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한 일상의 실천] 04. 테이크 아웃 드로잉과 일상의 실천

15.04.13 3

 

크리에이티브 네트워크 <노트폴리오>에서는 세상에 존재하는 다양한 디자인 스튜디오의 작업 비하인드 스토리를 담은 <디자인 뒷간>을 기획했습니다. 앞으로 진행되는 <디자인 뒷간> 프로젝트를 통해 그간 궁금했던 스튜디오 작업 후기와 에피소드를 생생히 접해보세요. 담당 디자이너를 통해 보다 더 자세한, 보다 더 생생한 디자인 철학을 느껴보시길 바랍니다.

 

 

테이크아웃드로잉, 그리고 일상의실천

 

처음 ‘테이크아웃드로잉’을 알게 된 것은 디자이너 박우혁의 작업을 통해서였다. 어느 순간부터 그의 작업 목록에 등장하기 시작한 ‘테이크아웃드로잉’은 그 독특한 이름만큼이나 개성 있는 이미지로 시선을 끌었다. 한 작가의 전시 홍보물이자 카페 메뉴와 소식을 담은, 포스터이자 메뉴판인 그 신문은 당시 시각디자인을 공부하는 학생들 사이에서 멋진 디자인을 선보이는 수집 아이템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디자인은 곧 ‘상품을 포장하고 팔아먹는 것’이라고 가르치던, 내가 졸업한 대학의 교수들은 꿈도 꾸지 못할 실험적이고 세련된 이미지에 나 역시 열광했지만, 그 열광이 ‘테이크아웃드로잉’이라는 공간으로까지 이어지지는 못했다. 그것은 아마도 한국 사회, 특히 서울이라는 지역에서 ‘카페’라는 공간이 나에게 지속적으로 전해준 상징성 때문이었다. 

 

내가 속한 사회가 결코 정당한 절차대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생각을 갖게 된 이후부터, 시청 앞 거리에서 혹은 광화문 광장에서, 목숨을 건 절규를 뱉어내는 사람과 길 건너 안락한 카페에 앉아 무심한 표정으로 그들을 내려다보는 사람 사이의 간극은 너무 멀게만 느껴졌다. 이스라엘의 전쟁 자금을 후원하고 있는 스타벅스의 커피를 단지 ‘맛있기’ 때문에 아무 거리낌 없이 마실 수 있는, 서울 한복판의 전쟁터는 나와 상관없는 다른 세상의 일이라고 느끼는 그들에게 디자인이 할 수 있는 일이란 너무나 미약해 보였다. 사회에 대한 분노와 디자인에 대한 무력감으로 가득 차 있던 나는, 테이크아웃드로잉에 찾아오는 사람들 역시 그곳을 포장하고 있는 멋진 이미지를 소비하려는 허영심에 가득찬 사람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 허영심은 대학 시절을 지나며 줄 곳 부정하려고 발버둥 치던, 교수들이 정의 내린 ‘포장지로서의 디자인’의 본질과 크게 다르지 않게 느껴졌다.

 

 

 

난센 여권, 아직 빛이 얼마 동안은 우리 가운데 있을 것이다

 

일상의실천을 시작 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테이크아웃드로잉으로 부터 연락이 왔다. 자신을 ‘삼성’이라 소개한 그는 나의 작업과 내가 사회를 바라보는 시선에 관심이 있다고 했고, 만나서 이야기 나누고 싶다고 말했다. 용산 참사의 희생자, 그리고 참혹한 기억을 지닌 여성 탈북자 등, 사회의 소수자와 약자의 목소리를 전달한 내 작업에 테이크아웃드로잉 관계자가 관심을 갖는다는 것이 놀라웠다.

 

그들이 준비하고 있던 프로젝트는 한국 사회에서 살아가고 있는 난민의 삶에 대한 것이었다. 그들은 이미 수개월 동안 한국의 난민에 대한 리서치를 진행하고 있었고 카페 3층 공간을 난민 사무실처럼 사용하고 있었다. 두껍게 쌓여 있는 리서치 자료들과 난민 인터뷰, 그리고 전국에 흩어져 있는 난민 센터의 특징을 정리한 자료는 그들의 행위가 ‘사회문제’로 포장된 예술가의 자위행위를 넘어서고 있다는 확신을 주기에 충분했다.

