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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cm의 미묘한 차이

17.05.10 0

제 19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발생한 ‘투표용지 논란’과 미미하지만 이전보다 높은 투표율을 보니 문득 궁금증이 생긴다. 투표용지와 기표용구는 어떻게 디자인되었을까? 그도 그럴게, 지난 5월 4일과 5일에 걸쳐 이뤄졌던 사전투표에서 투표지 디자인을 두고 논란이 일었기 때문이다.

 

 

가장 흥미로운 현상은 표창원 의원이 언급한 ‘연쇄집단 기억오류’였다. 사전투표를 행한 대다수의 사람들이 ‘투표용지에 여백이 없다’고 보고한 것이다. 투표용지에 여백이 없으면 그만큼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에게 기표하기가 어려워 무효가 될 가능성이 높다. 문제는 이런 투표용지를 목격한(?) 사람들이 하나 둘씩 늘어나면서 ‘사전투표 선거조작’ 여론이 인 것이다. 그러나 확인 결과, 해당용지는 칸 사이에 여백이 좁은 정상 투표지였고 표창원 의원은 이를 “꼼꼼하고 현명한 분들도 ‘연쇄집단 기억오류’ 발생이 가능하다.”고 언급했다. 이러한 현상은 아무래도 자신이 행사한 소중한 한 표가 ‘무효가 될 수 있다’는 불안심리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 선거에 쓰인 투표용지, 출처: 중부매일

투표용지 ‘좁은칸’ 논란, 출처: KBS NESW

 

이번 선거에 쓰인 투표용지는 가로 10cm, 세로 28.5cm로 후보자 간 칸 간격은 0.5cm인 세로로 긴 형태를 띄었다. 본격적인 선거를 앞두고 2명이 사퇴하긴 했지만, 어쨌거나 15명이나 되는 많은 후보가 선거에 출마하면서 투표용지가 기존보다 3배나 길어진 것이다. 그런데다 기표란의 네모 칸 세로길이가 지난 12년 대선 때보다 0.3cm 줄어들면서 심리적으로 큰 차이를 불러일으켰다.

 

투표는 대한민국의 성인이라면 모두가 참여할 수 있는 권리다. 때문에 몸이 불편한 사람이나 노년층을 고려하면 글자크기를 획기적으로 줄일 수도 없었을 테고, 그렇다고 여백을 넉넉히 늘리자니 비용도 만만치 않았을 것이다. 그도 그럴게, 투표용지는 우리가 아는 일반용지와는 다르게 인주 번짐이 없고(인주 적성) 두꺼운 특수용지로 제작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개표과정에서 발생하는 오류를 최소화하기 위해 정전기도 방지해야 하고, 쉽게 찢어지면 안되니 강도도 세야 한다. 때문에 기존과 동일한 디자인대로 제작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었을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생각해보면, 논란이 된 투표용지의 사정이 조금은 이해가 된다.

 

 

2012년경 한국기술교육대학교 디자인공학과 학생이 제작한 투표독려 포스터


그렇다면 ‘투표도장’으로 불리는 기표용구는 어떻게 디자인 되었을까? 사람들이 선거기간 동안 가장 많이 접한 선거용 로고는 아마도 ‘점복(卜)자’일 것이다. 사전상 ‘점복 자(卜)’의 의미는 문자 그대로 ‘점치다’는 뜻이다. 한편 전라북도 선관위는 ‘점복 자(卜)’의 의미를 영어단어 ‘CHANGE(변화)’로 형상화한 디자인포스터를 게재하기도 했는데, 두 가지 관점 모두 도장의 무늬가 ‘점치다’, ‘변화하다’를 상징한다는 점에서 투표도장이 표의적인 디자인임을 확인할 수 있다.

투표도장에 쓰인 점복자(卜), 출처: 이투데이

 

사실, 1985년 이전 선거에 쓰였던 도장은 단순히 동그라미(O) 모양이었다고 한다. 심지어 동그라미 모양이라면 모두 투표가 가능했기에 일괄된 도장 없이 다양한 도구를 사용해 투표를 했다. 하지만 종이를 접어서 내는 투표의 특성상, 반대쪽 종이에 인주가 묻어 무효가 될 가능성이 있어 무늬를 넣자는 여론이 생겼다. 때문에 처음엔 사람인(人)자를 형상화했지만, 그마저도 김영삼의 ‘ㅅ’이 연상된다는 이유로 94년부터 지금의 점복 자(卜)를 사용했다고 한다. 또한, 인주의 번짐을 방지하기 위해 찍는 순간 바로 건조되는 특수잉크를 개발해 사용하고 있다. 

 

2017년 5월 9일 대선으로 선출된 제 19대 대통령 문재인, KBS 뉴스


어쩌면 이런 ‘아주 미묘한 차이’ 때문에 논란이 일고 논란이 불식되는 선거 매커니즘이 어렵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선거는 공정해야 하기에 이런 ‘미묘한 차이’는 중요하다. 0.3cm의 미세한 차이가 ‘연쇄집단 기억오류’를 불러일으킨 것처럼, 아주 작은 ‘미묘한 차이’일지라도 대중은 큰 변화를 느끼고 그에 따른 심리적 반응을 일으키기도 한다. 그런 맥락에서 생각해보면, 정치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비록 지난 대선보다 1.4%라는 아주 미미한 투표율 상승을 보였지만, 지금까지의 역사가 증명하듯 변화는 아주 ‘미세한 차이’에서 시작된다. 때문에 오늘부터 시작된 새로운 정권에서도 미묘하지만 조금씩 크게 변하는 대한민국이 되길 바라본다. 

 

김해인

읽는 사람이 즐거운,
언제나 유쾌한 글을 쓰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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