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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li, Van, Picasso> 3 - 2. 옴므파탈 피카쏘

14.10.23 1

 


남자는 여자 하기 나름이라지만 피카소에 빠진 여자들의 불문율은 있다. “피카소의 연인이 되면 불행한 끝을 맞이한다.”는 사실이다. 그도 그럴게 지금까지 알려진 피카소의 ‘공식 여인’만 해도 7명. (공식으로 밝혀진 게 7명이지 ‘모두’라고는 안 했다.) 그 중 2명이 자살했고 1명만이 무사탈출 했다. 그런데 피카소도 참 대단한 할배다. 그를 만난 7명의 여인 모두 하나같이 “피카소랑 함께한 때가 나의 가장 행복한 시절이다.”라 입을 모아서다. 여자 입장에선 ‘난봉꾼’이 따로 없지만 예술가인 피카소에게 7명의 여인들은 작품의 뮤즈요, 예술적 영감이었다. 오늘은 피카소의 포트폴리오가 된 일곱 여인을 만나고자 한다.

 

 

 


1. 불륜의 ‘뻔한’ 말로 – 페르낭드 올리비에

 

 


피카소의 첫사랑. 피카소가 파리로 영구이주 했을 때 빈민굴에서 만난 검붉은 머리의 육감적인 여자다. “그를 보는 순간, 그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말하는 페르낭드. 낭만적인 발언이지만 그녀는 유부녀였다. 그래도 사랑의 힘은 위대해서 조각가인 남편을 두고 피카소와 8년동안 동거를 한다. 행복하긴 했으나 가난했던 피카소는 가진 게 너뿐이라 집착집착병을 앓았다. 그녀가 외출을 못하도록 문을 잠그기도 했다고. 모델료조차 없던 피카소는 그녀를 주 모델로 삼았다. 그러던 중 <아비뇽의 처녀들>이 대박을 쳤고 가난했던 그들의 집에도 화실과 피아노, 하녀도 생겼다. 하지만, 살림살이가 나아지자마자 피카소는 짐을 싸고 그녀가 남편에게 그랬듯 “안녕!”을 고한다.

- <아비뇽의 처녀들> 캔버스에 유채, 243.9x233.7cm, 1907  작품에 등장하는 여인들은 아비뇽의 매춘부다. 피카소는 당시 연인인 페르낭드 올리비에의 조각 같은 육체를 분석하며 작품의 기반을 다질 수 있었다.  

 

 

2. 한 번 떠난 남자는 또 떠난다 – 에바 구엘


페르낭드 올리비에를 떠난 피카소. 이번에는 친구 여친에게 빠진다. 당시 에바 구엘은 폴란드 화가 루이스 마르쿠시의 약혼녀였다. 육감적인 페르낭드와 달리 청순가련 에바 구엘이었지만, 건강도 청순했다. 결국 1915년, 그녀는 결핵으로 사망한다. 에바 구엘은 피카소가 열정적으로 사랑했던 여인으로 알려져 있지만, 그런 것 치곤 피카소에게 대우받지 못했다. 그는 육체적으로 허약한 그녀를 혹독히 다뤘고 (맨날 아프다고 그녀를 다그쳤다고) 단지결핵이 옮을까봐 혼자 이사를 가기도 했다.

- <The Lovers> oil on linen, 130.2x97.2cm, 1923  피카소는 작품마다 ‘나는 에바를 사랑해’라는 문구를 새기며 사랑을 표현하기도 했다. 결핵이 옮을까 봐 이사를 한 행동과는 대조적이다.

 




3. 애 딸린 이혼녀보다 그냥 이혼녀가 낫고, 평생 불행한 여자보다 애 딸린 이혼녀가 낫다 - 올가 코글로바

- picasso and olga koklova

 

 