 

 

 

소위 ‘사회문제’를 다루는 예술이 당사자의 삶을 작업의 소재로 소비하는 것에 강한 반감을 가지고 있던 내가 스스로에게 반복해서 묻던 질문은, ‘이 작업이 과연 그들의 삶에 어떤 도움이 되는가’라는 것이었다. 많은 예술가와 디자이너들이 ‘착한 예술’, ‘착한 디자인’이라는 미명 아래 사회의 어두운 구석을 작업을 소재로 사용한다. 그것은 사진을 처음 접한 학생이 허름한 시장 골목과 상인을 -그 공간과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맥락과는 상관없이- 향해 누르는 폭력적인 셔터와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들의 삶이 가진, 낯설기 때문에 매력적인 시각적인 질감이 갤러리라는 공간에서 전시되고 소비될 때, 그 행위의 동기는 타인의 관심에 머물 뿐, 작업의 대상에 어떠한 직접적인 영향도 행사하지 못한다. 그러나 테이크아웃드로잉의 난민에 대한 관심은 나의 우려를 넘어서는 것이었다. 그들은 주제를 홍보하고 사람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시각디자인이 가진 태생적인 한계를 넘어 난민들의 일자리를 알아봐 주거나, 한국의 제도에 익숙하지 않은 난민이 겪는 어려움을 함께 해결하려는 의지를 보였다. 그들은 피난처, 난민센터 등의 난민 단체와 유기적으로 협조했고, 예술이 그 안에서 할 수 있는 역할에 대해 고민했다.

 

 

 

일상의실천은 테이크아웃드로잉에서 체류 하며 난민 작업에 참여하기로 결정했고, 우리의 작업 역시 예술의 자기만족에 머물지 않는 디자인의 기능적인 측면이 반영된 작업을 하기 위해 노력했다. 1922년 프리드쇼프 난센에 의해 도입된 수십만명의 난민 이주를 가능하게 했던 국제 신분증 ‘난센 여권’에서 모티브를 얻은 이 작업은 4개월 동안 진행되었는데, 우리는 그 기간 동안 난민이 운영하는 식당에서 밥을 먹고, 난민 행사에 참여하기도 했다. 또한 난민 센터에 방문해 그들이 예술이라는 행위에 기대하는 것을 직접 들을 수 있었다. 방글라데시 난민 로넬이 출판한 치타공 지대 원주민의 삶과 문화에 대한 책을 디자인했고, 우리의 작업이 그들이 생활하는 실제 공간에서 어떤 ‘역할’을 수행할 수 있기를 희망했다.

<난센여권>은 난민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에 대한 생각에서 출발했다. 한국 사회의 난민을 바라보는 시각은 자신이 처한 환경에 따라 다르다. 어떤 이에게 난민은 함께 살아가야 할 이웃이기도 하지만, 또 다른 이들에게는 그렇지 않아도 부족한 정부의 복지 예산을 빼앗아 가는 불필요한 짐이라는 오해를 불러 일으킨다. 일상의실천은 난민의 존재를 잠시 머무르는 빛에 비유한 ‘아직 얼마 동안은 빛이 우리 가운데 있을 것이다’라는 문장이 <난센여권>프로젝트를 상징하는 문장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 모호한 의미를 지닌 문장 속에서 난민은 우리 곁에 잠시 머무는 연약한 빛이며, 서로에게 등을 돌리고 살아가는 현실의 가운데에 존재하는 우리와는 조금 다른 존재이기도 하다. 비록 그들의 존재가 우리의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지 못하더라도, 그 연약한 빛은 우리 일상 속에 숨어있는, 보이지 않는 서로에 대한 깊은 편견을 미약하게나마 드러낼 수 있기를 바랐다.

 

 

 

테이크 아웃 드로잉, 그리고 용산참사

 

4개월 간의 레지던시와 난센 여권 전시 이후, 일상의실천은 테이크아웃드로잉 신문과 전시 디자인을 진행하게 됐고, 일상의실천 작업실이 이태원 지역으로 이사 오면서 조금 더 가까운 거리에서 지속적인 협업을 진행했다. 2014년, 테이크아웃드로잉은 이태원 해방촌에 꽃집과 서점 그리고 갤러리를 포함한 ㅊ이라는 이름의 지점을 오픈했는데, 그 공간의 개관전으로 용산 참사에 대한 작업 ‘저기 사람이 있다’를 초대했다. ‘저기 사람이 있다’는 내가 2010년에 작업한 용산 참사 희생자 가족의 목소리를 담은 설치 작업이다. 이 작업은 비록 ‘용산’이라는 지역에서 벌어진 참사에 대해 다루고 있지만, 내가 다루고자 했던 주제는 국가와 건설사에 의해 자행되는 폭력적인 재개발과 그 과정에서 쫓겨나야만 하는 세입자에 대한 이야기였다. 용산 4구역에서 벌어진 참사는 이제 더 이상 한국 사회에서 언급되지 않는 이야기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치유할 수 없는 상처를 남긴 참사이자 현재도 진행되고 있는 폭력적인 재개발의 극단을 보여주는 사건이다.  

