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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지적 작가 시점] 평면에서 이끄는 상상력, Lazy Dawn

16.11.04 1

<전지적 작가 시점>은 노트폴리오에 작품을 게재하는 작가를 선정해 그의 작품을 인터뷰하는 자리입니다. 그동안 작가가 어떤 의도로 이런 그림이 그렸는지, 무슨 생각으로 이런 표현을 했는지 궁금하셨죠? 앞으로 진행되는 <전지적 작가 시점>을 통해 작가보다 작품 중심의 이야기를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Lazy Dawn

 

마담 프루스트의 비밀정원, 2013

 

fallin' fallin' fallin' in love again, 2016

 

dreamy moment, another no name girl, 2016

 

Lazy dawn의 그림을 크게 범주화 하자면 3개로 나눌 수 있다. 1) 영화를 주제로 한 일러스트와 2) 강렬한 색감의 배경을 가진 아트웍, 그리고 3) 이국적인 소녀들이 등장하는 일러스트다. 특별히 작업을 범주화해서 하는 이유가 있나.

특별한 이유가 있다기 보다 작가로서 저만의 색깔을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늘 개인 작업에 대한 욕심이 있었지만 바쁘다는 핑계로 마음만 먹고 있었거든요. 그러다 최근에 프리랜서로 전향하면서 온전히 저를 위한 작업을 시작하게 됐어요. 처음엔 우선 좋아하는 것부터 해보자 해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고, 하나하나 영역을 넓히다 보니 자연스럽게 세 가지의 범주로 분류가 된 것 같아요.

 

 

no name girl. 1

 

범주화된 작업의 주제마다 표현법이 다르게 느껴진다. 각각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나.

우선 영화를 주제로 한 작업은 일종의 ‘글을 대신한 감상문’이라고 보면 돼요. 좋아하는 영화의 느낌과 감정을 오래도록 간직하기 위해 시작한 작업이거든요. 그런데 점차 시간이 지나고 보니 단지 영화의 한 장면을 그리는 게 아니라 여러 가지 인상 깊었던 장면이나 소품과 문구 등을 조합한 콜라주로 표현하게 되더라고요. 보통, 작업에 들어가기 전에 좋아하는 영화를 한 두 번씩 다시 보기도 해요. 그러다 보면 좀 더 디테일한 감정선을 느낄 수 있거든요.

<no name girl>시리즈는 처음 <none>이라는 제목의 그림을 그리고 나서 본격적으로 작업하게 됐어요. 왜, 아무 생각도 하고 싶지 않은 그런 날이 있잖아요. 바로 그런 날의 그림이에요. 그림을 완성하고 나니 아무런 이름도 지어주고 싶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no name girl이라는 제목을 붙여봤어요. 그 후로 불특정 다수의, 서로를 닮은 듯 닮지 않은 소녀들을 그리고 있습니다.

gradient 아트웍은 모두 배경을 먼저 그리고 시작한 충동적인 그림이에요. ‘어떤 걸 그려야지’ 하고 시작한 게 아니라, 하나의 공간을 먼저 만든 후 ‘이 공간에 뭘 채워 넣으면 재미있겠다.’하고 그린 거죠. 개인적으로 평면의 그림에서 묘하게 느껴지는 공감각이 상상력을 불러일으켰으면 좋겠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업 대부분이 ‘강렬한 색감’을 띈다는 공통된 특성이 있다. 이러한 특징을 갖게 된 계기가 있나.

작업을 할 때 시각적인 모든 것에 영향을 받지만 주로 색감을 통해 영감을 얻어요. 우연히 길을 걷다 마주친 색이 바란 낡은 건물과 그 주변의 사물을 보고 ‘이 조합으로 그림을 그리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메모장에 적어두기도 해요. 그게 언제 실현될지는 모르지만 생각이 날 때쯤 다시 꺼내보고 일단 배경으로 깔아 놓아요. 그리고 이제 무엇으로 채워 넣을지 생각하죠. 어쩌면 단순 무식한 방법일 수도 있지만, 아무 생각 없이 작업할 때 마음에 드는 그림이 종종 나오더라고요.

 

 

#01. Gradient art work

 

these foolish things, 2016

 

<these foolish things>는 단순히 다이빙을 하는 소녀를 그린 그림 같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왠지 끊임 없이 같은 자리를 돌고 있는 모습 같기도 하다. ‘these foolish things’라는 제목이 이러한 감상을 더하는데 어떤 의도를 표현했나.

