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Story  /  피플

[전지적 작가 시점] 흑백의 선으로 반짝임을 담아, 오인석

16.10.01 0

<전지적 작가 시점>은 노트폴리오에 작품을 게재하는 작가를 선정해 그의 작품을 인터뷰하는 자리입니다. 그동안 작가가 어떤 의도로 이런 그림이 그렸는지, 무슨 생각으로 이런 표현을 했는지 궁금하셨죠? 앞으로 진행되는 <전지적 작가 시점>을 통해 작가보다 작품 중심의 이야기를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오인석

 

탄생제

想念(상념), pen, 237 x 270mm, 2015



많은 재료와 도구 중에서도 ‘펜’을 택한 이유가 궁금하다.

처음 라인드로잉을 시작했을 때, 손이 가는 대로 그려서 낙서로 그림이 시작될 때가 많았어요. 당시에는 물감 같은 다른 도구가 꽤 비싼 재료인데다 사용해보지도 않아 어색하기도 했고요.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펜을 많이 사용하게 된 것 같아요.

 

보통 작업 동안 어떤 종류의 펜을 사용하는지, 선호하는 펜의 종류와 그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년도 별로 달라지는 것 같아요. 작업 초기에는 하이테크를 사용하다가 그 후엔 스테들러사에서 나온 피그먼트 라이너를 사용했어요. 또 시간이 흘러서는 잉크펜을 사용했고요. 최근에는 이 3가지 펜과 붓 펜도 함께 사용하고 있어요. 하이테크는 선을 정리할 때 편하고 스테들러 펜은 사용하기에 부담이 없어요. 또 잉크 펜은 존재감을 드러내는 검은색을 가지고 있어서 이 세가지 펜을 잘 활용하고 있어요. 이 중에서 특히 스테들러 펜과 잉크 펜이 작업할 때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데, 붓 펜은 발색이 다른 펜들과 조금 달라서 포인트로 필요한 부분에만 사용하고 있습니다.

 

세밀한 작업을 하며 어떤 생각을 할지 항상 궁금했다. 작업하며 무슨 생각을 하나.

평소에 항상 생각이 많은 스타일이에요. 그런데 오히려 작업할 때 생각이 정리되고 머릿속이 조용해지는 느낌을 받는 편이라 작업을 할 때는 하나하나의 개체를 그리는 것에 온전히 집중하는 편입니다.

 

작업의 주제가 일반적이지 않다. 작업 키워드가 주로 ‘심해, 산호, 우주’인 특별한 이유가 있나. 아주 복잡하면서도 다소 기괴한 느낌을 주는 생물체를 다뤘더라.

개인적으로 항상 동경하는 꿈이 두 가지가 있어요. 하나는 우주비행사, 다른 하나는 심해잠수부예요. 그래서 ‘만약 둘 중 하나의 직업을 가지면 어떨까?’를 상상하다 보니 그런 키워드가 나온 것 같아요. 우주에는 별이 가득하고, 심해에는 먼지나 플랑크톤이 가득한데 그런 형상이 꽤 비슷하다고 생각했어요. 동경하는 두 가지의 꿈에서 공통점을 발견한 셈이죠. 또 곰곰이 생각해보면 사람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건 ‘어두운 곳에서 빛나는 무언가’예요. 그리고 사람들은 빛나는 무언가가 뭐일까, 기대하며 탐험하죠. 이런 모습들이 제가 살아가는 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했어요. 다들 어둠에서 살아가지만 빛나는 무언가를 기대하니까요. ‘산호’는 그런 지나가는 것들과 앞으로 펼쳐진 것들을 보여주는 요소라고 보면 좋을 것 같아요.


때문인지 심오한 느낌을 주는데 이 외에 작업욕구를 일으키는, 영감을 주는 것들은 무엇인가.

영감은 제가 좋아하는 모든 것들에서 받아요. 만화도 영화도 게임도 무척 좋아하고 아름답고 멋있게 촬영된 다큐멘터리나 일상 속에서 볼 수 있는 것들에서도 영감을 받죠. 그런 걸 보면, 저는 저를 살아가게 하는 주변을 보면서 힘을 내요. 

 

Coralian

 

고래의 바다 세계수의 신

 

Coralian 순환의 때

 

시선침식

 

 

하지만 또 작품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기괴한 느낌과는 상반되는 귀여운 토끼나 귀여운 얼굴을 가진 등장인물이 등장하기도 한다.

개인적으로 여성을 그리는 것을 좋아해요. 또, 제가 그리고 싶은 분위기가 심해에서 느껴지는 ‘긴장감 있는 편안함’이기도 해서요. 등장인물이 구순열(cleft lip)을 가진 이유는 인간이 태아단계에서 가장 나중에 완성되는 부분이 입술이라고 들었는데, 입술이 온전히 붙지 않은 사람은 인간보다 좀 더 순수한 모습을 가지고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예요. 즉, 구순열이 ‘인간이 잃어버리는 순수함의 형태’라고 생각해서 그런 식으로 표현하고 있어요.

