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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지알원 왔다감, GR1

17.09.12 0

평소 그의 작업을 보고 있노라면 특유의 해학과 풍자, 그리고 강한 카리스마가 느껴졌다. 캔버스나 종이가 아닌 도시의 콘크리트에 그림을 그리고, 부드럽기보다 강렬한 메시지를 전하는 그가 혹여 딱딱하고 어려운 사람은 아닐까 고민했다. 하지만 실제로 만나본 그는 세상사에 관심이 많고 미술을 사랑하며, 그만큼 모든 일에 다재다능한 인물이었다. 서울의 한 조용한 카페에서 그를 만나 GR1의 작업 세계와 이야기를 들어봤다.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한다.

저는 그래피티(graffiti)와 스트릿 아트(street art) 작업을 하는 GR1이라고 합니다.



GR1의 이름의 유래와 의미가 궁금하다.

특별한 뜻은 없어요. ‘GR’은 그래피티의 철자 ‘Graffiti’의 처음 두 개의 영어스펠링이고, 숫자 1은 흔히 그래피티 아티스트들이 ‘자신이 최고다’는 의미로 많이 사용하는 숫자예요. 저 역시 ‘only one’, ‘number1’의 의미로 자연스레 사용했습니다.

 

그래피티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그냥 스트릿 문화를 좋아해서 시작했어요. 학창시절에 그래피티를 처음 접했을 때 ‘어, 이거 재미있겠다.’ 싶었거든요. 그래서 무작정 스프레이를 사다가 집근처 다리 밑에 그림을 그렸죠. 그때가 고등학교 2학년 올라갈 무렵 이었어요.

 

BUSAN, 2000

BUSAN, 2001

1990년대 한국에서 유행하기 시작한 힙합문화 붐과 함께 그래피티는 힙합의 한 장르로 대중들에게 본격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이 시기 청소년이었던 나도 자연스레 이런 문화적 조류에 편승해 그래피티 작업을 시작하게 되었다. <JIALONE BY GR1 2000-2016>

 

그래피티 아티스트로 자리 잡기까지 어려움이 많았을 것 같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지금도 딱히 자리를 잡았다고 생각하지 않아서(웃음). 물론, 작업 스타일 측면에서는 저만의 스타일을 갖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있어요. 작업 초기에는 저 역시
알파벳 글씨를 꼬아 연출하는 ‘와일드 스타일(Wild Style)’의 그래피티 작업을 많이 했어요. 지금처럼 그림을 가미한 ‘스트릿 아트(Street Art)’는 2014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했죠. 그래서 ‘자리를 잡았다’고 말하기는 힘들지만, 계속해서 제 작업을 해나가고 있는 중입니다.


얼굴을 밝히지 않고 있다.

일부러 그런 건 아니에요. 그냥 얼굴을 찍지 않고, 올리지 않는 것뿐이죠(웃음). 그래도 ‘왜 얼굴 사진을 올리지 않느냐’라고 하면 그래피티 작업 특성 때문이에요. 그래서 굳이 ‘이 작업을 한 사람이 바로 접니다.’라고 밝힐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거든요. 뱅크시(Banksy)처럼 특별히 신비주의를 추구하거나 그런 건 아니에요.


작업하는 도구에 대해 설명해 달라.

작업하는 방식에 따라 준비하는 도구에 약간의 차이가 있어요. 벽에 직접 하는 그래피티는 스프레이가 필요하고, 미리 작업한 포스터를 벽에 붙이는 페이스트 업(paste up) 작업에는 직접 제작한 포스터와 풀이 필요하죠. 그래서 평소에 미리 밀가루 풀과 본드를 섞어서 접착제를 만들고 2L 생수 통에 넣어둬요. 그래서 저희 집에 생수 통이 진짜 많아요(웃음).

 

Pattern poster on plywood(Paste up) @Vans apgujeong
 

작업에 사용하는 종이와 드로잉 방식도 궁금한데. 

