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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 스튜디오의 일일] 여성들의 ‘봄’을 위하여, 봄알람 -1

17.08.03 0

여자나이는 크리스마스케이크야~’,‘너 김치녀니~?ㅎ’라는 고구마 백 개는 목에 걸린 것 같은 표현은 불과 몇 년 전만해도 널리 쓰이던 말이었다. 이런 표현들에 마주할 때면 전투태세로 반박을 가하지만, 이내 ‘넌 여자가 왜이리 드세?’라는 또 다른 고구마의 등장으로 전의를 상실하곤 했다. 나는 과연 여성혐오가 만연한 사회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를 진지하게 고민할 찰나 <우리에겐 언어가 필요하다(입이 트이는 페미니즘)>를 만났다. <입트페>는 말했다. “여러분! 설득하지도, 이해시키려고도 하지 마세요! 대화할 가치가 있는 사람과 대화하라고요!”

 

봄알람(baume al’am)

<우리에겐 언어가 필요하다(입이 트이는 페미니즘)>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한다.

정혜윤(이하 혜윤): 안녕하세요! <봄알람>은 2016년 5월 17일에 발생한 강남역 여성 살인사건을 계기로 이민경, 정혜윤, 이두루, 우유니게 네 사람이 모여 만든 출판사입니다. 각자 작가, 마케터, 편집자, 디자이너의 역할을 맡고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모임이 시작됐는지 궁금하다.

우유니게(이하 유니게): 사실 <봄알람>이 설립되기 전, 저희 네 명은 모두 같은 페미니즘 페이스북 그룹에 속해있었어요. 그러다가 강남역 살인사건이 발생했고, 모두가 분노해 있을 때 이민경 작가가 글을 하나 올렸어요. “사건 이후, 주변의 남성들과 대화하기 힘들다는 호소가 많아졌다. 이런 여성들을 위한 대화 매뉴얼을 만들고 싶다”는 내용이었죠. 그 글을 계기로 네 사람이 모이게 됐어요.

 

지난 5월 17일 발생한 강남역 살인사건은 한국사회에 만연한 여성혐오의 실상을 드러낸 사건이었다. 출처: 시사저널


그렇게 첫 책 <우리에게 언어가 필요하다(입이 트이는 페미니즘)>(이하, 입트페)가 탄생했다. 무려 3주 만의 일이었다.

유니게: 그만큼 충격과 분노가 컸어요. 또, 강남역 살인사건이 일어나고 당시의 분위기를 감안했을 때 <입트페>가 지금 시점에 꼭 필요하다고 생각했죠. 그래서 무조건 빨리 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특별히 텀블벅을 활용한 이유가 있나.

혜윤: 사실 처음부터 ‘책’을 만들려던 건 아니었어요. 간단한 책자를 만들어서 여성영화제 같은 행사에 무가지로 배포하려고 했죠. 그런데 글을 쓰다 보니 분량이 많아져 책의 형태가 됐어요. 그래서 제작비를 모으고자 텀블벅 프로젝트를 활용했어요. 예상보다 반응이 좋았어요.

유니게: 3주라는 짧은 시간 안에 펀딩이 성공했고, 초판부로 5,000권을 발행했어요. 그 중에서 남은 부수는 서점에 배포를 했는데, 바로바로 판매되더라고요.

 

<우리에겐 언어가 필요하다> 텀블벅 프로젝트, 출처: 텀블벅


여러모로 열기가 대단했다.

유니게: <입트페>를 출간한 후, 당시 독립서점에 소량으로 입고를 했는데, 입고 족족 팔리더래요. <입트페>가 한권 남았다는 소식을 듣고 일요일인데도 자전거를 타고 달려가 구매했다는 사람도 있었어요. 감사했죠. 이런 현상을 보면서 ‘재인쇄를 해야겠다.’고 생각했고, 앞으로의 방향에 대해 보다 진지하게 생각하게 됐어요.

혜윤: 사실, <입트페>를 출판하고 난 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이 있었거든요. 그런데 이민경 작가도 두 번째 책을 쓰고 싶다고 하기에 정식으로 사업자를 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출판사 이름인 <봄알람>의 의미가 궁금하다.

유니게: 보통 많은 분들이 ‘봄알람(baume al’am)’이 순우리말인줄 아시는데, 프랑스어가 어원이에요. 본디 ‘영혼의 안식’과 ‘마음의 연고’라는 뜻을 가지고 있죠. 우리나라 말로 해석해도 ‘봄’과 ‘알람’이 긍정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어서 어떻게 해석해도 좋은 것 같아요. <봄알람>은 ‘여성들과 페미니스트들에게 영혼의 안식을 주는 책을 만들자’를 모토로 하고 있어요.

