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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남자 이야기 - 김어진, 김종소리, 한주원의 작업 철학

16.01.20 0


눈바람이 불던 어느 1월의 밤, 세 남자의 작업철학을 듣고자 <끝나지 않은 작업, 끝나지 않을 이야기>에 참석했다. 세 남자는 디자인 스튜디오 ‘일상의 실천’의 일원이자 <작업으로 말하는 사람들>의 저자 김어진, 독립출판 <아브락사스>의 발행인 김종소리 그리고 공간디자이너이자 그래픽디자이너인 한주원으로 구성된 ‘일일 3인조 그룹’이다. 이들은 디자이너이기도, 글 쓰는 사람이기도 하지만 ‘작업을 한다’는 점에서 모두 공통분모를 가졌다. 그리고 어떤 기업에 속해 일하지 않는다는 점도.

김어진의 뒷이야기

<작업으로 말하는 사람들>

어진 <작업으로 말하는 사람들>은 ‘일상의 실천’ 구성원들과 ‘작업’에 관한 대화를 나누다 “결국 디자이너는 ‘작업’으로 이야기하는 게 아니냐”는 감상에서 비롯됐어요. 10명의 디자이너(혹은 디자인 스튜디오)들이 우리와 다른 세상에서 사는 사람들이 아니라는 점에서 착안한 거죠.  

 

연이어 저자 김어진은 최근 발행한 <작업으로 말하는 사람들>에 인터뷰이로 등장한 10명의 작업자들에 관한 후기를 더했다. 인터뷰이는 강경탁과 김강인, 김의래, 노트폴리오, 더블유-씨, 물질과 비물질, 오디너리 피플, 저자가 속한 일상의 실천과 제로랩 그리고 한주원 등, 디자인과 관련된 일을 한다면 한번쯤 접해봤을 법한 인물이다. 그는 작업 순서대로 한 명 한 명의 꼼꼼히 후기를 전했는데, 그 중에서 '김가든'의 김강인에 대한 코멘트가 인상적이다. 

 

- 작업으로 말하는 사람들 김강인의 김가든, 출처: 일상의 실천 

어진 ‘김가든’은 1인 스튜디오임에도 작업 시 4-5인의 비용을 받는다고 합니다. 업계 생태계와 다른 디자이너를 위한 행동이죠. 소신 있는 그의 행동에 자신의 작업에는 겸손하지만 다른 디자이너 또한 존중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를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근성 있는 디자이너’라 칭하고 싶어요. 

 

꼼꼼한 후기는 일종의 인터뷰 비하인드 스토리였다. 무엇보다 김어진이 인터뷰를 위해 김가든이 운영하는 게스트하우스에 방문했을 때 길을 잃어버린 에피소드나 고기를 먹으며 인터뷰를 진행했는데 그가 고기를 참 잘 굽더라는 ‘작업’외의 인간적인 모습도 기억에 남는다. 그도 그럴게 종종 인터뷰를 진행하다 보면, 작가가 최근에 발표했던 작품이나 이슈가 됐던 작업의 ‘겉’을 이야기 하기 보다 그가 어떤 삶을 살아왔고 어떤 가치관에 의해 이런 작업을 하게 됐는지 ‘안’을 들여다 보게 되는데, 이 과정이 ‘인터뷰’라는 거대한 명목 하에 이뤄지지만 사실 엄청나게 ‘즐거운 수다’같은 감상이 들어서다. 그래서일까. 김어진의 뒷이야기를 통해 ‘작업에 대한 대담’이자 ‘즐거운 수다’를 떠는 작업자들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었다. 


 

김종소리의 마음가지

김종소리 관련 모든 출처: 물질과 비물질


학부에서 소설을 전공했고, 독립출판도 하며 현재는 디자이너로서 개인 스튜디오 ‘물질과 비물질’를 운영하는 김종소리의 이야기는 ‘작업욕구’를 자극한다. 그는 ‘작업의 원동력이 무엇이냐’는 한 참가자의 질문에 인상 깊은 대답을 내놓았다. 

 

종소리 글을 쓰든, 뭔가를 만들든 ‘습관’인 것 같아요. 대학을 다니면서 소설을 썼고 습관적으로 계속해서 무언가를 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뭐든 만들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원동력이랄 게 별로 없어요.