저는 갱지 혹은 다른 얇은 종이에 인물을 직접 그리는 방식으로 작업하고 있어요. 때문에 작업 하나하나가 모두 오리지널이죠. 그래서 작업을 아주 자세히 보면 종이가 우글우글 해요. 페인트 마카로 직접 그림을 그리다 보니 종이가 울어버린 거죠. 사실 갱지전지 사이즈가 작업하기에는 크기가 크지 않은 편이에요. 그래서 갱지전지 6~8장을 풀로 이어 붙여서 엄청 큰 한 장의 포스터를 만든 뒤에 페인팅 하고 있죠.


작업량이 엄청 많다.

사실 아직 업로딩 못한 작업도 많아요. 그런데 작업을 1~2주 쉬면 마음이 불안해져요. 자괴감도 들고요. 그래서 의식적으로 작업을 많이 하기보다 좋아서 하다 보니 작업량이 많아진 거예요. 사실, 제가 글씨를 이용한 그래피티 작업을 했을 때는 주목을 받은 적이 없어요. 하지만 ‘스트릿 아트 스타일’을 갖게 된 후로는 떠오르는 아이디어가 많아졌어요. 그렇다고 현실적으로 모두 할 순 없으니까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작업을 먼저 하고 있어요. 그래서 개인적으로 작업량이 많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오히려 앞으로 더 많이 하고 싶어요. 

Graffiti, spray paint on concrete, 2017 @Nanxian, China



Street art, <people, I know> KIM WOLF @Taipei, Taiwan 



거리에서 작업하다 보니 기억나는 에피소드도 있을 것 같다.

그래피티 작가에게 에피소드야 뻔하죠. 2010년도에 미국 시카고에서 작업하다가 체포된 적이 있어요. 그래서 변호사도 선임하고 재판도 두 번 받았는데, 그렇게 큰일은 아니었어요.

 

그럼에도 ‘서울’을 무대로 작업하는 이유가 있나.

일단 제가 한국 사람이고, 한국 안에서는 서울이 문화의 기반이자 기회의 중심지이기 때문이에요. 제가 대학을 졸업하고 미국에서 잠깐 회사를 다닌 적이 있어요. 주중에는 회사를 다니고 주말에는 작업을 했는데, 그때 장래에 대한 많은 고민을 했죠. 그러다가 문득 ‘나는 아시아 사람이니 나만의 스타일을 만들어서 동아시아를 중심으로 스트릿 아트 활동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럼, 아시아에서 잘 활동할 수 있는 동네는 어디일까 고민하다보니 서울이겠다 싶었어요. 사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저는 동양인들의 터전인 동아시아 전체를 저의 로컬(local)로 삼고 싶었어요. 그래서 서울을 베이스로 중국, 일본, 한국, 동남아시아를 오가며 작업하고 있죠. 앞으로도 계속 동양적인 느낌을 가지고 작업으로 나타내고 싶어요.

 


Seoul Shitty


특별히 흑백 톤을 사용하는 이유가 궁금하다.

현재 흑백 톤의 작업을 하고 있다고 해서 꼭 흑백을 고집하는 건 아니에요. 그리고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제가 추구하는 색감은 흑백이 아니라 ‘블랙 앤 그레이’예요. 한 13년 전쯤, 그래피티에 뭔가 새로운 시도를 해보고 싶었어요. 그래서 블랙 앤 그레이 톤의 작업을 시도했는데, 어떤 외국인들이 제 작품을 보고 ‘서양적인 그래피티에서 오리엔탈적인 분위기가 묻어난다’는 평을 했어요. 그래서 나중에 작업스타일을 바꾸게 되면 꼭 블랙 앤 그레이로 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죠.


또 다른 이유도 있다고 들었는데.

학부 전공이 시각디자인이다 보니 인쇄매체에 유독 관심이 많았어요. 책을 사는 것도, 보는 것도 좋아하는 학생이었죠.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돈이 없으면 작업을 하기 힘드니까 인쇄를 하면 흑백으로 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었어요, 컬러보다는 흑백이 훨씬 싸니까요. 하하. 그리고 작업적인 측면에서도 사람들의 시선을 끌려면 콘트라스트가 있는 그림이 눈에 띄잖아요. 그래서 기존 서양의 그래피티 작가들이 자주 사용하는 블랙 앤 화이트보다는 동양적인 느낌을 주고 시선 또한 사로잡을 수 있는 블랙 앤 그레이 톤을 사용했죠.

