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자베스 키스의 <코리아>

19.04.25 0

New Year's Shopping, 새해 나들이, Seoul, 1921

초등학생 시절, '과학상상만화 그리기 대회'에서 미래를 꿈꾸며 포스터를 그렸던 적이 있다. 내가 상상하던 미래의 모습은 온갖 첨단기기에 둘러싸여 인간의 생각만으로도 모든 것을 이뤄낼 수 있고, 말하는 대로 실현되는 시대가 열리는 것이었다. 그 후로 20년이 지난 지금, 상상했던 것들이 더 이상 상상이 아닌 이야기가 되어 이뤄진 것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것도 있다. 하지만 확실히 세상은 과거보다 한층 더 진보했고 편리해졌다. 물론, 그에 따른 부작용도 공존하지만 말이다.

“비교적 여유 있는 집의 내부 풍경이다. 이 그림을 그린 것은 여름이었는데, 이 집의 가장은 사랑방이 아닌 대청에서 식사를 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남녀가 같은 식탁에서 식사를 하지 않으며 부인이 식사를 날라다 준다. …남자들이 기거하는 사랑방은 대문 가까이 있다. 여자들이 기거하는 안채는 보이지 않는다. 가난한 사람의 집은 길가에 붙어 있을 수도 있지만 대부분의 집은 마당이 있고 부유한 집은 안채 앞마당까지 해서 마당이 둘이다. …한국 사람들은 방안에서는 신발을 벗는다. 방바닥은 노란 장판지로 덮여 있는데 항상 반짝반짝 닦아놓고 있다. 사랑방 나무기둥에는 ‘집에 연기가 자욱한 것은 즐거운 일이다’라고 써 있는데, 그것은 부엌에서 나는 연기를 가리킨다.”

 

“맛있는 음식 냄새가 솔솔 밖으로 새어 나온다. 주막은 추운 겨울날 먼 거리를 걸어가거나 무거운 짐을 나르는 시골 사람들에게 아주 인기 있는 곳이다. 이 집을 닮은 초라한 주막이 하나 더 있었는데, 그 집 문 위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달을 쳐다보는 데 최고로 좋은 집>”

“서울은 연날리기에 최고로 좋은 도시이다. 연 날리는 철이 돌아오면 어느 날 갑자기 하늘이 온통 형형색색의 연으로 뒤덮인다. 웬만한 가게에서는 각종 크기의 연을 파는데, 값도 싸서 어떤 것은 불과 일전밖에 하지 않는다. 여기에 그려본 것은 전형적인 아이들의 연 날리는 모습이다.”

 

Marriage Procession,혼례 행렬, Seoul, 1921

이 그림은 혼례 행렬, 정확히 말하면 신부 행차입니다. 꽃가마가 아주 아름답게 채색되어 있네요. 행렬 앞에는 빨간 모자를 쓴 사람이 신랑 집으로 가마를 인도하여 갑니다. 그 인도자는 백년해로를 뜻하는 기러기를 보자기에 싸서 들고 있습니다. 청사초롱을 든 사람들이 가마 앞뒤에 있고, 동네 아이들이 구경삼아 따라가고, 빨래하던 아낙도 고개를 들어 쳐다보는데, 한 아낙은 길에다 물을 버리고 있네요. 뒤로 동대문이 보이는데, 다리는 청계천의 어느 다리였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러나 나이가 들수록 왜 그 당시에는 ‘100년 전보다 100년 후를 상상했던 걸까’라는 의구심이 든다. 과거 속 우리의 모습은 역사적 사료나 자료들로 충분히 유추하고 증명될 수 있어서? 하지만 디지털기기가 지금처럼 발전하지 않은 과거의 자료들은 이러한 특성으로 더욱 귀한 가치를 갖고 그만큼 일반화의 오류에 빠지기도 쉽다. 때문에 이러한 의문이든 이후부터는 <과학상상만화>와 반대로 과거의 우리 선조들의 모습은 어떠했는지, 또 제3자인 누군가가 우리를 바라보는 시선이 어떠했는지 궁금해졌다.

