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한 일상의 실천] 3. 아직 끝나지 않은, 강정

15.01.07 0



크리에이티브 네트워크 <노트폴리오>에서는 세상에 존재하는 다양한 디자인 스튜디오의 작업 비하인드 스토리를 담은 <디자인 뒷간>을 기획했습니다. 앞으로 진행되는 <디자인 뒷간> 프로젝트를 통해 그간 궁금했던 스튜디오 작업 후기와 에피소드를 생생히 접해보세요. 담당 디자이너를 통해 보다 더 자세한, 보다 더 생생한 디자인 철학을 느껴보시길 바랍니다.

 

 

 

야속하다. 흐르는 세월이, 사라지는 모든 것들이 야속하다. 하물며 잊혀진 기억은 어떤가. 감당하기 벅찬 기억들이 저장되지 못한 채 채워지고 잊혀짐을 반복하는 사이, 우리는 기억과 망각의 굴레를 익숙한 습속으로 받아들인다. 그리고 결국 당연하다는 듯, 익숙함이라는 이름으로 삶을 무감각하게 평정한다.

 

이 글은 제주 서귀포시에 위치한 작은 시골 마을에 관한 이야기이다. 한때는 격렬한 논쟁의 무대였으나 지금은 뇌리에서 잊혀진, 더 이상 관심사로 꺼내기 애매한 지난 기억에 대한 반추이기도 하다. 하지만 우리는 또한 얼마나 많은 기억과 망각을 되풀이했던가. 어쩌면 이 글은 익숙함을 넘어, 잊기를 반복하던 야속한 습속에 대한 자조 섞인 반성이다.

 

 

 

 

 

 

강정마을. 수 십 명의 사람이 운집하기만 해도 시끌벅적 한 작은 마을이었다. 지도에서도 한참 찾아야 하는 작은 섬마을은 2007년 해군과 정부가 주도한 신항만 건설계획의 최우선 대상지로 선정됐다. 그 후, 마을 주민들과 제주시 간에 다난한 부침을 끝으로 2011년, 구럼비 폭파와 함께 제주해군기지는 결국 공사에 착수했다.

 

제주해군기지를 찬성하던 여론은 지역발전과 인접국가 견제 등을 근거로 제시했다. 하지만 이로 인한 생태 환경의 악화와 훼손은 빼놓을 수 없는 화두였다. 특히,  건설 현장은 멸종위기 2등급 종 ‘붉은발말똥게’의 서식지로, 이 지역을 포함한 인근 해역의 연산호 군락은 콘크리트에서 발생한 오염물질로 인해 복원 불가능한 상태에 다다랐다. 촉박한 일정으로 강행한 환경영향평가의 불투명성과 실제 민간 시설에 투입될 예산이 전체 예산 1조 300억 원 중 10%도 되지 않는 민군복합형 관광미항의 허위성은, 과연 ‘이 사업이 누구를 위한 사업인지’ 되묻지 않을 수 없었다. 결국 이 나라의 국책사업이란 예의 그렇듯, ‘생태계 훼손’과 ‘주민 반발’쯤은 가볍게 무시한 채 강행하는 ‘신개발주의’의 민낯이었다.

 

2011년 이후, 우리가 알고 있는 강정마을의 이야기는 여기까지다. 당시 온갖 매체에 오르내리던 강정마을은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레 다른 꼭지들로 갈아치워졌고, 우리는 더 이상 마을의 소식을 전해들을 수 없었다. 그렇게 강정마을은 기억 속으로 속절없이 사라졌다.

 

 

 

 

 

 

2014년 1월, 강정마을의 이야기를 다시 듣게 된 것은 우연에 가까웠다. 우리는 당시 내부 프로젝트로 진행하고 있던 <일상의 물건>을 위해 제주평화상단 활동가를 만날 수 있었다. 그 자리에서, 우리는 희미하게 잊혀져 가던 강정마을의 흔적을 전해 들었다.

 

7년 전, 강정마을 주민들은 제주해군기지 최우선 대상지 선정을 두고 찬반 양론으로 첨예한 대립각을 세웠다. 그렇게 좁혀지지 않은 갈등 사이에서, 제주시와 정부는 찬성 여론에만 힘을 실어주는 입장을 고수하며 갈등의 격차를 좁히지 못했다. 자연스럽게 반대 여론 측 주민들의 반발은 더욱 거세졌고, 결국 정부는 공권력을 투입시켜 물리적 충돌을 부추겼다. 돌이킬 수 없는 갈등을 마주한 강정마을은 삽시간에 무너졌다. 찬반으로 나뉜 주민들은 상대방이 운영하는 가게를 이용하지 않음은 물론이고, 부모와 자식 간 왕래조차 하지 않으며 친척 사이에도 제사를 따로 지낼 정도로 관계가 악화되었다고 했다.

