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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친 세상에서 살아남기, 박영숙 <미친년 프로젝트>

16.05.26 0

Feminist in Tokyo #5 c-print, 120x120cm, 2004



몇 주전, 강남역 인근에서 이십 대 여성의 인생이 ‘마감’되었다. 그리고 곳곳에서 그녀에 대한 추모 열기가 확산되고 있다. ‘여자들이 자신을 무시해서’ 잔인한 짓을 저지른 그 남자는 정신병이 있는 사람이었다. 그의 병명은 여성 혐오가 아닌, ‘조현병(정신분열증)’이다. 뉴스를 보니 그의 인권을 위해서 눈은 모자이크를 하고, 입은 마스크로 가려져 있었다. 언론은 그의 인권은 이렇게 보장해주었다. 하지만 CCTV에서 계단을 올라가던 여성의 인권은 이제와 지킬 수도 없게 되었다. 오열하며 계단에 주저 앉던 그녀의 남자친구의 모습이 마음 아프게 남아있다.

 

- 경찰은 이번 강남역 살인 사건을 ‘피해 망상이 부른 살인’으로 결론내렸다. 

 


이 일이 있고 나서 며칠 뒤, SBS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도 의문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었다. 피해자는 일본에서 유학 중이던 한국인 여대생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죽었다. 일본 경찰은 그녀와 동거하고 있던 남자를 피의자로 지목했지만 쉽게 풀어주었다. 남자는 인터넷 방송을 하는 BJ였고, 그는 경찰서에 다녀온 것을 아주 자랑스럽게 그의 방송에서 언급했다.

 

출처: <그것이 알고싶다> 캡처 

 

죽은 여대생은 평소에 외로움을 많이 탔다. 죽기 몇 달 전, 그녀는 계단에서 넘어졌다는 이유로 치과에 방문했다. 그녀를 진료했던 의사는 단순히 계단에서 구른 것 같은 상처가 아니라고 했다. X-ray를 찍고 보니 턱 뼈가 부러졌기 때문이다. 사망 당시에는 복부 부분의 내장, 갈비뼈 등 수많은 곳이 파열되어 있었다. 얼마나 다친 부위가 심했으면 경찰은 그녀의 부모에게 배 부분은 보지 말라고 이야기 했을까. 방송에서는 그녀가 2012년 정도부터 피의자인 남자친구와 사귀었다고 언급하며 폭력이 만성화되어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그러나 일본 경찰은 ‘증거불충분’을 이유로 방관하는 중이다.

 

Imprisoned Body Wandering Spirit #1 c-print, 120x120cm, 2002

 

언제부턴가 목숨을 부지하는 것 자체가 ‘도전’이 됐다. ‘무한 경쟁 시대’라는 날카롭고 차가운 말 속에서 우리는 참 많은 순간을 도전하며 살아가고 있다. 가끔은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는 생각이 들어 힘에 부치기도 한다. 이 사회는 힘이 없는 사람들에게 가혹한 사회다. 물론 ‘힘이 없는 사람’의 범위는 여성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강한 이 사회에서 우리는 얼마나 유동적으로 살아남을 수 있을까? 지금 비록 내가 대상이 아니었다고 해도, 과연 그 대상이 내가 아니라는 사실이 확실한가?

 

‘제정신으로 살아가는 것이 복’이라는 엄마의 말이 떠오른다. 너무나 많은 일이 생기기 때문이리라. 예상치 못했던 일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고, 인터넷 뉴스의 댓글에서는 ‘남혐과 여혐’으로 나뉜 분란이 조장되고 있다. ‘목숨을 지키는 것’이 자신의 하루 to do list에 들어갈 수도 있다니. 과연 이런 사회에서 심신이 건강한 사람을 기대하기 쉬울까? 우리는 모두 서로의 정신을 사살하며 사는 것 같다. 영혼이 없는 정신을 안고 사니 다들 ‘비어있는 삶’을 사는 것이다.

 

문득, 이런 상황을 보고 있자니 박영숙 작가의 <미친년 프로젝트>가 떠오른다. 작가는 이 시리즈를 1999년부터 진행했다. 현재 작가의 작품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의 전시인 <아주 공적인 아주 사적인 : 1989년 이후, 한국현대미술과 사진>展과 천안 아라리오 갤러리의 <미친년 발화하다>展에서 볼 수 있다. 

 

A Flower Shakes Her #14 c-print,120x120cm, 2005

 

<미친년프로젝트>는 일상의 차원에서 오늘날 여성과 관련된 주요 이슈인 ‘여성혐오증’, ‘성불평등’과 ‘안티 페미니스트’와 같은 한국 가부장적 사회 구조의 모순을 드러내고 비판적이고 냉철한 시선으로 여성에게 입혀진 개념을 깊게 읽어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한다.

