카미유 클로델>은 클로델에 대한 로댕의 마음이 나타나는 작품입니다. 반죽유리로 제작된 작품은 소재 덕분인지 빛을 머금은 듯 보입니다. 어딘가 음울해 보이지만, 정확한 표정을 알 수 없는 이 조각은 클로델이 발하는 빛을 나타냅니다. 


1890년, 클로델은 로댕과 파경을 맞이합니다. 이별의 여파로 '해석증'이라는 중증 편집증에 걸려 죽음만이 유일한 구원으로 삼게 된 그녀는 자신의 모든 것을 빛으로 태웠습니다. 1866년경, 로댕은 로즈 뵈레와 헤어지고 클로델과 살겠다는 서약서까지 작성했지만 약속은 실현되지 않았습니다. 평생 로댕을 따른 로즈 뵈레를 버릴 수 없던 것입니다. 아마도 그에게 클로델은 아름답지만 안타깝고 두려운 존재였을 것 입니다. 1910년에 이르면 클로델의 정신과 예술성은 사망선고에 이릅니다. 로댕의 <챙이 없는 모자를 쓴 카미유 클로델>은 바로 그 직후에 제작된 작품입니다.

 

- <카미유 클로델의 성숙>카미유 클로델,1893~1903, 오르세 미술관 소장, 출처 : http://terms.naver.com/entry

 

 

 

스스로 탁월한 조각가였던 클로델은 자신과 로댕의 비극적인 관계를 작품으로 나타냈습니다. 한 중년 남자가 늙은 여인에게 이끌려 어디론가 떠나고 있고, 그들 뒤로 젊은 여인이 애원하고 있습니다. 로댕이 젊고 아리따운 자신을 버리고 늙고 욕심많은 동거녀 로즈 뵈레를 따라 떠나버렸음을 암시하는 조각입니다. 인물의 형상은 실제 로댕과 카미유와 거리가 있지만, 자신의 삶을 생생한 모델로 삼은 작품이라 하겠습니다.

 

- <프리지아 모자를 쓴 까미유 클로델> 로댕, <오귀스트 로댕의 초상> 로댕, 출처 : http://blog.daum.net/elfmountain/16904818

 

 


1892년, 로댕과 결별한 클로델은 한동안 열심히 작품 활동을 했습니다. 하지만 정신질환이 악화되면서 그녀는 갈수록 무너졌습니다. 1906년경에는 사랑하는 남동생 폴 클로델이 중국으로 떠나자 자신의 작품을 부숴버리고 창작 활동을 중단했습니다. 연이어 1913년, 아버지마저 사망하자 어머니와 남동생은 그녀를 정신병원에 감금했습니다. 그 후,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는 30년 간의 수용이 이어졌습니다. 결국, 그녀는 쓸쓸히 생을 마감합니다.

 

그녀가 타계한 후 1951년, 카미유 클로델의 첫 회고전이 열렸습니다. 실제로 로댕에게 많은 예술적 영감을 주고 스스로도 유능한 조각가이지만 비운의 삶을 산 그녀는, 1984년 로댕 미술관에서 열린 전시를 통해 비로소 재능에 합당한 평가가 이뤄졌습니다.

 

 

 

- 서적 인용 : <로댕 (신의 손을 지닌 인간)> 엘렌피네 저, 이희재 역, 시공사
- 본 기사는 네이버 캐스트 <테마로 보는 미술> 카미유 클로델 편을 참고하여 작성했습니다

 

 

제인리

평범한 취준생으로 집에서 바닥을 긁다가 지금은
예술과 낭만의 도시, 프랑스 파리에서 현지가이드로 일하고 있다.
유럽을 넘어 전세계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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