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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를 그려내는 극사실주의 작가 - 정중원

13.11.28 13


당연히 사진이라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정중원 작가의 그림이었다. 이처럼 순수 노동집약적으로 만들어내는 사실성은 때론 추상보다 더 충격적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최근 해외 미술 커뮤니티에서는 그의 작품이 사진을 합성한 ‘가짜’라는 루머까지 돌기도 했다. 과연 어느 정도이길래 이렇게들 난리법석인지 정중원 작가의 인터뷰와 함께 감상해보자. 아, 놀랄까봐 다시 한번 말하자면 모두 ‘그림’이다.

 

 

간단한 소개

안녕하세요. 그림 그리는 정중원입니다. 홍익대학교 시각디자인과에서 일러스트레이션을 전공했고, 지금은 동대학원 회화과에서 석사과정을 밟고 있습니다.

 

작품이 사진보다 더 사실적으로 다가온다. 이러한 화풍을 '극사실주의'라고 하나

네. 20세기 후반 팝아트의 영향으로 미국에서 시작된 사조에요. 대상을 사진보다 더 실제처럼 그려내는 게 특징이죠. 

<자화상>
Acrylic paint on canvas, 49 x 65 cm 

 

- 인터뷰 중인 정중원 작가



원래 사실적인 것을 좋아하나.

어릴 적부터 무엇이든 신빙성 있게 표현해 내는 걸 좋아했어요. 노동 집약적으로 열심히 그린 그림을 좋아하는 취향도 강했구요. 조각작품이든 영화든 연극이든 TV 프로그램이든 리얼리즘에 충실한 작품을 좋아합니다.



사실적인 작품의 매력은?

일단 감상하기 쉽고 재밌죠. 또 완성되기까지 오랜 시간과 공이 들어간다는 점도 매력이에요. 그림의 내용도 중요하지만, 작가의 순수한 노동도 감동을 주는 요소니까요. 때로는 차갑고 적나라한 사실성이 추상보다 더 강렬한 충격을 주는 경우도 있어요.

<Giuliano de' Medici>
Acrylic on Canvas, 112 x 162cm



특히 아크릴을 즐겨 사용하는 것 같다.

예전에 일러스트레이션 작업을 할 때 아크릴에 익숙해졌어요. 유화는 마르는데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서 데드라인에 쫓기는 일러스트레이션 작업에는 적합하지 않거든요. 그에 비해 아크릴은 마르는 시간이 굉장히 빠르고, 수채의 특성과 유채의 특성을 모두 구현할 수 있을 만큼 활용 범위가 넓어서 애용해요. 특히 사람 피부를 표현할 때 여러 색을 얇게 여러 번 겹쳐서 그리는데, 이런 표현법에는 건조가 빠른 아크릴이 제격이죠.

 

인물 위주의 작품을 많이 작업하는 이유가 있나?

어느 순간부터인가 ‘사람 얼굴’에 꽂혔어요. 첫 개인전의 제목도 'Faces'였구요. 얼굴은 우리가 매일 보기 때문에 새로울 것이 없는 대상이지만 그만큼 우리에게 가장 익숙하기 때문에 많은 감정이 느껴지기도 해요. 또 표정과 눈빛, 주름 하나하나에 다 이유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얼굴은 충분히 매력적인 소재이죠.
때문에 작업을 하다 보면 가끔 이상한 기분이 들기도 해요. 사람을 그리는 작업이기에 점점 그 형체가 완성되는 모습을 보면 가끔 묘한 감정이 들기도 하고, 한 사람이 완성되고 나면, 마치 그 사람과 새로운 관계를 형성한 것 같은 느낌이 들기하고...(웃음)

<MIKE>
Acrylic on Canvas, 80 x 117cm

 

<Grandpa>
Acrylics on Canvas, 116.7 x 80.3cm



셰익스피어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들었다.
특히 작품 '신격화된 셰익스피어'를 보면 정말 많은 공부를 한 것 같다.