 

<Old heroes project> 2013

 

주로 인물을 대상으로 작업하고 있다.

2010년도에 ‘스트릿 아트’로 작업스타일에 변화를 줘야겠다고 생각하고 나서 몇 년간 계속해서 스케치만 했었어요. 그리고 2013년 말쯤에 처음 ‘스트릿 아트’ 스타일로 시도했던 작품이 <Old heroes>이었어요. 지금의 그래피티 씬에서는 아주 옛날사람이 되어 버린 미술계에서도 유명했던 키스 해링(Keith Haring)이나 바스키아(Jean Michel Basquiat)같은 아티스트를 그린 작업이었죠. 단순히 유명 인사를 그리는 것보다 저만의 스타일로 인물을 표현하고 싶더라고요. 그리고 그때 이후부터 주변 사람들을 그리기 시작했죠.

 

<people, I know> PARK MIRI. Hongkong, China, 2015

<people, I know> KAM. Hongkong, China, 2015

<people, I know> JO BANG-UL. Seoul, Korea, 2015

<people, I know> ZEROSY. Fukuoka, Japan, 2015


<People, I know> 작업이 연장선인가.

맞아요. 하지만 <People I know>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단순한’ 주변인이 아니에요. 다들 ‘뭔가를 하고 있는’ 사람들이죠. 사실, 우리 주변에는 자신만의 것을 꾸준히 하지만 드러나지 않는 사람들이 많아요. <People I know>는 그런 사람들을 그린 작업이에요. 특별히 제가 인물을 그리는 이유는, 만약 제가 강아지를 그리면 사람들은 ‘어, 강아지네? 귀엽다~’하고 말아요. 하지만 인물을 그리면 ‘어? 사람이네. 이 사람은 누구지? 어떤 사람일까?’라는 호기심을 불러일으키죠. 그렇다고 해서 또 인물만 그리는 건 아니에요(웃음). 그래서 앞으로 사람뿐만 아니라 동물, 곤충, 사물 등, 여러 범주의 그림을 그릴 건데 단지 그 시작이 인물이었을 뿐이에요.


<Girls on the street> Vans Artist Program, 2017 @Seoul, Korea

<girls on the street>은 어떤 작업인가.

올 초 반스(VANS)랑 같이 했던 행사예요. 아티스트 작업실을 3주 동안 만들어주고, 그 결과물을 전시하는 프로젝트였죠. 주제를 뭐로 하면 좋을까 하다가, 아무래도 ‘반스’하면 스케이트보드나 거친 언더그라운드의 남성적인 느낌이 떠올라 다른 분위기로 소화하고 싶더라고요. 그래서 기존 이미지와 상충되는 ‘여성’을 주제로 선정했죠. 이번에는 기존 작업방식과 다르게 스케치 후에 인쇄소에 작업을 맡겨서 관객들이 포스터를 집에 가져갈 수 있게 했어요.


작업의 모델이 된 여성들이 궁금하다.

작업에 등장하는 여성은 모두 실존하는 인물이에요. 실제로 ‘뭔가를 하고 있는’ 여성들이죠.
모델, 작가, 플로리스트, 디자이너, 타투이스트 등 컨셉에 맞는 여성들을 추천받아 일일이 프로젝트에 섭외했죠. 사실, 정치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저명한 인물들은 기존에 공개된 사진을 이용해도 되지만, 일반인은 제가 직접 촬영하고 있어요. 그래서 <Girls on the street>에 등장하는 10명 모두 수백 컷의 사진을 촬영하고, 그 중에서 1장을 꼽아 포스터로 제작했죠. 일일이 사진을 촬영하는 건 <People I know>시리즈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혹시 작업을 하며 상처받지는 않나. 그래피티 작업 특성상 철거되는 일도 잦다.