 

이야기를 듣는 내내, 씻을 수 없는 절망감이 밀려 들었다. 한편으로는 -물리적으로- 먼 곳의 사건이었으므로, 나 역시 그사이 아무렇지 않게 잊고 살아 온 것은 아닐까 하는 부끄러움마저 느꼈다. 몇 해 전, 매체를 뜨겁게 달군 강정마을을 바라보며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생각에만 잠겼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리고 끝나지 않은, 강정마을의 이야기를 담아야겠다는 생각이 고개를 들었다.

 

 

 

 

 

 

그렇게 우리는 디자이너로서 강정의 지금을 이야기하고 싶다는 의견을 활동가에게 전했다. 얼핏 즉흥적인 제안에 가까웠지만, 실은 오랫동안 하고 싶었던, 해야만 했던 묵은 제안이었다. 조만간 제주도에 내려가겠다는 약속과 숙소를 제공하겠다는 화답을 주고받으며 그날의 만남은 일단락됐다.

 

제주평화상단 활동가와의 만남 이후, 우리는 틈날 때마다 강정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이제껏 강정을 주제로 다뤄왔던 거대하고 두루뭉술 한 이야기가 아닌, 보다 명확한 메세지로 주제를 드러내고자 했다. 무엇보다 이 작업이 디자이너의 욕망에 머무르는, 소위 ‘때깔 나는’ 작업으로만 비춰지지 않도록 지나친 기교와 장식을 최대한 거둬내야 한다고 의견을 모았다. 강정을 마주하는 사람들에게 볼썽사나운 연민 따위로 읍소하는 작업이 되지 않기를 바랐다.

 

강정을 이야기하는 많은 문장들 중, 당시 많은 사람들이 사용했던 문장이 생각났다. ‘우리는 서로 연결되어 있다’. 문장은 비단 강정이 아닌, 모든 관계와 사건을 바라볼 때 간직해야 하는 궁극적인 대답이었다. 하지만 ‘우리’라는 단어가 주는 모호함이 또 다른 외면을 야기할 수 있다고 판단했고, 그러한 이유로 ’우리’라는 단어 대신 ‘너와 나’라는 보다 직접적인 단어를 택했다.

 

- 평화 (平和), 우리는 서로 연결되어 있다! 

 

 

 

 

사람의 이야기. 어떤 미사여구도 필요 없는 주민들의 이야기. 그것을 통해 ‘나와 다르지 않은’ 그들을 환기시키고 싶었다. 우리는 주민들의 얼굴을 통해 강정의 이야기를 전하기로 했다. 마치 거울을 보듯, 사람들이 작업을 마주했을 때 또 다른 나의 모습이라는 생각을 갖길 바랐다. 거친 바닷가 바람이 새겨놓은 얼굴의 주름은 강정의 지나온 세월과 꼭 닮아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주민들의 얼굴이, 곧 강정이었다. 우리는 강정의 온전한 흔적 위에 ‘빛’이라는 물성을 활용하기로 했다. 희망의 상징이자 반사(reflection)을 은유 하는 빛을 사용함으로써, 그들의 얼굴을 통해 또 다른 내가 투영되고 있음을 적확하게 나타내고 싶었다. ’너와 나는 서로 연결되어 있다’라는 문장을 다섯 개 단위로 잘라, 빛이 관통하는 구조를 만들었다. 그렇게 준비를 마친 후, 장비를 챙기고 비행기 티켓을 끊었다.

 

 

- <너와 나는 서로 연결되어있다>의 작업과정 

 

 

 

 

 

화요일 늦은 밤, 우리는 강정마을에 도착했다. 나흘 동안 머무를 예정이었지만, 주어진 시간은 이틀이 채 되지 않았다. 그저 사람들의 얼굴만 촬영하는 것이 아니었기에 일정은 더욱 빠듯했다. 고요한 한밤의 적막은 마치 폭풍전야처럼 날카로웠다. 우리는 늦은 저녁으로 허기와 긴장을 달래며 익숙지 않은 잠자리에 들었다.

 

이튿날 새벽, 부산한 움직임으로 장비를 챙긴 후 현관을 나섰다. 어둠이 토해낸 강정의 아침은 지나온 투쟁의 온갖 흔적들로 얼룩져 있었다. 공사장 입구에는 매일 아침 천주교 신부님들과 주민들의 미사가 이어졌고, 신부님들은 그때만큼이라도 사력을 다해 공사장 입구에 앉아 공사를 지연시켰다. 수많은 경찰 병력과의 대치가 일상이 되어버린 현장에서, 우리는 더욱 주민들 속으로 들어가야만 했다.