‘공부’라고 하기에는 낯 간지럽구요. 게임 좋아하는 사람들이 게임을 하듯이 저는 셰익스피어를 좋아하니까 자연스럽게 많이 찾아본 정도에요. 군대에서 휴가 나와있는 동안 우연히 앵그르의 화보집을 보게 되었는데 한 면 가득히 ‘신격화된 호메로스’라는 작품이 실려있었어요. 호메로스의 영향을 받은 후대의 사람들 수십 명이 등장하는 대형 작업인데 보는 순간 이거다 싶었습니다. 마침 제가 당시에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모두 읽은 시기여서 자축의 의미와 함께 제가 정말 좋아하는 위대한 작가에 대한 오마쥬를 표현하고 싶었어요. 뿐만 아니라 ‘앵그르’ 역시 정말 좋아하는 화가이구요. 그래서 전역 하자마자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원작이 지닌 스케일은 감히 따라 할 수 없고, 적당한 크기의 캔버스를 골라 호메로스의 자리에 셰익스피어를 앉혔어요. 셰익스피어의 뒤에는 초서, 세네카, 호메로스, 보카치오 같은 셰익스피어에게 영향을 준 선대의 작가들이 서 있고, 그 아래에는 엘리자베스 1세, 크리스토퍼 말로우, 벤 존슨 같은 동시대 사람들이, 제일 밑에는 괴테, 베르디, 로렌스, 올리비에 등 후대의 사람들을 그렸어요. 아, 그리고 숨은 그림 찾기처럼 중간중간에 4대 비극을 나타내는 요소들도 그려 넣었어요. 예를 들어 하나 말씀 드리자면 괴테가 들고 있는 종이는 ‘맥베스’의 초판본 입니다.

<신격화된 셰익스피어>_정중원
Acrylics on Canvas 73 x 100cm

 

<신격화된 셰익스피어>의 오마쥬가 된 앵그르의 <신격화된 호메로스> (출처:위키피디아)

 

<HOMER>
Acrylic on Canvas, 112 x 162cm

 

 

또 배우 ‘이안 맥켈런’을 그린 작품이 여럿 있다. 그를 특히 좋아하는 이유가 있나

반지의 제왕에서 그가 연기한 간달프 역 때문에 좋아하게 됐어요. 셰익스피어 작품을 전문으로 공연하는 배우이기도 하구요. 실제로 그는 셰익스피어의 ‘맥배스’를 너무나 멋지게 연기한 공으로 기사작위를 받았고, 현재 연극계에서도 독보적인 존재이죠. 헐리웃에서 성공했음에도 아직도 수시로 연극무대에 서고 있어요. 예전에 뉴질랜드를 덮친 지진 때문에 유서 깊은 극장이 무너져 내리자 스스로 원맨쇼를 기획, 4억원에 가까운 수입금액을 마련하여 전액 기부했고. 또한 스스로가 커밍아웃을 한 동성애자인 만큼 성소수자를 위한 인권운동도 활발히 펼치고 있구요. 인간적으로도 너무나 멋진 사람이에요. 단지 배우로써 멋있는 것에 끝나지 않고 정말 닮고 싶은 ‘사람’의 모습을 보여준다고 생각해요. 이분을 그리면서(페르소나) 목에 무리가 와서 병원까지 다녔는데, 그래도 한없이 존경하는 마음 덕에 즐겁게 완성할 수 있었습니다.

<Gandalf>
Charcoal & Conte on paper, 45.5 x 35cm

 

<Persona>
Acrylic on canvas,  73 x 117 cm



서울 시내를 돌며 숨은 명장들을 담은 사진들을 보았다. 어떤 생각으로 진행한 프로젝트인지.

청년실업, 경기침체 등으로 아무리 어렵다고 해도 지금의 젊은이들만큼 유복한 세대는 없었다고 생각해요. 그렇기에 예전 암울했던 시대를 겪은 사람들을 존경할 수밖에 없죠. 특히 우리 할아버지 세대의 분들은 일제강점, 한국 전쟁, 군사정권, 뿐만 아니라 농업사회, 산업사회, 정보화 사회를 모두 겪은 그야말로 근현대사의 산 증인이세요. 한 분 한 분이 ‘전설’ 속에서 등장한 것만 같죠. 그렇기 때문에 그 분들의 얼굴에서 숭고한 아름다움마저 느낀 것일지도 모르겠어요. 또 노인의 얼굴은 조형적으로도 굉장히 매력적이에요. 특히 사진이나 그림 같은 작품으로 승화되었을 때 그 분들의 아름다움이 더 분명하게 드러나요. 50년간 한 자리를 지켜온 이발사, 서울 한복판에서 대장간을 운영하고 있는 형제, 수 십 년간 무대를 지켜온 연극배우 등 요즘처럼 모든 것이 빨리 바뀌는 시대에 그렇게 한 길만을 걸어오신 완고한 고집이 충격적이기도 하고 정말 아름답게 느껴졌어요. 우리 젊은 세대들이 잃고 있는 가치가 아닐까요? 이거 해보고 저거 해보고.. 그래서 우리사회에 점점 ‘장인’이 없어지는 것 같아요.

