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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라는 동시대적 현상, X라는 질문 -X1

17.02.01 0

X1: 1990년대 미술은 ‘역사적 필연’이었다.

 

서울시립미술관 <X:1990년대 한국미술>展 전경, 출처: 일상의 실천

 

2017년 1월 18일.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 본관에서는 SeMA Gold <X:1990년대 한국미술>展이 한창 진행 중이었다. 궂은 날씨의 평일임에도 불구하고 전시장은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오늘은 앞으로 총 4주에 걸쳐 ‘90년대 미술’을 주제로 진행될 세미나의 첫 토크가 예정된 날이다. 우연찮게 90년대 미술을 주제로 전시가 열린다는 소식에 서울시립미술관에 방문한 게 벌써 2주 전이다. 개인적으로 ‘90년대’라 함은 ‘유년시절의 총집합체’로 웨딩피치와 HOT, SES 언니들이 대세였던 시절이다. 학교가 끝나면 근처 떡볶이 집에서 300원짜리 떡볶이를 사먹고, 똑같은 300원짜리 슬러시에 피카츄만 한입 배어 물면 세상을 다 가진 것만 같았던 때이기도 하다. 학교에서는 ‘아나바나’ 운동을 했던 기억도 어렴풋이 난다. 어떤 날은 TV 속의 아저씨가 IMF란 게 터졌다고 발표를 해서, 국민들이 힘을 합쳐 금을 모았던 기억이 있다.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90년대는 확실히 매력이 있던 시기였다. 그래서 이번 전시만큼은, 이번 세미나만큼은 꼭 참석해서 ‘90년대 미술을 이해하고 말리라!’ 다짐을 했다.

미술비평가 신정훈과 미술사가 정헌이, 출처: 문화뉴스  

 

<1990년대 미술은 역사적 필연이었다>는 제목하에 진행되는 이번 세미나에는 미술비평가 신정훈과 미술사가 정헌이가 등장했다. 신정훈의 발제로 시작된 세미나는 다소 엄격한 분위기로 진행됐다. 그는 90년대 이전의 한국 미술을 ‘고아’의 상태로 비유하며, 90년대 미술을 70년대의 ‘모더니즘 고아’와 80년대의 ‘민중미술의 고아’를 토대로 자생한 ‘역사적 필연’으로 정의했다. 때문에 90년대 한국미술이 이 전의 고아선배(?)를 토대로 자생력을 갖고 드디어 ‘고아상태에서 벗어났다’고 해석했다. 이러한 비유는 직관적으로 근 30년 동안의 한국미술의 특징을 유추할 수 있게 했고, 미술을 전공하지 않은 한 관객으로서 90년대 미술이 역사적 관점에서 얼마나 큰 의미를 지니는지 알 수 있었다. 이야기는 크게 ‘과연 90년대의 미술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정의로 이뤄졌다. 신기하게도 두 사람이 바라보는 90년대는 동시대를 살아왔음에도 당시 미술계를 구성하는 ‘다양성’ 그 자체를 반영했다. 그만큼 각자의 언어로 표현하는 시기와 정의는 미묘하게 같고도 달랐다. 세미나에서 이루어진 담론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도서 <X:1990년대 한국미술>展, 출처: 일상의 실천



첫째, ‘90년대 미술’에서 ‘90년대’라는 시기적 정의

 

87년 6월 항쟁 & 97년 IMF이후 금모으기 운동, 출처: 허핑턴포스트, 국제신문

90년대 미술을 이야기하기에 앞서 90년대에 대한 시기적 정의가 우선일 것이다. 연속선을 흐르는 시간의 특성 상 특정시기를 칼로 무 자르듯 딱 잘라 정의할 수 는 없지만, 신정훈은 1987년 제6공화국의 출범부터 1997년 IMF가 터지기 전까지의 시기를 ‘90년대’로 정의했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미술사의 흐름 역시 국내에서 발생한 큰 역사적 사건의 시기를 반영했다. 87년 2월에는 신세대 소그룹 ‘뮤지엄’이 첫 전시를 개최하며 미술계에 형성된 기존의 질서에 새로운 바람을 불었고, 97년 이후로는 해외유학파 출신의 작가들이 귀국하면서 한국미술이 다른 의식구조와 양상을 갖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는 제6공화국 출범과 IMF사태로 통칭되는 ‘사회의 변동’이 소그룹 ‘뮤지엄’의 등장과 ‘트렌드의 변화’라는 ‘미술사적 시기’와 일치하는 것을 흥미롭게 바라봤다. 아마도 이는 시대로부터 자율성을 갖지 않는 미술의 특성 때문일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때문에 그는 미술이 곧 ‘시대의 마음’이자 ‘분위기’라고 칭하면서, 대/내외적으로 사회에 사건이 발생하고 그것을 해석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곧 미술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굿-즈(Goods)>展, 2015. 문화체육관광부 주최 및 예술경영지원센터 주관으로 개최되는 행사. '굿-즈전'은 작가와 시각예술 분야의 활성화를 위해 작가와 국민이 직접 소통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해 기존의 아트페어와는 달리 미술품 거래의 판매금 전부를 해당 작가에게 지급해 작가의 판로 개척을 지원하는 직거래 미술장터이다, 사진 및 캡션 출처: http://blog.naver.com/pangpang0317