혜윤: 페미니즘의 봄을 알리자, 이런 뜻도 돼요.

 

봄알람의 네 구성원 


많은 주제 중에서도 ‘여성혐오’와 ‘페미니즘’을 키워드로 독립출판을 하고 있다. 페미니즘에 대한 기형적인 인식 때문에 힘들었을 것 같다.

유니게: 기본적으로 부정적인 인식을 가진 사람들의 반응은 그다지 신경 쓰지 않으려 해요. 물론 몇몇 분들이 책에 대한 서평이나 인터뷰 기사에 악플을 달기도 하죠. 그런데 그런 행위에 대해 분노할 여유가 없어요. 오히려 페미니즘 내부에서 일어나는 갈등들이 더 힘든 것 같아요.

혜윤: 그래서 여성혐오나 페미니즘에 대한 부정적인 반응보다 내부에서 일어나는 의견충돌이 더 신경 쓰이는 것 같아요. 그래서 온전히 반(反)페미니즘적인 시각은 별로 신경 쓰지 않는 편이죠.


그럼 <입트페>를 완판 했을 때 소감이 어땠나.

혜윤: 책에 대한 반응에 많은 감동을 받았어요. 지금까지 저희는 페미니즘이 주먹 한 줌인 줄로만 알았거든요. 애초에 <입트페>를 시작했을 때도 텀블벅에서 진행 중인 페미니즘 관련 굿즈는 메갈리아의 티셔츠가 다였어요. 그래서 이게 얼마나 반응이 좋을 지도 예상할 수 없었죠.

유니게: 그럼에도 책에 대한 반응이 폭발적인 걸 보며 많은 연대감을 느꼈어요. 소중한 경험이었죠. 내가 만든 책을 많은 사람들이 좋아한다는 사실이 기쁘기도 했지만, 동시에 이 책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슬펐어요. 

 

리워드로 제공했던 <입트페> 굿즈

 

이러한 독자들의 반응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하나.

혜윤: 그냥 당시의 분위기가 그랬어요. 공감할 수밖에 없는 사회적 분위기. 그러니까, 강남 살인사건이 시사하는 여성들에 대한 위협이 피부에 와 닿았던 것 같아요. 사건은 우리가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장소에서, 우리가 동일시하기 쉬운 일반 여성에게 발생한 일이에요. 하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강남역 살인사건이 ‘여성혐오 범죄’라는 것도 인식 못하는 수준이었죠.

유니게: 사건 이후 여성들은 자신을 피해자와 동일시하면서 힘들어했어요. 그만큼 쉽게 공감할 수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이죠. 그런데 주변의 남성동료들, 혹은 연인과 대화를 나누다 보면 대화를 하면 할수록 상처를 받고 답답해졌어요. 결국 <입트페>의 이민경 작가가 하고자 하는 말들이 일상생활에서 빈번하게 필요했던 거죠.

 

<우리에겐 언어가 필요하다> 텀블벅 페이지, 출처: 텀블벅


같은 맥락에서 <입트페>는 텀블벅에서 역대급 기록을 남기기도 했다. 목표 후원금을 달성하기 위한 필수 요소는 무엇이라 생각하나.

혜윤: 일단 콘텐츠가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만큼 디자인도 중요하고요.

유니게: 후원자와의 ‘연대감’도 중요한 것 같아요. 크라우드 펀딩을 이용해 제품을 구매한다는 건, 구매 이상의 ‘후원’의 의미도 지녀요. 때문에 단순히 제품을 구매하면 끝나는 게 아니라, ‘이런 좋은 프로젝트가 있다’고 주변에 알리는 바이럴로 이어지더라고요. <우리에게도 계보가 있다(외롭지 않은 페미니즘)>(이하 외않페)의 경우에도 후원 마지막 날에 펀딩이 많이 이뤄졌어요. 일부 후원자들은 자체적으로 이벤트를 열어서 펀딩을 도모하기도 했고요. 감동이었죠.


봄 알람의 후원자들은 대부분 어떤 분들이었나.

유니게: 구매자의 95%가 2~30대 여성분들인데, 4~50대의 비율도 꽤 높았어요. 독자와의 만남에서도 한두 명을 제외하고 모두 여성분들이셨고, 고등학생부터 50대까지 분포해있었죠.

혜윤: 그래도 놀랐던 건, 남성의 비율이었어요. 구매비율이 엄청 낮을 거라 생각했는데, 최근의 판매추이를 보니 남성의 구매비율이 10%대 더라고요.

 

2부에서 계속 됩니다.  바로가기 >

김해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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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유쾌한 글을 쓰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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