그림의 제목인 <these foolish things>는 작업 당시 들었던 노래의 제목이에요.이 곡이 저에게는 헤어나올 수 없는 ‘순환’과 ‘반복’의 느낌으로 다가왔어요. 약간은 몽롱한 보이스와 늘어지는 비트의 곡 분위기가 직선보다는 곡선, 멈춤보다는 회전의 이미지를 떠올리게 했죠. 그러다 문득 바닷속 동굴을 빠져나가려는 인물을 상상하게 됐어요. 그림 속 다이빙을 하는 소녀는 빛을 향해 나아가는 것 같지만, 실은 제자리를 맴돌고 있어요. 어리석은 일이라는 걸 알지만 끊임없이 누군가에게 빠져드는 일처럼 말이에요.

 

Gus Dapperton - These Foolish Things

 

Gradient 아트웍 작업 시 가장 주의를 기울이는 부분이 있다면

아무래도 배경을 우선으로 그리는 작업이다 보니, 공간에 담을 수 있는 스토리에 가장 신경 쓰게 되는 것 같아요. 무엇보다 공간 속에서 느껴지는 움직임의 방향, 구도, 그리고 색이 갖고 있는 감정을 담아내기 위해 노력합니다.

 

<these foolish things>속 우측 하단의 물결무늬가 눈에 띈다. 언뜻 보기에 마블링 무늬 같은데 어떻게 표현했는지 궁금하다.

바닷속 동굴을 표현하고 싶어서 고민하던 중에 절벽 표면의 단층 무늬가 떠올랐어요. 간혹 작품이 밋밋하거나 설명적인 요소를 추가하고 싶을 때 텍스처 이미지를 살짝 오버랩시키는 방법으로 표현하는데, 이 경우에도 해당 무늬를 작품 속 배경에 대한 묘사를 돕는 역할로 사용했어요.

 

2/3 hide

 

always awake

 

Gradient 아트웍 작업 시 배경을 채우는 주된 색감은 어떤 기준으로 선정하나

평상시 메모해두었던 색 조합을 사용하기도 하고, 작업하는 날의 기분이나 날씨, 듣고 있던 음악으로 연상되는 색들을 표현해보기도 해요. 충동적인 감이 없지 않아 있지만 작업에 있어 색감은 글을 대신한 감정의 표현이기 때문에 가장 어려운 부분이자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작업을 마무리 짓기까지 수정을 반복합니다.

 


#02. Movie

I think we'll be okay here, Leon.
Léon, Luc Besson, 1994

 

Falling in love is a crazy thing to do. It's like a form of socially acceptable insanity.
Her, Spike Jonze, 2013

 


인생의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시절
In the mood for love, Kar Wai Wong, 2000

This is a story of boy meets girl. But you should know up front, 
this is not a love story.(500)Days of summer, Marc Webb, 2009

 

작품 초반에는 푸른 선을 이용해 간략하게만 표현하던 일러스트가 최근의 작업에 이르러서 다양한 색감을 가지게 됐다. 작업 초기에 푸른색을 주된 컬러로 사용했던 특별한 이유가 있나.

개인적으로 졸업작품의 주제를 ‘blue’로 선정했을 만큼 파란색을 정말 좋아해요. 파랑은 ‘가장 먼 곳의 색’이라는 의미에서 ‘상상력’을 뜻하기도 하는데 차가우면서도 따뜻한, 무궁무진한 힘을 지닌 색이라고 생각해요. 처음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이유도 좋아하는 것을 하기 위해서였기 때문에 ‘가장 좋아하는 영화’를 ‘가장 좋아하는 색’으로 그리게 된 거죠.

 

kill your darlings, 2013

 

우린 이미 예전에 죽었어
Son of saul, Laszlo Nemes, 2015

 

그럼에도, 영화를 주제로 한 작업 내에서도 다양한 표현 방식이 드러난다. (예를 들어, 똑같이 영화를 주제로 한 아트웍이지만 꼴라주 기법이 떠오르는 <kill your darlings>과 회화적 기법이 떠오르는 <son of saul>이 있다) 이렇듯, 다양한 표현을 시도하는 의도가 있다면.