 
반면, 정헌이가 정의하는 90년대는 꽤 흥미로웠다. 그녀는 역사적 사건으로 시대를 정의하는 것이 속 시원한 일일 수도 있으나, 90년대 미술은 단순히 97년에 끝맺지 않았으며 2010년대인 최근까지도 그 흐름이 이어지다 2015년 <굿-즈(Goods)>展을 마지막으로 종말을 맞이한다고 했다. 그녀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90년대’가 과거의 것이 아님을 재차 강조하면서, 비교적 최근에서야 ‘새로운 흐름’으로 분류할 수 있는 큰 움직임이 일어났다고 평가했다.

 

둘째, 그렇다면 90년대 미술에서 ‘동시대’란 무엇인가

 

이재용<한 도시 이야기>, 1994년 서울사람들의 어느 하루, 출처: 디자인 정글

 

단순히 생각하면 ‘동시대’는 ‘같은 시대를 사는 것’ 이상의 의미를 지니지 않는다. 하지만 역사적 관점에서 ‘동시대’는 그보다 더 가치를 지니는 의미를 지닐 것이기에 ‘동시대’의 조작적 정의가 궁금했다. 이에 대해 신정훈은 과거의 미술이 현재의 미술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을 깨닫는 행위가 ‘동시대’일 수 있다면서 이재용의 <한 도시 이야기>를 사례로 들었다. 90년대에 대학생활을 한 그는 <한 도시 이야기>를 보고 가벼운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영상을 보는 동안 자신의 기억과 실제의 90년대가 일치하지 않는 부분이 꽤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상은 90년대를 직접 살아왔음에도, 자신이 가지고 있는 90년대에 대한 고정관념(stereotype)에 의해 발생한 인지부조화를 원인으로 추정할 수 있다. 그는 개인적인 경험을 토대로 ‘동시대’를 ‘당시의 사회상을 날카롭고 뾰족하며 생생하게 전하는 것’으로 정의했다. 아무리 오랜 시간이 흘렀다 한들 당대를 생생하게 느낄 수 있는 작품이라면 ‘동시대적인 작품’이라 정의한 것이다.

 

<화엄>, 생선을 소재로 한 이불 작가의 작업, 출처: 조선닷컴 & http://artntip.com

반면 정헌이는 60~70년대 한국 미술의 특징을 토대로 ‘동시대’를 정의했다. 앞서 신정훈이 정의한 ‘뿌리가 없는 고아의 상태’와 맥락을 같이하는 90년대 이전의 한국미술은, 해외작품의 트렌드를 답습하거나 특정 메시지가 담긴 획일화된 양상을 보였다. 하지만 그녀는 이러한 시류에서 벗어나 기존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쓰레기, 천, 전구 등 다양한 소재로 작품을 만들고, 획일화된 질서에서 벗어남과 동시에 나의 작품이 곧 트렌드가 되는 것을 ‘동시대’로 정의했다. 이는 단순히 해외에서 유행하는 것을 우리나라에서 답습하여 인위적인 ‘동시대’를 만드는 것이 아닌, 자생적으로 만드는 ‘동시대’로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두 사람의 시대적 정의를 듣고 보니 한 가지 공통점을 꼽을 수 있었다. 바로 ‘미술은 시대의 반영 없이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셋째, 90년대가 인기 있는 이유

 

 