피카소의 첫 부인. 당시 장 콕도 <퍼레이드> 무대미술을 맡은 피카소는 공연에 출현하는 발레리나 중 가장 예쁜 25세의 올가 코글로바를 부인으로 택한다. 러시아 발레단인 올가는 직업만큼 귀족적인 아름다움을 지녔고, 상류사회에 심취해있었다. 1921년에는 아들 파울로를 출산하기도 한다. 여우 같은 아내와 토끼 같은 자식도 얻었으니 피카소도 이제 정신차렸겠지? 라고 생각한다면 놉!! 이미 피카소는 우연히 파리 백화점에서 만난 여고생 (당시17세) 마리 테레즈 발터를 쫓아다니고 있을 때다. 여고생을 뒤쫓는 남편을 좋아할 아내는 없다. 당연히 올가는 집착집착병에 걸린다. 결혼도 해, 아들도 낳아줘, 예쁘기까지 한데 피카소는 “올가는 집착이 너무 심해서 답답하다.”는 이유로10년동안 마리와 바람을 핀다. 이에 열이 뻗칠 대로 뻗친 올가는 이혼을 안 해준다. 진짜 죽을 때까지 안 해줬다. 피카소가 결혼을 두 번밖에 못 한 이유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사랑 없는 결혼이 어느 여자에게 행복을 선사할 수 있을까. 올가가 이런 말을 알았더라면 좋았을걸. “이혼녀보다 파혼녀가 낫고, 애 딸린 이혼녀보다 그냥 이혼녀가 낫고, 평생 불행한 여자보다 애 딸린 이혼녀가 낫다.”

 


- <안락의자에 앉아 있는 올가의 초상> 1917  고전적인 표현으로 나타낸 첫 번째 아내 올가 코글로바. 상류층이었던 아내 덕에 피카소는 그 전과 달리 규칙적인 생활을 했다. 피카소가 그린 올가의 모습은 대부분 우수에 차있는 표정이다.  

 

 

 


4. 원조 나쁜 남자 & 로리타 피해자 – 마리 테리즈 발터

 

 


초현실주의 걸작 <거울 앞의 여인>의 주인공인 마리 테레즈 발터. 그녀는 17살 여고생일 때 피카소를 처음 만났다. 당시 피카소의 나이 40살, 더군다나 그는 유부남이었다. 당시, 피카소의 작업방식은 자신이 피카소임을 밝히고, “내 모델이 되어줄래? ( ͡° ͜ʖ ͡°)~ㅎ” 라는 멘트를 날리는 것이었다. 복학생 뺨치는 멘트와 나이마저 많은 피카소를 좋아할 리 없는 마리 테레즈. 무엇보다 그녀는 미술에 관심도 없었다. 그래서 피카소가 누군지도 몰랐다. 인소 남주처럼 “날 이렇게 대하는 건 니가 처음이야. 너 내 여친해라.”는 심보인 걸까. 피카소는 그런 마리에게 매력을 느껴 6개월간 구애를 한다. 물론 피카소는 결혼생활 중이었다. 그렇게 유부남 피카소는 마리의 마음을 얻고 1935년에는 딸도 얻는다. 하지만 마음이 갈대 같은 남자 피카소는 또 다시 바람기가 도진다.

처음과 달리 진심으로 그를 사랑하게 된 마리는 피카소와의 결혼을 원하지만 그럴수록 그는 마리와 멀어진다. 처음엔 ‘피카소의 위엄’을 모르는 매력에 끌려 마리를 택했는데, 이별의 순간 “넌 미술을 몰라도 너무 몰라! 예술적 영감이라곤 얻을 수 없지.”라며 그녀를 떠난다. 더욱 슬픈 사실은 피카소가 죽었을 때, 마리는 “죽은 그를 돌봐줄 사람이 필요하다.”며 자살한다.

 

- <The Dream> oil on canvas, 130x97cm, 1932  피카소가 마리 테레즈 발터를 모델로 그린 작품. 그가 초현실주의 영향을 받던 시기, 마리를 만났다. 그녀는 천진난만한 여성으로 피카소에게 순종적이고 희생적이었다. 피카소는 종종 독서를 하다 잠이 든 마리의 모습을 그렸는데, <꿈> 역시 그렇게 탄생했다. 그가 표현한 마리테레즈는 다른 여인들에 비해 부드럽고 아름다운 특징을 가진다.   