 

2015년 어느 날, 테이크아웃드로잉 관계자에게 다급한 문자를 받았다. 그는 가수 싸이가 고용한 용역들이 건물로 진입하려 하고 있고, 카페 직원들과 대치 중이라고 말했다. 나는 용역이라는 단어에 소스라치게 놀랐다. 2009년 용산에서 마주친, 재개발을 반대하며 거주하던 세입자에게 똥물과 연탄재를 던지며 협박하던 그들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테이크아웃드로잉은 싸이가 고용한 변호사와 그 변호사가 고용한 요역들에 의해 둘러싸여 있었고, 그들은 카페 입구에 건물을 전부 가릴 정도 높이의 펜스를 쳐놓았다. 그들은 테이크아웃드로잉의 가스, 전기와 수도를 모두 끊었고 내부 집기를 끌어냈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경찰차에서 대기하고 있었지만 휴식을 즐기는 사람처럼 의자를 뒤로 제친 채 무관심한 표정으로 반쯤 누워있었다. 빨간 잠바를 입은 용역들은 익숙한 태도로 직원들을 협박했고 변호사는 어떻게 하면 카페 직원을 가해자로 만들 수 있는 조언했다. 실랑이 끝에 카페 직원이 자동문에 목이 끼인 체 5분간 방치됐고, 그는 결국 병원으로 이송됐다. 이송되는 그를 보며 싸이가 고용한 변호사는 용역에게 뇌까리듯 말했다. “여러분들도 아프면 빨리 진단서 끊어 오세요.”

 

 

 


법적으로 문제 없는 일

 

영화 <건축학개론>의 배경으로 등장하면서 테이크아웃드로잉은 대중적인 카페로 널리 알려졌다. 하루 수백 명의 사람들이 테이크아웃드로잉에서만 판매하는 ‘드로잉 메뉴’를 찾아 카페로 몰려들었고 테이크아웃드로잉은 더 이상 아는 사람만 아는 문화 공간이 아닌 ‘이태원 지역의 유명한 카페’로 거듭났다. 그러나 이들은 자본가의 입장에 서기를 꺼려했다. 카페로 개방한다면 더 많은 고객에게 커피를 팔 수 있는 공간을 ‘예술 작가’를 위한 레지던시 공간으로 활용했고, 새로 오픈한 ㅊ은 아예 1층과 지하 공간을 예술 관련 서점과 갤러리로 사용하고 있다.

 

테이크아웃드로잉 레지던시는 젊은 작가에서 중견 작가, 일상의실천과 같은 디자인 팀까지 다양한 예술가와 디자이너가 거쳐갔고 그들이 만들어낸 결과물의 문화적 영향력은 자본의 이해관계와는 다르게 움직인 테이크아웃드로잉의 지원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문화적 풍성함은 ‘돈’으로 환산 될 수 없는 것이었으며, 돈으로 환산 될 수 없는 것의 가치를 인식하지 못하는 사람에게 테이크아웃드로잉은 단지 영화의 배경으로 등장한 ‘쿨’한 인테리어의 카페로 밖에 인식되지 않는 듯했다.

 

‘강남스타일’이라는 댄스 가요로 국민 가수, 문화 대통령으로 추앙받는 싸이는 사실 B급 문화와 엽기 가수의 상징적인 인물이었다. 그가 처음 대중에게 모습을 드러낸 2000년 초반 한국 사회는 엽기 개그가 유행처럼 번지고 있었고, 하위문화였던 엽기 코드는 싸이의 등장과 함께 대중적인 이미지로 거듭났다. 그의 1, 2집 노래를 들어 보면 그가 갖고 있던 주류 문화와 신자유주의로 대변되는 자본의 폭력성에 대한 반감을 명확하게 볼 수 있다. 시간이 흘러 그의 음악 역시 순화되었고 그는 주류 문화의 아이콘이 되었다. 그는 여러 난관을 뚫고 자본가의 대열에 성공적으로 합류했다. 자신의 초대형 히트곡에 걸린 표절 시비를 깔끔하게 막아준 엔터테인먼트 전문 변호사 정경석은 그의 신분 상승에 일조해준 고마운 존재였을 것이다. 테이크아웃드로잉에서 마주친 정경석 변호사는 당당하게 말했다. “당신 말 똑바로 해. 이거 법적으로 문제없는 일이야.”