 - 김종소리의 아브락사스, 아브락사스는 <데미안>에 나오는 신(神)으로 선과 악을 아우른다. 마찬가지로 김종소리의 아브락사스 역시 주제에 맞는 작업이라면 형식에 관계 없이 참여가 가능하다. 전체 흑백


연달아 그는 돈이야 무슨 일을 하든 먹고 살 수 있기에 하고 싶은 일을 한다고 했다. 독립출판 <아브락사스> 발행에 관해서도 “(출판에 드는)50만원쯤이야 한 달에 문화 생활 몇 번 한다는 생각으로 했던 거예요.”라고 툭-하고 말했다. 개인적으로 ‘일단 시작하는 힘’이 굉장히 결여된 사람으로서 반성할 수 밖에 없는 답변이었다. 이는 필진 김재웃의 <태도! 그 가능성의 힘>을 편집하며 느꼈던 감상과 맥락을 같이했는데, 김종소리의 대답은 ‘창작’과 ‘작업’이라는 단어가 주는 무게에 짓눌려 시작조차 못하는 이들에게 두려움을 퇴치하는 방법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주원의 즐거움

무대미술을 전공했으나 현재 공간디자인과 그래픽 디자인을 하는 개인 작업자, 외모는 당장이라도 철학을 논할 듯 진지해 보이지만 자신의 작업에 초롱초롱 눈을 빛내며 이야기하는, 위트 있는 디자이너라는 인상을 주었다. 특히 한주원의 <Verythings>는 토마토가 풍기는 특유의 귀여움에 그야말로 엄마미소가 나왔다.

주원 그냥 토마토, 갈리는 토마토, 찔리는 토마토, 어디론가 떠나는 토마토, 샤베트가 된 토마토예요.


- 그냥 토마토

- 갈린 토마토 

- 찔리는 토마토

- 어디론가 떠나는 토마토

한주원의 <Verythings> 출처: 한주원 홈페이지, http://www.hjwsg.com/?p=683

직관적이고 어딘가 여성스러워 보이기도 하는 그의 작업은 토마토의 ‘아무것도 몰라요’하고 빼꼼하니 쳐다보는 눈빛 때문에 왠지 모를 귀여움을 더했다. 

 

2014 알프레드 비치 샌달 내한 포스터, 출처: 한주원 홈페이지 


알프레드 비치 샌달(alfred beach sandal concert poster)편집 작업도 마찬가지다. 의뢰 당시, 알프레드 비치 샌달을 몰랐던 한주원은 그의 노래를 듣고, 음악이 주는 느낌과 그의 이름을 따다 그래픽 작업을 했다. 일단 완성은 했지만 혹여 뮤지션이 자신의 포스터를 마음에 들지 않아할까 마음 졸이며 조심스럽게 내밀었다는, 그러나 다행히도 뮤지션이 아주 마음에 들어 해 기념촬영까지 했다며 함께 찍은 사진을 보이는 그의 모습에서 ‘어떤 작업자든 다 똑같구나’는 생각에 또 한번 엄마미소가 지어졌다. 그는 이듬해, 알프레드 비치 샌달의 작업을 또 맡았다. 이렇게 매번 진심으로 자신의 일을 좋아하고 작업을 즐기는 한주원의 태도에서 일련의 감동을 느낄 수 있었다. 

2015 알프레드 비치 샌달 내한 포스터, 출처: http://smallshowsinseoul.blogspot.kr/


세 남자의 이야기를 듣고 보니 그들의 작업은 ‘태도’라는 단어로 정리할 수 있었다.

- 김어진, 김종소리, 한주원, 출처: 지콜론북(http://www.gcolon.co.kr/) 제공


어진 작업으로 말하는 사람으로서 이번 작업을 통해 느낀 사실은 인터뷰이 모두 타인의 작업을 존중하고 있다는 점이었어요. (그런 맥락에서) 사실 ‘내 작업이 어떻게 보일까’는 모두가 하는 사소한 고민이죠. 그렇기 때문에 저는 작업을 ‘그냥’ 해 나가요.


종소리 작업자로서 중요한 태도는 만화 주인공 같은 거죠. 입안에 피가 줄줄 나도 티 내지 않고 웃어 보이는, 겉보기에 가볍지만 전혀 가볍지 않은 캐릭터요.


주원 작업을 꾸준히 하는 사람들의 특징은 자기가 정한 스케쥴 대로 움직이는 사람들 같아요. 밥을 먹는 시간, 작업을 하는 시간이 정해져 있고 그것을 지키는 사람이요. 무엇보다 남들에게 휘둘리지 않는 거요. 졸업이니 취업이니 결혼이니 그런 통념에 휘둘리지 않고 (작업을) 해나가야겠어요.

 

김해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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