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임머신을 탄 프로메테우스 호 : 우리의 근원을 찾아서, 1990

15.07.27 0


- 사진 출처: http://www.cooper.edu

 

 

 

사실, 김영만 아저씨는 내 어린 시절에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지 않다. 그래서 내 기억 속 ‘만들기 프로그램’은 어떤 젊은 여자와 인형이 꿰차고 있다. (사실 이 두 명이 정확한 출연자들인지도 정확하지 않다. 초등학교 들어갈 때쯤 본 기억이 난다). 달걀 판으로 악어를 만들 때의 문화충격이란! 그러나 내 세대는 불어펜 광고를 한창 하던 시기였다. 불어펜을 사달라고 얼마나 떼를 썼는지 모른다. 동생을 꼬드겨 같이 불어펜을 사놓곤 엉뚱하게 베란다 앞에서 불어대곤 했다. 20살이 넘은 지금, 나는 다시 색종이를 가지고 TV앞에 앉는다. 아저씨의 ‘친구들’이란 말에 김영만 아저씨 세대도 아니었던 내가 괜히 울컥한다. 시간이 흘러도 여전히 종이 하나 제대로 못 접는 나였지만 열심히 스냅백을 만들어 본다.


- 90년대의 아이콘, 김영만 아저씨. 출처: http://tenasia.hankyung.com/


- 서태지와 아이들, 출처: http://www.hankookilbo.com/

 

 

 

‘김영만 아저씨’는 현 20대의 유년시절을 추억하는 대표적인 상징일지도 모른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응답하라1997>에 등장하는 90년대 대학생, 고등학생들을 추억하던 게 엊그제 같은데 이제는 현 20대의 유년기까지 현대로 끌어들였다. IMF니 뭐니 하며 국가 부도 위기가 닥쳤던 90년대, 그러나 그 시절만큼 새로운 문화가 쏟아지던 황금기가 없었다. 서태지와 아이들은 한국 대중문화의 판도를 바꾸며 패션 스타일까지 바꿨다. 이러한 90년대 ‘문화 부흥기’는 개인의 스타일을 존중하는 진보적인 패션 윤리관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 도나 카란의 1996년 가을/겨울 컬렉션 드레스. 출처: https://www.pinterest.com/n1252/little-black-dresses/ 


- 도나 카란의 옷을 입은 1990년대 모델, 출처: https://www.pinterest.com/pin/547891110893866942/

 

 

당시 전 세계는 “드레스 업”에서 “드레스 다운”으로 패션의 판도가 바뀐 시기였다. 펑크나 디스코처럼 극단적인 화려함을 내세우지 않아도 충분히 하이패션을 표현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패션 디자이너로는 도나 카란(Donna Karan)이 있다. 덜 차려 입었지만 도회적이고 클래식해 보이는 패션을 강조한 것이다. 얼마 전 공식적인 은퇴를 밝힌 이 디자이너는 90년대 그 자체를 대표한다. ‘1990년대’라는 함수 식 안에 도회적 미니멀리즘을 대입하면, 도나 카란이 나올 정도다.

- 갭(GAP)의 90년대 광고. 출처: https://www.pinterest.com

 

 

 


이렇게 하이 패션 브랜드들이 드레스 다운과 미니멀리즘에 빠져들자, 대중들의 스트리트 패션에도 영향을 미쳤다. 이에 질세라 기성복을 팔아 치우는 하이 스트리트 패션 브랜드들이 발달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주로 하이 패션 브랜드의 잘 팔리는 옷들을 모방해 철저히 유행 중심의 옷을 생산했다. 자라, 톱숍, 갭 그리고 H&M 같은 SPA 브랜드가 대표적이다. 이들은 1990년대부터 공격적이고 적극적인 마케팅 수법을 동원해 세련된 대량 생산 의류를 판매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거대한 공룡 기업으로 성장하고 있다. 하이 패션 브랜드도 이에 대응하기 위해 창의적이고 유행에 민감한 젊은 패션 디자이너를 고용했다. 젊은 디자이너들에게 전통적이고 장인정신이 필요한 꾸뛰르 컬렉션까지 맡기며 브랜드에 젊은 피를 수혈시키려 노력한 것이다. 즉, 1990년대의 스트리트 패션 발달과 SPA브랜드의 본격적인 성장은 패션을 축제가 아닌 하나의 비즈니스상의 문서로 탈바꿈시키는 계기였다. 