 



이전 건물주와의 계약 등 복잡한 사안이 걸려있는 법적인 문제를 그는 아마 누구보다 명확하게 파악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법원은 강제 철거를 멈추라는 지시를 내렸고, 그와 그가 고용한 용역은 그 판결이 나오기 불과 몇 시간 전 강제 철거를 진행했다. 그가 간파하고 움직이는 ‘법’이란 자본가와 세입자의 권리를 동등하게 보장해주는 법이 아닌, 법이 미처 돌볼 수 없는 사람들이 무방비로 노출되어야 하는 법의 사각지대다.

 

하루라도 빨리 공사를 진행시켜 손실을 최소화하려는 자본가, 자본가의 손익 계산에 따라 ‘법대로’ 움직이는 변호사, 그리고 그들의 욕망을 현실로 실현시켜 주는 용역들. 이 세 그룹의 조합은 용산 참사, 아니 그 훨씬 이전부터 이윤에 따라 움직이는 자본이 개입되는 역사 속 사건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조합이다. 용역은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이고, 변호사는 법대로 했을 뿐이며, 자본가는 내 돈 내 마음대로 하는데 어느 누가 간섭하는가,라는 논리로 대응할 것이다. 그들의 머릿속에서 하나의 지역 사회에서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문화’가 발생하는 동기와 그것이 갖는 가치란 존재하지 않는다.

 

 


문화적 가치와 문화 대통령 싸이

 

테이크아웃드로잉과 싸이의 법적 분쟁이 알려지면서 여러 매체에서 기사를 냈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테이크아웃드로잉이라는 공간이 가진 문화적 상징성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문화란 소비되는 것이며, 그것은 곧 문화 역시 돈으로 살 수 있는 상품의 지위를 가질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마도 테이크아웃드로잉에 방문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테이크아웃드로잉이 갖는 문화적 가치가 아닌, ‘영화 속 등장인물이 앉아 있던 공간에서 마시는 커피’라는 이미지에 돈을 지불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 영화 <건축학 개론>에 등장한 테이크 아웃 드로잉 

 

 

테이크아웃드로잉은 국민 가수 싸이라는 거대한 자본에 저항하고 있다. 하지만 이미 많은 사람들이 이 사건을 국민 가수에게 들러붙어 돈을 뜯어내려는 욕심 많은 세입자의 발버둥으로 치부하고 있고, 이들의 저항은 사람들의 무관심 속에 무력하게 끝날지도 모른다. 싸이는 테이크아웃드로잉을 쫓아내고 프랜차이즈 커피숍을 오픈하겠다고 한다. 100억대의 돈이 왔다 갔다 하는 판국에 문화적 가치를 이야기 하는 것은 누군가에게 지나치게 한가한 낭만적인 생각일 것이다. 그러나 대중의 문화에 대한 욕망을 충족 시켜주며, 그들이 지불하는 돈으로 거대 자본가의 대열에 합류한 대중가수 싸이에게 자본의 지원 없이 자가 생산을 겨우 일궈낸 문화 공간의 가치를 존중하라는 요구는 지나치게 부당한 것일까. 전국에서 같은 맛의 커피를 판매하는 대형 커피 체인점에서 ‘문화 대통령’ 싸이가 성취하고자 하는 문화적 가치란 도대체 무엇인가, 나는 묻고 싶다.

 

 

권준호

그래픽디자이너. 영국 왕립예술대학교(RCA)에서 커뮤니케이션 아트&디자인을 전공하고, 같은 곳에서 일 년간 RDP(Research Design Publishing)과목을 강의했다. 조나단 반브룩 스튜디오와 와이 낫 어소시에이츠에서 그래픽디자이너로 일했으며, 현재 김어진, 김경철과 함께 디자인 스튜디오 ‘일상의실천’을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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