 

 

 

 

 

 

삼거리 식당. 제주해군기지건설 반대 주민들이 이용하는 이 식당은 미사를 마친 마을 주민들이 모여 음식을 덜어 먹은 후, 설거지로 정리하는 자발적인 방식으로 운영된다. 그 옆에는 제주평화상단에서 판매하는 상품을 위해 주민들이 모여 귤을 까는 작은 방이 있다. 우리는 점심을 먹고 설거지를 마친 뒤, 주민들과 함께 귤을 까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거리를 좁혀 나갔다. 게 중에는 마을의 현주소를 가감 없이 설명해 주시는 분들도 계셨지만, 여전히 경계심을 놓지 않는 분들도 계셨다.

 

촬영에 대한 이야기는 꽤나 조심스러웠다. 얼굴을 드러낸다는 것은 자칫 위험을 감수 해야 하는 일이었다. 때문에 무거운 마음으로 한 분 한 분께 작업 의도를 설명 드렸고, 처음에는 손사래 치며 거절하셨던 분들도 서서히 마음을 열고 적극적으로 참여해 주셨다. 빛의 이미지를 드러내기 위해 귤을 까는 방보다 더 작은 골방에서 불을 꺼놓은 상태로 촬영을 진행했다. 오랜 시간을 지체할 수 없었기에 신속하게 각자의 역할을 나눴다.

 

 

- 강정마을 주민들의 얼굴을 담은 빛 프로젝트

 

 

- <너와 나는 서로 연결되어> 있다 포스터 

 

 

 

 

 

‘끝나지 않은 강정’은 두 가지 시리즈로 준비된 작업이다. 하나는 ‘주민들의 얼굴’로 이루어진 작업이고, 다른 하나는 ‘마을의 모습’으로 이루어진 작업이다. 하지만 빛을 활용한 작업이었으므로 밤에만 촬영을 진행해야 했다. 촉박한 일정으로 마을의 모습을 제대로 담아내기 어렵다는 판단이 들었다. 결국, 마을 시리즈는 사람들에게 보일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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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정마을의 모습을 담은 빛 프로젝트, 촉박한 일정으로 선보일 수 없었다 

 

 

 

 

 

마을에 머무르면서 많은 분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 중에는 강정마을 소식을 국내외로 알리는 활동가도 있었다. 미국인 활동가 파코(Paco)는 어깨너머로 배운 인 디자인 프로그램을 활용해 ‘강정마을 신문’을 국내/외로 발행하는 인상적인 사람이었다. 하지만 전문적이지 못한 탓에, 읽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는 디자인이었다.

 

우리는 우리가 하는 일을 설명하며 신문 디자인 리뉴얼을 제안했고, 파코는 크게 반겼다. 리뉴얼된 신문은 장식적인 요소를 완전히 배제한 디자인이었는데 파코가 원본파일을 가지고 작업하기 쉽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강정에서의 일정은 이렇듯 많은 사람들과 도움을 주고받으며 마무리됐다.

 

- 강정마을신문

 

 

 

 

 

한달 전쯤이었던가. 서초동에서 클라이언트와 미팅을 마친 후 작업실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기가 막힌 풍경을 발견했다. 외국계 호텔기업인 R호텔에서 분양 중인 모델하우스 지점이 다름 아닌 ’제주 강정’인 것이다. 실제로 세워질 부지 또한 ‘강정동’임을 감안한다면, 강정은 이미 외부인들의 투기와 이해관계로 훨씬 더 망가져 있겠다는 걱정이 들었다. 그때 뵀던 주민들의 얼굴이 떠올라, 다시 한번 마음이 쓸쓸해졌다.

 

제주해군기지는 커다란 변수가 없는 한, 결국 완성될 것이다. 또한 제주해군기지 건설을 시작으로 민간 여가 시설이 물밀 듯 들어설 것이다. 마을 주민 숫자와는 비교가 안될 엄청난 인구가 마을을 거쳐갈 것이고, 그로 인해 마을의 인상은 나날이 바뀔 것이다. 물론 바라지 않는 방향으로 말이다. 이 무기력한 싸움을 지켜보면서, 나는 강정을 닮은 ‘또 다른 강정’을 떠올리게 된다. 밀양과, 청도와, 가리왕산 그리고 채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숱한 닮은 꼴들.

 

우리가 망각하는 닮은 꼴들이 쌓여갈수록, 우리는 또 다시 승산 없는 싸움을 지지하며 눈물을 흘려야 할지도 모른다. 이 지독한 반복은 언제쯤이면 멈출 수 있을지, 언제까지 날카로운 절망과 싸워야 하는지, 시커먼 무기력감이 다시금 밀려들지도 모른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한다. 이 모든 닮은 꼴의 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김어진

불친절한 그래픽디자이너. 별로 착하지 않은데 이름때문에 착하다고 오해받을 때 부담스럽다.
권준호, 김경철과 함께 디자인 스튜디오 <일상의실천>을 공동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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