가능하다면 해당 영화의 분위기에 맞게 다양한 표현 방식을 시도해 보려고 해요. 영화 속에 감각적인 편집 요소들이 많다거나 꼭 필요한 장치가 있는 영화라면 그림에 대입시켜 재미를 더하는 콜라주 기법을 사용합니다. 때로는 우연한 시도로 작업을 하기도 해요. 하루는 친구랑 유화그림을 배우고 싶다는 이야기를 나누다가, 해보진 않았지만 ‘컴퓨터 작업으로 가능할까?’라는 호기심으로 <son of saul> 그림을 그리게 됐어요. 주인공이 따라가는 시선이 중요한 역할을 하는 영화라서 인물 위주의 굵고 거친 붓 터치를 사용해봤는데, 영화의 어두운 분위기와 어울리기도 했고 평소에 그리던 방식과는 다른 시도라서 색다른 경험이었습니다.

 

영화 일러스트 작업 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표현 요소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영화일러스트는 글을 대신한 개인적인 영화 감상문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은 인상 깊었던 장면이나 영화에 꼭 필요한 요소들을 한 장면으로 압축시켜야 해요. 때문에 새로운 틀에 그려지는 영화 속 장면이 조금 더 재미있고 효과적인 구도로 재구성하는 걸 가장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영화 속 주인공의 이름이기도 한 <hallam foe>에는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뒤 나무 위 오두막에 틀어박힌 채 세상을 훔쳐보는 소재로 ‘망원경’이 등장해요. 이 ‘망원경’ 속 빛과 어둠으로 분리되는 원의 형태를 전체적인 구도로 사용하여 훔쳐보는 듯한 연출을 시도했습니다.


지금까지 봤던 영화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영화는 무엇인가

마음속에 세 가지 정도 있는데, 그 중 하나만 꼽자면 <이터널 선샤인>을 얘기하고 싶어요. 시간이 지나고 다시 꺼내볼 때마다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오는 매력적인 영화예요. 헤어진 연인을 잊기 위해 기억을 지운다는 독특한 소재와 미셸 공드리(Michel Gondry) 감독 특유의 환상적인 영상미가 빛나는 작품이죠. 영화 그림을 처음 그리기로 마음먹었을 때 실은 <이터널 선샤인>을 가장 먼저 떠올렸는데, 너무 애정 하는 영화라 그런지 그림을 그리는데 고민도 많이 되고 신중해져서 아직 아껴두고 있어요. 그래서 앞으로 몇 번이나 다시 보게 될지, 또 어떤 느낌으로 다가올지 궁금합니다.

 

silver linings playbook, 2012

 

반면, 작업했던 영화 아트웍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작업은?

작업하면서 애를 먹었던 그림이 먼저 떠오르네요. <실버라이닝 플레이북>이라는 영화인데 어두운 조명을 배경으로 한 장면이다 보니 선으로 형태를 잡고 흰 바탕으로 작업하는 평소 방식이 어울리지 않았어요. 그래서 몸 전체에 채색을 하게 됐죠. 이리저리 색을 바꿔보다가 결국 가장 좋아하는 파란색으로 칠하게 됐는데, 나름 분위기도 어울리고 색종이를 오려 붙인 듯 투박하지만 재미있는 느낌으로 연출하게 됐어요. 이상하게 이 그림을 보면, 춤을 추고 있는 잔상들이 떠올라요. 짙은 어둠이 깔린 무대 속에 빛을 내고 있는 주인공들, 그 뒤로 은은하게 반짝이는 조명. 기회가 되면 <실버라이닝 플레이북>은 움직이는 이미지로도 만들어 보고 싶어요.

 

Edward scissorhands, 1990

 

영화 <가위손>같은 경우에는 마치 유년시절, 크레파스를 이용해 그렸던 그림을 떠올리게 한다. 표현기법에서 다양한 시도를 가능하게 하는 영감은 어디서 얻나.

우선 표현하고자 했던 느낌을 알아봐 주셔서 감사합니다. 표현기법에 대한 영감은 대부분 일상 속에서 이루어져요. <가위손>은 친구 생일 선물을 고르러 서점에 들렀다가 영감을 얻었어요. 미리 그려진 스케치 선을 따라 뾰족한 도구로 긁어내면 까만 종이 뒤의 예쁜 그림이 그려지는 액자였죠. 영화 <가위손> 속 주인공 에드워드는 가위손 때문에 상처투성이 된 모습을 숨기며 외롭게 살고 있다가 킴을 만나게 되면서 사랑의 감정을 깨닫게 돼요. 어둡던 마음속에 따뜻한 빛처럼 피어나는 사랑의 감정을, 서로 대조되는 차갑고 따뜻한 색으로 거칠게 표현해봤습니다.

