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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나 아브라모비치(Marina Abramovic), 눈빛에 숨은 그 때의 우리

16.04.01 0

이런 상상을 해본 적 있다. 오랜 기간 연인이었던 사람과 이별 뒤, 오랜 시간이 흘러 우연치 않게 만나면 어떨까? 물론, 전공도 직업도 지역도 달라 그나마 ‘연인’이었기에 이어나가던 끈을 자른 우리에게 이런 일은 흔치 않을 것이다. 아픈 이별을 겪은 후에는 으레 ‘혹시라도 우연히 마주치진 않을까’는 궁금증을 시작으로 ‘나중에 나이가 들어 각자 다른 배우자가 있는 상황에서 마주치면 어떨까?’까지 상상의 나래를 펼치곤 했다. 아마 재회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는 많이들 접해보고 또 상상해봤을 것이다.

마리나 아브라모비치(Marina Abramovic)& 울라이(F.Ulay) 

 

그리고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 첫 직장의 대표님과의 점심식사에서 이런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당시 대표님은 환갑 정도의 나이셨는데 항상 깔끔한 정장차림에 ‘해인씨, 오늘 손목시계 예쁘네’라는 칭찬도 서슴없는 섬세한 기질의 분이셨다. 실수로 상표를 드러낸 채 옷을 뒤집어 입고 출근을 해도 “해인씨, 요즘 젊은 사람들은 상표를 다 내놓고 다니는 게 유행이라던데, 그게 그거야?”라고 물어보실 만큼(사실 거꾸로 입고 출근함) 센스가 넘치는 분이셨다. 그랬던 대표님이 “나이가 들어 옛 연인을 우연히 만난 적이 있다.”고 하셨을 때 어떤 사연일지 너무나도 궁금했다.

개인의 사생활이므로 구체적으로 언급할 수는 없지만, 대표님이 내 나이였을 무렵 연인이었던 여자분이 있었고 꽤 오랫동안 연애를 했다고 한다. 누구나 그렇듯, 서로 많이 사랑했지만 어떠한 이유로 헤어졌고 여자분은 다른 배우자를 만나 결혼을 했다고 한다. 대표님 역시 지금의 배필을 만나 가정을 꾸리셨으니 그저 마음속으로만 ‘어떻게 살고 있을까’ 궁금하해길 몇 십 년, 우연히 연락이 닿았다고 했다. 그렇게 두 사람은 사랑했던 시간보다 몇 배가 되는 시간이 흘러 노인으로 재회하게 되었다.

 

<예술가가 여기에 있다(Artist Is Present)>


영상은 마리나 아브라모비치(Marina Abramovic)가 2010년 뉴욕 현대미술관(MoMa)에서 선보였던 <예술가가 여기에 있다(Artist Is Present)>중 일부이다. 아브라모비치가 낯선 사람과 1분 동안 말 없이 서로의 눈을 바라보는 퍼포먼스를 선보이던 중, 웬 말쑥한 차림의 중년신사가 등장한다. 그러자 견고하기만 했던 아브라모비치의 표정에 알 수 없는 미소가 번지고, 이내 눈빛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이에 중년의 남성은 ‘괜찮아. 다 알고 있어’라는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본다. 이 때부터 아브라모비치는 눈물을 쏟기 시작한다. 정작 영상 속 두 사람은 아무런 말이 없는데, 나는 왠지 둘의 이야기를 엿들은 기분이다.

Marina Abramovic & F.Ulay 

<Two Headed Body>

<Breathing in Breathing Out>

<Rest Energy>

 

예상했겠지만, 남자는 과거 13년 동안 아브라모비치의 연인이자 동료였던 우베 라이지펜(F.Ulay)이다. 둘은 1976년부터 13년 동안 함께 작업을 하고 사랑을 하다 헤어졌다. 행위예술가였던 두 사람이 이별 역시 만리장성을 걷는 퍼포먼스로 승화했다는 이야기는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리고 22년이 지난 2010년, 둘은 또 다시 퍼포먼스로 ‘1분의 눈빛 재회’를 하게 된 것이다. 

22년 후의 Marina Abramovic & F.Ulay

 

“그런데, 음. 그냥 생각보다 별로였어.” 대표님의 한 마디에 아브라모비치와 울라이의 장면이 사라진다. 한 때 불같이 사랑했지만 서로 다른 배우자를 만났다는 것, 그리고 노인이 된 두 사람이 재회를 한다는 것 자체가 영화 같은 일인데 무슨 소리일까 싶으면서도 그 이유가 가늠이 됐다. “왜요?”라고 물을 수 있었지만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영상 속의 두 사람처럼,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으니까.

 

<예술가가 여기에 있다(Artist Is Present)>


영상의 말미에서 아브라모비치는 옛 연인이자 동료인 울라이에게 손을 건넨다. 이내 마주잡은 두 손은 여러 가지 생각을 들게 한다. 그리고 그녀가 먼저 손을 내밀었듯, 그녀의 손이 먼저 그의 손에서 멀어진다. 떨어진 두 손이 너무나도 아쉽지만, 아마 그 손은 다시 맞잡을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알 것 같다. 그와 만났던 시간만큼의 시간이 흐른 지금, 이 시간이 얼마나 인생의 많은 부분을 차지 하는지, 그리고 한 사람이 그 동안 얼마나 많은 변화를 겪는지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쩌면 우리는 과거의 ‘그 때’를 회상하며 그 때의 ‘이미지’를 그리워하는 건지도 모른다. 마치 오지은의 <날 사랑하는 게 아니고>의 가사처럼 말이다.

김해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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