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고 디자인하고 사랑하기] Reason(리즌) : 현대카드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by. 김성철

14.12.03 1

 

크리에이티브 네트워크 <노트폴리오 매거진>에서는 디자인에 관한 다양한 시선을 비추기 위해 디자인 북 리뷰를 기획했습니다. 앞으로 진행될 냉이의 <먹고 디자인하고 사랑하기>는 필진 냉이만의 디자인 가치철학이 담긴 북 리뷰를 담을 예정입니다. 책을 통해 낯선 디자인을, 디자인을 통해 낯선 책을 접해보세요

 

 

경북 예천 공군기지에서 군 생활을 했다. 시골마을이었던 그 곳의 산과 하늘은 유난히 푸르렀고, 덕분에 25개월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을 자연의 아름다움 속에서 보낼 수 있었다. 때문에 자연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는데, 결정적으로 그 당시 2년간의 월든 호수에서의 삶을 기록한 소로의 <월든>에 빠져있어서 더욱 그랬던 것 같다. 어쩌면 초‧ 중학교를 반이 하나밖에 없는 시골학교에서 자란 유년시절의 영향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천천히 자연이 변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새롭게 깨닫게 된 사실이 있다. 바로 모든 것은 '정말로' 뿌린 만큼 거둔다는 것. 물론 이 사실은 너무나 당연하기 때문에 되물을 필요도 없이 누구나 아는 진리다. 하지만 ‘알고 있는 것’과 그것을 삶 속에서 ‘인식하는 것’은 조금 다른 일이다. 아마 우리가 이 사실을 ‘인식’하게 되면, 때가 되면 식물이 꽃을 피우는 일이 당연한 자연의 섭리가 아니라 놀랍고 경이로운 일이 될 것이다. 씨앗이 뿌리를 내리고 흙 속의 양분을 섭취해 잎이 나고 결국 꽃을 피우는 일. 그리고 벌과 조우해 또 다시 새로운 생명의 씨앗을 잉태하는 일련의 과정은 분명히 ‘이유 있는 결합’이자 ‘우연 아닌 우연들의 조합’이다.

 

 

 

광고인 김성철 저자의 <REASON (리즌) : 현대카드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는 현대카드라는 씨앗이 어떻게 지금처럼 아름다운 꽃을 피우고, 계속해서 번식해나가는지 '인식의 관점’에서 풀어냈다. ‘현대라는 빽이 있으니 성공하는 게 당연한 거 아닌가’ 혹은 현대카드를 단순히 디자인 경영의 성공적인 결과로써 생각했다면 저자는 다른 관점을 제시한다. 때문에 책을 찬찬히 읽는 동안 크게 세 가지에 요소에 주목할 수 있었고, 그에 대한 몇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1. 격을 파격하는 것

 

 

 

 

10년 전, 현대카드는 업계 후발주자로 하루하루가 곧 존망의 위기였다. 생존을 택하니 앞서나가는 경쟁사를 쫓는 게 의미가 없었다. 대신 천편일률적이었던 카드업계의 관행들을 하나씩 뒤엎기 시작했다. 그리고 새롭게 판을 짰다. “현대카드이거나 아니거나” 로.

 

 

 

 

 

현대카드는 업계 전체를 통틀어 그 동안 허울뿐이던 포인트제도부터 개선했다. 그리고 업계 최초로 개별 브랜드를 만들어 M시리즈부터 알파벳 시리즈까지 성공적으로 궤도에 올렸다. 또한, 월드 클래스 급 스타들이 등장하는 공연을 개최하는가 하면 디자인 도서관을 짓고 서울역 앞 버스정류장을 디자인 하는 등 재능기부와 더불어 주방용품까지 만들었다. 이는 소비자로 하여금 ‘대체 현대카드가 신용카드 회사가 맞나’ 싶은 의문을 주는 프로젝트였다. 위의 이야기들이 와 닿지 않는다면 작년 현대카드 광고를 통해 센세이션을 일으킨 <MC옆길로새> M/V를 떠올려봐도 좋을 듯 하다.  

 

- MC 옆길로새 M/V

 

이러한 차별화는 어느새 '현대카드 스럽다' 라는 정체성으로 자리잡았다. 뭔가 범상치 않은 공연이나 광고를 보면 '이거 현대카드 껀가'라는 생각을 하게 될 정도가 된 것이다. 역사를 돌이켜보면 새로운 시대는 기존의 격을 파격하면서 도래했다. 산업혁명 이후의 근대사회나 고려를 무너뜨리고 세운 조선의 역사도 그렇다. 하지만 문제는 스스로 끊임없이 파격하지 않으면 언젠가 타인에 의해 파격 당하는 날이 온다는 사실이다. 그런 의미에서 지난 10년간 현대카드가 스스로를 끊임없이 파격하며 만들어 온 새로움이야 말로 <현대카드 시대>를 가능케 한 성공 원칙이다.

 

 

 

2. 본질을 위한 디자인

 


 

 

사실 디자이너들에게도 현대카드는 잘 알려져 있는 회사다. 독특한 사내문화와 디자인 회사가 아니면서도 디자인 회사 못지 않은 회사로써 실력 있는 디자이너들이 눈독 들이는 곳 중 하나다.

 
디테일 한 요소 하나 하나까지 디자인하는 그들의 모습을 보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행사에 사용할 생수병을 디자인하는 것은 물론이고 M시리즈의 미니 컨셉에 맞춰 안내데스크 직원의 바지길이를 줄이고, 양말 디자인까지 신경 써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오니 말이다.