 

 

#03. No name girl


paradise



인물을 그린 Lazy dawn의 몇몇 작업을 보면 꼴라주의 느낌이 강하다. 때문인지 이러한 그림들은 ‘선’보다 ‘면’으로 구성된 것 같다는 느낌이 드는데 이러한 방식을 특별히 선호하는 이유가 있나.

개인적으로 종이나 천, 자연물의 표면 등, 재질이 서로 다른 다양한 형태의 면들이 하나로 어우러지는 콜라주 작업을 좋아해요. 이러한 표현법은 디테일한 묘사나 형태감이 부족한 단조로운 그림에 생기를 불어 넣어주는 역할을 해준다고 생각해요.

 

rainy day

 

no name girl. 2

 

같은 맥락에서 lazy dawn이 그린 대부분의 소녀들은 구체적인 외곽선이나 세밀한 표현 없이도 얼굴의 외곽선뿐만 아니라 헤어 스타일, 신체 특징을 쉽게 유추할 수 있다. 이러한 ‘생략된 기법’의 매력은 무엇이라 생각하나.

절제된 표현에서 오는 세련됨이라고 생각해요. 최소한의 선과 면 만으로도 표현할 수 있는 영역은 생각보다 무궁무진하기 때문에 세밀한 그림과는 또 다른 매력이 있어요. 그림이 갖고 있는 빈 공간도 그림의 일부이고, 빈 공간은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상상력을 자극하기 때문에 더 흥미롭게 느껴져요.

 

때문인지 lazy dawn의 작품을 보면 ‘디테일한 미니멀리즘’이 떠오른다. 그렇다면 본인은 본인의 작업을 어떤 키워드로 정의하고 싶나.

‘디테일한 미니멀리즘’도 마음에 드는데요?(웃음) 아니면 앞으로도 계속해서 콜라주 기법의 그림을 작업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콜라주 드로잉’, ‘콜라주 미니멀리즘’도 욕심이 나네요. 하지만 아직 시작 단계이다 보니 어떤 키워드 하나로 정의하기보다 ‘누구나 훔쳐볼 수 있는 그림일기’라는 표현은 어떨까요?

 

뜨거운 여름밤은 가고 남은 건 볼폼없지만

 

in waves

 

특별한 주제 없이 ‘소녀’를 대상으로 작업하는 이유.

익숙해서 인지 몰라도 여성이 갖고 있는 자세, 몸짓, 표정, 감정 등을 표현하는 게 즐거워요. 특히나 호기심이 많고 감정 표현에 서툰, 그리고 비밀이 많은 누군가를 ‘소녀’에 비유해서 표현해보고 싶었어요. 그녀들은 속마음을 감추기라도 하듯, 대부분 표정을 숨기고 있어요.


앞으로 어떤 작업을 하고 싶나

사실 좋아하는 일을 한다는 게 말이 쉽지 그걸 찾는 것도, 실현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에요. 언젠가 ‘여러분 꼭 하고 싶은 거 하세요!’라는 문구를 본 적이 있는데, 그 문구가 머릿속에서 잊혀지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그 말이 온전히 내 작업을 하기로 마음먹게 된 가장 큰 이유가 됐어요. 항상 무언가에 쫓기듯 앞만 보고 살았는데, 쉼표를 찍고 하고 싶은 걸 조금씩 하다 보니 일이 즐거울 수도 있다는 걸 몸소 느끼고 있어요. 앞으로도 이 즐거움을 잊지 않고, 간직하고 싶은 모든 순간들을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해보고 싶어요. 기존의 디지털 드로잉 방식을 벗어난 콜라주 작업이나 거친 느낌의 손 그림도 그려보고 싶고, 여러 가지 방법을 시도하다 보면 저만의 색깔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요?


lazy dawn 

http://notefolio.net/lazy_dawn
http://www.instagram.com/lazy_dawn

김해인

읽는 사람이 즐거운,
언제나 유쾌한 글을 쓰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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