박영숙은 <미친년 프로젝트>를 통해 가부장적인 사회구조가 생산하는 개념을 전복시키며 고정된 성 역할에 도전해왔다. 작가는 ‘미친년’이라는 단어를 온순한 여성상이라는 ‘한국식 성 역할’ 고정관념에서 일탈한 여성을 일컫는 용어로 지칭하면서, 가부장적 권력의 젠더 구조에 저항한다. 또한 박영숙 특유의 ‘몸 언어의 시각화’는 여성의 성 역할과 성 정체성에 대한 페미니스트로서의 실천적인 노력의 일환이었으며 이는 이론적으로는 페미니즘 담론의 발전으로 이어졌다.


- 미친년프로젝트 <미친년들>, 1999

 


“….마침내 여자들은 그 ‘착한 여자 콤플렉스’를 ‘광기(狂氣)’로 바꾼다. 사람들은 그녀들을 ‘미친년들’이라 부른다. 그렇다. 그녀들은 미쳤다. 살고 있는 것이 아니라, 미쳐있는 것이다. 미쳐야만 자유로울 수 있었다. 드디어 그녀들을 얽맨 끈을 끊어낸다. 그것은 치유였다. 해방의 시간이었다.”


- 아라리오갤러리 Press Release

 


Imprisoned Body Wandering Spirit #2 c-print, 120x120cm, 2002

 


‘미친년’이란 단어의 사전적인 정의는 ‘정신에 이상이 생긴 여자를 욕하여 이르는 말’이다. 작가는 고정관념에서 일탈한 여성을 ‘미친년’으로 보았다. 아니,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여자를 미친년으로 보았다. 제정신으로는 살아갈 수 없는 세상에서, 가부장적 권위에 맞서 스스로의 인권을 지키며 살아가야 하는 세상에서 여성들은 자유롭기 위해 미쳐야 했던 것이다. 그리고 ‘나’를 지키기 위해 미쳤던 것이다.

 

박영숙씨는 토목업에 종사하셨던 아버지 덕분에 어렸을 때부터 카메라에 대해 자연스럽게 관심을 갖게 되었다. 대학교 졸업반 때는 숙명여대 사진 동아리인 ‘숙미회’를 조직했다. 이후 교수의 추천으로 여성잡지사의 사진기자가 된 박씨는 ‘시와 사진’이라는 코너를 맡았다. 인기투표 1위를 독차지하던 코너였지만 취직한 지 2년 뒤에 그녀는 그만둬야만 했다. 사진부장이 맡았던 표지 사진에 대한 의견을 거침없이 표현해서 였다. “자꾸 충돌이 생기니까 나보고 나가래요. 사진부장은 유부남이고, 한 집안의 가장이니까 처녀인 내가 양보하라는 식이었죠.” 여러 신문사와 건축 잡지사의 문을 두드렸지만 번번이 거절당했다. 숙직을 할 수 있겠느냐, 험한 현장 취재를 할 능력이 있느냐, 남자들과 같이 암실 작업을 할 수 있느냐 등의 이유였다. “할 수 있다고 했는데도 계속 떨어뜨리니까 정말 분통이 터졌어요. 여자라는 이유로 짓눌리는 느낌이었죠. 사회 구조가 여성에게 부당하다는 것을 그 때 알았어요.


퇴직 후, 박영숙씨는 결혼을 하고 동아리 후배들을 가르치며 지냈다. 그러는 동안 일상 속에서 남편에게 매 맞는 아내,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정신이 반쯤 나간 여자 등, 다양한 여성의 모습을 보고 들었다. “여성들의 이야기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물론 사진이라는 매체를 통해서요.” 1975년, <UN 여성의 해 프로젝트>와 우리나라의 여성학을 완성시키는데 공헌한 <또 하나의 문화> 활동에 참여하면서 자신이 페미니스트라는 의식을 갖게 됐다. 그녀는 정신병원에 직접 찾아가 여러 여성들을 만나고, 정신과 의사와 페미니스트 후배들과 함께 미친다는 것에 대해 열렬히 논의하는 등 ‘미쳐가는’ 여성들의 소리에 귀 기울이기 시작했다.

-출처: <미/친/년/에/미/치/다> 

 

 

A Flower Shakes Her#5 c-print, 120x120cm, 2005

 

Mad Women’s#1 c-print, 150x120cm, 1999



우리는 조금만 건드리면 모두들 정신을 잃을 것처럼 살아가는, 그러나 상식과 비상식의 사이에서 끊임없이 저항하며 살아가고 있다. 미래의 우리 사회가 장밋빛이 될지 아닐지, 약자를 보호해줄지 아닐지 예상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확실한 건 지금 이 사회의 마음이 많이 병들어 있다는 것이다. 그 누구도 타인을 보호할 수 없는 세상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불투명해 보이지만, 그래도 언젠가는 하루하루 자신의 인생을 만들어 나가는 데 ‘미쳐서 살아야 할’ 정도의 각오가 필요하지 않은 세상이 오기를 바란다. 미치지 않아도 자기 삶을 영위해 나갈 수 있는 세상이 되기를, 간절히 바라본다

박영숙 작품 모든 출처: http://www.arariogallery.com

 

십사

안녕하세요, 십사입니다.
미술, 만화영화, 춤, 피천득님, 법정스님을 좋아합니다.
살아있음을 기쁘게 여기며, 지혜롭고 성실하게 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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