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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 이중섭<백년의 신화>展

16.06.10 0

             

 

 

국립현대미술관에서 2016년 6월 3일부터 10월 3일까지 이중섭의 <백년의 신화>展이 개최된다. 이번 전시는 식민, 해방, 전쟁을 관통하며 정처 없는 삶을 살 수밖에 없었던 이중섭의 시공간을 따라 전시가 전개된다. 상대적으로 작품이 많이 남아있지 않은 부산·제주도 피란시기의 작품이 첫 전시실에 전시되며, 전쟁 직후 최고 절정기 작품을 남겼던 통영 시대, 가족을 그리워하며 수많은 편지와 가족그림을 남긴 서울 시대, 그리고 마지막으로 경제적 궁핍과 절망 속에서 정신적인 고통에 휩싸였던 대구-왜관-서울(정릉) 시대의 작품들이 순차적으로 4개의 전시장에 전시된다.

 

 이중섭, 종이에 연필, 23.5x26.6cm, 1941

이 자그마한 연필화는 마치 습작처럼 보이지만, 매우 완성도가 높은 작품입니다. 소 한 마리가 애써 일어나 보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습니다. 순한 눈을 하고 뿔은 축 쳐져서 그다지 힘이 세어 보이진 않지만, 구부린 앞발을 디뎌 올리면 곧 일어설 수 있을 것입니다. 화면 왼쪽에 두 앞발이 희미하게 그려진 것은 실수로 그렸다 지운 흔적이 아니라, 바로 구부리고 있는 저 앞발의 다음 동작을 예시하는 것입니다. 즉 이 연필화는 두 개의 시간대를 합성한 것이죠.

이중섭은 이 작품을 1941년 도쿄에서 열린 미술창작가협회전에 출품했습니다. 이 소는 식민치하의 조선인, 그리고 이중섭 자신의 자화상입니다. 이 소의 슬프고도 힘찬 기운을 알아차린 일본의 평론가는 이중섭의 작품은 작지만 오히려 강력한 메시지를 지녔다고 평가했습니다.

 

세 사람 이중섭, 종이에 연필, 18.2x28cm, 1945

엎드리고, 쪼그리고, 드러누운, 각기 다른 자세를 한 세 인물이 화면을 가득 채웁니다. 이들은 서로 다른 세 명의 인물들인지, 아니면 한 인물의 세 가지 다른 자세를 동시에 한 화면에 담은 것인지 알 수 없습니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모두 매우 우울한 표정을 띠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작품은 이중섭이 1943년 귀국하여 원산에 머무를 때 제작된 것입니다. 1945년 해방이 되자마자 서울에서 열린 해방기념미술전에 출품하려 했다가 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전시되지 못했던 작품이죠. 제작 시기를 감안할 때, 일제 말기의 암울한 현실을 반영한 작품으로 보입니다. 청년들은 꿈을 잃고 아무것도 할 수가 없는 처지에 놓여있습니다. 두꺼운 종이 바닥에 그리고 또 그린 무수한 연필 자국들은 허무하기 그지없는 현실의 또 다른 반영입니다. 그러나 드러누운 소년의 힘찬 왼손과 오른발의 강렬한 선들을 보십시오. 작가는 저 손을 통해 암담한 현실을 뚫고 나올 강인한 의지를 놓치지 않고 표현하려 했습니다.

 

바닷가의 아이들 이중섭, 종이에 연필 수채, 32.5x49.8cm

 

천진난만한 아이들, 뛰어 노는 물고기, 자그마한 조각배, 까마득한 수평선, 이글거리는 태양... 이 모든 그림의 소재들이 단순한 선들만으로 충분히 완벽하고 풍요롭게 그려졌습니다. 때로는 물고기가 아이들보다 크고, 배는 아이를 싣지 못할 만큼 작지만, 등장하는 모든 요소들이 서로 엉키고 한데 어울려 지극히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고 있습니다.

보는 이를 미소 짓게 하는 이 작품이 한국 전쟁의 틈바구니 속 피란지에서 제작되었다는 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이중섭은 이른바 ‘원산 폭격’을 피해 남하하여 제주도와 부산에서 피란생활을 했습니다. 이때 가족들과 함께 제주도에서 보낸 시간은 가난하기 그지없었지만, 나름대로 행복한 나날이었습니다. 아름다운 자연을 벗삼아 가족과 함께 했던 행복한 순간들이 작품에 묻어나옵니다. 

이중섭의 작품은 의외로 매우 ‘단색조’입니다. 지극히 제한된 색채를 쓰되, 화면 위에 덧칠을 반복함으로써 아래의 물감층이 언뜻언뜻 내비치는 효과를 사용합니다. ‘색’보다 ‘선’을 더욱 강조하는 그의 작품은, ‘선조(線條)’를 중시했던 한국의 전통미학을 유화에 적용해보려는 의도적인 시도로 보입니다.

 

황소 이중섭, 종이에 유채, 32.5x49.5cm

황소가 붉은 노을을 배경으로 울부짖는 한 순간을 포착했습니다. 황소의 얼굴만이 클로즈업 되었는데, 포효하는 듯 입을 벌리고 있는 모습에 강렬한 기운이 가득하다. 마치 서예의 필체를 연상시키는 검은 선들이 황소의 깊이 패인 주름을 형성하며, 지나온 인고의 세월을 증명하고 있다. 커다란 눈만큼은 여전히 순한 모습으로 선한 품성을 반영합니다.