- 셀린느(Celine)의 2015년 광고. 출처: http://archetype.nu/celinevo/

- H&M과 패션 디자이너 알렉산더 왕(Alexander Wang)의 협업 작품. 출처: http://nymag.com/thecut/

 


- 겐조(KENZO)의 2015년 광고. 출처: http://frumpytofunky.blogspot.co.nz/

 

 


잘 살펴보면 90년대 패션 역사는 현재와 많이 닮아있다. 2014년부터 유행한 ‘놈코어 룩(Norm-Core-look)’은 드레스 다운이 업그레이드 된 스타일이다. 2010년 대에 ‘미니멀리즘’을 재 전파한 이는 럭셔리 패션 브랜드 셀린느(Celine)의 디자이너 피비 파일로(Phoebe philo)다. 제 2의 도나 카란(Donna Karan) 여사라고 해도 무방하다.
해가 지날수록 스트리트 패션이 더욱 주목을 받는 시대다. SPA 브랜드는 한국에 상륙한 뒤로 돛을 활짝 펴고 순항 중이다. 어딜 가나 틈만 있으면 유니클로 가게가 눈에 띈다. 다만 과거와 다른 점이 있다면 단순히 하이 패션을 모방하는 게 아니라, 럭셔리 디자이너들과 손을 잡고 자신들만의 유행을 창조할 때도 있다는 점이다. 젊은 디자이너들의 피를 수혈 받은 브랜드들이 원기를 회복했다는 점도 비슷하다. 예를 들어 겐조(KENZO)는 벼랑 끝으로 몰렸다가 두 명의 젊은 아시아계 디자이너들을 만나 패션 트렌드의 상징으로 환골탈태(換骨奪胎)한다.


- 밴드 혁오의 보컬 오혁. 출처: http://www.ssulf.com/

 

 

 

무엇보다 스트리트 패션이 점점 90년대화 되고 있다. 한국 스트리트 패션만 봐도 그렇다. 요즘 잘 나간다는 밴드 혁오의 보컬 오혁은 넓은 통을 접어 올린 청바지와 져지 그리고 컨버스로 존재감을 알린다. 오혁이 무한도전에 출현하기 전에도 사람들은 여전히 청바지와 청 자켓을 찾았다. 그리고 버킷 햇과 긴 양말, 그리고 아디다스 슈퍼스타의 조합은 ‘좀 힙(Hip)하다’는 남자들의 필수품이었다.


이렇듯, 버킷햇을 쓰고 아디다스 운동화를 신은 채 색종이를 들고 김영만 아저씨와 눈물 흘리는 게 현대의 젊은이들이다. 사회가 핍박해질수록 과거를 반추하는 문화가 부흥한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 이런 전제를 곱씹으며 어른이 되어도 어릴 때만큼 ‘아는 것이 없구나.’ 라는 생각과 함께 종이 접기와 복고패션에 빠져든다. 90년대 내가 가장 어렸던 시절, 우리는 모두가 힘들었지만 함께 즐길 문화가 있었고 철 없이 종이 접기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접다가 어려우면 부모님께 도움을 청할 수도 있었다!) 생각해보니, 어쩌면 90년대는 우리 마음 속의 근원일지도 모르겠다.


-<Prometheus> 출처 : http://movies.geourdu.com/

 

 


영화<프로메테우스>는 인류의 근원을 찾아 떠나는 이야기다. 영화가 인류의 근원을 우주에서 찾는다면, 나는 2015년의 문화 근원을 90년대에서 찾고 싶다. 현재 유행하는 패션 아이템들이 90년대를 재해석한 모든 것들로 무장한 채 순항 중이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 힘들지만 1990년대가 주는 추억은 엄마 품처럼 따뜻하다. 그러니 그 품 안에서 성장하고 발전하는 것이 2015년을 살아가는 젊은 인류의 새로운 목표일 것이다.

 

 

Lyla

오아시스와 에드워드 호퍼, 이브 생 로랑과 아제딘 알라이아를 사랑합니다.
많은 일을 경험해보고 싶고 이뤄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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