 

 

 

현대카드 블로그에서 발췌한 글이다. 현대카드가 디자인에 많은 가치를 부여하지만 그것이 단순히 심미적인 측면에서가 아니라 소비자들이 현대카드라는 브랜드를 더 잘 이해하고 소통할 수 있게 하는 도구로써 디자인을 선택했다. 이에 대한 언급은 <현대카드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에서도 나타난다.

 

 

 

디자인은 정의처럼 항상 특정한 목적을 위해 만들어진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디자인을 단순히 한낱 포장술로만 치부하는 사람들이 많다. ‘유엔아이’ 서체 등 현대카드의 효과적인 디자인 활용에 영향을 받아 다른 기업들도 전용서체를 개발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하지만 이들이 ‘서체 디자인’을 그들의 새로운 포지셔닝을 위한 수단이 아닌, 단순 미적 표현의 수단으로만 여긴다면 전용 서체개발은 기업문서 서식 안에 들어가는 글씨체가 바뀌는 것 이상의 변화를 꾀하지 못할 것이다. 수많은 디자이너들이 배출되고 디자인을 활용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활발해질수록 ‘디자인 경쟁’은 피할 수 없다. 이 경쟁은 더 눈에 띄는 아름다운 표현으로 감성을 사로잡는 것이 될 공산이 크다. 하지만 디자이너는 단순히 ‘예쁘게’ 표현하는 사람이 아니라 ‘디자인의 목적’을 위한 ‘이유 있는 감성’을 만들어 내야 한다.

 

 

 

3. 스스로 존재하고, 살아있는 것
 

 

 

 

12년에 걸쳐 촬영된 영화 <보이후드>에서는 아역배우였던 엘라 콜트레인의 실제 성장과정을 볼 수 있다. 조금씩 변하기는 하지만 분명 그 얼굴에는 동일한 인상을 느낄 수 있다. 성장과 함께 일어나는 변화는 이전의 것과 다른 별개가 아닌, 변화하는 모든 과정이 존재 그 자체로서 하나의 맥락인 것이다.

 

 

 

 

 

브랜드 역시 일관된 맥락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자연스러운 사람의 성장과 다른 점은 특정한 형태로 포지셔닝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이 말은 전략과 상황에 맞추어 시장 대응이 가능하다는 것이며 동시에 특정한 원칙이나 비전이 없으면 유행 따라 흘러가기 쉽다는 의미기도 하다. 때문에 현대카드가 대단한 점은 강산이 변한다는 10년 동안이나 변함없이 같은 목소리를 냈다는 점이다.

 

그들은 철저하게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지키고, 회사 안팎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활동이 그들만의 철학 위에 있도록 한다. 실제로 현대카드에는 ‘인사이트 트립’이라는 제도가 있다. 이는 임직원들이 새로운 영감을 얻을 수 있도록 여행을 보내는 프로그램이다. 제도 자체도 기존 업계에서는 볼 수 없었던 새로운 관행이지만, 여행을 통해 수집한 정보와 아이디어를 '현대카드 스럽게' 풀어내는 것 역시 그들의 철학과 부합한다.

 

 

 

 

 

이쯤에서 우리는 한 가지 교훈을 얻을 수 있다. 바로 우리 자신에 관한 이야기다. 너무나 치열한 경쟁사회를 살다 보니 우리는 자신이 특별한 존재라는 사실을 곧잘 잊어버린다. 주변의 유행에 치여 우리가 추구하는 가치와 가능성에 대해 훨씬 과소평가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아는 피카소와 반 고흐도 어쨌거나 그저 자신만의 철학을 꾸준히 추구했던 사람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우리 역시 자신만의 철학을 꾸준히 좇고 적어도 자기 자신이 어떤 사람이고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알고 있다면, 남들이 보기엔 이미 특별한 빛을 내고 있을 것임이 분명하다.

 

언젠가 모 프로그램에서 가수 휘성이 했던 조언이 떠오른다. 그는 유행을 그저 좇지 말고 자신이 잘 하는 일이 유행이 될 때까지 내공을 쌓으며 기다리라고 했다. 결국, 자기만의 관점(or 철학)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다. 물론, 이 이야기가 모든 영역에 해당되진 않겠지만 한 번쯤 곰곰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우리 스스로가 누구인지 잊지 않을 때, 우리는 비로소 존재하며 또 살 수 있다.

 

 

 

 

아마도 제목을 보고 디자인 북 리뷰 코너에 웬 마케팅 책인가 하는 의문이 들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책을 선정하는 과정에서 탄탄한 정체성을 확립한 브랜드인 현대카드의 속을 들여다보는 것은 적잖이 의미 있는 일이라 생각했다. 현대카드는 이제 <월간 디자인>에도 수차례 등장하는 영향력 있는 브랜드이자 새로운 디자인 철학이다. 더불어 이들은 자신들만의 철학을 통해 세상에 통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렇다면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해답을 제시한다. 더욱이 디자인과 타 영역의 경계가 사라지는 시점에서, 디자인을 디자인으로만 바라봐야 한다는 생각은 스스로 고립시키는 일이 분명하다.

 

 

 


제목 REASON 리즌, 현대카드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저자
김성철
출판사 21세기북스
출판일 2013.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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