 

 


5. 나는 웬만해서 눈물이 안 나는 사람인데 자꾸 눈물이 나네 - 도라 마르

 



피카소의 작품 중 <우는 여자>로 유명한 도라 마르. 대작 <게르니카>에 많은 영감을 준 여인이기도 하다. 마리와 달리 지적이고 교양을 겸비한 사진작가 도라에게 피카소는 호감을 느낀다. 당시 피카소는 스페인 내전 참상을 고발하기 위해 <게르니카>를 작업 중이었는데, 이를 위해 유고슬라비아 출신의 도라 마르에게 자신의 작업을 사진으로 기록해달라 한다. 말했다시피 “내 작품 좀 도와줄래?”는 피카소의 흔하디 흔한 작업 멘트. 신기한 점은 그런 멘트에 실제로 넘어가는 여자들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도라 마르도 예외가 아니었다. 하지만, 피카소 작품 속의 그녀는 주로 ‘우는 얼굴’로 등장한다. “나에게 도라는 늘 우는 여자야. 그래서 그녀를 ‘우는 여자’로 그릴 수 있지.”

 

- <Guernica> oil on canvas, 349.3x776.6cm, 1937  왼쪽에 아이를 붙들고 우는 여자는 마리 테레즈, 오른쪽의 절규하는 여성은 도라 마르다. 피카소는 마리가 아이를 낳았을 때 그녀를 버린다. 하지만 마리는 계속해서 아이와 함께 피카소에게 찾아온다. 도라는 이런 광경을 견딜 수 없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도라 마르가 왜 그렇게 울었는지는 피카소 본인만 빼고 모두가 안다. 도라 마르 역시 피카소의 여성편력으로 받는 스트레스가 어마어마 했다. 자존심이 세 별 말이 없던 그녀는 결국 정신병에 걸리고 만다. 자신처럼 똑똑한 여자가 어째서 이딴 놈을 만나 맘고생을 하는지 짜증났던 것으로 보인다. 한 가지 특이한 점은 피카소의 여인 대부분은 누드화의 모델이 됐는데, 도라 마르는 그를 위해 옷을 벗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 <우는 여인> oil on canvas, 40x60cm, 1937  전쟁의 비극을 도라 마르의 우는 얼굴을 통해 나타낸 작품. 피카소는 마리 테레즈가 딸 마야를 낳았을 때부터 바람기가 시작됐다. 어느 날, 도라 마르와 마리테레즈가 피카소의 작업실에서 조우하는 일이 발생했다. 당황한 두 여자는 그저 서로의 얼굴을 쳐다봤다. 그러자 피카소가 말한다. “왜 안 싸우고 바라만 봐?”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두 여인이 싸움을 시작했다. 피카소는 그 광경을 차분히 즐겼다고.

 

 


6. 남자는 개다. 쫓아가면 도망가고 도망가면 쫓아오니까. – 프랑수와즈 질로



 

 

유일하게 피카소를 먼저 떠난 여자. 그녀는 자신의 첫 전시회에서 피카소를 만났다. 이미 60살을 넘긴 피카소와 22세였던 프랑수와즈의 만남은 순탄치 않았다. 그녀의 부모는 피카소와의 만남을 만류했지만 작업실에 살림을 차린다. 완벽주의자로 독점력이 강했던 프랑수와즈는 피카소의 아들 클로드와 딸 팔로마를 낳는다. 이 시기에 피카소는 안정을 찾는 듯 했고, 그녀와 아이를 모델로 생동감 넘치는 작품을 많이 남긴다. 하지만 나쁜 버릇은 쉽게 고칠 수 없는 법. 피카소의 바람기가 서서히 고개를 든다. 그리고 취재차 방문했던 프랑수와즈의 친구 주느비에브와 바람을 핀다. 이 사실을 안 프랑수와즈는 피카소에게 이별을 고한다. 하지만 적반하장 피카소는 “나 헤어지면 죽어버릴 거야.”라는 똥차 발언을 서슴지 않는다. 그러자 현명한 여인 프랑수와즈는 이렇게 말한다. “차라리 그게 더 나을지도.”