‘소’는 일본의 식민 지배를 받았던 조선인에게는 인내와 끈기의 상징, 즉 조선인의 상징이었습니다. 1930년대 일본에서 유학하던 한국인 유학생들의 모임이름이 ‘백우회’, 즉 ‘흰 소의 모임’이었는데, 일본 당국의 탄압을 받아 명칭을 변경하기도 했다. 이제 해방을 맞고 한국전쟁까지 치렀으니 드디어 떳떳하게 소를 그릴 수 있는 때가 온 것입니다.

전쟁직후 1954년경 이중섭은 비록 가족과는 이별한 상태였지만 곧 만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품은 채, 통영에서 부호들의 후원을 받으며 최고의 작품을 제작하고 있었습니다. 이 때 제작된 이중섭의 <황소>는 그 어떤 다른 소들보다도 특별히 강력한 기운을 발산합니다. 이중섭 개인의, 나아가 민족의 자존심을 건 작품으로 평가됩니다.

 

길 떠나는 가족 이중섭, 종이에 유채, 29.5x64.5cm 

아직은 태양이 완전히 떠오르지 않은 어스름한 새벽, 온 가족이 길을 떠나는 장면입니다. 누런 소가 끄는 수레에는 엄마와 두 아이가 타고 있고, 아빠는 의기양양한 자세로 한 팔을 치켜든 채 황소를 끌고 있습니다. 수레 위의 한 아이는 아무 걱정도 없이 새 한 마리와 장난을 치고 있고, 꽃잎들이 축복하듯 이들의 주변을 장식하고 있습니다. 빛이 화면의 왼쪽에서부터 들어와 이 무리를 비추어줌으로써, 화면 전체는 강렬한 극적 효과를 갖게 됩니다. 

이중섭은 헤어져 있던 아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가족을 소달구지에 태우고 자신은 황소를 끌며 따뜻한 평화와 행복이 있는 남쪽 나라로 함께 가는 광경을 그렸다고 쓴 적이 있는데, 이 작품을 말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중섭은 일본에 있는 가족들과 떨어져 지냈지만, 곧 열릴 개인전이 성공하면 이내 가족과 만날 수 있으리라는 희망에 부풀어 있었습니다. 이 작품은 실제로 1955년 1월 미도파화랑에서 열린 이중섭 개인전에 출품되었습니다. 그러나 이중섭은 끝내 가족을 만나지 못한 채 1956년 9월 서울에서 생을 마감했습니다. 

 

이중섭은 서양의 기초 위에 동양의 미학을 실현시킨 화가였다. 정확한 해부학적 이해와 엄밀한 데생 실력을 갈고 닦은 기초 위에 한국 고유의 미의식을 담아내고자 했다. 서예와 같은 일필휘지의 필력이 유화의 붓자국에 드러나고, 분청사기와 같은 겹쳐진재료의 은은한 효과가 작품의 표면에 묻어나온다. 순수한 어린이와 같은 장난스러운 ‘해학’이 있는가 하면, 자유롭고 유려한 선조(線彫)의 아름다움에서 일종의 ‘격조’가 풍겨 나온다. 스스로 말했듯이 ‘정직한 화공’, ‘민족의 화가’가 되고자 했던 이중섭의신념이 작품 곳곳에서 발현되고 있다.

 

이중섭

 

이중섭(1916~56)은 1916년 평안남도 평원의 부유한 가문에서 태어나 평양, 정주, 도쿄에서 학업을 쌓았다. 일제강점기 일본에서 화가 활동을 시작했고, 함경남도 원산으로 돌아온 후 해방을 맞았다. 한국전쟁으로 제주도, 부산 등지에서 피란생활을 했고, 전쟁 직후에는 통영, 서울, 대구 등지를 전전하며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열정적인 작품 활동을 하다가 1956년 40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식민지, 전쟁, 분단 등으로 얼룩진 한국의 근대사를 관통하면서도 이중섭은 끈질기게 ‘예술가’로서의 삶을 고집했다. 일제 강점기에도 민족의 상징인 ‘소’를 서슴없이 그렸고, 한없이 암울한 현실을 자조하는 그림을 남기기도 했다. 가난한 피란시절에도 가족과 행복한 시절을 보내며 순진무구한 아름다움을 표현하는가하면, 전쟁 후에는 강렬한 의지와 자신감으로 힘찬 황소 작품들을 쏟아내었다. 그는 무엇보다 자신의 감정표현에 충실한 ‘정직한 화공’이 되고자 했고, 한국의 전통미감이 발현된 ‘민족의 화가’가 되기를 소원했다. 그러나 사랑하는 가족과 헤어진 후 사기로 인한 빚에 시달렸고, 경제적 생활고 속에서 ‘거식증’을 동반한 정신적질환으로 불행한 말년을 보내야 했다. 결국 쓸쓸하고 애잔한 작품들을 뒤로 한 채 홀로 세상을 떠났다.

 

전시기간 2016년 6월 3일 – 2016년 10월 3일    
전시시간 오전 10시 - 오후 7시 (월요일 휴관)
장소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 (서울특별시 중구 세종대로 99)
가격 성인 7,000원 / 중고등학생&어린이 4,000원
문의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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