88올림픽 개최, 한국은 이로써 제3세계가 아님을 입증했다, 출처: 국가기록원,berkeleyopinion


글의 서문에서 언급했다시피 90년대는 그 단어만으로 매력을 지닌다. <응답하라1997>로 시작된 ‘응답하라 열풍’이나 꾸준히 인기가 있는 레트로 작품만 봐도, 과거에 대한 사람들의 향수를 직/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다. 그만큼 우리는 90년대를 쉽게 느낄 수 있고, 기억저편에서 꺼내오기도 쉽다. 실제로 현재 진행 중인 <X:1990년대 한국미술>展이나 90년대를 주제로 한 세미나에 대한 대중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이러한 현상에 대해 신정훈은 ‘90년대 라는 시대자체의 매력’을 그 원인으로 꼽았다. 88올림픽 개최라는, 이제 더 이상 한국이 제3세계가 아니라는 지표를 공고히 한 이 이벤트는 IMF가 터지기 전까지 ‘시대적 풍요’를 가능케 했다. 그리고 신정훈은 이러한 사회·경제적 배경을 아주 재미있는 비유로 표현했다. “90년대는 지금의 세대와 달리 ‘염치’와 ’도리’가 있던 시기”로 그만큼 사람들이 자본주의 사회에 때묻지 않았던 시절이었다는 것이다. 소위 말해 삼성에 입사하는 것이 지금처럼 큰 의미를 지니지 않았고, ‘돈이면 다 된다’는 물질 만능주의 사고에 일종의 죄책감을 느꼈던(적어도 IMF가 터지기 이전까지 말이다.), 정신적·물질적으로 풍요로운 시기 말이다.

 

최정화와 이불, 출처: 까사리빙, ARENA


정헌이도 이에 일부 공감하면서 90년대 미술을 전공했던 학생과 현재 학생들의 차이를 ‘전업작가 생활’에서 꼽았다. 즉, 당대의 미술학도들은 전업작가 생활을 꿈꾸는 것이 가능했지만, 현재의 세대는 작가 생활을 꿈꾸는 것 조차 어려운 ‘결핍의 세대’가 되었다는 것이다. ‘미술계 역시 자본주의의 질서를 거스를 수는 없었구나’라는 생각이 드는 것도 잠시. 앞서 신정훈의 말처럼 미술은 우리가 사는 세상을 해석하는 사회의 구성요소기에 ‘결핍의 세대’를 피해갈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미술 역시 우리 사회를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이다.

 

핑크돼지 오브제(1)와 재활용조명(2), 최정화, 출처: CASA <일상을 예술로>  

 


Via Negativa(interior detail), 이불, 2012, 출처: ARENA <이불의 모호함>  

 

어찌됐든 90년대 미술은 지금의 세대와는 확연하게 차이가 있는 ‘풍요로움’을 기반으로 기존의 획일적인 흐름과는 다른 미술적 시도를 꾀할 수 있었다(정헌이는 이 부분에 대해 ‘꼴리는 대로 작업하는 것이 가능했다’고 표현했다). 때문에 그녀는 90년대에 신선하고 새로운 형태의 작업이 다양하게 존재할 수 있었고, 그러한 흐름이 최근까지 이어져 ‘90년대’라는 소스가 꾸준히 인기가 있다고 해석했다.


한 가지 재미있는 건, 90년대의 시대상과 현대 사회의 미술학도를 비교한 신정훈과 정헌이의 표현에 대해 한 작가가 “나는 신정훈이 말하는 ‘염치’와 ‘도리’를 다하기 위해 전업작가 대신 회사생활을 택하게 됐다”고 공감한 것이었다. 그의 말에는 이번 세미나 동안 나눠온 ‘90년대 미술’에 대한 생각들이 집약적으로 녹아있었다.

 

이미지 출처: 디자인 정글

 

같은 시대를 살아왔음에도 각자의 시선에 따라 다르게 정의되는 시대담론은 흥미롭고 신선했다. 그리고 또 한가지 깨달은 중요한 사실은, 단순히 ‘유년시절의 총 집합체’외의 의미가 없던 90년대가 미술을 통해 의미를 갖게 되었다는 점이다. 이건 아마도 미술이 사회를 이루는 중요한 구성요소임에도, 역사적 의미를 단순히 정치·경제·사회적 배경에서만 찾아서 발생한 일일 것이다. 이번 세미나는 그동안 역사적 사건과 미술을 별개로 분리했던 습관을 깨닫고, 미술이 시대의 반영 없이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없음을 인지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신정훈(미술비평가/한국예술종합학교 학술연구교수)
정헌이(미술사가/한성대학교 교수)

김해인

읽는 사람이 즐거운,
언제나 유쾌한 글을 쓰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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