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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미술의 아버지, 세잔(Paul Cezanne)

16.05.17 0


"윤곽선과 색채는 결코 분리되어 있지 않다. 색을 칠함에 따라 동시에 윤곽선도 이루는 것이다. 색들이 서로 조화를 이루면 이룰수록 윤곽선은 더욱 명확해진다. 색채가 가장 풍부해질 때, 그 형태 역시 충만해지는 것이다."

 

세잔의 생트빅투아르 산(Mont Sainte-Victoire) oil on canvas, 1904, 출처: http://mission.bz

 

세잔의 그림에서 자연의 윤곽은 뚜렷하다. 하지만, 윤곽 안쪽으로 채워진 색은 빛의 움직임에 따라 옅어지기도 진해지기도 한다. 원색이 아닌 색은 빛의 반사에 따라 층층이 바뀌는 다채로움을 담고 있으며 그로 인해 공간에 깊이가 더해진다. 이렇듯 견고한 윤곽에 담긴 순간적인 인상은 모순이라기보다 더 자연에 가깝다. 자연의 물성(物性)은 지속적이지만 인상(印象)은 자꾸 바뀌기 때문이다.

 

 샤토 누아르로 가는 길가의 메종 마리아 oil on canvas, 1895,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때문에 세잔의 그림에서 잘 정제된 질서감과 감각적인 인상이 느껴지는 것이다. 세잔의 그림은 아이러니한 두 가지 인상을 담고 있기 때문에 특별하다. 더군다나 자연에서 느껴지는 질서와 혼돈의 이면을 동시에 표현하는 시도 자체가 당대에는 새로운 방식이었기 때문에 더욱 특별했다. 그는 당대화가들이 양자택일했던 ‘불분명함’과 ‘분명함’을 어느 하나 놓치지 않고 조화롭게 표현할 수 있는 화가였다.

 

인상파 화가 모네의 해돋이 oil on canvas, 1872, 출처: http://enews.kiost.ac

 

고전주의 화가 클로드 조셉 바일의 뚜껑과 손잡이가 달린 맥주용 조끼와 주전자, 그리고 사과(Apples With A) 출처: http://sophiako.tistory.com/119

 

즉흥적이지 않으면서도 정밀하지도 않은 세잔의 그림은, 빛에 따른 순간적인 인상을 추구한 인상파와 뚜렷한 윤곽과 정밀한 균형을 추구하는 고전주의파의 중간에 위치하고 있는 듯 보인다. 이러한 특성은 세잔이 살던 시대에는 이해받지 못 했지만, 그 후 화가들에게 영향을 끼쳐 새로운 현대성을 만들어낸 계기가 되었다. 세잔을 계기로 정확한 소묘의 중요성은 옅어졌고 이후 현대 미술에서 형태, 즉 대상은 점점 사라져간다.

세잔은 그런 점에서 ‘현대 미술의 아버지’라 불렸지만, 오히려 그는 고전적 사고를 가지고 있는 미술가였다. 그는 색과 빛이 있는 야외에서(인상주의) 살아 있는 푸생(고전주의 화가)을 그리고자 했다. 때문에 세잔은 궁극적으로 대상의 분명한 형태를 추구했던 것이고 그 안에서 인상주의를 실현하려 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는 당대 미술의 전통적인 방법이었던 ‘투시원근법’을 눈속임이라 생각해 과감하게 무시했다. 또한, 고전주의와 인상주의를 그대로 답습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당대의 ‘현대적인 화가’라고도 말할 수 있다.

 

세잔의 사과

 바구니가 있는 정물 oil on canvas, 1893 출처: http://art.khan.kr/93

 

사과와 오렌지 oil on canvas, 79x94cm, 1895~1900 출처: 여성동아

 

세잔은 다양한 시점에서 관찰한 각기 다른 사과를 한 그림 안에 표현했다. 기존의 정물화는 '눈에 보이는 그대로'를 최대한 닮게 그리는 것이 중요했는데(기존의 리얼리티), 세잔의 정물화는 그와 다른 새로운 관점을 제시했다. 대상을 한 시점으로 ‘재현’하지 않고 한 화면 속에 다양한 시점을 '구현'한 것이다. 세잔은 이러한 방식으로 110여점에 달하는 사과그림을 그렸고 새로운 리얼리티(자연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구현하는)를 새로운 방법론으로 제시한다.



세잔의 인물화

 

세잔 부인의 초상 Oil on canvas, 1890-1892,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개인적으로 세잔의 풍경화나 정물화를 보는 것은 좋아하지만, 세잔의 인물화에 대해선 그다지 많은 매력을 못 느꼈다. 세잔이 표현한 인물은 그 자리에서 영영 박제되어 움직이지 않을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그만큼 인물은 견고하게 자리 잡고 있다. 그래서일까. 화폭 속 인물에겐 생동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오히려 인간에게서 느낄 수 있는 ‘생명력’보다 딱딱하게 굳어있는 ‘물성’이 느껴진다. 때문에 인물이 사물에 가까워 보인다.

세잔은 인물화를 그릴 때 기본적으로 150번 이상 모델을 같은 자리에 앉혀놓고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세잔은 모델이 움직이면 정물이 움직이는 걸 봤냐며 호통쳤고, 때문에 사람들은 대부분 세잔의 모델로 서는 걸 두려워했다고 한다. 이런 세잔의 일화를 듣고 나니 세잔의 인물화에서 느꼈던 감상이 어느 정도 설득력 있어 보였다. 인간을 하나의 정물로 생각하며 그림을 그렸으니 세잔에게 인물이나 사물이나 별다를 바 없었던 것이다.

노란 안락의자에 앉아 있는 세잔 부인 Oil on canvas, 1888-1890, 출처: http://lifelog.blog.naver.com/PostThumbnail

 

그 때문인지 세잔은 인물보다 정물을 압도적으로 많이 그렸다. 또한, 되도록이면 움직이지 않기 때문에 더 깊이 탐구할 수 있는 정물에 더 애정을 가졌다. 그는 정물화 한 점을 위해 사과가 그 자리에서 썩을 때까지 100번 이상 작업했다고 한다. 결국 밀랍으로 된 모형과일로 대체해 그리는 지경까지 이르렀다는데 한편으론 참으로 지독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그의 그러한 면모가 오늘 날의 '세잔의 사과'라는 말을 있게 했으니 한편으론 그의 집요함에 경외심이 든다.

가은

글쓰는 디자이너, 디자인 하는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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