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쾌한 에너지를 담은, 글자같은 그림 - 일러스트레이터 엄고기

14.06.09 0



그림을 보기 전에, 이름을 보자마자 웃음이 새어나왔다. 작가 이름이 ‘엄고기’라니! ‘고기를 지나치게 좋아하는 건가.’ ‘고기에 관련된 극사실주의 작품을 그리는 작가인 걸까.’ 상상의 세계에 한없는 오지랖 정신을 펼치다가, 결국엔 작가에게 물어봤다. 필명이라고 생각했지만, 무슨 뜻을 품고 있는지가 궁금해서였다. 때는 엄 작가가 대학교 1학년일 무렵, 다 같이 동기들과 함께한 MT에서였다. 왠지 사람들에게 봉사하는 모습을 보여줘야겠다는 열의에 찬 그는, 선뜻 나서서 고기를 누구보다 열심히 구웠다. 그 모습에 반한 동기들은 그에게 ‘고기’라는 별칭을 붙여줬고, 그때부터 그는 엄고기로 불리고 있다. 요즘엔 자신이 그린 그림 속의 인물들처럼, 통통하게 볼에 살이 올라서 더 잘 어울리는 별칭이 됐다고.

그는 자신의 일상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들을 주로 소재로 삼는다. 거창하고 무거운 것들보단, 유쾌한 에너지를 그림에 담는다. 세상을 밝고 긍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는, 엄 작가의 마음이 작품에도 오롯이 녹아드는 것이다. 일상의 이야기를 담기에, 종종 그림 속엔 엄 작가 자신이 등장하기도 한다.

엄고기 작가의 작품들은 마치 타이포그래피 같다. 일부러 형태에 제한을 두고선, 퍼즐을 조합하듯 작업을 하는 것에 그가 흥미를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작업할 때는 머리가 아프지만, 결과물을 마주했을 때의 만족감은 대단하다고 한다.

우리의 일상을 몽실몽실 귀엽게 그려낸 엄 작가의 그림들은, 한껏 자유로운 느낌은 아니다. 그가 형태에 제한을 두고선 작업을 하기에, 그림 속 인물들은 틀 안에 갇혀 있단 느낌이 들기도 한다. 그래서 더욱 마음에 와 닿는다. 매일 아침 지옥철을 타고, 과중한 업무에 시달리다, 끝내 밤이면 술로 시름을 달래는 일상. 이러한 우리의 일과는, 제한적이다. 그렇지만 보는 이의 마음을 편안하게 만드는 그의 그림들에는, 그래도 언제나 따스한 유쾌함이 묻어난다. 정신없고 퍽퍽한 일상에서도, 기어코 재미를 찾아내 깔깔 웃는 우리의 모습처럼.

 

 

<둘이서>

 

<엠티>

 

<커피와 사람>

 

<단어시리즈>

 

“행복하게 살고 싶어요. 제가 행복하려면 제 주변 사람들도 행복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사람들에게 밝고 상냥하게 행동하려는데 마음처럼 쉽진 않더라고요. 그래서 이렇게 그림으로나마 제 마음을 전하려 해요. 제 그림을 보고 사람들이 잠깐이지만, 웃을 수 있다면 제 의도는 충분히 전달됐다고 생각해요.”


엄고기
notefolio.net/eomgog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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