 

Returning from the Funeral, 장례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 1922 

성 안에서 사람이 죽으면 성 밖에 묻는 것이 법이라, 겨울 저녁 어두워진 후에 등불을 켜 든 상여꾼들이 빈 상여를 메고 돌아오는 장면입니다. 성문의 현판에 ‘東大門’이라 쓰여 있는 것으로 보아 서울은 아니로군요. 키스가 영국에서 전시회를 할 때 영국 왕실에서 이 그림을 구입했다고 합니다.

 

Wonsan, 원산, 1919 

“내가 아무리 말해도 세상 사람들은 원산이 얼마나 아름다운 곳인지 알지 못할 것이다. 하늘의 별마저 새롭게 보이는 원산 어느 언덕에 올라서서 멀리 초가집 굴뚝에서 올라오는 연기를 보노라면 완전한 평화와 행복을 느낀다.” 

 

현재 내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은 글로벌 시대가 도래하면서 다인종, 다국가의 사람들로 구성되어있다. 최근에는 외국인 패널이 참여하는 방송도 늘어났고 조금 더 쉽게 우리의 문화와 타국의 문화를 비교해볼 수 있게 됐다. 그리고 과거에도 역시 (방법은 어려웠지만) 우리나라에 흥미를 느끼던 외국인이 있었다. 바로 엘리자베스 키스(Elizabeth Keith, 1887~ 1956). 그녀는 1910년대 한국에 방문하여 푸른 눈에 비춰진 한국의 모습을 그림으로 담아냈다. 그리고 지금으로부터 약 100년 전 그녀의 작업을 통해 제 3자의 시선으로 비춰진 우리의 과거를 확인해볼 수 있다.

 

Korean Bride, 한국의 신부, 1938

한국에서 가장 비극적인 존재. 한국의 신부는 결혼식 날 꼼짝 못하고 앉아서 보지도 먹지도 못한다. 예전에는 눈에닥 한지를 붙이기도 했다고 한다. 신부는 결혼식날 발이 흙에 닿으면 안되기 때문에 가족이 들어다가 자리에 앉힌다. 얼굴에는 하얀 분칠을 하고 뺨 양쪽과 이마에는 빨간 점을 찍었다. 입술에는 연지도 발랐다. … 하루종일 신부는 안방에 앉아서 마치 그림자처럼 눈을 감은채 아무말 없이 모든 칭찬과 품평을 견디어 내야한다. 신분의 어머니도 손님들 접대하느라고 잔치 음식을 즐길 틈도 없이 지낸다. 반면에 신랑은 온종일 친구들과 즐겁게 먹고 마시며 논다. 

 

Woman Sewing 바느질하는 여자

“중류 가정의 한 여자가 바느질을 하고 있는 모습. 그녀의 옆에는 바느질 그릇과 인두가 꽂혀 있는 놋화로가 놓여 있다. 한국 여자들은 세탁과 바느질을 아주 잘해서 아무리 더럽고 거칠었던 옷도 그들의 손을 거치면 반짝반짝 윤이 나도록 깨끗하게 세탁된다.”

 

Buddha's Birthday 

 

그녀의 작업에 매료되었던 건 강렬한 색감과 우리를 바라보는 그녀의 애정 어린 시선 때문이다. 시대의 기록이 중요한 것은 과거를 통해 미래를 유추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때문에 키스의 그림에는 100년이란 시간동안 ‘격세지감’이 와 닿을 만큼 낯설기도 하고 친숙하기도 한 장면들이 녹아있다. 특히 여성을 다룬 작업에서 더욱 그러하다. 그래서 그녀의 작업을 보고 있으면 지금도 어디선가 100년 전의 키스처럼 지금의 <코리아>를 기록할 제 3자의 작업이 궁금해지기도 하다. 물론, 그때보다 매체가 다양해져 과거를 확인할 다양한 자료들이 존재하겠지만 말이다. 때문에 100년 후의 후세대가 2019년의 <코리아>를 어떻게 해석할지 기대가 된다. 그 때에도 ‘격세지감’이 와 닿지도 와 닿지 않을 수도 있겠지.

 

Elizabeth Keith

김해인

읽는 사람이 즐거운,
언제나 유쾌한 글을 쓰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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