 

 

녹아 스미는 시선

 

Hug

 

펜화다 보니 흑백의 이미지가 강렬한데 혹시 <녹아 스미는 시선>, <Hug>처럼 컬러풀한 작업에 대한 시도는 없을 예정인가.

아예 없지는 않겠지만 천천히 실행하고 싶어요.

 

그렇다면, 검정색 대신 작업해보고 싶은 컬러는 무엇인가.

푸른 계열을 좋아해서 푸른 계열의 색으로 표현해보고 싶네요.

 

전반적인 작업과정이 궁금하다. 초안을 그릴 때 면(面)을 구성하는 세세한 부분까지 구상하는 편인가.

예전에는 커다랗게 구역만 나눴는데 최근에는 될 수 있으면 세세한 부분까지 구상하고 작업에 들어가요. 어떤 식으로 뻗어나갈지, 어느 부분에서 위로 얽히고 어떤 부분이 뒤로 지나갈지, 그런 요소들을 미리 스케치로 표현한 후 진행합니다.

 

 

#01. 순환의 고리

 

순환의 고리

 

작품 <순환의 고리>가 가진 메시지는 무엇인가

‘산호의 틈으로 보이는 우주’예요. 어두운 심해의 가운데서 가장 멀리 있는 게 보이는 셈이죠. 항상 멀리 있다고 생각한 무언가가 실은 가장 가까운 곳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표현해봤어요.

 

오인석의 작품은 특정한 대상보다 추상적인 개념이나 관념을 그린다. 때문에 직관적으로 작품 속 메시지를 얻기가 어려운데, 이를 위해 어떤 노력을 하나. 그리고 작품을 통해 관객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무엇인가.

전시를 할 때는 관객의 시선에 메시지를 맡겨두는 편입니다. 제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새로운 이야기를 관객 분들께 전해들을 수 있으니까요. 물론 제게 직접 작품의 의미를 묻는 분께는 작업 의도에 대해 설명해드리지만, 보통은 제가 관객 분들의 생각을 궁금해하는 것 같아요. 작품을 통해 관객 분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아무리 제 그림이 어두운 모습이어도, 그 주변에서 빛나고 있는 것들이나 아름다운 것들을 보고 즐거운 기분이 들면 좋겠어요. 제가 그리는 빛나는 산호나 별도 좋고, 제 그림을 보고 같이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좋으니 누군가에게 좋은 기억을 심어줄 수 있으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러울 것 같습니다.

 

감각세계


오인석의 작품은 작업과정이 마치 도를 닦는 듯한, 인내가 필요한 작업인 것 같다. 실제 작업할 때 받는 느낌은 어떤가.

펜화가 아무래도 인내가 필요한 작업이죠. 작업할 때는 실제로 자주 쉬면서 하는 편이에요. 손목건강도 생각해서 그런 것도 있지만 엄청 많이 그린 것 같은데 멀리서 보면 손바닥보다 작은 크기라 멍해질 때도 많아요. 그럴 때마다 내 안에 있는 세계를 넓힌다는 생각으로 그리다 보면 완성이 되더라고요.

 

과거의 작업과 비교해보자면, 최근의 작업은 좀 더 디테일하고 난해한 느낌이다. 본인이 생각하기에 과거의 작업에서 발전된 부분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과거의 작업은 주로 주인공과 주변을 보면 분위기를 파악하기 쉬운 그림이었어요. 딱히, 고민할 필요 없이 한번에 답이 나오지만 그만큼 다양한 의견을 가지기 힘든 그림이었죠. 그런 면에서 평가하자면 지금의 그림은 더 커지고 복잡해졌어요. 때문에 ‘상상의 여지’를 준다는 점에서 과거의 그림보다 최근의 그림이 더 낫다고 생각해요.

 

 

#02. 여덞개의 밤

 

여덞개의 밤, Pen and pencil, 1480 x 920mm, 2015 

 

<여덟 개의 밤>은 어떤 영감을 받아 작업하게 되었나.

<여덞개의 밤>은 애초에 구상할 때부터 제목이 정해져 있었어요. 실은, 이 그림을 그리기 전에 꿈을 꿨는데 커다란 구슬을 품은 문어가 등장하는 꿈이었어요. 전반적으로 꽤 귀여운 느낌이었는데 제 방식대로 해석하면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작업해봤습니다. ‘문어’는 ‘밤’ 그 자체를 나타내며 ‘8개의 다리’는 ‘각기 다른 밤을 지배하고 있는 사람’을 모티브로 했어요. 그리고 밤이 흐르고 흘러 사람에게 스미는 모습을 표현하고 싶었어요.