아무렇지 않다면 거짓말이죠.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마음의 동요가 크진 않아요. 물론, 공을 들여 작업을 했는데 철거되면 가슴이 아프죠. 제가 작업을 하고나서 사진을 찍잖아요. 그것도 벽면에 바른 본드가 말라야 사진을 찍을 수 있는데, 다음날 가보면 철거되는 일이 많아요. 그러면 또 다시 작업하고…. 사실 작업하면서 비난도 많이 듣는데 이제는 ‘그러려니’해요. 그게 제 숙명이기도 하고요. 그런 일에 일희일비하면 작업하기가 사실 힘들잖아요(웃음).

 

<감시사회> ‘Big sister is whatching you’ 2014 @Moving Triennale made in Busan

<감시사회> ‘전파상(Electric shop)’ 2014 @Moving Triennale made in Busan

<감시사회> ‘자기감시(Self-monitoring)’ 2014 @Moving Triennale made in Busan


박근혜 전 대통령과 관련된 재미있는 에피소드도 있었다.

2014년 말에 부산에서 개최된 <무빙트리엔날레-메이드인 부산>에 참여한 적이 있습니다. <감시사회>프로젝트라는 이름을 짓고 총 네 점의 작품을 그리고, 그 중 <Big sister is watching you>가 논란이 됐죠. 당시 한창 ‘카카오톡 사찰’로 시끄러워서 관련 주제로 그림을 그렸는데, 트리엔날레가 끝나고 한참이 지나서야 문제가 된 거예요. 한 친구가 페인트를 사러 가게에 갔는데 주인아저씨가 부산시청 의뢰를 받아 그림을 지우고 왔다고 하더래요. 그런데 들어보니 그게 제 그림이었던 거죠. 그러면서 그림을 그린 사람을 찾을 거라는 이야기를 했나 봐요. 친구가 걱정이 돼서 전화를 했는데, 당시에는 별로 신경을 안 썼는데 며칠뒤 트리엔날레 사무국에서 다시 전화가 와서 자세한 얘기를 하는데 상당히 불쾌하더라고요. 그래서 페이스북에 글을 올렸고, 화제가 됐어요. 덕분에 기사도 나고 뉴스도 났죠.

 

GR1 작업의 묘미는 풍자와 해학이다. 평소 어떤 데이터 축적 방식을 가지고 있나.

그냥 잡지식 쌓는 일을 좋아해요. 세계에서 일어나는 갈등이나 분쟁에도 관심이 많죠(웃음). 그러면서 문득문득 떠오르는 아이디어를 메모해둬요. 평소에 <내셔널지오그래픽>, <EBS 다큐프라임>, <SBS 스페셜>등과 같은 다큐멘터리를 즐겨 봐요. 예술관련 다큐및 인터뷰도 자주보고 시사프로그램도 좋아하고요. 뉴스보는 것도 좋아합니다.

 

black list, 돈벌레(money worm)



자신의 작업을 통해 사람들이 받았으면 하는 인상이 있다면. 

사람들이 제 작업을 통해 어떤 주제라도 새롭게 바라볼 수 있는 눈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지금의 GR1아니면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한 번도 상상해본 적이 없어요. 그냥 그런 사람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 같아요.

 

<Graffiti : Four-way(4orway)>展, ~9/19


마지막으로 GR1의 장단기 목표

장기목표는 계속해서 새로운 아이디어로 새로운 프로젝트를 해나가는 거요. 단기적으로는 올해 예정된 전시를 잘하는 거예요. 올 초에 ‘서울풍경’에 대한 작업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좋은 기회가 닿아 전시를 하게 됐어요. 또 현재 신사동 에코락갤러리에서 진행 중인 <Graffiti:Four-way(4orway)>展을 잘 마무리하고 싶습니다.


GR1

http://www.grone.kr
http://notefolio.net/grone
http://instagram.com/grone.kr

김해인

읽는 사람이 즐거운,
언제나 유쾌한 글을 쓰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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