프랑수와즈는 지독한 바람둥이이자 편협하고 가부장적인 피카소를 자발적으로 떠난다. 그리고 야무지게 자식들을 호적에 올린다. 16년 후에는 소아마비 백신을 연구하던 세균학자 조나단 설크와 재혼한다. 이 후, <피카소와 산다는 것>, <경계선> 등의 서적을 출간하고 피카소의 그림자에서 벗어나 독립적인 미술가로 인정받는다. 불행했던 피카소의 여인들 중 유일하게 자신의 행복을 찾아나선 여자다. 실제로 프랑수와즈가 떠난 후, 피카소는 처음으로 여자에게 ‘버림’받아 고통스러워 했다고 전해진다.   

 

- <Woman with a dog> oil on canvas, 1953 프랑수와즈와 헤어질 즈음 피카소가 그린 작품. 녹색 원피스의 여자는 개와 노는 것이 아닌, 제압하는 모습이다. 발버둥 치는 개는 여자에게 저항하지만 그녀를 이길 수 없다. 여기서 여자는 프랑수와즈, 개는 피카소다. 붉은 색으로 묘사된 바닥은 ‘아직 남은 사랑’을 의미한다.

 

 

7. 죽음으로 입증한 사랑 – 자클린 로크

 

피카소의 마지막 사랑. 피카소가 최고의 명성을 누릴 때 오직 작품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도운 헌신적 여인이다. 프랑수와즈와 헤어진 후, 피카소에게는 수많은 여자들이 꼬였다. 그런 그가 애딸린 이혼녀이자 약40살이나 어린 자클린을 두 번째 부인으로 맞이하자 세상의 시선은 달갑지 않았다.

 

 

- <꽃을 들고 있는 자클린> oil on canvas, 1954   피카소가 도자작업과 고전의 재해석에 심취해있을 때 만난 자클린 로크. 둘의 결혼생활은 피카소가 생을 마감하기 전까지 20년간 지속됐고, 피카소는 다른 여인들에 비해 자클린의 초상화를 굉장히 많이 남겼다. 한 해에 70점이 넘는 작품을 그리기도 했다고. 그녀는 피카소가 죽자 유산 다툼과 법정 문제를 처리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녀는 피카소를 “나의 주인님”이라 불렀으며 세상의 부정적인 시선에 “피카소는 여전히 젊고 아름다운 청년이며 나는 그런 그에 비해 늙었다.”고 말했다. 한 가지 특이한 점은 피카소의 그림 속 자클린의 목이 유난히 길다는 것이다. 이는, 남들보다 유난히 목이 짧은 그녀를 위해 피카소가 특징을 과장해서 그려서라고. 피카소는 이 시기, 주로 판화와 도자기에 주력한 작업을 남겼다. 자클린은 피카소와 사는 동안 ‘큰 나이차’와 ‘이혼녀’의 이미지로 그의 재산을 노리고 접근한 것이 아니냐는 시선을 업고 살아야 했다. 하지만 피카소가 죽은 후, 온 집을 검정 텐트로 치고 식탁에 피카소 자리를 남겨 놓는 등 이상 행동을 하다 결국 권총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피카소에게 여자는 작품의 뮤즈이자 원초적 본능을 해소하는 대상이었다. 작업 스타일이 바뀔 때마다 여인이 바뀌었고, 표현된 여인의 모습 역시 바뀌었다. 여자들은 그를 통해 안정과 헌신을 찾길 바랐지만, 피카소에게 사랑이란 ‘애정’과 ‘헌신’보다 ‘욕정’에 가까웠던 것 같다. 그러지 않고서야 그토록 수 많은 여자를 거치며 자신의 작업 포트폴리오를 쌓지 않았을 테니. 인간에게 사랑이란 ‘불안’에 빠진 상대를 외면치 않고 보듬는 것이다. 하지만 피카소는 ‘그저 행복한 여자’를 원했을 뿐, 그녀들이 불안에 빠졌을 때조차 온전히 그녀 스스로 행복하길 바랐다. 피카소는 불안에 빠진 여자를 가차없이 떠났다. 그래서 여자들은 불안을 내색하지 못한 채 스스로 잠식했다. 하지만 피카소의 연애사를 통해 확실히 알 수 있는 사실이 한 가지 있다. ‘애정관계에서 관계의 주체가 나 자신에게 있어야 행복하다’는 것이다. 마치 뒤돌아 볼 필요도 없이 피카소의 곁을 떠난 프랑수와즈처럼.

 

 

김해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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