 

 

연필로 표현된 부분

 

여러 다른 작품들과 달리 펜의 거친 느낌보다 부드럽다는 인상이 강하다. 아무래도 등장인물을 둘러싼 배경이 주는 이미지 때문인 것 같은데, 부드러운 인상을 위해 어떤 표현 기법을 사용했나.

<여덞개의 밤> 작업 시, 펜 외의 다른 도구도 사용해보고 싶었어요. 강렬한 밤과 대조적으로 주인공의 주변은 부드러운 모래로 표현하고 싶었거든요. 그래서 그 동안 사용하지 않았던 연필을 사용해봤는데 확실히 점묘보다 부드러운 느낌이 들어 개인적으로 만족했습니다.

 

<여덞개의 밤>은 특히 매우 힘든 과정을 거쳤다고 들었다. 어떤 부분이 가장 힘들었나.

사실 구상보다 그리는 환경 때문에 힘들었어요. 자취하는 방이 좁다 보니 큰 그림을 작업할만한 공간이 없었거든요. 그래서 컴퓨터가 담겨왔던 커다란 배달박스 위에 캔버스를 올려놓고 굉장히 힘든 자세로 몇 주간 그림을 그렸어요. 스케치할 때가 정말 힘든 단계였던 것 같아요.

 

어떤 그림을 그리고 싶었나.

꿈과는 별개로 큰 그림을 그리고 싶었어요. 막연히 ‘큰 그림’이요. 하지만 큰 캔버스에 그리기에는 마땅히 작업할 공간이 없어서 화방에서 파는 큰 판넬 두 개를 사와서 그걸 연결했습니다. 정말 큰 그림을 그리고 싶었거든요. 그 때 마침 문어 꿈을 꿔서 정말 기뻤어요. 작업에 들어갈 때 가장 오래 걸리는 부분이 보통 ‘무엇을 그릴까’였으니까요. 막연한 동기로 시작했지만 그렇게 시작해도 재미있었던 작업이었습니다.

작업 시 가장 유의했던 부분

잉크가 그림에 떨어지지 않도록 하는 점이요. 설거지할 때라든가 무의식 중에 물이 튀지 않도록 좁은 방 한가운데 자리잡은 그림에 일상생활을 맞췄어요.

 

이렇게 큰 그림을, 그것도 펜화로 작업하려면 작품에 등장하는 구성요소와 이들을 배치하기 위한 구도와 비율설정이 중요할 것 같다.

그래서 작업 초반에 어떤 구도를 잡아야 할지 가장 신경을 많이 썼어요. ‘무엇을 그릴지’와 ‘어떻게 그릴까’는 또 다른 이야기니까요. 게다가 이렇게 스케일이 큰 작업은 처음이라 그만큼 수정도 많이 하고 자세도 많이 바꿨어요. 정말 여러모로 가장 손이 많이 간 작업이었습니다. 이따금씩 비는 부분이 생기기도 했는데, 그럴 때마다 해저도감이나 수족관에서 찍은 사진이 많은 도움이 되었어요.

 

여덞개의 밤 작업과정

 

이렇듯 세밀한 작업은 각각을 구성하는 요소들의 디테일뿐만 아니라 그것들이 모여 하나의 큰 그림으로 완성되는 통찰력도 필요할 것 같다. 한 마디로 ‘나무와 숲을 보는 능력’ 모두 필요한데 본인이 생각하기에 두 가지 과정 중 어떤 과정이 더 힘든가.

개인적으로 큰 그림을 보는 게 더 어려워요. 저도 모르게 자꾸 나무 하나하나를 소중히 대하게 되거든요. 입체감 있는 그림을 표현하려면 그림 전반에 강약을 많이 줘야 하는데, 이런 성향이 그런 부분을 종종 놓치는 것 같아서 언제나 주의하고 있어요. 특히, 펜으로 작업을 하다 보니 수정이 어려워서 그만큼 큰 그림을 못 보게 되는 것 같아요. 하지만, 큰 그림을 채우는 나무를 그리는 건 저처럼 느긋하고 인내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조금 변태적이거나 깔끔한 성격이라면 더더욱이요!

 

본인이 생각하는 <여덞개의 밤>의 작업 포인트와 관객이 주의 기울여 보았으면 하는 부분은 무엇인가.

작품을 확대해서 봐주시면 좋겠어요. 만약, 전시에서 작품을 보신다면 가까이서 봐주셨으면 해요. 펜화로 그린 그림은 디테일을 보는 재미가 있거든요. 멀리서 보시고 마음에 들면, 가까이 다가오셔서 숨은 그림을 찾는 기분으로 봐주시면 즐거울 것 같아요.

 

앞으로 어떤 펜화 작업을 하고 싶나.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작업을 하고 싶어요. 뻔한 것 보다 즐겁게 사람들과 즐길 수 있는 작업이요.


오인석

http://notefolio.net/blacklog
http://www.facebook.com/insillust

0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