<오래된 사람들>, 흑백 네거티브 필름

 

 

그렇다면 정중원이 생각하는 장인이란?

무언가를 파고들면 전문가라고 인정해주는데 그 영역이 사회적으로 인정받거나 돈이 되거나 하지 않으면 ‘오타쿠’로 매도해버리는 것 같아요. 이상하게도 ‘오타쿠’가 욕이 되어버린 것이죠. 하지만 우리 세대에서는 오타쿠가 곧 장인이라고 생각해요. 시대의 흐름에 아랑곳하지 않고 한 가지에 몰두하여 전문적인 지식과 실력을 쌓는 사람들이니까요. 그런데 그들을 조롱하며 사회적으로 도태시켜 버리니 점점 모두 평준화 되어 가는 것 아닐까요. 오히려 저는 누가 제게 오타쿠라고 해주면 상당히 기분이 좋아요.(웃음) 그래도 제가 고상하게 그림이나 셰익스피어를 좋아하니까 사람들이 좋게 봐주는 것이지 만약에 ‘디아블로’ 게임에 이만큼 빠졌으면 분명히 손가락질을 당했겠죠. 게임에도 나름의 문학성이 있는데 말이에요.

- 정중원은 스스로를 셰익스피어 '덕후'라고 말한다.

셰익스피어가 살던 시대에는 ‘햄릿’이 곧 ‘디아블로’ 였어요. 귀족들만 향유했던 고급문화가 아니라, 단돈 1페니로 즐길 수 있는 아주 값싼 오락물이었는데 지금은 마치 교양 있는 사람들만 즐기는 것처럼 되어버렸어요. 이처럼 400년 후에는 대학 교수들이 ‘디아블로’의 문학성을 찬양하게 되지 않을까요?
뭔가에 깊이 심취하면 손가락질을 받으니, 우리나라 사람들은 제대로 된 취미도 없는 것 같아요. 자신의 취미에 대해 전문성을 가질 수 있고 몰입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런 사람들이 많아야 문화적 수준도 높아질 것 이구요. 미술, 영화, 음악부터 문학, 철학, 정치, 사회운동 등 많은 분야에서 다양한 오타쿠들이 나와야 본질적인 ‘창조’가 많이 이루어지지 않을까요?



작가로서의 계획, 그리고 한 명의 사람으로서의 꿈은?

구체적으로 어떠한 작가가 되고 싶다기 보다는 작가로서는 죽는 순간까지 작업하고 싶어요. 젊은 패기로 철없는 말을 하는 것일지도 모르지만 타협하고 싶지 않아요. 결혼이나 취직, 돈 등에 얽매여서 내가 원하는 일을 하지 못하는 일이 생기지 않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그러한 일들을 항상 경계하고 있어요. 아무것도 모르던 꼬마 시절부터 그림이 너무 좋아 그림을 그려왔는데 단지 현실적인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다고 해서 편하고 안전한 길을 간다는 것은 제 스스로에게 너무 비겁하고 슬픈 일인 것 같거든요.
또 나이가 지긋해져도 퇴보하지 않고 항상 젊은 세대와 소통하며 죽을 때까지 내 할 일을 하고 싶어요. 얼굴에 진 주름 하나하나에 의미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 꿈이에요.

 

마지막으로 독자들에게 한마디
모두 각자의 분야에서 재미와 열정을 느끼셨으면 좋겠습니다. 지금 하는 일이 너무 재밌어서 주말이 기다려지지 않는다면, 그것만큼 행복한 것도 없지 않을까요?

 


정중원
http://blog.naver.com/carandin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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